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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9 19:07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헨리 8세의 무자비한 성폭력, 그리고 '미투 행진'
헨리 8세의 무자비한 성폭력, 그리고 '미투 행진'
  • 신금호 M cultures 대표
  • 승인 2018.03.05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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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묘약>으로 유명한 작곡가 도니젯티는 15세기 튜더 왕조에 관한 오페라 3부작을 남겼다.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이야기 <안나 볼레라>, 두사람의 딸인 엘리자베스의 왕권에 도전했던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그린 <마리아 스투아르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애인이었지만 처형당한 <로베르토 르브뢰>. 

튜더 왕가는 정부 행정을 중앙집중화, 관료화하고 종교개혁으로 교회를 왕권에 복속시켰으며 식민지 개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대영제국의 탄탄한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 영국 역사상 빛나는 업적을 이룬 튜더 왕조의 이야기 중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된 헨리 8세는 빼어난 외모와 건장한 체격에 걸맞은 여성편력으로 유명하다. 

그는 요절한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딸 메리 튜더를 얻었는데 형수였던 부인과의 사이는 좋지 못했다. 헨리 7세가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겪었던 치열하고 복잡한 내전을 지켜본 헨리 8세는 누구보다 강력한 후계자 즉, 아들을 원했다.

부인과의 불화는 필연적으로 헨리 8세를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리게 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운명적으로 앤 불린을 만나게 된다. 앤 불린은 왕의 제안에도 꼼짝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언니가 이미 헨리 8세의 연인이 되었다가 버림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애정 공세에 공식적 왕비의 자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 교회의 율법상 이혼은 상대가 죽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헨리 8세는 아들이 필요했고 앤에게 집착했다. 그 결과 이혼이 가능한 체제로 종교개혁을 감행한다. 그는 영국의 국교를 바꿨고 스스로 대관식을 치렀으며 마음대로 이혼하고 앤과 결혼한다. 

그러나 바로 태어난 두 사람의 후계자는 딸이었다. 훗날 여왕이 될 엘리자베스. 딸을 낳았음에도 앤 불린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자신이 끌어 내린 왕비 캐서린과 그의 딸 메리의 신분은 강등되었고, 왕의 이혼에 관해 입에 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공포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럼에도 끝내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왕과 왕비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헨리 8세는 문란함이란 죄를 뒤집어 씌워 앤 불린을 참수하고 아들을 낳아 줄 새 여왕을 맞이한다. 10일 만에 결혼한 새 왕비는 아들을 낳았지만 출산 도중 사망하고, 그 후로도 여섯 번의 재혼을 한다.

헨리 8세의 공식적인 세 자녀는 모두 왕위에 오르나 저주를 받은 듯 불과 10년 만에 3명의 대관식이 치러졌다.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가 여왕에 올라 저주가 풀리는 듯했으나 그녀 역시 후계자를 얻지 못하고 튜더 왕가의 대가 끊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 혈통 스튜어트 왕조의 시작을 연 제임스 1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 앤 불린이 쫓아낸 왕비 캐서린의 손자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저주가 아닐까.

도니젯티의 오페라 <안나 볼레나>에서 여주인공은 매우 불행하게 그려진다.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관계는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졌고, 왕은 사랑하는 제인 시모어를 왕비로 세울 준비를 하는 중이다. 한편 앤 불린의 총애를 받는 음악가 스미튼은 남몰래 그녀를 사모하여 왕비의 사진이 들어있는 펜던트를 훔쳤지만 돌려주기 위해 방에 들어온다.

마침 앤 불린의 첫사랑 퍼시가 그녀에게 구애하며 자해소동을 벌이고, 숨어 있던 스미튼은 퍼시가 앤을 죽이려 한다고 오해해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헨리 8세마저 등장해 모든 상황을 암살 모의로 판단하던 중, 결백을 주장하던 스미튼의 손에서 헨리 8세의 발아래로 왕비의 펜던트가 떨어진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부정해도 소용없고 사랑하는 제인이 자비를 애원해도 소용없다. 헨리 8세의 마음은 모두 처형하는 쪽으로 기운다. 죽음을 앞둔 앤은 자신의 뒤를 이어 왕비가 될 제인에게 딸 엘리자베스의 안전을 부탁하고, 이후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로 옛 애인 퍼시에게 자신을 어린 시절로 데려가 달라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제인 시모어와 헨리 8세를 저주하지 않겠다 말하고는 기절한 채로 간수들에 의해 끌려나가며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지금 이 시대에 헨리 8세는 매일 밤 뉴스에 등장할 만한 사람이다. 국민이 준 권력을 남용했으며 사익을 편취했고 종교의 자유를 짓밟았으며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일삼았고 표적 수사를 통해 정치인들을 숙청하는 일을 시도 때도 없이 저질렀다. 아마 미국 같으면 한 400년 정도 형을 받을 만한 케이스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인간은 그 위치에 가면 그렇게 변한다. 미투 행진이 계속되는 요즘 우리는 수많은 헨리 8세를 생생히 목격하고 산다. 이런 왕조에 관한 역사를 보면 마치 조선 시대 사극을 보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세상의 이치는 동양이나 서양이 비슷한 것 같다. 높은 위치에 오르고 싶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높은 자리도 치러야 할 대가에도 관심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살 수밖에…

※이 글은 <Arts&Culture>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3월호와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글·사진/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 음악대학·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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