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술이요 시요 사랑이요 노래다
봄은 술이요 시요 사랑이요 노래다
  • 이만훈 언론인
  • 승인 2018.03.3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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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실려 온 '봄' 이야기, 그리고 로맨스

‘종일토록 헤맸으나 봄을 찾지 못하고(盡日尋春不見春)/짚신 신고 산과 구름 속 두루 다니다가(芒鞋踏遍隴頭雲)/그냥 돌아와 매화나무 밑을 지나려니(還來適過梅花下)/봄은 매화가지에 이미 무르익었더라(春在枝頭已十分).’

중국 송나라 때 문인 대익(戴翼)이 봄을 그리는 심사를 담아 표현한 ‘탐춘(探春)’이란 시다. 봄맞이의 애틋함이 기막히게 농축되어 절묘하기 짝이 없다. 봄은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닌가 보다. 그래도 이미 봄이니 어쩔 것인가?

지난겨울(客冬)이 하도 추워 영 오마지도 않을 것 같던 봄이 어느 결에 살금, 고양이처럼 다가와 옅디옅은 금빛 천의(天衣)로 온 누리를 감싸 돈다. 벌써 남녘엔 봄이 물씬 흐드러져 봄꽃으로 이름 난 곳이면 산이건 들이건 온통 원색 차림의 인파로 뒤덮여 사람이 꽃 행세를 하는 지경이라니….

‘절기’ ‘인문’ 통한 계절의 나눔

홍매화.뉴시스
홍매화.<뉴시스>

계절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이지 마디가 아니다. 따라서 그 ‘좋은’ 봄도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 두부모를 치듯 할 수 없다. 다만 확연히 대비되는 겨울과 여름의 중간으로 잡고 양쪽 어름을 시작과 끝으로 어림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농사 등을 위해 보다 정밀한 판단기준이 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조상들이 천문(天文)을 읽고 찾아낸 것이 바로 달력과 절기(節氣)라는 틀이다.

오래전부터 계절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태양의 위치변화에 따른 24절기와 달의 차고 기우는 변화에 따른 음력이란 두 개의 축에 의존해왔다. 즉, 굵게는 스물 네 마디의 절기를 살펴 갈피를 잡고, 자세한 것은 나날 다달이 음력에 기대 판단해온 것이다.

이십사절기 중 봄에 해당하는 것은 입춘(立春)·우수(雨水)·경칩(驚蟄)·춘분(春分)·청명(淸明)·곡우(穀雨)의 여섯이고, 음력으론 정월·이월·삼월 등 세 달 동안이다. 여기에다 달력과는 달리 봄을 한 덩이로 보고 세 토막으로 나눠 맹춘(孟春)·중춘(仲春)·계춘(季春)으로도 나눴는데 이는 지극히 인문(人文)적인 나눔이다. 달력의 구분과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대충 맹춘은 정월, 중춘은 이월, 계춘은 삼월과 어울린다. 이런 나눔과 기준에 따르면 절기로는 입춘, 달력상으론 정월이 봄의 시작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네 가슴으론 늘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겨울 꼭두추위 속에서 봄이 시작되곤 한다. 그것도 추위가 강할수록 더 빨리 찾아온다. 이름 하여 ‘대춘(待春)’이란 봄이다. 봄을 기다린다는 것은 이미 마음속에서나마 봄의 느낌이 발현(發現)돼 있다는 증명이다.

봄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대춘하면 우선 떠오른 것이 매화. 봄을 맨 먼저 알린다고 해서 춘선(春先), 춘고초(春告草), 화형(花兄·꽃의 형님)이란 별호(別號)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매화꽃이 피면 이미 봄이 곁에 온 줄 알았다. 그래서 엄동설한에도 봄을 그리워할 때면 매화를 통해 그 심사를 토로하곤 한다. 매화를 빌어 대춘하는 아취(雅趣)의 결정판은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 동짓날 흰 매화를 여든 한 송이 그려두고 다음날부터 한 송이씩 붉게 칠해나가는 고아(高雅)한 풍속으로 모든 꽃송이가 홍매화(紅梅花)가 되면 진짜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게 마련이다. 여든 한 송이는 동지에서 입춘까지의 날 수이자 양(陽)의 수 가운데 가장 큰 수인 아홉(九)이 겹치는 것으로 추위(寒)가 물러가고(消) 따듯한 봄이 옴을 중의(重意)하고 있다. 자고로 매화가 사군자(四君子)와 세한삼우(歲寒三友)에 모두 꼽힐 정도로 사랑을 받아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매화대춘의 대표적인 인물이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70)선생이다. 퇴계는 중국 동정호(洞庭湖) 주변 산에 은거해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삼아 살았다는 ‘매처학자(梅妻鶴子)’ 임포(林逋·968~1028)를 사모해 매화를 유난히 사랑했다.

선생께서 남긴 매화시만 107수나 되는데 책을 읽을 때는 매화무늬가 있는 매화등(梅花凳)에 앉고 매화연(梅花硯)에 먹을 갈아 글을 쓰곤 했다. 임종을 앞두고는 자신의 모습을 매화분재에 보이기 싫어 다른 방으로 옮기게 한 뒤 “매화분재에 물을 주라”는 말씀을 남기고 운명했을 정도다. 선생은 겨울이 되면 매화분재들을 거처인 완락재(玩樂齋)방안에 들여놓고 홀로 있을 때면 매화분(梅花盆)을 마주하고 앉아서 매형(梅兄)이라 부르고, 밤새 잔을 주고 받으며, 취기에 젖어 많은 시를 읊기도 했다. 지금도 도산서원의 뜰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도산매(陶山梅)가 바로 퇴계의 그 한우(寒友)다.

‘홀로 산창에 기대니 밤기운 차가운데(獨倚山窓夜色寒)/매화나무 가지 끝에 둥근 달이 걸렸구나(梅梢月上正團團)/구태여 산들바람 청해서 무엇하리(不須更喚微風至)/맑은 향기 저절로 뜰 앞에 가득차네(自有淸香滿院間)’-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도산 달밤의 매화를 노래하다) 중에서-

몸을 웅숭그린 채 손을 호호 불며 절절하게 봄을 기다리다보노라면 어느 날인가 바람의 매운 맛이 한결 밍밍해지게 마련이다. 그 순간 대춘은 끝나고 탐춘(探春)이 시작된다. 봄을 몰러, 봄을 후리러 나가는 것이다. 심춘(尋春)이라고도 한다.

‘동풍이 건듯 부러 적설(積雪)을 헤텨내니/창(窓)밧긔 심은 매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가뜩 냉담(冷淡)한데 암향은 므삼일고/황혼의 달이조차 벼마테 빗치니/늣기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송강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 중에서-

자연에서 봄이 보이다

개나리꽃이 만발한 봄날 등산객들이 산행을 즐기고 있다.뉴시스
개나리꽃이 만발한 봄날 등산객들이 산행을 즐기고 있다.<뉴시스>

사실 봄의 전령사는 매화뿐만이 아니다. 남녘에선 산수유꽃, 동백꽃도 있고 보춘화(報春花)로도 불리는 춘란(春蘭)도 있다. 중부지방에서는 ‘얼음꽃’이란 별명이 있는 복수초(福壽草)와 생강나무꽃이 피는 걸로 봄인 줄 알았다. 생강나무는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바로 그 나무로, 정선아라리에서도 그렇듯이 기호(畿湖)지방에서는 ‘동백나무’ ‘동박나무’로 통했다. 특히 생강나무의 열매로 짠 ‘동백기름’은 머리단장을 하는데 그만이어서 여인네들의 사랑을 받았다. 생강나무는 토종인데다 같은 노란색 꽃이 피는 산수유(중국이 원산지)보다 열흘쯤 꽃을 일찍 피우니 봄소식을 알리는 꽃나무로는 단연 으뜸이다.

여기에서 또 봄 타령을 하면서 빼놓을 수없는 게 있으니 바로 봄나물들이다. 얼핏 나뭇짐에 봄빛이 새털만큼이라도 얹힌 것을 보기가 무섭게 처자들은 나무꾼한테 그 진원지(?)를 알아내곤 이내 호미, 창칼이며 종댕이를 챙겨 그 곳으로 달려갔다. 그 곳은 언제나 볕이 발라 한참 내린 눈도 금세 녹고야마는 ‘명당자리’였고, 한겨울에도 동장군이 잠시라도 한눈을 팔기라도 하면 쑥, 씀바귀, 냉이, 달래 등의 눈을 틔워내고 있게 마련이던 곳이라 처자들은 틀림없이 소복이 자란 연록(軟綠)의 봄을 캘 수 있었다.

하늘에선 겨울철새인 기러기가 시베리아를 향해 떠나가고, 대신 왜가리, 백로가 남쪽에서 찾아온다. 옛날엔 그 흔했던 제비가 좀체 보기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아주 간혹 일부 지역에선 아직 의리 있게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디 그 뿐이랴, 바다에선 맹춘어(孟春魚)란 별칭으로 불리는 불볼락(혹은 열기)을 비롯해 숭어, 도다리, 가자미, 주꾸미에다 바지락, 새조개, 그리고 가사리, 나발초 등 ‘갱거리(국거리)’가 봄이 왔다고 나타나 겨우내 김장김치에 찌든 입맛을 개비해준다.

술과 시와 노래에 취하는 계절

봄은 흥이 겨운 철이다. 날은 따사롭게 해사하고, 산과 들은 온갖 꽃들로 넘쳐나니 제 아무리 목석이라도 절로 신이 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신바람을 더 신나게 하려면? 술이다!

옛 술 가운데 이름 난 것에는 ‘춘(春)’자 돌림이 많은데 이는 몸과 마음을 달뜨게 만드는 술의 성정과 이미지가 봄과 닮았음에 바탕을 둔 착상이리라.

전라도 여산의 호산춘(壺山春), 경상도 문경의 또 다른 호산춘(湖山春), 충청도 노성의 이산춘(尼山春), 서울 약현의 약산춘(藥山春), 평양의 벽향춘(碧香春) 등이 있다.

술 이름에 ‘춘’자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중국 당(唐)나라 때부터인데 당시 난만(爛滿)했던 문화 속에서 한껏 멋을 부리던 낭만시인들의 호사스런 일면을 증거한다. 따라서 아무 술에나 그런 것이 아니라 술 이름에 ‘춘’자가 들어가는 것은 나름대로 특색을 갖춘 것이 아니면 턱도 없었다. 때문에 이들 ‘춘’자 돌림의 술은 모두 특품(特品)일 수밖에 없는데 알코올 도수가 높고 담백한 맛이 빼어났다.

이런 술들을 일컬어 춘주(春酒)라고 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아주 까다롭게 정성을 들여 여러 번 술밑을 더하며 발효시켜 순후(醇厚)한 맛이 나도록 한 다음 내린 술을 특별히 ‘酎(주)’라 하고 이를 다시 곱게 ‘춘주’라 불렀던 것이다.

따라서 정초에 담그는 삼해주(三亥酒·밑술을 마련한 뒤 열이틀에 한 번씩 해일, 즉 돼지날에 덧술을 얹기를 세 번 해 얻는다)나 사마주(四馬酒·삼해주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말날, 즉 午일에 네 번 덧술을 쳐 얻는다) 같은 술도 능히 춘주에 속한다.

실학자 이수광(李睟光·1563~1628)도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춘주는 의방(醫方)에서 미주(美酒)라 하는데 삼해주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주선(酒仙)이라 불릴 만큼 술을 좋아했던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시를 낚는 갈고리요 시름을 쓸어버리는 비’라고 극찬한 술이 동정춘(洞庭春)인데 서유구(徐有榘·1764~1845)가 쓴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제조법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사대부가에서 담가 즐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뜩이나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게 봄날인데 꽃바람이 살랑살랑 콧등이라도 스칠 량이면 한창 물오른 처녀총각이 아니고 중천금(重千金) 대장부라도 배길 수는 없는 법.

익기가 무섭게 벌써 맛보아둔 춘주-, 반쯤 번 매화 향을 안주삼아 한잔 그득 따라 기울여야 하는 게 우리네의 봄이 아니던가?

‘갓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노코 머그리라’-상춘곡-

독작(獨酌)이 요즘 말로 ‘혼술’이라 처량히 궁상맞다 싶으면 친구를 불러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할 일이요, 좀 형편이 되면 들이야 산이야 밖으로 나가 ‘춘음(春飮)’을 즐기면 될 일이다. 둘레길을 걸어도 좋고, 봄물이 도란도란 꽃내음을 흘려 띄우는 계곡도 좋다. 아직 봄빛이 성긴 산등인들 어떠랴! 봄은 사람을 취하게 하고 술은 봄을 취하게 한다. 봄은 술이요 시요 노래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일렁이는 청춘남녀

춘향전.인터넷캡처
춘향전.<인터넷 캡처>

봄이 되면 모든 생명들의 생리현상이 왕성해지면서 짝짓기에 나선다. 봄은 욕정(欲情)의 계절이요 교합(交合)의 계절이다. ‘사랑의 계절’이란 에두른 표현이다.

‘봄 ○○는 부젓가락을 녹이고, 가을 ○은 바람벽을 무너뜨린다’는 속담(한자로는 男悲秋女喜春)도 있듯이 봄은 여성의 계절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남성보다 봄을 더 탄다는 뜻이다. 음(陰)이 성(盛)하면 그만큼 양(陽)이 따르는 게 자연의 섭리라 봄엔 여성의 ‘바람’으로 남녀가 상열(相悅)하는 로맨스가 이뤄진다. 춘향전을 비롯해 대부분의 소설에서 청춘남녀가 봄에 만나고, 그 단초를 여성 쪽에 두는 까닭이기도 하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간질이면 앞집 갑순이의 부푼 가슴이 방망이질하듯 하고, 덩달아 뒷집 갑돌이도 불두덩이 근지러워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게 마련이다. 어이 할꺼나, 어이 할꺼나!

춘정(春情)은 천기(天氣)라 인간의 힘으로 함부로(?) 어쩌지 못한다. 자칫 잘못했다간 동티가 난다. 그래서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을 철칙처럼 여기던 시절에도 무조건적인 강압보다는 적당한 선의 일탈(逸脫)을 방조 내지 묵인해 다스리곤 했다.

기산풍속도첩에 실린 널뛰기.한국민족문화대백과
기산풍속도첩에 실린 널뛰기.<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내외법(內外法)이 엄격하던 시절엔 훤한 대낮에도 뜰에서 놀면 안 되고, 특별한 이유 없이 대문 밖 출입을 하지 말아야 했다. 특히 양반여성들은 외출할 때 걸어 다녀서는 안 되고 반드시 가마를 타거나 쓰개치마 등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사촌 이상은 만나기도 힘들었다. 이런 풍조는 워낙 세 이 땅에선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바가지와 계집은 밖으로 내돌리면 깨지다’며 ‘밖으로 싸도는 년은 바람난 년’이란 게 당연시 됐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때도 종족보존을 위해서라도 결혼은 해야 했으니 대부분 ‘이팔청춘’무렵의 조혼(早婚)이었다. 따지고 보면 10대 애들끼리 ‘방 살림’을 해야 하는데 ‘성 지식’이 있을 턱이 없었다(요즘은 ‘야동’이 넘쳐 머리에 피도 채 마르지 않고서도 ‘그 짓거리’에 대해서라면 알로 까지지만…).

그래서 고안(?)된 것이 널뛰기와 그네뛰기. 아직 봄이라기엔 싸한 정월 초나흘이 되면 딸이 있는 집에선 “쿵 짝, 쿵 짝” 널뛰는 소리가 담장을 넘곤 했다. 한편에서 힘을 줘 발을 구르면 맞은편이 공중으로 오르기를 번갈아 하는 놀이인데, 여인네들한테는 ‘창살 없는 감옥’너머의 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성교육의 현장이기도 했다. 널판이 오르내리길 반복하다보면 언 땅이 살짝 녹기 시작하면서 달라붙었다 떨어지길 계속하는데 낫살 먹은 여인네가 손뼉을 쳐대며 음담(淫談)을 섞는다. “남녀가 아랫도리를 맞출 때 나는 소리”라며 “궁합을 잘 맞추려면 오금을 잘 써야 한다.”고 어린 처녀들에게 운우(雲雨)를 나누는 기술을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널뛰기는 그 집에 과년한 딸이 있음을 동네에 알리는 홍보수단 역할도 톡톡히 했으니 사전결혼준비(?)론 그만이었다.

그네뛰기 역시 여인들 놀이지만 넓은 공간이 필요한 까닭에 동네어귀나 산기슭 등 외진 곳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널뛰기보다는 보다 더 노골적으로 춘의(春意)를 드러냈다. 제비같이 날렵한 맵시로 반공중을 오락가락하는 사이,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치맛자락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봄 처녀의 속살을 먼발치에서 나마 얼핏이라도 훔쳐본다면 누구라도 이 도령이 되지 않곤 못 배길 테다. 그네뛰기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널뛰기보다 진일보한 성교육이다. 방중술(房中術)에 필요한 몸 쓰기와 다리의 힘을 단련하는 데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네를 잘 뛰려면 앞뒤로 흔들리는 그네 위에서 다리를 뻗었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시에 그넷줄을 잡은 팔을 벌렸다 오므렸다 해야 하는데, 이러는 사이 저절로 오금이 죄어졌다 풀렸다 하면서 ‘거기’에 힘이 들어감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네뛰기는 단오에 주로 하는 것으로 알지만 정월부터 즐기던 것도 이런 때문이다.

춘사(春事)로 치자면 널뛰기와 그네뛰기는 예행연습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두 가지로 기초를 떼면 본격적인 현장 수업이 이뤄지게 되니 바로 답교(踏橋)와 답청(踏靑)이다. 이 가운데 답교놀이는 인근의 이름난 다리 위를 나이 수만큼이나 한해 달수만큼 열두 번 왕복하면서 액땜과 건강을 기원하는 풍속으로 남녀노소가 모두 참가했다.

집안에만 갇혀 있다가 고작 트인 곳이라야 울안 여인네끼리의 세상이었지만 거기에서 노는 것도 짜릿한 즐거움이 가슴을 뛰게 했는데, 이제는 마침내 남정네들과 한 공간에서 어울려 직접 살 내음을 맡으며 얼굴을 보는 것이니…. 답청놀이를 통해 처녀는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나는 공부(?)를 마치고 실행만을 남겨둔 훌륭한 예비신부가 되는 것이다. 답교놀이가 끝나면 누구네 딸내미는 누구네 총각과 어울린다는 둥 소문이 나게 마련인데 이를 ‘겉 궁합’이라 했다. 겉 궁합이 좋을 경우 실제로 중매쟁이가 나서 혼담으로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답교놀이가 비교적 가깝고 특정한 장소를 무대로 하는 것에 비해 답청은 훨씬 개방되고 넓은 곳에서 이뤄진다. 답청은 답교놀이보다 시기적으로도 약간 늦다. 꽃바람이 대지를 어르고 지난 자리에 새싹이 돋아나면 이미 만춘(滿春), 이때를 기다려 너도나도 콧바람을 쐬러 행장을 꾸려 나서는 풍속이 바로 답청놀이다. 요즘의 야유회인 셈이다. 화전(花煎)놀이, 화류(花柳)놀이, 꽃달임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반상(班常)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겼다.

그러니 늘 왁자지껄했고, ‘야합(野合·outdoor sex)’ 등 스캔들도 많았다. 오죽했으면 <경국대전>에 여염집 여인이 산골짜기나 냇가를 찾아 놀 경우 장(杖) 100대(〈형전〉 ‘금제’)로 다스린다고 윽박지르고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법이 지엄해도 품에 파고드는 봄바람엔 어쩔 수가 없었다. 답청에 나서는 여염집 여인이 몸치레단장을 하는 모습을 보라!

‘머리에는 나비 장식의 죽절비녀를 꽂고 족두리를 쓰며, 발에는 꽃을 수놓은 비단 초혜를 신는다. 속치마론 붉은 항라치마를 받쳐 입고 겉엔 남방사 치마를 덧입고는 복숭아·가지 모양의 노리개를 찬다. 너무 담백하거나 너무 짙은 화장을 피해 연지와 분으로 화장을 하며, 눈썹은 버들처럼 길게 그리고 살쩍을 곱게 다듬는다. 이가 너무 흰 것은 도리어 촌스러워서 맑은 먹물을 머금어 빛을 죽인다. 외씨 같은 흰 버선이 곱지만 벽장동의 기녀들이 보면 구식이라 놀리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당시로선 대단한 연출이다. 그럼에도 멋 부림이 기녀한테 꿀리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벽장동이란 지금의 송현동과 사간동 일대로 기생집이 많았던 곳이어서 당대 유행의 첨단을 걸었던 곳이니 오늘날이라면 보통 주부가 톱스타 탤런트와 뷰티를 다투는 격이다. 참, 이제나 그제나 여인이란….

속절없이 지나는 시간, 떠나는 봄

어쨌거나 답청은 상춘(賞春)이요 농춘(弄春)의 완결이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아니던가? 가는 건 시간이요, 흐르는 것은 세월이니 신나게 놀다보면 문득 한바탕 꿈(一長春夢)인 듯 어느새 꾀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봄을 보낼 때가 된 것이다.

송춘(送春), 아니 전춘(餞春)-. 고려 때 문호 이규보(李奎報)는 ‘봄아 어디로 가니 물어도 봄은 묵묵부답(問春何去春不言)’이라고 탄식하며 봄을 보냈다.

‘잘 가라 봄바람아, 뒤돌아보지 말고!(好去春風莫回首)’

이만훈 언론인.
이만훈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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