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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이재훈의 CULTURE&LAW] 라흐마니노프와 신경쇠약
[이재훈의 CULTURE&LAW] 라흐마니노프와 신경쇠약
  • 이재훈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8.06.04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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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최후의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 873~1943)는 20세기 초반에 주로 활동하였다. 차이코프스키와 쇼팽, 슈만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20세기의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기 낭만적인 작곡 스타일을 고수하였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서만이 아닌 피아니스트, 지휘자로서도 활동하였고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였다.

 

이런 라흐마니노프도 처음에는 완벽한 실패를 경험한다. 그는 1895년에 교향곡 1번(Symphony No.1 in D Minor, Op.15)을 작곡하고 1897년에 이를 초연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곡에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쏟아지는 혹평에 큰 충격을 받는다. 결국 라흐마니노프는 극심한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 곡의 실패에 대한 다양한 이유가 제기된다. 지휘를 맡은 글라주노프(Alexander Glazunov)가 술에 취해 있어서 무성의한 지휘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잘 알려진 이유이다. 물론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인 라흐마니노프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초연은 무리였다는 평도 있다. 여하튼 라흐마니노프는 정신적 충격으로 3년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이후 그는 오페라 ‘알레코(Aleko)’를 초연하며 호평을 받지만, 그의 작곡에 대한 영감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니콜라이 달(Nikolay Dahl) 박사를 만나게 된다. 니콜라이 달 박사는 최면술을 통해 신경쇠약을 치료해오고 있었고 명의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라흐마니노프가 수면을 시도하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협주곡을 작곡합니다…당신은 협주곡을 작곡합니다…협주곡은 작곡하기 쉽습니다…협주곡은 작곡하기 쉽습니다…아주 멋진 협주곡이 완성됩니다…아주 멋진 협주곡이 완성됩니다…” 이러한 수면 시 자기 암시를 통한 달 박사의 심리 치료는 성공적이었으며, 결국 라흐마니노프의 신경쇠약이 치유된다. 작곡에 대한 열망과 영감 그리고 그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 가지게 된 라흐마니노프는 이후 피아노 협주곡 2번(Piano Concerto No.2, Op.19)을 작곡해 대성공을 거둔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가 글라주노프의 무성의한 지휘로 인한 충격으로 초래된 자신의 신경쇠약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라흐마니노프 스스로에게 굉장히 중요했던 초연 공연을 실패로 만든 글라주노프에게는 배상 책임이 없을까? 이하에서 우리 법원의 판단을 참고해보자.

 

우리나라 법원은 신경정신과적 증상과 그 발생 원인의 관계를 아주 심도있게 분석한다. 최근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판단 기준을 제시하였다. 신경정신과적 증상은 일반적으로 그 원인이 복합적이어서, 어떠한 사고로 피해자에게 그와 같은 증상이 생긴 경우 사고 이전의 성격적 특성과 정신상태 및 적응능력, 사고를 전후한 가정적·사회적 환경, 사고 이후 회복을 위한 자기 노력의 정도와 심리적 동기 등에 따라 장애의 정도가 심하게 다를 수 있다.

특히 신경증은 위기 상황에 있어서의 인격반응의 일종이라고 부를 정도로 환자의 소질이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발생하는 질환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불법 행위 등으로 인해 후유증과 같은 후유 장애로 신경정신과적인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 있어서 ‘이미 사고 이전부터 같은 증상을 가지고 있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야 한다. 물론 ‘피해자의 소질 내지 성격에서의 특성이 그 신경증의 한 원인이 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고 이후 피해자가 회복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여 장애의 정도가 커졌다거나 회복기간이 장기화된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피해가 확대된 부분까지 보상할지 여부는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01. 4. 10. 선고 99다39531 판결 참조 및 수정).

이와 관련해 8세에 불과하던 아이가 교통사고로 입은 외상 외에 그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장애를 입게 되었는데, 그간의 정신과 치료를 통해 증상이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악화되어 온 것은 아이의 성격적 소인과 더불어 아이 부모의 불안정한 환경조성, 미흡한 대처 등에 기인하였다고 보아 위 악화된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판단이 있다. 반면, 동생이 갑작스럽게 달려든 사고 차량에 부딪히는 광경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9세 아이는 직접 외상을 입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목격함으로써 받게 된 고통과 정신적 충격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발병원인이 될 수 있음은 의학적으로도 인정되는 바이며, 실제 이 아이는 원형탈모 증세로 치료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사고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바, 직접 외상을 입지는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예상 할 수 없는 사고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기도 했다.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는 단순히 외상 사고와 연결되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실시 직후 세계지리 문제에 대하여 이의신청이 제기되었으나, 이 문제의 출제 및 정답 결정에 오류가 없다며 해당기관이 응시자들의 과목 성적 및 등급을 결정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세계지리 과목을 선택해 응시한 학생들이 ‘세계지리 과목에 대한 등급 결정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후 담당 기관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법원은 명백하게 틀린 지문이 포함된 문제를 출제하고 정답을 결정하는 오류를 범한 잘못은 부적절한 문제의 출제 및 채점을 방지함으로써 출제나 채점의 잘못으로 응시자가 잘못된 성적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는 담당 기관의 재량권을 일탈 또는 남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시험 실시 직후 문제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는데도 이의처리 과정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으므로, 학생들이 이로 인하여 입은 정신적 손해를 인정할 수 있고 그 손해는 담당기관과 국가가 공동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결정을 하였다.

또한 금융기관이 고객의 연체정보를 등록하면서 10만원을 1억원으로 잘못 입력하여, 금융기관 및 신용정보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가 공유된 경우가 있었다. 법원은 이로 인해 해당 고객은 신용카드 사용한도 축소, 이용정지, 신규발급 거절 등 경제활동의 제한을 받고 명예 또는 신용을 훼손당하였으므로, 정보를 잘못 입력한 금융기관은 그로 인하여 고객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글은 <ARTS&CULTURE>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6월호와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혁신제도연구팀장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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