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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화석의 인도경영] 삼성에 돈 빌리려다 ‘퇴짜’, 지금은 이재용 보다 부자
[오화석의 인도경영] 삼성에 돈 빌리려다 ‘퇴짜’, 지금은 이재용 보다 부자
  • 오화석 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원장
  • 승인 2018.03.05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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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닐 미탈 바르티그룹 회장…고객 마음 읽는 혜안으로 인도 14위 갑부
수닐 미탈 바르티그룹 회장.<오화석>

인도에 가면 어디에서든 붉은 색의 Airtel이라는 로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인도 최대이며 세계 3위의 정보통신기업인 바르티 에어텔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에어텔은 한국의 SK텔레콤과 같은 휴대폰 서비스제공업체다. 이 회사의 창업주 수닐 미탈 회장은 자전거 부품상에서 정보통신 제왕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2017년 11월 현재 83억 달러(약 9조5000억원)로 인도 갑부순위 14위다.

지난 2000년 11월 일이다. 미탈 회장은 인도 수도인 뉴델리 인근 신도시 구르가온에 자리한 삼성 사무실을 찾았다. 당시 자금난을 겪고 있던 그는 삼성으로부터 1200만 달러(약 120억원)를 투자 받고 싶었다. 삼성도 유망 파트너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그를 퇴짜 놨다. 그러나 현재 그의 재산은 그가 돈을 빌리려 했던 삼성 이재용 부회장(7조1000억원)보다 훨씬 많게 불어났다. 정말 ‘사람 팔자 시간문제’란 말이 실감난다.
수닐 미탈 회장은 위기를 돌파하는 뛰어난 능력과 기회를 간파해 남보다 앞서 사업화하는 전략으로 큰 성공을 일구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작은 철공소 사업

1957년생인 미탈 회장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창업에 나섰다. 아버지에게 자본금 2만 루피(약 34만원)를 빌려 크랭크 축 등 자전거 부품을 만드는 조그만 철공소를 세웠다. 이 사업은 생각 외로 잘 됐다. 
그러나 젊은 미탈은 큰 꿈의 실현을 위해 1980년 사업을 정리하고 최대 경제 도시 뭄바이로 떠난다. 뭄바이에선 무역업자가 됐다. 

1982년 미탈은 우연히 스즈키 사의 일본인 세일즈맨을 만났다. 그 세일즈맨은 소형발전기의 인도 내 판매망 구축을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미탈은 소형발전기를 보자마자 대박사업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인도는 전기가 부족해 정전이 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스즈키 측은 미탈이 신용장을 보내는 등 끈질긴 열정을 보여 결국 그에게 독점권을 준다. 스즈키 발전기는 수입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장애물 없이 탄탄대로를 달릴 것으로 기대됐던 그의 사업은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칠흑 같은 어둠에 직면한다. 정부가 국내 산업 보호를 이유로 모든 발전기의 해외수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새 사업거리를 찾아 한국, 일본, 대만 등 해외 출장에 나섰다. 마지막 일정인 대만의 한 무역박람회에서 그는 눈에 번쩍 들어오는 상품을 발견한다. 터치 톤(누름) 방식의 전화기였다. 당시 인도의 전화는 모두 다이얼 방식이었다. 그는 공급업체와 바로 계약을 체결했다.

터치 톤 전화기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잘 팔렸다. 잘 나가던 미탈의 사업은 그러나 정부 정책 변화로 또 다시 곤경에 처한다. 인도 정부는 터치 톤 전화기가 잘 팔리자 이를 국산화해야 한다며 수입 규제를 결정했다.

위기 상황에서 그는 독일의 지멘스와 공동 벤처를 설립해 국산 전화 ‘비텔’을 생산한다. 정부의 정책 변화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그의 전매특허인 속도중시 경영이다. 

미탈의 전화기 사업은 눈부시게 번창했다. 사업이 잘되자 팩스, 자동응답전화기, 무선전화기 등으로 급격히 영역을 확대했다. 

인도 정부는 1992년 휴대폰 등 정보통신 시장을 개방했다. 그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결단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했다. 휴대폰 서비스업은 미지의 분야였으나 과감히 도전했다.

다국적 기업과 합작해 휴대폰 서비스사업권 따내

경쟁 입찰 상대는 유명한 다국적 기업과 국내 대기업들이었다. 이들에 비하면 그의 회사는 피라미에 불과했다. 그는 이번에도 저명 외국 기업과 컨소시움을 구성했다. 프랑스의 비방디였다. 바르티는 결국 30개 경쟁사를 물리치고 델리 등 주요 대도시 4곳의 사업권을 모두 입찰 받는 기염을 토했다.

정보통신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던 2004년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사업 기반인 바르티의 모든 전화 네트워크를 스웨덴 에릭슨, 독일 지멘스, 핀란드 노키아 등 외국 기업에 팔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왜냐하면 정보통신 분야에서 네트워크는 회사의 생명줄과도 같아 이를 다른 기업에 팔아넘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회사도 아닌 외국 회사에 파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미탈 회장이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고뇌어린 결정이었다. 자신의 경쟁자는 릴라이언스, 타타 등 인도 최대의 기업들이었다. 이들에 대항해 선두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혁신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당시 상황에선 가입자가 늘면 늘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였다. 왜냐하면 가입자가 증가함에 따라 그에 필요한 네트워크 설비를 새로 사야 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에서 네트워크를 팔려고 했는지 미탈 회장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네트워크를 소유한 적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위치 하나가 고장 나도 우리 회사 내에는 이를 고칠 사람이 없었지요. 에릭슨에서 기술자가 와 고쳐주는 식이었습니다. 우리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도, 유지하거나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네트워크가 실제로 우리 것인지 고민했지요. 결국 팔아치우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왜 국내 기업이 아닌 외국 기업에 팔기로 작정한 것일까. 일부에서는 이를 국부 유출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인도는 과거 우리처럼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은 적이 있어 외국 회사와의 합작을 경계하는 시각이 많이 존재한다. 

네트워크 매각 가격은 4억 달러였다. 네트워크를 팔았다는 것은 곧 바르티가 더 이상 설비를 사거나 유지하는데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대신 바르티는 이들 외국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사용료와 가입자 트래픽(통신량)의 증가에 따라 결정되는 수수료를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바르티는 네트워크 매각에 이어 같은 해 가입자 관리 및 회계를 담당하는 자사 정보기술(IT) 부문을 7억5000만 달러를 받고 IBM에 팔았다. 이의 목적도 네트워크 매각과 마찬가지였다.

핵심 역량만 남기고 모두 파는 과감한 결단

바르티는 이제 자신의 핵심 역량이며 자산인 마케팅과 고객 서비스 개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창출 등에만 집중하면 됐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아웃소싱(외부 주문)이라 부른다. 핵심역량(core competence)만 남기고 나머진 남에게 맡겨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주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이 인도, 중국 등 개발도상국 기업에 비 핵심 업무를 위탁하는 방식이다. 인도가 아웃소싱 기지로 유명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바르티의 아웃소싱 사례는 정반대다. 개발도상국인 인도 기업이 선진국 기업인 에릭슨, IBM 등에 비 핵심 업무를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르티 이전에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이 때문에 바르티의 네트워크 분야 등 아웃소싱은 그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혁신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바르티는 이 같은 선진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역(逆)아웃소싱 전략’으로 관리비용을 현격히 줄여 고객 서비스 가격이 대폭 낮아졌다. 미탈 회장의 혁명적인 조치 이후 바르티는 성공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오 화 석 인도경제연구소장/배재대학교 글로벌교육부 교수

오화석 소장은 미국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인도 네루대(JNU) 국제학부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배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슈퍼코끼리 인도가 온다> <100년 기업의 힘 타타에게 배워라> <마르와리 상인> 등 인도에 관한 10여권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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