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같이 유럽대륙 휩쓴 아시아 기마군단 ‘훈제국’
폭풍같이 유럽대륙 휩쓴 아시아 기마군단 ‘훈제국’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 승인 2018.03.0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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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 통일왕조 진과 쟁패한 흉노 후예…로마제국 벌벌 떨게 해
<Flickr/Agencia de Noticias ANDES>

사라진 흉노, 훈제국으로 부활 유럽 중심부 강타

흉노는 원래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지역을 지칭하는 투르키스탄(투르크인의 땅이란 뜻)에서 살아온 민족이다. 기원전 3세기경 몽골고원을 차지하고 최초의 스텝제국을 건설한 기마군단 흉노는 대완, 대하, 월지, 오손, 누란 등 동투르키스탄 지역일대를 정복하고, 기원전 1세기경에는 실크로드 중심축을 장악하는 강대국이 되었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 이어 등장한 한과 쟁패하면서 세력을 떨쳐오던 흉노는 몇 차례 내분으로 약화되면서 실크로드의 지배권을 중국에 빼앗기고 기원전 48년 동·서 흉노로 1차 분열됐다. 그 후 질지가 이끄는 서흉노는 몽골지역으로부터 서투르키스탄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아랄해와 발하쉬 북부초원까지 진군했으나 기원전 36년 질지가 한의 진탕에 잡혀죽자 역사기록에서 사라졌다.

동흉노는 48년경 화북지역 일대의 호한야가 지휘하는 남흉노와 몽골고원 일대의 북흉노로 2차 분열됐다. 남흉노는 3세기 초 중국에 동화·흡수되었고, 북흉노는 한과 선비의 세력에 쫓겨 서쪽으로 이동해 2세기 초반에는 투르키스탄 일대에 산재해 살았다. 이후 2세기 중반 경 천산산맥 북부에서 아랄해 지역으로 다시 이동했다. 이와 같이 흉노세력은 분열·약화되고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1세기 말에는 중국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4세기말(370~375년경) 흉노의 후예들이 이번에는 로마인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바로 훈제국을 건설하여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한 훈족(HUN)이다. 아랄해 북부 초원일대에 거주하던 이들 흉노의 후예 훈족은 374년경 발라미르의 지휘 하에 유럽을 향하여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인 그 옛날 조상들과 매우 흡사한 방식, 즉 말·나무안장·등자·복합곡궁·삼각철화살 등으로 중무장한 기마군단의 모습으로 유럽인들의 눈앞에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

그들은 볼가강과 돈강을 건너 이란계 유목민으로 알려진 알란인들을 격파하고 동고트를 붕괴시켰으며, 드네프르강을 건너 서고트를 패퇴시켰다. 쫓긴 고트족들은 훈족을 피해 다뉴브강을 건너 로마영토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놀라운 기동성과 뛰어난 기마전술로 게르만족 등 유럽세력을 순식간에 압도해 버렸다. 훈족의 공격은 유럽인들에게는 ‘신의 징벌’ 또는 ‘신의 채찍’이라 불릴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역사가들은 훈족에 대한 기록을 무엇보다 극도의 공포와 증오로 생생하게 가득 채웠다. 러시아 타타르공화국의 수도인 카잔의 박물관에는 훈족을 마치 귀신과 같이 형상화한 그림이 있는데, 바로 이러한 공포를 형상화 한 것이다. 6세기경에 건설된 베니스는 훈족의 침입에 놀란 상인들이 기마군단이 물을 건너지 못한다는데 착안해 물위에 건설한 수상 도시다. 바로 훈족의 유럽진출을 역사적으로 웅변하는 도시다.

이후 400년경 다시 발라미르의 아들 울딘이 동유럽 평원으로 공격해 들어가자 놀란 고트족이 헝가리, 이탈리아 반도로 이동하면서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라고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거대한 민족이동을 촉발시켰다.

아틸라의 등장과 위기에 처한 유럽

수세대에 걸쳐 훈족은 서쪽으로 이동해 로마 국경 가까이까지 이르렀으나 로마는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로마제국은 훈족을 직접적인 큰 위협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변방의 게르만족을 공격할 때는 훈족 기병의 지원을 받는 등 때로는 동맹관계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434년 아틸라가 훈족의 지배권을 확립한 후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권력을 장악한 훈족의 왕 아틸라는 우선 주변지역의 게르만 민족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나갔다. 그들은 아틸라의 적수가 될 수 없었고, 로마 주변은 아틸라가 완전 장악하게 되었다. 436년 2만의 부르군드군이 아틸라군에 전멸당한 전쟁이 바로 영웅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 주제다.

주변을 정리한 아틸라는 441년 동로마제국에 전쟁을 선포하고 다뉴브강을 건너 주요 도시를 초토화했다. 이에 동로마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442년 아틸라군과 굴욕적으로 강화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447년에는 동로마제국을 다시 공격해 콘스탄틴노플을 제외한 발칸반도를 거의 초토화 시켜버렸다. 451년에는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를 공격해 메츠를 점령하고 오를레앙을 포위하는 등 공포의 진군을 계속했다. 452년 이탈리아로 쳐들어가자 서로마황제는 도주하고, 로마대주교 레오는 화해를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나 전염병과 병참 문제가 겹치면서 아틸라는 본거지인 헝가리대평원의 판노니아로 돌아왔다.

이듬해 453년 세계사를 바꾸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아틸라가 게르만 제후의 딸 일디코와 결혼 첫날밤 죽었다. 의문의 사망이었다. 지금도 독살, 과음, 복상사 등 다양한 추측이 있다. 이로써 아틸라가 준비 중이던 콘스탄티노플 정복이 무산되었다. 아틸라가 죽자 세 아들이 왕위를 두고 분열을 일으키면서 훈제국은 약화되었다.

왕위를 이은 장남 엘라크가 이끄는 훈기병은 454년 판노니아의 네다오(Nedao) 강변에서 벌어진 대전투에서 게르만 연합군에 패배하고 러시아초원으로 후퇴했다. 이로써 게르만부족에 대한 훈의 지배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됐다. 468년 훈은 전력을 가다듬어 동로마를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잔존세력은 흑해 북부로 밀려나 세력을 잃게 됐다. 훈족은 혜성과 같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단기간에 엄청나게 큰 세력으로 성장했지만, 지도자의 사망과 함께 갑자기 역사의 장막 뒤로 퇴장하는, 그야말로 ‘초원의 방식’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김석동><br>
아틸라의 최대판도(434~453).<김석동>

훈제국 흥망성쇠의 열쇠는?

훈제국은 면적이 370만㎢를 넘는 유럽 최강 국가였으나 아틸라 사후 급격히 혼란에 빠지고 분열했다. 그 결과 건국하여 세력을 떨친 지 불과 십 수 년 만에 붕괴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먼저 훈제국의 세계사적 위치를 살펴보자.

유럽인들에게 훈족은 혜성과 같이 유럽지역에 등장하여 질풍노도를 일으키다 바람같이 사라져버린 흉포한 야만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훈족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침략 당한 쪽에서만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제국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배경 없이 역사무대에 등장한 신기루와 같은 국가는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흉노의 후예로 무장·편제·전술 등에서 스키타이에 이어 유라시아대초원 기마군단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놀라운 기동력과 마상궁술로 무장한 훈족기병의 가공할 전투력은 과거 스키타이, 흉노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유럽 중심부에서 전쟁을 벌인 최초의 아시아 기마유목군단으로, 그들의 유럽 침입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과 이에 따른 유럽사의 대변혁을 초래하는 등 세계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만약 아틸라가 결혼 첫날밤 돌연사를 하지 않았다면 유럽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면 훈제국의 급격한 성장배경은 무엇인가.

아랄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흉노 잔존세력은 울딘·발라미르·아틸라로 이어지는 걸출한 지도자를 배출했다. 초원제국의 역사를 보면, 흉노(묵특), 돌궐(부민칸), 선비(단석괴), 유연(사륜칸), 거란(야율아보기), 몽골(징기스칸), 티무르제국(티무르), 금(아골타), 청(누르하치)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날 때 순식간에 거대제국을 건설했다.

아틸라는 검소하면서 공정한데다 담대함과 지략에서도 뛰어나 기마군단 최고 지도자의 하나로 꼽힌다. 다음 훈제국은 스스로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활용했다. 유목민 기마군단으로부터 이어받은 기동성과 전투력, 전술을 통해 단시간 내에 최강의 군사력을 갖추었다. 여기에 포용력도 한 몫을 했다. 훈제국은 훈족이 중심이었으나, 우랄·라인강 사이의 사르마트·알란·오스트로고트·게피다이 등 여러 민족을 유연하게 통합하여 세력을 급속히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훈제국은 왜 역사에서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을까.

먼저 아틸라의 영도아래 통합되었던 민족들이 아틸라 사후 반란을 일으켜 제국의 기초가 뿌리째 흔들린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한마디로 훈제국은 전성기와 달리 이민족과의 협력·교류·연대를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훈 내부적으로도 출중한 리더였던 아틸라가 죽은 후 형제들 간 세력분열과 다툼이 겹치면서 국력이 급속히 약화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결과 훈제국은 초원의 방식으로 단기간에 강대한 세력을 형성했다가 급속하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훈족은 누구인가

훈족은 4세기 중반에 유럽 동부에 폭풍이 몰아치듯 등장, 유럽의 지도와 역사 나아가서는 세계사를 순식간에 바꿔버렸다. 이렇게 등장한 정체불명의 유목민들에 대해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이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아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유적·유물 또한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아시아 유목민들의 기마군단이며 서진한 흉노세력의 후예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터키는 물론 중앙아시아의 투크르메니스탄, 코카서스지역의 아제르바이젠 등 투르크계 국가에서는 훈족을 투르크유목민이라 한다. 터키의 국사 교과서에서는 흉노를 그들의 조상이라 하고, 그 후예가 유럽에 진출한 것이 훈제국이라 한다. 몽골 교과서는 흉노제국을 세운 흉노인들이 유럽에서 아틸라의 훈제국(434~453)을 세워 드네프르강에서 다뉴브강까지의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으며,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공납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틸라는 나아가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는데 영향을 끼쳐 수많은 국가가 로마제국에서 해방되어 독립국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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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역사교과서의 흉노와 훈.<김석동>

중국 기록에서는 1세기 말경 흉노가 사라졌다. 이들은 그 후 2세기 후반 경 유럽의 기록에 훈으로 등장했다. 많지는 않으나 벽화나 기록에 남은 것을 보면, 훈족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낮은 코, 검은 머리, 납작한 코의 작은 체구를 가진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수행방법, 무기, 유물 등을 봐도 영락없는 아시아 기마군단이었다. 그들은 스키타이와 흉노에 이어 전형적인 대초원 아시아 기마군단의 전술·전법을 구사했다.

훈족이 사용한 활은 나무와 동물 뿔을 접착해 강도를 극대화한 복합곡궁이었다. 이는 유라시아 대초원 기마군단이 사용하면서 이름을 떨쳤던 무기인데, 바로 고구려의 맥궁과 같은 활이다. 훈족이 사용한 활은 최대사거리 300m, 유효사거리 150m나 됐다. 이외에도 말, 등자 등 이들의 출신을 말해주는 수많은 증거가 있다. 또 ‘동복’이라는 독특한 청동 솥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유목민의 부족장이 제사의식 때 고기를 삶던 용기로 스키타이인과 흉노인 들이 다수 제작·사용했던 것이다.

동복은 한반도, 만주, 중국 화북지역, 몽골고원,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동부유럽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발굴되고 있으며, 유라시아대초원의 주인공인 기마유목민의 활동영역을 보여주는 전유물이다. 한반도 남부의 가야지역 대성동고분에서도 동복이 발견된 바 있다.

훈족이 유럽에서 위세를 떨치던 시대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정복전쟁을 활발히 전개해서 동북아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시기다. 흉노와 우리와의 관계처럼 흉노의 후예인 훈과 우리의 관계 또한 주목의 대상이다. 훈족의 몽골반점, 복합곡궁, 편두·순장 등 관습, 이동경로의 많은 유물 등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민족과의 친연관계를 밝히는 연구들이 있다. 훈족이 파괴한 이탈리아 북부 아퀼레이아 시의 성당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의 훈족기병 활 쏘는 모습은 고구려 무용총벽화와 그야말로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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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DF TV 다큐멘터리(왼쪽)과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 토기.<김석동>

독일 제2공영방송인 ZDF TV는 ‘역사의 비밀’ 다큐멘터리(1994)에서 “훈족의 원류가 아시아 최동단의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가야지방 등에서 발굴된 동복이 훈족의 서쪽 이동로를 따라 다수 발굴되고 있고, 또 경주 금령총에서 발굴된 기마인물상에서 말 등에 동복을 싣고 있는 것 등을 들어 한민족과 훈족이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br>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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