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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8:52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노무현 공천으로 영남서 살아난 건 내 밖에 없다”
“노무현 공천으로 영남서 살아난 건 내 밖에 없다”
  • 이호 대기자
  • 승인 2018.06.21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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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재보궐 선거 울산 북구 당선,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인사이트코리아=울산/이호 대기자] 민주당의 불모지 울산 북구에서 푸른색 돌풍이 불었다. 그 돌풍은 바람의 신(神) 제피로스의 괴력처럼 마침내 20년을 기다려온 민주당의 숙원을 일시에 해소시켰고, 그 중심에 이상헌(64)의원이 있었다.

6.13 지방선거를 겸한 국회의원 울산 북구 재보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후보가 48.5%로 2위인 자유한국당 박대동 후보를 1만9731표 차로따돌리고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터지는 환호와 박수 속에는 그간의 한이 녹아내렸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울산에서 민주당의 과거 20년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출발점을 알리는 봉화의 횃불이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울산은 1948년 제헌의회부터 1960년 5대 총선까지 ‘갑’과 ‘을’ 선거구로 나뉘어 두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다가 1963년에 치러진 6대 총선 때부터 다시 하나의 선거구로 통합됐다.

‘울산 북구’ 선거구는 경상남도 울산시가 1997년 울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중구와 울주군에서 조금씩 지역을 조정해 2000년 4월 13일 실시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신설됐다. 그 때부터 단일 선거구로 이어져 왔지만 16대 이후 20대 총선을 치루는 내내 진보 성향 당선자는 세 번이나 배출했어도 민주당계 의원은 한명도 없었다.

물론 유권자의 성향이 울산의 다른 지역과는 두드러지게 차이를 보이는 배경이 있었다. 제헌국회의 최봉식 의원과 김수선 의원에 이어 국회 부의장을 지낸 7선의 정해영 의원과 관료출신인 김태호 의원, 두 번의 국회의원과 초대, 2대 민선시장을 지낸 심완구 의원을 포함해 6선 의원을 지낸 최형우 의원까지, 울산 여타 권역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골고루 등장했지만 유독 북구에서는 20년 넘도록 민주당 후보가 외면당한 것이다.

“이제부터 북구는 민주계로 통합된다”

유권자들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지만 정치 분석가들은 민주당계 인물이 선출되지 않는 배경으로 지역의 특수성을 내세웠다. 현대중공업이 있는 동구와 함께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북구는 현대차 협력사들을 포함해 공단 노동자들이 숫자의 절대적 우위를 보이는 지역이고, 그 때문에 진보정당이 줄곧 강세를 보인다고 했다. 좀 더 솔직하게 접근하면 민주당보다는 스탠스가 더 좌측인 민주노동당 계열 지지세가 더 강하다는 얘기다.

그런 이유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42.5%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지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노동당·정의당·무소속 간의 단일화 후보였던 윤종오 전 의원이 61.5%라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던 것이다. 윤 전 의원은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이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고 6월 13일 재보궐 선거를 치루게 됐지만 울산 북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는 건 요원한 숙원이었다.

때문에 노동당 계열의 아성이었던 북구에서 이상헌 후보는 출마의 변을 통해 ‘이제부터 북구는 민주계로 통합된다’고 선언하면서 편파주의 해체를 예고했다. 노동계의 담을 허물고 모두를 지역 발전 카테고리 속으로 융합시켜야 한다는 절실함을 표출한 것이다.

실제로 이상헌 후보가 진보와 노동계를 대표하는 민중당 권오길 후보를 큰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자 지역 언론들은 일제히 이 의원이 지역주민들과 진보성향 노동계를 아우르는 통합과 단결의 힘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 당선인이 ‘울산 북구 최초의 민주당 국회의원이 탄생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했다’거나 ‘뚝심과 원칙의 신념으로 20년간 정당을 지키면서 북구 경제를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힌 부분도 주목했지만 ‘사람을 바꾸면 삶이 어떻게 달라 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겠다’는 각오를 더 깊숙이 살펴본 때문이었다.

어쨌든 역대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이 울산 북구 선거구는 민주당의 완패였다. 첫 신설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한나라당 윤두환 당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민주노동당 조승수 당선, 제18대 선거에서 다시 윤두환 당선, 2009년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신당 조승수 당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박대동 당선, 제20대 총선에서는 무소속 윤종오 당선이었다. 윤 당선인은 그 후 민중연합당과 합당해 민중당 소속이 됐다.

민주당은 판판이 깨졌다. 그런 만큼 6.13 재보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자 추미애 당대표를 포함한 중앙당 참관인들을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고, 그 의미는 전국정당화를 넘어 시쳇말로 좌파정당이라는 이미지까지 세탁시켰음은 물론 민주당의 새로운 변화와 롱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이상헌 후보가 20년 만에 해낸 것이다. 그는 그랬다. 의미 있는 한마디였다.

“노무현 공천으로 영남에서 살아난 건 내밖에 없다!”

아직 당선의 기쁨과 흥분이 가시지 않았을 것 같은 지난 19일, 이상헌 의원을 울산 북구 선거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은 선거 캠프였던 곳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고 흥분은커녕 평소의 소탈한 와이셔츠 차림에 담담한 미소가 전부였다.

“대통령님이 잘해주셔서 확 씰었심더”

무엇보다 20년의 한을 푼 소회부터 들으려고 했을 때, 예고 없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로서는 그 순간을 동영상으로 카메라에 담고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이 의원의 첫 인사는 “바쁘실 텐데 축하 화분도 보내주시고 전화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그러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와 어눌한 발음으로 공약부터 부탁했다. 문 대통령이 경상도 사람이더라도 쉽게 알아듣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이 들 정도로 이 의원의 사투리는 빠르면서 심했다.

“아시겠심다만 대통령님이 잘해주셔서 확 씰었심더. 시장, 군수, 시의원들까지 전부 씰어 담았심더. 저도 대통령님 덕분에 됐심더.”

문 대통령의 웃음소리는 휴대폰 밖으로 선명히 들렸다.

“대통령 덕분이라는 소리하면 내 등골이 서늘해져요, 하하하. 축하가 늦었지요? 수고 많았어요. 자유한국당 너무 자극하지 않도록 하시고 우리가 절대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심더. 근데 대통령님께서 우리 북구에 외곽순환도로 해주시겠다 그카신 거, 그기 대통령님 공약사업 아니었십니까.”

“하하, 그랬지요.”

“그걸 제가 또 공약으로 내걸었심더. 그거 해주셔야 됩니더!”

“하하하, 기억력도 좋으시네.”

“그기 우리 북구 발전의 동맥이고 핵심사업 아이겠십니까. 그거 좀 꼭 부탁드립니다!”

“하하 예, 검토시키지요. (러시아)다녀와서 한번 보입시다.”

“예. 공약 그거 절대 해야만 됩니더.”

“하하, 알겠어요. 이 의원님은 집념이 대단한 분이니까. 열심히 하세요.”

“고맙심더.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고, 들어가입시다.”

듣고 있던 기자도 한바탕 웃었다. 대통령과 통화를 마감하는 인사말이 ‘들어가입시다’라는 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천연덕스럽게 미소만 보이면서 “정중하게 인사한긴데 뭐…”했다. 그만큼 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친분이 깊다는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그동안 겪어 온 개인사나 민주당의 20년 한을 특별히 짚어 내거나 누구 탓을 하는 발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본인이 당선됨으로써 그간의 여러 출마자들이 번번이 낙선한 분석도 이젠 의미가 새로울 게 없다는 듯 했다. 다만 자신의 흔적이 남겨진 과거사를 웃음으로 포장해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듯했다. 사전 질문요지도 없이 인터뷰 했다.

“니가 빨갱이가,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가등가”

-왜 본인한테 빨갱이라는 소리가 붙어 다녔다고 생각하나.

“남들이 내한테 빨갱이라는 소리는 안했지. 우리 집안, 경주이씨 종친회, 우리 집안 어른들이 그캤지 뭐. 내가 2000년 3월 6일 날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어요. 그 당시에는 DJ(김대중)하고 같이 댕기면 빨갱이라 캤잖아요. 그랬는데 입당하고 바로 4월 13일 치러지는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거든요? 그때 내 생각으로는 우리 형님(이상원 전 도의원)이 도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도 76%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이 됐거든? 그래서 형님 지지자들을 속으로 철석같이 믿었지요. 근데 윤두환 후보한테 형편없이 깨졌어. 4170표에 9.24% 득표야. 왜 그랬냐, 입당을 하고 집안 어른들한테 인사를 갔더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아요. 뭐 하러 왔노, 니가 빨갱이가,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가등가, 무소속으로 나가면 도와주께, 이러시는 거라. 이미 공천을 받아놨고 나는 민주당 해야겠다는 심지가 꽈악 잡혀있는데 말이지. 그래도 어른들 말씀이라 듣고만 있으니까 니가 우리 집안 다 베려놨다, 가라. 도리 없이 물러 나와서 또 다른 어른한테 인사를 갔어요. 니 얘기 다 들어서 안다, 니는 구제불능이구마는. 그래가지고 또 쫓겨났어요. 그러니 무슨 선거가 되겠어. 결과적으로 집안 어른들부터 빨갱이고 구제불능이라 그카는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우땠겠어요. DJ당 간판 걸고 나왔다고 빨갱이라 그러니 내 참…DJ가 빨갱이입니까? 그 어른도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서 팬티도 빨간색은 안 입어요. 하이고 내 참…. 우쨌든 그래가지고 내한테 빨갱이 딱지가 붙어 다녔어요. 그러다가 3년 전쯤에, 우리 선산에 16대 선조들부터 대대로 모셔온 조상 묘가 한 300구 되는데, 벌초를 하면 100여명이 모여요. 그래서 산신제를 올립니다. 근데 그 때 교육감을 하신 집안 아제가 나를 부르더니 ‘헌아, 니가 오늘 초혼문(招魂文)을 읽어라’ 이러시더라고. 와아…. 집안 어른들이 다 모인 제사자리에서 그 한마디로 그날 내가 사면복권이 된 거라, 15년 만에 집안으로부터 빨갱이 사면복권이 된 겁니다 하하하!”

-이번 보궐선거가 아닌 지난번 20대 총선에서 출마 기회가 있었는데 왜 포기 하셨나.

“내가 방송토론회에서도 얘기했지만 민중당 후보가 표를 얻으려고 그랬는지 내 말에 부인을 하고 억지스러운 주장을 하던데, 당시에 문재인 당 대표께서 어렵게 말씀을 꺼내요. 정권교체를 위해 윤종오 후보를 지지해 주라고. 간곡히 권유를 하십디다. 그래서 알겠다고, 정말 고민도 많이 했고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있었지만 결국 내 개인의 영달이나 당의 이익을 전부 버리고 오직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열망으로 후보직을 사퇴한 거지요.”

-공직선거법상 재보선 국회의원 당선자는 당선증을 교부받은 시점부터 국회의원직을 수행하게 되니까 임기는 2020년 5월 29일까지다. 공약 내용을 보면 울산외곽순환도로 국가재정으로 추진,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주민들에게 환원, 강동 관광단지·호국관광 1번지 구축, 전기차와 수소차 등 미래형 자동차 산업 육성을 위한 수소경제법 제정, 울산을 남·북·동해안 벨트의 중심기지로 육성 등 1~2년 내에 해결할 수 없는 공약들이 많다.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나.

“ 내 스타일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저돌적이면서도 뒤끝 없이 소탈하다고 얘기들 하는데, 그것도 틀리게 본 건 아이지만 나는 한번 물었다 하면 끝을 봅니다. 안되면 머리 깎고 청와대 들어가서 드러눕고 투쟁하는 거지 뭐, 하하하. 사실 공약사업은 단기에 시작해야 할 것도 있지만 중·장기에 걸쳐 해야 하는 것도 있어요. 근데 내가 볼 때 총체적으로 나서야 돼요. 시장, 국회의원·구청장·시의원과 구의원들까지 전부 하나가 돼서 힘을 합치면 안 될 거 없어요. 물론 잠이 안 오지. 어제 송철호 시장 당선자하고도 만났는데 잠이 안 온다는 거라. 걱정이 태산이다 이거지. 그만큼 고민하는 겁니다. 그러고 당 대표도 선거 때 적극 도와주겠다 약속했지만 내가 선거 전에 건설교통부장관하고 청와대에도 전화를 했어. 직접 가서 만나기도 하고. 이런 이런 공약을 내놀라그카는데 허언으로 끝나면 클난다, 가능하겠나? 그러이까 긍정적으로 검토할 테이까 당선만 되라는 거라. 여기(북구)는 안 될 줄 알았는가 대답이 좋더라고, 하하. 그러니 인제는 내한테 물렸지. (재정)안주기만 하면 내가 엄청 독하게 물고 쳐들어올 거라는 거 잘 알거거든, 하하하. 정말이지 보좌진 구성도 급한데 공약 실행 생각으로 머리 엄청 쓰고 있어요. 반드시 해낼 겁니다. 2년 안에 못 끝낼 수도 있는데 우리 지역 시민들이 딱 보면 알 거 아입니까. 공사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인지 이상헌이가 허언을 했는지 대번에 알거든. 실제로 큰 변화를 실감하게 될 겁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아야지”

-선거 중에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이동권(60) 북구청장 당선자 때문에 정말 힘들었지요(이동권 당선자는 이명박 정권 때 경호처 가족2부장과 공직기강팀장을 맡았고 국민권익비서관까지 지냈으며 이명박 정부 국정백서(2008.2~2013.2) 집필 책임자이기도 해서 민주당 울산시당 내에서조차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고 적전분열이 일기도 했다). 너무 힘들었어. 정말 잠을 못 잘 지경이었어. 다른 공천 신청자들도 많은데 왜 자한당 골수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이냐고 난리치고, 내 성격에 내 일보다도 더 설득하고 오만 사람 만나고 댕기면서 우쨌거나 후보가 됐으면 당선을 시켜야 민주당 후보들이 힘을 보태 북구를 새롭게 바꿀 거 아니냐고 지지를 부탁하고. 내가 또 울산시당 위원장을 했던 사람 아입니까. 결속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탈하겠다는 당원 말리고, 하이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흑묘백묘(黑猫白描)라는 말을 이번만큼 마이 한 적이 없었어요. 우쨌거나 저쨌거나 당선 됐다 아이가. 으이구...하하하.”

이상헌 의원은 오후 일정이 빡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보좌진에게 노·사·민·정·학 협력체계 구축 방안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철폐방안, 어린이집 확충과 지역 보육정책 확대 방안, 치안 확보를 위한 북부경찰서 조기 설립 방안 등, 자료 빨리 챙기라고 양복을 걸치면서도 다그쳤다. 놓치지 않는 성격이었다. 초선 이 의원의 향후 열정은 지켜볼 일이지만 예산을 끌어내는 재주는 논리와 끈질긴 설득에서 나오는데 의정 활동에 기대를 걸어도 좋겠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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