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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7:47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인터뷰] ‘문재인 구두’ 다시 만드는 유석영 구두만드는풍경 대표
[인터뷰] ‘문재인 구두’ 다시 만드는 유석영 구두만드는풍경 대표
  • 이일호 기자
  • 승인 2018.03.02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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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가 돕겠다고 나서...힘들지만 아침이면 설렘이 샘물처럼 솟아나"

 


19대 대선 직후인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신은 구두가 화제가 됐다. 밑창이 다 닳고 뜯어진 구두를 신고 국립 5·18민주묘지 묘역에 무릎을 꿇고 있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아지오(AZIO)’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신발은 ‘문재인 구두’라는 이름으로 당시 인터넷 실시간 검색 1위에 올랐다. 2013년 9월을 끝으로 폐업한 수제 구두 기업 ‘구두만드는풍경’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알려졌고, 다시 문을 여는 계기도 그때 만들어졌다.

비록 문재인 구두라는 이름에 가려져 있지만, 유석영 구두만드는풍경 대표의 스토리는 독특하다. 지독한 시각장애를 무릅쓰고 CBS 방송국에서 11년 간 활동했고, 파주시 복지관장직을 맡던 2010년 1월 구두만드는풍경 만들어 열악한 구두 시장에서 3년 8개월을 버텼다. 당시 만든 구두는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 놨다. 그런 ‘인간 유석영’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설 명절이 끝난 지난달 19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구두만드는풍경 공장을 찾아갔다.


재기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소회가 어떠신가요.

“특별히 소회랄 게 없어요(웃음). 각종 언론에 요란하게 공개됐지만, 그냥 작은 구두공장 하나 돌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구두’라는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하도 관심을 가져주니까 정신이 없어요. 지난해부터 족히 100개는 넘게 기사가 올라온 것 같아요. 본연의 업무를 하기 힘들었습니다.

알려졌다시피 저는 2010년 한 차례 구두 사업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요. 지난 20년간 사회복지 분야에 종사했지만, 되짚어보면 제가 이윤을 추구하는 분야의 경영능력에 탁월하다고 보긴 힘들더라고요(웃음). 제게 이번 사업은 말하자면 ‘시즌(Season)2’예요. 한 차례 실패를 거치고, 이를 밑거름으로 다시 시작하는 거죠.”

공장 가동 3주가 지났습니다. 분위기는 어떤가요?

“설렘과 걱정, 기대가 교차하고 있어요. 청각장애인 분들과 함께 아침에 즐겁게 출근해서 하루 종일 힘내고 있고, 그렇게 만든 구두를 소비자가 선택해준다는 설렘이 있어요. 하지만 시장은 치열하고 냉소적이잖아요. 우리가 높은 시장의 벽을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어요. 그래도 시작은 반이니까요. ‘죽기 살기로 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모델도 없이 고객 분들께 선주문을 받았어요. 지난 1월에는 9개 모델의 샘플 디자인을 해봤고요. 새롭게 합류한 청각장애인 분들과 소통하며 유대를 쌓고, 또 훈련하며 함께 팀워크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 첫 작품이 오는 목요일(2월 22일) 탄생해 고객 분들의 집으로 배달 갑니다. 정신없이 준비하다보니 분위기를 따질 겨를이 아니었어요.”

왜 청각장애인을 데리고 구두사업을 시작하셨나요?

“그건 제 인생하고 연결돼있어요.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방송 일에 11년 간 종사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80년대 후반에 장애인 관련 취재를 했었는데, 그때 당시 배운 게 있어요. 당시 우리나라 구두 생산직 종사자의 40% 이상은 청각장애인들이었어요. 귀는 안 들리지만 손이 빠르다보니 제화분야에 많이 종사했던 거죠. 청각장애인들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당시 처음 깨달았어요.

방송 일을 그만둔 뒤로는 경기도 파주시에서 복지관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청각장애인 프로그램 시범사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분들이 오질 않더라고요. 왜 안 오나 하고 알아봤더니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더라고요. 일 좀 해서 돈 벌고, 아니면 집에서 놀고 하는 생활이었어요. 삶에 여유가 없으니 올 만한 겨를이 없던 거죠.

당시 구두공장에서 일하던 청각장애인 분들이 실직을 많이 했어요. 공장들이 전부 하청 주거나 외국으로 이전했으니까요. 그분들이 어디 가서 기죽지 않으려고 월 500~600만원 받고 일했다고는 하는데, 막상 가서보니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더라고요. 이 분들 일자리를 만드는 게 우선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2009년 ‘구두만드는풍경’을 만들었어요. 3년 8개월 하고 쫄딱 망했죠(웃음).”

그래도 당시 4년 간 사업을 유지하셨잖아요.

“나라에서 주는 돈 받고 사회복지시설 기관장 해본 제가 경영이란 걸 해봤겠어요? 정말 내가 구두사업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안 했을 거예요. 제화(製靴) 사업은 대기업들도 하지 않는 분야예요. 특허도 없고 ‘싸구려’도 많다보니 이윤이 남지 않는 일이거든요. 창업 당시엔 그저 ‘청각장애인들이 구두 잘 만들더라’하는 감상에 빠졌던 거죠. 무조건 ‘될 거다’라고생각하고 시장 파악 같은 건 전혀 안 했어요.

3년 8개월을 버텼는데, 제가 생각해도 참 용해요. 월급 주고 재료비 줘야 되니까 이곳저곳 구두를 막 들이밀고 다녔어요. 그렇게 했는데도 누적적자가 어마어마했어요. 개인 통장도 털고 별 짓을 다 해봤는데도 안 되더라고요. 2013년 폐업 후 제 가슴 속에 뜨거운 ‘불덩어리’가 하나 남았어요. 장애인 분을 도우려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도리어 상처를 줬으니까요. 사업을 내려놓으면서 직원들하고 눈물 흘리며 헤어졌어요. 오히려 시작 안 하느니만 못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유 대표는 재창업에 나서기 전 1년간 경기도 장애인 기관에서 원장직을 맡았다. 경기도 전역에서 장애인들이 제조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곳인 만큼 안정적인 위치라 할 법하다. 하지만 그는 편한 길을 포기하고 다시 한 번‘가시밭길’로 뛰어들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구두를 다시 선택한 것이다. 유 대표는 이를 ‘인생 후반전을 걸었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결국 다시 구두로 돌아오게 됐네요.

“처음 두 달 간은 정말 안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경기도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원장 직을 맡고 있었거든요. 나름 기관도 크고 안정적이었어요. 그런데 지난해 ‘문재인 구두’ 이슈가 터지면서 사무실로 정말 별의 별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집사람은 왜 안정적인 직장 그만두고 또 구두사업을 하느냐고 결사반대했죠.

한 분은 돈 짊어지고 와서 ‘내가 대줄테니까 일단 하자’고까지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미 한 번 해봤잖아요. 사업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어요. 그래도 오는 사람 안 만나면 이상한 사람이 되니까 다 대응해가며 거절도 잘 했어요(웃음).

그래도 고민이 되니깐 주변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하고 물어봤어요. 제일 마지막으로 가장 막역한 유시민 작가님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명색이 경제학도니까 아마 하지 말라고 할 거다’하고 찾아갔는데, 정작 유 작가는 쿨하게 ‘나도 도울테니까 해보자’고 하더라고요(웃음).”

유시민 작가 덕분에 사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거네요.

“유 작가도 장애인 처우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결국 마음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장애인들의 고용’이라는 숨어있는 책무가 나한테 주어졌는데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도 몇 번은 머뭇거렸어요. 아침마다 교회 가서 기도하고 부모님 산소도 가서 몇 번이고 고민했어요. 그 끝에서야 ‘내 인생 후반전을 여기에 걸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제로(Zero)’ 상태에서 유 작가 등과 함께 펀드로 자금을 끌어 모았고, 그래도 부족해서 구두 선주문까지 받은 끝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깨달은 한 가지는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펀딩을 받고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사명감뿐만 아니라 즐거움이 컸거든요. 안정적인 직장에 사직서를 던지고 허허벌판으로 나설 수 있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시즌1’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당시에는 브랜드 기업들과 굉장히 외롭게 싸웠어요. 'KO패'까진 아니었지만 결국 '판정패' 한 거죠. 그래도 지금은 대통령님께서 직접 아지오가 좋은 신발이었다고 인정을 해주셨잖아요. 반쯤 영업해주신 거라 생각합니다(웃음). 주변에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당장 유시민 작가나 유희열 씨가 자청해서 홍보모델도 해주셨고요. 솔직히 말해서 좋은 분들의 홍보 덕분에 과거보다 영업망이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예전에는 망할만한 요인도 있었어요. 얼마나 머리가 나빴으면 밑창을 평생 무료로 갈아주겠다고 공언을 한 거예요. 구두 공장 차리고 2년 지나니까 밑창 갈아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는데, 거기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했어요. 근데 한 번 공언했으니 무르질 못하다가 결국 중도에 그만뒀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큰 수업료였던 것 같아요.”


사업은 힘들다. 특히 구두 사업은 더 그렇다. 대규모 자본이 움직이는 브랜드 구두 틈바구니에서 버텨내야 한다. 그러고도 수익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리란 보장이 없다. ‘문재인 구두’가 이슈가 됐을 때 사업 제의를 받았던 유 대표가 재 창업을 주저했던 이유다. 다시 구두 사업에 뛰어든 지금도 그는 고민이 많다.


현재까지 400켤레 정도 선주문이 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

“선주문을 시작한 지난 11월부터 주문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습니다. 몇몇 분들은 단체 주문을 문의하셨는데 저희가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내부적으로 논의한 결과 원칙적으로 고객 개개인에게 주문을 받기로 정했습니다. 단체주문은 만드는 사람이나 신는 사람에게 좋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저희 궁극적 목적은 고객 개개인들에게 최고의 신발을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단체 주문은 그 같은 정신과는 맞지 않습니다. 저라고 왜 욕심이 나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는 구두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신뢰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철학과 원칙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오랜 시간을 들여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구전 마케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사업을 실패해본 입장에서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차별화 전략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미 유명한 구두회사들이 많잖아요. 이들과 마케팅 싸움에서 이기려면 결국 ‘스킨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고객의 발을 직접 재서 그에 맞는 최적의 신발을 만들어드리는 거죠. 원시(元始)적인 판매로 보이지만 그것이 가장 신용도가 높은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조합원 회의 때 초기 목표로 1만 명의 신발을 책임지고 공급하면서 스킨십을 해나가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또 한 가지는 ‘양심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출시되는 유명 메이커 신발은 수제화가 아닌 이상 100% 하청 생산되거든요. 비용을 낮추다보니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 이름을 걸고 직접 최고의 상품을 만들고, 그렇게 수요가 늘어나면 외주를 주지 말고 공장을 추가로 만들어 일자리를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장사’의 영역에서 ‘철학’이 공존할 수 있을까요?

“저 또한 아무리 뛰어난 철학을 가졌더라도 사업이란 게 몇 번씩 위기를 겪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업 초기에 좋은 철학과 원칙을 갖고 있지 않으면 사업이 본질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돈 벌기 위해서 예외를 인정하면 하청 맡기고 외국으로 나가고 하는 거잖아요. 물론 원칙을 지키면 ‘몸살’을 앓을 순 있겠죠. 하지만 원칙을 버리면 5년은 가겠지만 100년이 가긴 힘들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만약 사업을 하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협동조합에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경영이 어렵다’ ‘돈이 없다’ 편법 안 쓰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조언을 청하고자 합니다. 그쪽이 속이 더 후련하기도 하고요.”


시각장애인이기도 한 유 대표는 장애인 처우, 특히 그들의 경제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스스로 재 창업 배경을 ‘청각장애인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 대표는 한국의 장애인 경제와 노동 문제에 대해 인터뷰에서 적지 않은 고민을 밝혔다.


직원은 얼마나 되고, 어떻게 소통하시나요?

“청각장애인 여섯 분과 지체장애인 한 분이 계십니다. 모두 50대 이상입니다. 그리고 공장장님과 관리자 등 총 12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소통은 오히려 ‘프레시’해요. 서로 장애가 있다 보니 경영 결정사안은 모두 판서를 합니다. 모두가 동의해야만 진행이 되고요. 또 언제나 말끝에는 ‘그 상황을 이해했는지’를 답하도록 지시합니다.

저는 안 보이고 저 분들은 보이는 아이러니가 있잖아요. 소통이 어려울 것 같다는 오해가 있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습니다. 수화를 어정쩡하게 하는 게 더 오해가 있습니다. 반면 저는 반드시 통역사를 대동합니다. 통역사는 증인이죠. 큰 오해가 없습니다. 조금 느리고 번거로울 뿐일 뿐 더 비즈니스 적이죠.”

일반 기업체와는 분위기가 다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청각장애인 위주다보니 다른 곳과는 문화가 많이 달라요. 서로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르게 이해할 때도 있고요. 그래도 서로 장난치고 놀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편한 환경에서 일이 시작돼야 제품이 잘 나온다고 믿어요. 사람관계에선 절대 수직적이어선 안돼요. 서로 편한 관계가 유지돼야 안정성을 갖출 수 있고, 그래야만 개개인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동기부여가 됩니다.”

국내 장애인 직업 환경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들이 끊임없이 혁신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버리는 산업이 있습니다. 주로 3D업종이나 비용 발생적 업종이 그렇습니다. 그런 산업들을 장애인들은 어쩔 수 없이 맡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특히 고비용 업종의 경우 장애인들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상황까지도 몰리게 됩니다. 급여가 낮을 수밖에 없죠.

복지와 직업이 분리된 것이 본질적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정부 지원이 복지에 치중돼 있다 보니 직업복지가 아닌 시설 지원에만 편중돼 있는 거죠. 우리나라 직업재활시설 700여곳에 장애인 약 2만 명이 종사합니다. 이들 대다수는 부가가치가 낮은 일을 하고 있고요.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을 받고 ‘보호고용’에 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답은 유통망에 있다고 봅니다. 장애인이 만드는 상품이 일상적으로 통용이 되도록 유통망을 갖추고, 이를 통해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하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노동을 통한 생산, 유통, 소비가 발생해야만 복지와 직업이 연결되면서 장애인들이 자립할 환경이 갖춰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인터뷰를 마치고 공장을 둘러볼 때였다. 구두장인 안승문 씨가 구두를 만들고 10여 명의 직원들은 그걸 지켜보며 몸짓으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유 대표가 다가가자 근처에 있던 청각장애인으로 보이는 직원이 그를 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그도 직원과 발장난을 했다. 유쾌한 CEO와 유쾌한 직원들. 즐거운 노동현장이었다. 하지만 유 대표는 인터뷰 막바지 가슴 속 한 움큼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혹시 사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으세요?

“사실 잠을 잘 못자요. 이런 위치에 있으면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엄연한 사업이니까요. 이를 악 물고 가치를 지키면서 손익분기점까지 가야된다는 게 목표지만, 휘청휘청할 때도 많아요. 생산 쪽이든 제조업체든 일정을 제대로 못 맞추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이게 뭐지?’ 하면서 멍해질 때도 있어요.

또 한 가지 걱정되는 점도 있어요. ‘과연 이 이슈가 다 잠 들었을 때, 그때도 고객 분들이 아지오를 선택해 줄 것인가’에 대한 것. 이게 너무 커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아침만 되면 ‘더 열심히 하자’는 기도를 하고 뛰어나오는 겁니다. 내가 좋다고 나선 일이고, 또 제 인생의 후반전을 걸었으니까요.”

스트레스가 심하실 것 같습니다.

“기도해야 돼요. 정말로(웃음). 겉으론 웃고 살지만 스트레스가 엄청나요. 밤이 되면 스트레스가 밀물처럼 몰려오는 기분을 받아요. 겁도 나고, 어떻게 표현이 잘 안 돼요. 자기 성찰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욕심 내려놓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이겨낼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성격이 급한 편인데, 아마 눈이 보였으면 조바심이 컸을 거예요(웃음).

울고 싶을 땐 울기도 해요. 마음 속 쌓인 것을 그대로 두면 다음 날 일을 못하거든요. 언제는 가시처럼 솟기도 하고, 언제는 먼지처럼 날리기도 해요. 그날 전부 풀어야 돼요. 대신 아침에 일어날 때는 반전이 있죠. 샘물처럼 솟아나는 설렘도 있고요. 스트레스가 없으면 아마 나태해질 거예요. 이 상황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끝으로 대표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버려진 구두 산업을 어떻게 살려낼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론 청각장애인 분들이 구두를 만드는 문화가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이 분들에게 구두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와 같은 환경을 만들려고 합니다. 대중들에게 ‘구두는 청각장애인 산업’으로 믿고 맡기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꿈이자 목표예요.”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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