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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이슈] 암호화폐 ‘광풍’ 1년, 잭팟과 쪽박을 넘나들다
[가상화폐 이슈] 암호화폐 ‘광풍’ 1년, 잭팟과 쪽박을 넘나들다
  • 이일호 기자
  • 승인 2018.06.01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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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논란 끝 ‘전환기’ 접어들어…인터넷처럼 세상 바꿀지는 미지수

2017년 한 해 동안 글로벌 투기 역사를 다시 썼던 ‘암호화폐 버블’은 이제 상당부분 꺼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부터 약 2개월간 이어진 거대한 폭락장을 통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80% 넘게 값이 내려앉았다. 투자자들 대다수는 뇌동매매를 반복하다가 손해를 떠안은 채 시장을 떠났다. 유혈이 낭자했던 시장은 이제 투자자 기척조차 찾기 힘들 정도다.거래규모도 과거 잘나가던 때의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자금 흐름이 줄어들면서 급격한 변동성도 실종됐다.
‘르네상스’를 지나 ‘암흑기’로 접어든 것 같은 암호화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애초 목표였던 ‘화폐’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될지, 투기수단으로 전락한 채 희대의 ‘사기극’으로 사라지게 될지, 아니면 현재와는 다른 ‘제 3의 길’을 걷게 될지, 의견은 분분하지만 명확한 답을 찾긴 쉽지 않다.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암호화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암호화폐 투자자들과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했다.

<픽사베이>

암호화폐와 관련된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이 있다. 2008년 처음 비트코인이 만들어진 이래 10여년 간 암호화폐 시세가 장기적으로 우상향 했다는 점이다. 암호화폐 시장은 서너 차례의 크고 작은 폭·등락을 거듭하면서 몸값을 끌어올려왔다. 2011년과 2013년, 그리고 지난해는 암호화폐에 거대한 격변기라 부를 수 있는 시세 변동이 찾아온 시기다. 해당 시점을 지날 때마다 비트코인 가격은 적게는 3~4배, 많게는 10배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더리움과 리플, 라이트코인 등 ‘알트코인’ 시세도 덩달아 올랐음은 물론이다.

암호화폐 시세는 왜 꾸준히 상승했을까? 버블 시기에 한번 들어간 자본 중 상당수가 ‘장기투자’ ‘손절 실패’ 등의 이유로 묶였다는 게 가장 유력한 설이다. 또는 시세가 급등하는 시기 소위 ‘큰 손’이라 부르는 기관 등의 세력들이 유입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비트코인 시세는 10여년의 기간 동안 족히 1만 배는 넘게 상승했다. 화폐로 따지자면 명백한 ‘하이퍼 디플레이션(Hyper Deplation)’이다. 2010년 비트코인으로 실물 피자를 거래한 것을 기념해 ‘비트코인 피자데이’로 명명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피자 2판에 지불한 1만 비트코인(당시 1비트 당 0.004달러)은 오늘날 약 800억원의 값어치를 갖게 됐다.

암호화폐, ‘튤립’일까 ‘닷컴’일까

2013~2018년 비트코인 시세 변동.<코인마켓캡>

지난 1월부터 약 2달간 이어진 암호화폐 폭락장에 적지 않은 투자자들은 시장이 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그들은 암호화폐 시장 몰락의 근거로 17세기 ‘튤립버블’을 들었다. 튤립버블은 투기 역사상 손꼽히는 투기사건으로, 유럽 전역에서 그 가치가 수십 배까지 폭등했다가 급작스럽게 수요가 급감하면서 하루아침에 값어치가 바닥까지 떨어진 사건이다. 암호화폐가 실제적 효용성이 없는 투기상품에 가까운 만큼 튤립버블이 그랬던 것처럼 장기적 가치는 ‘0’에 수렴한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암호화폐 비관론자가 바로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워렌 버핏이다.

하지만 최근의 암호화폐 시장 행보를 보면 튤립버블의 곡선과는 다른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튤립버블은 단기간 시세 급등과 폭락 끝에 값이 원래 시세로 회귀되며 종결됐다. 하지만 최근의 암호화폐는 거대한 폭락 이후에도 시세가 과거보다 높은 선에서 형성돼있다. 비트코인을 보면 시세가 안정세로 접어든 지난 3월부터 약 900만원 선에서 위아래로 값이 움직이고 있다. 이는 지난해 6~8월 시세의 3배 수준이다. 주요 알터코인들도 같은 기간 2~3배가량 값이 올랐다.

암호화폐는 왜 과거 튤립버블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을까? 이에 대해 투자 전문가들은 암호화폐가 튤립버블보다는 1990년대 말 ‘닷컴버블’과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1990년대 말 미국·한국·독일을 중심으로 벌어진 닷컴버블 또한 급격한 주가상승 이후 폭락을 통해 수많은 투자자 피해를 낳았다. 1996년 상장한 ‘야후(Yahoo)’의 경우 2000년 초 주당 240 달러까지 상승했다가 1년 만에 30달러로 하락했다. 비슷한 시기 코스닥은 280포인트에서 50포인트로, 코스피는 1000포인트에서 500포인트로 내려앉았다.

튤립버블과 닷컴버블의 근본적 차이는 ‘실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는지 여부’다. 튤립은 인류의 실생활에 진보를 가져다주지 못했지만, 닷컴버블은 실생활에 변화를 가져다줬다. 닷컴버블 이후 살아남은 구글(Google)과 아마존(Amazon)은 글로벌 IT기업으로 성장해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시 가능성으로 존재했던 인터넷 또한 오늘날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침투하며 인류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왔다.

그렇다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행보는 실제로 과거 ‘닷컴’의 발전 방식과 유사할 것이라 봐야 할까? 이를 예측하긴 쉽지 않다. 블록체인 산업은 이제 막 초입 단계에 돌입했을 뿐 그 잠재력이 어디까지인지를 예측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인터넷의 등장보다도 파급력이 클 것이란 주장이 있는 반면, 역대 가장 과대 포장된 기술이라는 평도 나온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동일 선상에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블록체인 업계는 암호화폐의 보상체계를 배제한 블록체인(프라이빗 블록체인)의 경우 확장성이 떨어져 블록체인의 성장을 온전히 이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암호화폐 비판론자들은 암호화폐가 블록체인의 부산물일 뿐이며 보상 수단으로서의 암호화폐를 허용하고 활성화 할 경우 긍정적 작용보단 부정적 효과가 더욱 클 것이라고 본다.

‘전환기’에 접어든 암호화폐

최근 들어 암호화폐 업계 종사자들과 투자자들 사이 설득력 있게 퍼지는 주장이 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암호화폐 ‘1세기’가 끝나고, 사실상 ‘2세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암호화폐 1세기는 글로벌 사회에서 투기수단으로써의 ‘상품’이라는 인지도를 확보하는 시기다. 탐욕스러운 투자자들이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암호화폐를 매집하면서 시세가 급등했고, 이 과정에서 대중적 인지도도 점차 커졌다. 하지만 각국 정부의 암호화폐 시장 규제와 글로벌 투자세력들의 시세 하방 압박, 그리고 달러와 직접 연동되던 테더(Tether)를 운용하던 비트파이넥스(bitfinex)를 시세조종 혐의로 미국 금융당국이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암호화폐 시세가 폭락했다. 이처럼 ‘버블’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과정을 통해 암호화폐가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는 과정이 바로 1세기다.

그렇다면 2세기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암호화폐와 그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이 실생활과 연결되는 게 그 핵심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존 실물화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이나 금융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소외 국가·계층 등을 중심으로 암호화폐가 확산될 것이라 보고 있다.

해외송금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최근 핀테크 업체들을 중심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해외송금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해외송금의 경우 전통적 방식에 비해 송금속도가 더욱 빠를 뿐만 아니라 비용 부담도 줄어든다. 또한 외국에 있어 은행계좌가 없거나 인터넷뱅킹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송금이 가능하다.

케냐에서 한 시민이 비트페사를 통해 송금을 하고 있다.<Bitpesa>

2013년 탄생한 아프리카의 스타트업 ‘비트페사(BitPesa)’는 암호화폐를 이용해 기업 간 송금을 처리한다. 비트페사는 가나와 케냐, 나이지리아, 탄자니아, 우간다 등에서 활동 중이며 송금 수수료도 기존 10% 달하는 일반 송금에 비해 1~3%로 훨씬 저렴하다. 2017년 기준 월 1000만 달러를 송금해 규모도 불과 1년 전에 비해 10배나 늘었다. 창업자 엘리자베스 로시엘로는 비트코인의 높아진 수수료와 느려진 송금 시간 등 문제를 겪고 있지만 아프리카 금융시스템의 비효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전했다.

중앙아메리카 최빈국 중 하나인 온두라스는 정부 차원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 블록체인 스타트업 팩텀의 기술을 도입해 국가 토지 대장을 블록체인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시스템적 변화는 군벌과 토호세력, 관료들이 무력으로 시민의 토지를 뺏거나 불공정 거래를 자행하는 문제를 해소할 전망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Coinone)도 해외송금 서비스를 위해 리플(Ripple)사의 기업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활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리플의 블록체인 솔루션 엑스커런트(xCurrent)를 활용해 국내 거주하는 해외 노동자를 위한 크로스(Cross)라는 새로운 송금 서비스를 출시한다는 게 코인원 측 계획이다. 코인원 측은 “크로스는 블록체인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보여줄 것이다”라며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간편 송금시대가 열릴 것임을 시사했다.

은행연합회도 지난해부터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공인인증 서비스 ‘뱅크사인(Banksign)’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은행별로 발급받아야 했던 공인인증을 통합해 모든 은행에서 사용할 수 있게 했으며, 과거 1년 단위로 갱신해야 했던 인증을 3년으로 연장했다. 인증 절차도 핀(PIN) 넘버 뿐만 아니라 지문 등 생체인증을 도입해 편의를 더했다. 해당 기술은 오는 7월 은행 모바일 앱에 처음 도입된 뒤 추후 PC로도 확대될 예정이다.

암호화폐를 비판하는 전문가들

반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낮게 보는 자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월가에서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지난 5월 6일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그는 암호화폐 투자에 대해 “쥐약(rat poison)을 곱절한 것”이라 평가했다. 과거부터 암호화폐는 ‘투자’가 아닌 ‘투기’라 비판한 태도를 그대로 견지한 것이다.

워렌 버핏이 암호화폐를 비판하는 데는 그의 가치 투자성향과도 직접적으로 결부돼있을 것이란 추측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가치투자는 투자 대상의 유·무형적 가치에 근거해 주식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버핏은 “1달러 지폐를 40센트에 사는 것”이라 설명한 바 있다. 암호화폐는 가치투자와 다르게 현재까지 확인된 유·무형적 가치를 찾기 어려울 뿐더러 미래 전망 또한 불투명하다. 2000여 개에 달하는 암호화폐 가운데 어떤 게 미래사회에게 실질적 가치를 가질지 추정하기도 어렵다. 가치투자자인 버핏 입장에선 가치를 확인하기 힘든 암호화폐에 투자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이자 세계 최고 갑부로 꼽히는 빌 게이츠 또한 암호화폐 투자를 지양하는 뜻을 수차례 밝혔다. 지난달 7일 게이츠는 미국 CNBC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는 아무런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자산으로 할 수만 있다면 가격 하락에 베팅하고 싶다”며 “비트코인 투자는 전형적인 ‘더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특정 상품을 더 비싸게 사줄 것으로 믿는 어리석은 투자자가 존재한다는 이론)’같은 것”이라 비판했다.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뉴욕대 스턴스쿨 교수.<Flickr/Financial Times>

버핏이나 게이츠가 암호화폐의 투자가치를 낮게 봤다면,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뉴욕대학교 스턴스쿨 교수이자 미국 백악관경제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한 그는 블록체인 기술자이자 ICO 반대론자인 프레스톤 번과 함께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라는 한 웹사이트에 ‘The Blockchain Pipe Dream’이란 이름의 칼럼을 내고 블록체인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루비니 교수의 암호화폐 비판은 블록체인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중간자가 없는 암호화폐의 특성 상 모든 거래를 암호학적으로 검증해야 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점이 크다는 것이다. 칼럼에서 루비니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은 기존 데이터베이스 기술에 비해 요구되는 저장용량과 컴퓨팅 용량을 감안할 때 비효율적”이라며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를 암호학적으로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거래절차에 비해 더 느릴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칼럼에서 루비니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엑셀(Excel)’보다도 비효율적”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은 자율주행자동차나 드론 간 통신과 같이 속도보다는 투명성과 외부간섭 차단이 요구되는 영역에 한정돼 사용될 것”이라 평가 절하했다. 블록체인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대규모 거래가 수반되는 ‘퍼블릭(공개형) 블록체인’은 어렵고, 제한된 공간 하에서의 ‘프라이빗(폐쇄형) 블록체인’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루비니 교수는 최근 한 암호화폐 패널토론 자리에서도 “암호화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소리”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블록체인 기술 역시 더는 가치 없다.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미화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ICO, ‘잭팟’인가 ‘쪽박’인가

암호화폐를 이해하는 데 있어 또 다른 중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ICO(코인공개·Initial Coin Offering)다. ICO가 암호화폐 시장을 돌아가게 만드는 동인일 뿐만 아니라, 버블을 만드는 주범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ICO는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서 암호화폐(토큰) 발행을 통해 자금을 모집하는 것을 통칭하는 말이다. 상장 기업의 주식을 파는 IPO(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와 유사하지만 또 다르다. IPO가 기업 창업 후 몇 년간의 재무제표에 대한 회계감사 후 진행되는 반면 ICO는 암호화폐가 실제로 구현되기 직전 단계에 온라인 백서(Whitepaper)만 보고 투자여부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투자 상에 위험성이 수반될 수 밖에 없으며, 심하게는 ‘묻지마 투자’를 종용하게 될 수도 있다.

2017년1월~2018년3월 ICO 현황.<자료: CBInsights/한화투자증권>

코인스케줄(CoinSchedule)에 따르면 2017년 ICO 건수는 211건(38억8000만 달러)으로 2016년 45건(9500만 달러) 대비 건수로는 5배, 액수로는 4배 가량 증가했다. 코인데스크(CoinDesk)는 2018년 1분기에 모집된 ICO 자금이 63억 달러로 이미 2017년 연간 조달된 규모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미국 IT 매체 테크크런치(Tech Crunch)도 2017년 1월부터 14개월 간 기업들이 ICO를 통해 조달한 자금이 VC를 통한 자금조달보다 약 3.42배 많다고 밝혔다.

반면 국내에서는 금융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내 법인의 ICO가 규제 대상에 올라있다. 이에 대해 핀테크 업계를 비롯해 일부 투자자들은 ICO 금지 규제가 후진적이라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빠른 성장을 위해 허용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2000여종에 달하는 가운데 실제 효용성을 검증할 수 없는 토큰들이 범람하고 있고, ICO 관련 사기도 전 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섣부른 규제 해제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이 우려되는 이유다.

지난 5월 중국 정보통신기술연구원(CAICT) 산하 클라우드 컴퓨팅 및 빅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현재까지 진행된 블록체인 프로젝트 중 8%만이 살아남았으며 평균 수명은 15개월에 불과하다.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없고, 규제 불확실성과 사기 등의 문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허바오훙 CAICT 연구소장은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빠르게 등장하고 있지만 그만큼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도 하다”며 “전 세계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평균 수명은 1.22년(14.2개월)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이 팝체인이라는 암호화폐를 직상장하려다가 투자자들의 뭇매를 맞고 취소하기도 했다. 팝체인의 경우 발행한지 불과 1개월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소수의 암호화폐 지갑에 90%가 넘는 토큰이 몰려있어 스캠(암호화폐 사기) 의혹이 일었다. 또한 암호화폐 개발자 커뮤니티 깃허브 등을 통해 팝체인이 비트코인, 모네로, 대시 등 주요 암호화폐의 소스코드를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암호화폐가 바꾸게 될 세상

역사적인 수준이 버블이 지나간 현재 암호화폐는 거대한 변혁의 기로에 놓여있고 봐도 무방하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대중 인식이 확산됐고, 관련 핀테크 산업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기업들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들도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몇몇 국가들은 자체적으로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국가 디지털 화폐를 만든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암호화폐는 이제 채 성장을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며, 그 잠재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미칠지 예상하기도 쉽지 않다. 스마트 컨트랙트로 유명한 암호화폐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조차 아직 이더리움이 30% 정도밖에 구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암호화폐와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의 확장성이 무한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난 기술이라고 해도 미래 효용성을 추정하긴 쉽지 않다. 또한 머지않아 더욱 뛰어난 기술이 탄생해 암호화폐가 사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암호화폐의 확장성은 얼마나 될까? 현재까지는 해외송금이나 P2P 거래, 컨텐츠 저작권 수익 배분, 보안 인증 등에 있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또 은행 계좌를 받기 어려운 저개발 신흥국가 사람들을 위한 암호화폐 기반 결제시스템도 빠르게 구축되는 단계다. 반면 당초 예상했던 ‘탈중앙화’나 실제 화폐로서의 역할은 미흡한 수준이다. 전통적인 실물화폐의 권위가 매우 공고하거니와, 화폐 시스템 특성상 한국은행이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같은 기구가 자본을 컨트롤하는 게 더 높은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에서 암호화폐의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높이 평가받는 추세다. 과거에 기대했던 화폐로써의 역할 뿐만 아니라 송금이나 상거래, 행정업무처리, 에너지 등 자원 거래, 지적재산권 수익 배분 등이 그것이다. 오늘날에는 암호화폐를 국제 원조사업에 있어 난민들에게 지급할 음식 쿠폰으로 지급하거나, 사물인터넷(IoT)의 보안시스템을 블록체인으로 구축하는 방식으로도 보편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의 검열저항성이 중국 내에서 반향을 일으킨 사례도 있다. 중국 북경대의 한 학생이 이더리움 블록체인 상에 성폭행 피해 사건을 16진법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 메모를 UTF-8으로 전환하면 ‘북경대의 선생과 학우들에게’로 시작하는 글이 나온다. 이에 따르면 북경대는 1998년 발생한 교수의 제자 성폭행 사건에 대해 가해자인 교수를 사임만 시켰을 뿐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같은 내용이 블록체인에 한번 올라간 이상 기록을 지우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검열에 저항하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강점을 보여준 사례가 된 셈이다.

이처럼 암호화폐 기술의 발달이 세상을 다방면으로 긍정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앞서 루비니 교수가 언급한데로 블록체인 기술의 난제, 즉 원장 전체를 확인해야 하는 비효율성과 네트워크 속도, 탈중앙화의 한계 등은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점들이다. 또한 암호화폐의 보편화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관련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성장을 막는 규제들을 없애는 일도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열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암호화폐-이상과 현실, 어디쯤 와 있나’ 리포트에서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연관된 산업의 전통적 규율과 제도적 장벽을 뛰어넘는 개방된 논의가 필요하다. 1865년 영국의 ‘적기조례(Red Flag Act)’는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영국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 미국 등에 빼앗긴 이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암호화폐 투자 열풍과 사기에 대한 소비자 보호 장치도 물론 필요하지만 블록체인을 적용해 사회적 효용을 높일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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