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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빅딜’, 평양에 맥도날드 매장 들어선다
김정은-트럼프 ‘빅딜’, 평양에 맥도날드 매장 들어선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 승인 2018.06.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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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북미 정상회담서 담판…핵 포기 대신 통 큰 경제 보상 합의 예상
북한 핵 폐기와 미국의 대북 경제지원을 맞바꾸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 사전 협의를 위해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만남에서는 핵 폐기를 전제로 한 대북 경제지원의 내용과 규모가 핵심 논의 사안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의 관영 선전매체가 쏟아내는 주장을 꼼꼼히 분석해보면 평양 당국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적잖은 경우엔 말과 행동, 주장과 속내가 서로 정반대인 경우도 드러난다. 실제로는 간절히 원하면서도 극도의 반감이나 절대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핵을 포기하는 건 바닷물이 마르는 걸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면서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판에 나오는 건 대표적이다. 무산 위기에 처했던 북미 정상회담이 가까스로 회생하고,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 이튿날인 지난 5월 27일자 북한 노동신문은 미국의 대북 경제지원에 강한 거부의사를 보이는 글을 실었다. 

이 신문은 북한 비핵화 대가로 미국이 대북 경제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CNN과 폭스뉴스 등 미국 언론을 비난하며 “우리가 회담을 통하여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미국이 운운하는 경제적 지원에 대하여 말한다면 우리는 그에 티끌만 한 기대도 걸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이 없이도 앞으로도 얼마든지 우리의 힘과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남부럽지 않게 잘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동강변에 트럼프 타워 들어설 수도

하지만 북한의 이런 주장과 달리 북미 간에는 북한 핵 폐기와 미국의 대북 경제지원을 맞바꾸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 사전 협의를 위해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만남에서는 핵 폐기를 전제로 한 대북 경제지원의 내용과 규모가 핵심 논의 사안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헤어지며 포옹하고 있다. <청와대/뉴시스>

 

북한이 핵 포기 의사를 밝히고 진정성 있게 이를 이행할 경우의 보상책은 이미 구체적으로 미 정부 당국자의 입과 언론을 통해 거론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의 민간 기업이 북한에 투자하는 걸 허용 하겠다”(5월13일 폭스뉴스 인터뷰)고 밝힌 건 가장 분명한 메시지다.

폼페이오 장관은 “은둔 국가가 21세기로 나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미국 기업은 수천만 달러를 투입할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망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돕고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릴 농업에 투자할 미국 기업들이 북한에 밀려들 것”이라며 디테일한 아이템과 방안까지 언급했다.

미국이 북한에 줄 선물보따리는 품목과 물량이 점점 늘어나는 형국이다. 북한을 비핵화하기 위한 대북 의사타진 시점에서는 에너지와 식량 지원 같은 방안이 논의되던 차원에서 정상회담 논의와 관계개선 전망 단계에선 금융·인프라 등 국제사회의 정상국가로 자리할 수 있는 수준의 차원 높은 보상이 거론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아예 “미국은 북한이 우리의 우방인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있다”는 발언까지 내놓았을 정도다. 

물론 이 같은 방안이 현실화 하려면 무엇보다 북한의 핵 포기와 실제적인 이행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검증망도 통과해야 한다. 단순한 대북지원을 넘어서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나 경제적 보상은 미국의 대북제재가 풀리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특히 북·미 관계의 진전이 가시화 해 수교상황까지 내다볼 수 있는 국면이 될 경우 평양 대동강변의 트럼프 타워와 평양 시내 맥도날드 매장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평양 중심부에 53층 주상복합 건물 들어서

평양은 이미 김정은 시대들어 변신을 거듭해왔다. 집권 7년차에 접어든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부터 평양에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선 뉴타운 형태의 개발 사업을 시작했고, 노동당원과 특권층이 주축인 평양 시민들을 위한 위락시설과 편의설비를 집중적으로 갖추는 데 주력해왔다. 

평양 중심구역의 대동강변 등에는 이미 김정은 지시에 따라 53층 주상복합 건물과 46층 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선 상태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대규모 주택 건설은 체제 선전용이나 당국 주도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개인자본이 투입된 아파트 건설과 쇼핑센터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게 대북 정보 당국과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신규 주택 건설 사업에 개인 사업자가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서구식 아파트 분양 모습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주택 임대업이 출현하고 소(小) 토지와 시장 매대를 사고파는 현상도 점차 번지고 있다고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3월31일부터 4월1일까지 평양을 극비리 방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뉴시스>

평양엔 북한 전체 인구(2490만명)의 10% 가량인 25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최근 개발대상지에 올라 눈길을 끌고 있는 곳이 강남지역이다. 평양 중심부에서 서남쪽 강변에 자리한 강남군 일대는 아직 미개발지구로, 논밭과 과수원이 대부분이라 평양 시민들에게 과일·채소를 공급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마치 1970년대 서울 압구정이나 개포 지구와 같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이 지난해 12월 말 이 곳을 ‘경제개발구’로 지정했다.

2013년 5월 경제개발구법을 만든 이래 22번째 구역 지정이지만, 지방이 아닌 평양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았다. 북한은 경제개발구를 ‘다른 나라의 투자를 끌어들여 경제를 발전시킬 목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특구’라고 설명한다. 향후 외자유치를 통한 평양판 강남 신도시 개발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김정은 집권 이후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6·28조치(2012년), 기업 자율권 부여 등을 담은 5·30조치(2014년) 등을 취해왔다. 경제개발구도 김정은의 경제 부문 작품 중 하나다. 지난해 말까지 경제특구 5개, 지방급 경제개발구 19개 등 모두 27개가 지정됐다. 신의주와 혜산·만포 등 중국과의 변경 지역이나 청진·나선(나진과 선봉)·흥남 같은 규모 있는 항만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많은 곳을 개발구로 지정하고, 제대로 된 개발 청사진이나 투자 유치 전략을 선보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천덕꾸러기처럼 여겨졌던 강남경제개발구가 다시 각광을 받게 된 건 북미 관계의 진전이 급물살을 타면서다. 회계·컨설팅 전문기관인 삼정KPMG 대북비지니스지원센터는 최근 펴낸 <북한 비지니스 진출전략>에서 “건설붐이 일고 있는 평양은 뉴욕 맨해튼과의 합성어인 ‘평해튼(Pyonghattan)’이 낯설지 않은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그 가운데서도 대동강변 강남경제개발구에 조성될 뉴타운이 각광을 받게 될 것이란 진단이다. 

김정은, ‘북한 체제보장+α’ 챙기는 선택 가능성 커 

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강남경제개발구를 지정한 걸 두고 미국과의 유화모드 선회를 결심하면서 대북투자 유치를 겨냥했기 때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평양 주민들이 받게 될 충격을 완화하고 미국 기업이나 인력의 대북진출 초기 적정수준의 통제를 위해서도 평양 중심가보다는 특구 성격의 강남개발구에 유치하려 할 것이란 해석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미 협의 과정에서 미국 측이 ‘평양에 성조기를 단 캐딜락 차량과 미국인이 줄지어 다녀도 문제 없겠느냐’라고 북측에 타진했다는 건 그만큼 북한이 이런 상황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다. 미국이 제시한 당근 보따리를 챙겨 북한체제를 보장받고 경제적 부흥을 꾀할 것이냐, 아니면 북한 핵과 미사일을 거머쥔 채 다시 지루한 협상이나 벼랑 끝 전술 쪽으로 치달을지는 전적으로 북한이 어떤 노선을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일단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해 비핵화와 ‘북한 체제보장+α’를 챙기는 선택을 할 공산이 커 보인다.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과 수차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을 통해 11월 말 이른바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에겐 2018년 대미협상의 시간표가 그려져 있었을 게 틀림없다.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메시지를 보내고,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특사를 파견해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 물꼬를 튼 것도 이런 빅 픽처를 만들어 내기 위한 도약대였다는 얘기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6년 동안 핵과 미사일 도발, 대내적인 권력 기반 다지기, 경제 건설 구상 제시와 추진 등의 노정을 거치며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일부 성과를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리더십 발휘와 체제유지에 자신감을 가진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토대로 자신의 40~50년 집권 플랜을 짜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체제 생존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애매한 주장이 아니라, 한미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핵 폐기’를 실제로 이행할 수 있을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김정은이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인 게 분명하다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2차례 정상회담과 함께 트럼프와의 담판 테이블까지 마련하는 쪽으로 판을 키울 대로 키운 상황이라 되돌리거나 판을 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구태의연하게 미국을 비난하는 담화를 내는 장외전술을 펼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회담 취소’ 편지를 받는 뜻밖의 일격을 당한 북한의 대응은 이런 평양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완전히 꼬리를 내린 채 “만나면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기야 하겠느냐”라며 노골적인 구애의 모습을 보이는 추가 담화를 내 트럼프의 심기를 누그러트리려 애썼다. 북한의 대미 외교사에 전례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월부터 본격적으로 공들인 북미 정상회담 판이 깨질 위기에 처하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변신을 꾀한 것이다.

아무튼 평양의 트럼프 타워나 맥도널드 매장이 현실화 한다는 건 북한 체제가 돌이킬 수 없는 개혁과 개방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 ‘주체 혁명의 수도이자 성지’로 선전되는 평양 중심부에 자리한다는 점에서다. 변화를 보는 3단계 지표 중에서 상징적 변화와 의미 있는 변화를 넘어 본질적 변화를 꾀하는 수준에 진입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 북한 체제를 개혁·개방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모았다. 집권 첫 해인 2012년 7월 부인 이설주를 대동하고 관람한 모란봉악단 창단 공연 무대에는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 같은 미 월트디즈니의 캐릭터가 대거 등장했다. 무대 뒷배경 화면에는 백설공주 영상이 나왔고, 각종 외국산 전자악기를 동원한 악단 멤버들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서방의 대북 관측통들은 “어릴 적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이 개혁·개방에 나설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이듬해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무참하게 처형하는 등 잔혹한 모습을 드러내고, 이어 핵과 미사일 도발노선을 걸으면서 김정은의 이미지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못지않은 폐쇄적이고 호전적인 북한 최고지도자로 낙인됐다.

장마당서 초코파이·믹스커피·소시지도 거래 

김정은은 민생 챙기기와 북한 경제난 극복을 위한 메시지를 주기적으로 제시했다. 집권 100일을 갓 넘긴 2012년 4월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한 첫 연설에서 그는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공언했다. 이후 야심찬 개혁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같은 해 6월에는 노동당이 통제하는 공장·기업소 등 경제 단위에 자율권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6.28 개혁 조치를 내부적으로 시행하는 등 관련 조치를 취했다. 2013년 3월 말엔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경제·핵 병진노선’을 제시하기도 했다. 핵 보유로 재래식 무기인 전차와 함정·전투기 등을 구입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으니, 국방비를 인민이 먹고사는 문제와 사회보장에 투입하겠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핵 개발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무게가 실린 병진노선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주도로 한층 깐깐해진 대북제재는 해상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던 유조선 환적 행위까지 포착해 추적했다. 중국마저 등을 돌리면서 산소 호흡기까지 떼인 신세가 된 북한 경제에는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최근 수 년 간 최고인민회의가 발표한 북한 예산 집행 결과에 따르면 16% 수준의 국방비(실제로는 은닉예산을 포함해 30% 정도일 것으로 정부 당국은 추산) 비중은 병진노선 제시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김정은이 5년 만에 경제·핵 병진노선의 포기를 선언하고 경제에 매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김정은이 개혁·개방 노선을 선택한다는 건 체제의 명운을 건 모험일 수 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업한 지 70년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란 점에서다. 물론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사회주의 개혁·개방 노선을 택한 전례가 없지 않다. 하지만 3대에 걸친 세습방식의 왕조체제란 점에서 김정은이 느낄 위기감은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뜻 체제의 문을 열어젖히기엔 고민되거나 위기의식을 느낄 요소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개혁·개방과 관련한 김정은 체제의 고심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건 북한 장마당 경제다. 장마당은 지난 20여 년 간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지탱하게 해준 응급실 역할을 했다. 북한 경제가 본격적으로 장마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건 1990년대 중후반 대홍수가 닥치면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이후부터다.

식량부족 등으로 국가배급망이 붕괴했고, 대량 탈북사태가 발생하는 등 체제위기까지 겪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당시 굶어 죽은 사람이 전체인구 2400여만 명 가운데 200만~300만 명(우리 정보 당국은 46만 명으로 추계)에 이른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처음엔 농민시장 형태를 띠었다. 협동농장이 아닌 텃밭이나 뙈기밭에서 기른 배추, 감자 등 농작물을 내다 팔았다. 이후 점차 옥수수빵이나 국수 같은 쪽으로 폭을 넓히더니 최근에는 거래 품목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과자와 비누·칫솔·샴푸 같은 생필품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전언이다. 초코파이와 믹스커피, 천하장사 소시지 등 한국 제품도 거래된다는 얘기다. LED TV와 냉장고·세탁기까지 부유층 사이에서 은밀하게 팔린다고 한다. 

북한 주민의 평균 월급은 3000원 수준이다. 공식 환율이 달러 당 150원 정도니 20달러 정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암달러 거래가 만연하면서 달러당 8000원 수준으로 거래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암달러 기준 50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은 그저 ‘상징적 임금’이란 인식이 퍼지며 사회 부작용도 속속 생겨났다. 그러다보니 비공식 수익활동과 뇌물이 성행하고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달러 맛에 빠진 주민들 “미국 할아버지가 최고”

평양 고려호텔에서 바라본 평양 시내 모습. 시내 중심가에는 5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도 들어섰다고 한다.<뉴시스>

 

기관 소속 차량을 몰래 운행해 돈벌이를 하거나 공장 부품을 하나둘 빼내 조립해 시장에 파는 건 대표적인 사례다. 김일성대와 김형직사범대 같은 명문대 교수들은 과외시장에 뛰어든다. 고위 탈북인사는 “3~5명 정도를 가르치는데 시간당 각기 1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전했다. 장마당 허가권과 입시·취업·승진 등 사회 전반에 뒷돈과 뇌물이 성행하는 것도 결국 월급으론 살 수 없는 현실 때문이란 분석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민들 사이에서 “노동당보다 장마당”이란 말이 입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조선노동당은 민생을 내팽개쳤지만 장마당은 숨통 역할을 해 준다는 의미다. 달러의 맛에 빠진 주민들은 “미국 할아버지(100달러에 새겨진 벤저민 플랭클린을 지칭)가 최고”라고 여긴다고 한다. 중국 할아버지(100위안에 그려진 마오쩌둥)에 이어 ‘수령님’(북한 화폐의 김일성을 지칭)이 제일 마지막이란 비아냥이다.

북한에 최대 500만대 가까이 보급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핸드폰도 김정은 체제의 변화와 개혁·개방을 이끌 요인으로 지적된다. 외부세계의 정보를 유입시켜 확산토록 하는 매개체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2002년 첫 서비스 시작 때 ‘손전화’로 선을 보인 이후 최근에는 ‘평양타치’란 이름의 스마트폰으로까지 변신하고 있고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모바일에 대한 통제가 허물어질 경우 엘리트 세력의 체제 이반이나 반체제 세력 등장이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이 개혁·개방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그가 미국과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비핵화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 있는 태도를 취하고 실제 이행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김정은이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확실한 건 미국이 북핵 폐기를 전제로 북한이 매력적이라 생각할 수준의 엄청난 선물 리스트를 제기하고 있고, 북한도 여기에 적지 않은 관심과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의 완전해체에 동의한 점을 거론하며 “그들은 고기를 먹을 수 있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주민들에게 약속했지만 공수표가 된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지상낙원’이 미국에 의해 현실로 다가올 순간이 닥친 것이다. 김정은은 지금 ‘불구대천의 원수 미 제국주의’로 주민들에게 선전해 온 미국에 대해 체제보장을 해달라며 요구하는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핵무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국제 제재의 굴레 속에서 낙후된 체제를 힘겹게 이끌어 갈지, 정상국가의 길로 걸어 나와 번영과 공존의 기회를 잡을지는 그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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