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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음지의 영웅들]한국 아이스하키 '대부'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평창올림픽 음지의 영웅들]한국 아이스하키 '대부'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 조혜승 기자
  • 승인 2018.02.12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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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1000억 쏟아부으며 헌신적 지원...부인은 선수를 자식처럼 챙겨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한라그룹>

 

[인사이트코리아=조혜승 기자] “그저 아이스하키가 좋아서 이 일을 할 뿐이다.”

우공이산.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큰 성과를 거둔다는 고사성어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움직이지 않는 산을 옮기고 있다. 한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남녀 모두 올림픽 출전을 해 본 적이 없다. 비인기종목이라서 대다수 국민은 실업팀이 몇 개 있는지도 모른다.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남북단일팀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뛰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상대팀에 맨날 얻어터지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세계랭킹 22위, 북한 25위)이 올림픽 무대에서 나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민국 아이스하키에서 정몽원 회장(63)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정 회장은 25년 이상 아무런 이득도 없이 비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왔다.  그리 큰 기업 오너도 아닌데 연간 수십억 원을 쏟아부으며 때론 선수들 물통까지 채우는 등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오늘의 대한민국 아이스하키팀을 만들었다. 정 회장이 아니었다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보기 어려웠을 것이란 게 재계의 중론이다.

정몽원 회장, 한국 아이스하키팀에 도전정신 심어줘

정몽원 회장의 아이스하키 사랑은 재계에 소문나 있다. 정 회장은 고려대 재학시절부터 아이스하키 마니아였다.

국내 아이스하키는 1990년대까지 해도 석탑건설, 동원드림스, 현대오일뱅커스, 만도위니아(현 안양한라) 등 실업팀 4개가 있었다. 정 회장은 1994년 한국 아이스하키 산실로 평가받는 안양한라 아이스하키단(만도위니아)을 창단했다. 당시 그룹 계열사 만도기계 사장으로 재직하던 정 회장은 주력 제품인 에어컨을 홍보하는데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아이스하키팀을 만들었다. 비인기 종목에다 연 수십억원의 운영비가 든다며 주변에서 말렸지만 그는 끝까지 밀어부쳤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실업 1호 팀 석탑건설을 시작으로 2003년 동원드림스와 현대오일뱅커스까지 줄줄이 해체되면며 만도위니아팀도 위기에 처했다. 한라그룹 역시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회사 내부에선 ‘돈 먹는 하마’인 아이스하키팀부터 없애자고 난리였다.

팀 해체가 기정사실화 된 1998년,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려 실의에 빠져 있던 정 회장은 기쁜 소식을 듣는다. 해체 위기였던 만도 위니아가 첫 우승을 한 것이다. 이는 정 회장에게 큰 위안이 됐다.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를 통해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도전 정신을 배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통상 한해 아이스하키팀 운영비는 45~50억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10억원을 더하면 프로농구구단을 운영해 인기몰이를 할 수도 있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23년 넘는 기간 동안 1000억원 이상 아이스하키단에 쏟아부었다. 정 회장은 또 사재 20억원을 협회 운영비로 썼다고 한다. 정 회장이 매년 수십억 원 적자를 보면서 한라 아이스하키단을 지원한 것은 개인의 욕심을 위한 게 아니었다. 자신마저 아이스하키를 떠나면 한국 아이스하키는 영영 날개를 펴지 못할 것이라는 고뇌의 결과였다.

한국 아이스하키팀의 평창올림픽 출전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았다. 르네 파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국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전력이 세계 수준과 차이가 너무 커 "우리가 망신당한다"며 자동출전권 부여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올림픽 아이스하키 자동진출권은 지난 2006년 토리노대회 이후 폐지됐기 때문에 르네 파젤 회장이 거부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에 정 회장은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IIHF를 설득하기 전 한국 아이스하키팀 체제를 먼저 바꾸었다. 그는 2014년 7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타 출신 짐 팩(한국 이름 백지선) 감독을 영입해 귀화시켰다. ‘한국 대표팀 총괄 디렉터’로 선임해 성인 대표팀 뿐만 전 연령대 아이스하키 대표팀, 국내 모든 리그 선수들을 관리하도록 했다.  

백 감독의 ‘벌떼 하키’법은 선수들 기량 향상에 주효했다. 스케이팅을 한 번이라도 더 해 많이 뛰는 하키를 한국 대표팀에 접목했다. 백 감독이 발굴하고 육성한 안양 한라 출신 선수들이 현재 우리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정 회장의 노력에 힘입어 IIHF는 마침내 2014년 9월 개최국 자동출전권을 허용했다. 한국 아이스하키가 월드챔피언십으로 승격된 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을 두고 최근 IIHF 내부에선 “한국만큼만 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돈만 투자하지 않고 마음을 나누다

정 회장은 돈만 투자한 것이 아니었다. 선수들과 가까이 지냈다. 1994년 한라 아이스하키단을 창단한 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스링크장 벤치로 나온다. 한라 홈경기가 있을 땐 약속을 아예 잡지 않는다. 해외 원정도 특별한 일정이 있지 않으면 무조건 함께 한다. 경기 내내 정 회장은 자리에 앉는 법이 없다. 경기 중 소리 지르고 이곳저곳 선수들을 살피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경기 중 다친 선수가 나오면 직접 찾아가 상태를 확인하며 격려하곤 한다.

정 회장은 자신을 낮추면서 선수들을 자식처럼 챙긴다. 그는 이름만 걸어놓은 여타 협회장들과 달리 원정경기 때는 선수들과 3성급 호텔에서 자고 밥을 먹으며 경기 당일 선수들이 마실 물병을 직접 담는다.

아이스하키 사랑은 정 회장의 부인 홍인화 여사도 못지않다. 모바일 메신저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선수들에게 직접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준다. 한라에서 8년째 뛰고 있는 김기성 선수는 “한결같이 아이스하키를 지켜주는 부모님같은 분들”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여자친구가 생기면 가장 먼저 정 회장 부부에게 알릴 정도로 믿음이 깊다고 한다.

정몽원 회장은 “판을 깔아줬을 뿐 선수들이 해낸 일”이라고 했다. 그의 임기는 2020년까지지만 아이스하키 사랑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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