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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제티의 영국 권력 찬탈 3부작 마지막 '로베르토 드브뢰'
도니제티의 영국 권력 찬탈 3부작 마지막 '로베르토 드브뢰'
  • 신금호 M cultures 대표
  • 승인 2018.04.02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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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피를 나눈 형제의 목숨까지도 빼앗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종종 목격하곤 한다. 요즘은 왕조 국가가 별로 없지만 바로 북한만 봐도 세상을 떠돌던 이복형제를 끝까지 쫓아가 암살하는 권력의 잔인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이 있다. 지금 아라비아반도의 통일은 결혼을 통해 이루어졌다. 부족이 20개가 넘어 초대 왕은 22명의 부인을 두고 44명의 왕자를 생산했다. 왕위를 한 명의 아들에게 물려주자니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44명의 형제가 나이순으로 돌아가며 왕권을 나누기로 했는데, 문제는 44명이 왕을 하다 보면 가장 서열이 낮은 왕자는 200세까지 살아도 왕이 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중간에 갑자기 상의도 없이 형제세습을 끊고 다음 세대로 넘겨버리는 결정을 했고 의외로 조용히 해결되는 듯했지만 다음 세대에서도 곧바로 형제의 난이 발생했다. 몇 년만 기다리면 사촌형 다음으로 왕이 될 30대의 젊은 ‘무하마드 빈 살만’ 왕자가 차례를 기다릴 수 없었던지 반부패 법을 동원해 왕권 서열에 있는 11명의 왕자들을 구금하고 총 900조 원에 달하는 친척들의 재산을 추적해 몰수하고자 노력 중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아마 이런 이야기들은 일반인들에게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가 분명하다.

지난달 도니제티의 영국 권력 찬탈 3부작 오페라 시리즈 중 첫 번째 <안나 볼레나>를 이야기했다. 주인공 앤 불린의 배경을 좀 더 살펴보면, 그녀는 귀족 집안의 여인이었으며 헨리 8세의 왕비 캐서린을 보좌하기 위해 궁에 들어가 헨리 8세의 눈에 든 것이 16세기 파란만장한 영국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앤 불린은 문란죄를 뒤집어쓴 채 남편의 명으로 참수당하고 이후 헨리 8세 첫 부인의 딸 메리 튜더가 왕위를 이어받는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은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는 겨우 목숨만 부지하다 메리 여왕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동시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왕좌에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여왕의 위치는 언제든 쿠데타가 일어날 소지를 갖고 있는 불안한 위치였기에 핏줄 상 사촌이었던 다음 왕위 서열 1위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여왕을 구금하다 결국 처형하는 내용의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 다음 작품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환갑이 넘어까지 사랑했다는 남자 ‘로버트 드브뢰’의 이야기를 다룬 <로베르토 드브뢰>가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로버트 드브뢰는 매우 잘 생기고 키가 큰 귀족으로 디저트 와인으로 불리는 ‘Sweet wine’ 독점권으로 엄청난 부를 이루었고 에셋스 백작 2세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전쟁에 나가 많은 공을 세웠고 그 공을 인정받아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와 프랑스로부터 지원을 받던 아일랜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결국 중요한 전투에서 아일랜드가 승기를 잡았다. 할 수 없이 아일랜드 측과 평화조약을 맺고 돌아온 드브뢰에게 엘리자베스 여왕은 격노하고 의회는 드브뢰를 반역죄로 기소해 사형을 요청한다. 그리고 드브뢰는 처형된다. 여기까지가 팩트다. 

여왕이 사랑한 드브뢰와의 나이 차이는 32세였고 실제 둘은 먼 친척 관계였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모 메리 불린의 외 증손자다.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는 설정이지만 오페라의 소재로 딱 좋은 사랑과 배신 오해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다. 

여기에 문제가 하나 더 끼어드는데 사랑의 4각 관계다. 드브뢰에게는 사라라는 연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강권 하에 드브뢰의 절친인 노팅엄 백작과 결혼하게 된다. 드브뢰의 손에 여왕으로부터 받은 반지가 있는 걸 보고 사라와 드브뢰는 영원한 이별을 결심한다. 사라는 이별의 증표로 드브뢰에게 자신이 손수 만든 파란색 스카프를 준다. 한편 여왕은 드브뢰의 충성을 다시 확인한다면 반역죄로 사형하자는 의회의 요구를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드브뢰가 체포되고도 스카프의 주인을 말하지 않자 푸른 스카프를 보며 여왕은 주체할 수 없는 질투심에 빠지고 만다. 그녀는 드브뢰의 구명을 요청하던 노팅엄 백작에게 드브뢰가 자신을 배신했다며 푸른 스카프를 보여준다. 스카프의 주인은 노팅엄 백작의 부인 즉 스카프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만 배신의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노팅엄 백작은 눈이 뒤집혀 사라와 드브뢰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한편 편지와 함께 드브뢰가 끼고 있던 반지를 들고 노팅엄의 방해에도 간신히 여왕에게 달려간 사라의 간청에 여왕은 마음을 바꾸고 사형을 멈추려 하는 동시에 사형 집행을 알리는 포성이 들린다. 그때 노팅엄 백작의 마지막 한마디. “나는 피를 원했고 그 피를 보았다.” 남자가 한을 품으면 피바람이 부는 법이다. 이후 여왕은 목 없는 드브뢰의 망령을 보며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가고 자신이 제거했던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 제임스 1세가 즉위해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여왕이 드브뢰의 반지에 키스를 하며 막이 내린다. 실제로 드브뢰의 참수 2년 후 엘리자베스 여왕은 세상을 떠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백 년도 못 사는 우리는 일천 년을 살 것처럼 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 문화와 비교되는 인간 본성은 참으로 안 바뀌는 것도 신기하다. 한 정치인이 “권력은 측근 때문에 망하고 재벌은 핏줄 때문에 망한다”고 하던데, 이토록 비인간적인 절대 권력의 저주를 극복할 인간은 정말 없는가? 

※이 글은 <Arts&Culture>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4월호와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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