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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기업 하는 목적은...”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기업 하는 목적은...”
  • 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 승인 2018.05.04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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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 키우고 돈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샘표식품>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은 21년 경력의 장수 CEO다. 오너 3세 경영인이다. 샘표식품은 72년 된 식품 기업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발효식품인 장류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샘표는 국내 최장수 식품 브랜드이기도 하다. 창업주인 고(故) 박규회 회장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을 떠나기 전 갖고 있던 현금에, 은행예금까지 찾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우리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한 그의 말대로 샘표 직원들은 서울 수복 후 돌아와 회사를 재건했다. 샘표의 지난해 매출액은 2678억원, 영업이익은 194억원이었다. 3년 전보다 각각 13.2%, 88.3% 늘었다.

박진선 사장은 “제가 기업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기업 활동을 통해 우리가 속한,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사회에 나름대로 기여하려 합니다. 이런 기여의 대상이 꼭 한국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물론 돈을 써 가면서 기업을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기업 하는 목적을 이렇게 설정한 탓에 샘표의 성장이 더뎠는지도 모른다. 사람으로 치면 고희를 넘긴 기업이 여전히 중견기업이다. 박 사장은 11년째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대기업 총수들, 규모에 대한 망상 젖어 구속 자초” 

 박 사장은 “그동안 대기업 총수가 여럿 구속됐는데 그 중 일부는 규모에 대한 망상에 젖어 자초한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기업은 규모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기업인들이 심지어 돈을 못 벌더라도 규모를 키우려고 합니다. 반면 서구에서는 이익, 돈 많이 버는 걸 더 중시하죠. 그런데 막상 기업을 하다 보니 규모도, 돈도 그렇게 중요한 거 같지 않습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벌면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넓어지기는 합니다. 하고 싶어도 일정한 규모가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죠. 그러나 돈이든, 회사의 규모든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도 처음 샘표 경영을 맡았을 땐 돈 버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영 재미가 없더라고요. 내가 간장 장사 하겠다고 이 회사 경영을 맡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저부터 회사 일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구성원들이 행복해지려면 회사가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느낄 때 행복합니다. 샘표가 지역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것도 그래야 구성원들이 행복하기 때문이죠.”

기업으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과 돈벌이를 과연 양립시킬 수 있을까?
“이론적 근거는 뚜렷하지 않지만, 지역사회에 꾸준히 많은 기여를 하다 보면 그게 이익으로 돌아올 거로 저는 봅니다.”

샘표는 공장 내부를 일종의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샘표 아트 프로젝트 덕분에 무채색의 공장이 갤러리로 바뀌었다. 충북 오송에 있는 연구소 우리발효연구중심을 설계할 땐 아예 갤러리 프로젝트를 병행했다. 박 사장은 이런 시도에 생산성을 높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구성원들이 감성적으로 풍부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면 더 행복해 할 것 같았죠. 보통 사무실은 인테리어를 해도 공장은 잘 안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접하는 환경의 폭이 좁은 생산직에 대한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들로 하여금 공장 외벽에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연구소는 새로 지으면서 연구원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해 ‘세상에 없는 제품’을 개발해 보라고 인테리어 콘셉트부터 업자가 아니라 화가들에게 맡겼고요. 작업이 다 끝난 다음 처음 가 보고 저 자신 충격을 받았어요. 어쩐지 불편했지만, 그 후 몇 번 가보니 좋아지더라고요. 여기도 사람들이 몰리는 방을 보면 마음이 편하고 심정적으로 억누르는 게 없어요.”

전자공학도가 철학박사 된 까닭은

 샘표는 한국의 맛과 멋을 디자인에 반영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펜타워즈’ ‘굿 디자인’ ‘iF 디자인 어워드’ 등 디자인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이런 차별화된 디자인 경영으로 그는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디자인 경영부문 최우수상인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박 사장은 미국 유학파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그가 전공을 철학으로 불쑥 바꿨다. 아들의 이런 행동을 아버지 박승복 회장은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샘표식품의 경영권을 승계해야 할 장남이었기 때문이다.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철학박사를 한 그는 그 후 아버지의 우려를 씻고 샘표식품 경영에 뛰어들었다. 
 

박사과정에 진학하며 전공을 철학으로 바꾼 건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학도에게 철학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플라톤의 두터운 책 <플라톤의 대화>를 읽는데 영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그는 한 문장에 꽂혔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벼락이 자신의 몸을 통과해 지나가는 듯한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 문장에서 겸손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것을 마음에 새기는 자세가 곧 겸손이라고 해석했다.
 

“모름지기 리더는 겸손해야 한다”(조 앤드루 덴턴스 회장). 그래야 직원들에게 이런 저런 기회를 줄 수 있다. 리더가 할 일은 직원들이 편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얘기하고, 설사 ‘미친’ 생각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샘표식품은 지난해 12월 인간개발연구원이 주는 2017 HDI 인간경영대상 지속가능 부문 대상을 받았다. 겸손은 샘표식품의 인재상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 으뜸이다. 이 회사는 임직원에게 ‘사심 없는 사람’ ‘열정 있는 사람’보다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다. 치열한 경쟁의 현장에서 무엇보다 겸손한 사람이 되라니, 어쩐지 생뚱맞다. 겸손이라는 미덕에 과연 기업이 눈길을 줄 만한 효용 가치가 있을까.
 

그는 “겸손하면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된다”고 단언했다.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면 협업이 잘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일의 성과가 커진다. 반면 스스로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에게 배우려 들지 않는 법이다. 

겸손해지면 실력이 늘어난다

 박 사장은 또 스스로 겸손해지면 실력이 는다고 주장했다. 겸손할 때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도 성의껏 설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돼 결국 실력도 쌓인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겸손해지면 마음이 편하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꼭 잘나야 하는 게 아니고, 잘나가야 할 필요도 없어 마음이 편해집니다.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쳐질지 신경을 안 쓰니 긴장할 필요도, 스트레스도 없어요. 마음의 무장해제라고 할까요? 실은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있는 그대로의 무방비 상태를 더 좋아합니다. 손해 볼 때도 있겠지만 겸손한 행실은 길게 보면 결코 손해 보는 게 아니에요.”
 

성숙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겸손하게 굴었을 때 오히려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겸손하다고 우습게 보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제 쪽에서 그 사람이 우스워요. 그런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을 경계하지 않게 마련이죠. 상대방이 경계를 풀면 일은 더 잘 풀립니다.”
 말하자면 겸손은 규범적으로 좋은 덕목일뿐더러 도구적 효용도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대부분 겸손하지 않을까.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 없는 사람은 남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 있는 사람은 자기 모습, 삶의 방식에 대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죠. 사람들이 옷에 신경 쓰는 것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입니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면 옷차림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집니다.”

세상에 없는 제품 만드는 원동력은 상상력

 샘표식품은 해마다 매출액의 4~5%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대부분의 식품 기업은 매출의 1% 미만을 R&D에 쓴다. 750여 명 전체 샘표 구성원 중 20%가 연구 인력이다. 

샘표가 만드는 연두는 세상에 없던 제품이다. 엷은 색의 한식 간장인데 나트륨 함량을 30% 이상 줄인 소금의 대체제다. 그는 연두를 넣으면 다른 양념이 필요 없어 원가도 절감된다고 귀띔했다.

연두는 지난 3월 세계 최대의 유기농·건강식품 박람회인 자연식품박람회(Natural Products Expo West)에서 국내 식품 기업으로는 최초로 차세대 혁신 제품상(Nexty Awards)을 받았다. 이렇게 세상에 없던 제품을 내놓으려면 어떤 자극이 필요할까.

“상상력이죠. 상상력은 몰입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마음을 억누르지 않는 근무 환경도 도움이 되겠죠. 제품을 만들어 내는 건 과학적 프로세스지만 무엇을 만들거냐는 예술의 영역입니다.”
 

연두 외에도 양조간장과 된장의 나트륨 함량을 낮춘 샘표식품은 지난해 봄 나트륨 저감화 우수 기업에 뽑혀 식약처장 표창을 받았다. 
 샘표는 창립 이래 노사분규가 없다. 72년 간 구조조정도, 감원도 하지 않았다. 혹시 그래서 회사의 성장성에 한계가 있었던 건 아닐까.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탓에 성장이 지체된 건 아닙니다. 양자 간에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지 않아요. 그보다 어떤 제품을 만들어 내느냐, 어떤 비전을 설정하고 그 비전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느냐가 중요하죠. 물건을 만들어내는 직원들이 행복해 하면 좋은 제품이 나오고 소비자들도 행복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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