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일 대표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고영테크놀러지의 창업주다. 고영테크놀러지는 초정밀 측정 검사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이 검사장비는 특수한 기능을 하는 일종의 로봇이다. 고영은 세계 최초로 납도포검사기(SPI), 광학자동검사기(AOI) 등을 3D 기술을 활용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구성원 465명 중 40%(188명)가 연구원이다. 

이 회사는 2010년 이래 매출액이 연평균 15%씩 성장했다. 매출액 가운데 해외 비중이 90%를 상회한다. 2016년까지 11년째 세계 1위인 SPI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47.3%에 달했다. 지난해엔 52%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영은 391건의 특허를 등록했고 217건을 출원 중이다(2017년 9월 말 기준). 보쉬 등 전 세계 2000여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 경쟁력 세계 1위인 고영과 거래한다(고영 측은 고객사들과 비밀유지협약을 맺고 있어 이들 회사 이름을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고영은 세계 최고 수준의 3D 영상 측정 기술을 기반으로 반도체 검사, 스마트폰 등 기계가공 상태 검사, 의료 로봇 분야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벼르고 있다. 

미래산업 후배들과 의기투합해 창업

고영은 연구개발(R&D)에 강한 회사다. 사실상 매출액의 20%를 R&D에 투자한다. 고광일 대표는 “업계 1등을 해야 이익을 충분히 내 R&D 투자를 많이 할 수 있고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이익 규모에도 8 대 2 법칙이 적용됩니다. 상위 20% 기업이 순이익의 80%를 차지하죠. 그런데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가져갑니다. 핸드폰 시장의 애플처럼 말이죠.”

고 대표는 금성사 중앙연구소 후신인 LG전자 기술원 출신이다. 미래산업 연구소장을 거쳐 2002년 봄 불혹을 훨씬 넘긴 45세에 고영을 창업했다. 미래산업에서 함께 일한 15명의 후배들과 의기투합했다. 그와 더불어 고영(KOHYOUNG)의 한 축인 ‘젊은피’들이다. 

당시 그는 아이템도 정하지 않은 채 사업을 시작했다. 20년 종사한 로봇 기술은 훤했다. 석 달 간 직원들을 전원 현장에 내보내 시장조사를 시켰다. 로봇공학도 출신이지만 자기 기술에 목매는 기술자 창업의 함정을 피한 것이다. 

그때 삼성SDI, LG 등에서 공통적으로 전자제품의 부품이 작아지면서 공정 검사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3차원 기술로 부품의 부피를 재야하는데 그때만 해도 2차원 기술 검사기밖에 없었다. 3차원 측정은 초보나 다름없던 고영의 로봇 선수들이 매달려 5개월 만에 3차원 검사기 개발을 마쳤다. 3차원 기술로 검사하려는 대상물의 외형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초정밀 검사 장비다. 지금도 글로벌 시장 1등 제품인 SPI가 그것이다. 그는 “이 3차원 장비로 로봇 선진국의 2차원 장비를 잡았다”며 “이 분야에선 거의 혁명적인 성과”라고 말했다. 

“SPI 개발은 혁신의 장애물인 선입견을 깸으로써 거둔 성과입니다. 측정을 하는 광학도들은 기술을 조합할 줄 모르지만 우리는 달랐죠. 종합학문인 로봇 기술자들이니까요. 과학과 공학의 차이라고 할까요?” 

고영이 세계 최초로 SPI 개발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기적과 같았다”며 “우리로서는 인생을 다 걸었다”고 말했다. 

“우선 우리 엔지니어들이 실력 있는 프로들이었어요. 또 엔지니어지만 편견에 사로잡히지도, 자기 경험과 타협하지도 않고 고객의 니즈에 초점을 맞춰 2차원 검사기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를 해결했죠.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시장에서 출제하고 우리는 문제를 푸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만일 문제를 우리가 정의하려 들었다면 실패했을 거예요.”

고영 구성원의 DNA는 불굴의 도전정신

그는 고영 광학팀 인력의 절반을 공대 기계과 출신으로 뽑아 이들에게 광학을 가르치는데 이들이 광학도보다 아이디어가 더 많다고 말했다. 

고영 구성원의 고유한 DNA는 불굴의 도전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고영은 세상에 없는 제품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공급자가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시장에 없는 제품을 개발한다는 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겁니다. 우리가 로봇 업종에 뛰어들었을 때 미국·독일·일본은 이미 20~30년씩 이 사업을 해왔어요. 이들 로봇 선진국 제품을 뛰어넘는 로봇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팔아 보자고 직장 후배들과 뭉쳤습니다. 다행히 검사장비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해 승산이 있었죠. 앞으로도 이 분야가 우리 업계의 활로입니다. 선진국 경쟁사들은 희한하게도 이노베이션을 별로 하지 않아요.”

그는 제품 개발 성공의 경험은 조직에 내장돼 계속 그 길을 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고영의 구성원은 시장이 있는 곳에선 신제품으로 시장 질서를 흔들어 1등을 하고 시장이 없으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겠다는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고 덧붙였다. 

로봇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다. 특허청은 최근 4차 산업혁명 핵심 7대 기술 분야에 대해 특허분류 체계를 수립했다. 지능형 로봇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팅,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과 더불어 이 4차 산업혁명 핵심 7대 기술 분야 중 하나다. 고 대표는 “4차 산업혁명에 올라타지 못하는 기업은 이제 죽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3년 전부터 AI에 투자했는데 이미 결실을 거두고 있어요. 로봇과 AI의 결합이죠. 얼마 전 독일서 열린 전시회에서 검사기를 프린팅 장비와 연결해 불량품의 유형을 분석, 바로 압력을 낮추도록 함으로써 불량률을 떨어뜨리는 새 장비를 고영이 선보였습니다. AI를 활용해 검사기가 불량 진단에 콘트롤 최적화까지 하도록 한 거죠. 고객들이 놀라더군요. 평생 고객을 쫓아다니지 않으려면 고객의 기대치를 뛰어넘어 고객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는 AI를 활용 못하는 선진국 경쟁사들로서는 꿈도 못 꾸는 혁신이라고 말했다. 전시회를 찾은 한 독일 고객은 이 제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품은 탁월하지만 너무 비싸군요.”

“고영 제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고 대표는 고영 제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 말했다. 경쟁사보다 20% 이상 값을 더 받는다. 작심한 듯한 고가 정책이다. 

로봇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로봇 공학자에게 물었다. 
“단순한 일자리들을 로봇이 대체해 단순노동은 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겁니다. 분야별로 학습능력이 뛰어난 전문 로봇이 출현할 거예요. 그러나 종합적으로 사람을 능가하는 로봇의 출현은 먼 미래의 일입니다. 로봇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하는 범용 로봇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창조도 로봇이 따라올 수 없는 세계죠.”
 고영의 비전은 명실상부한 세계 1등 회사다. 고 대표는 “좁은 분야에서 1등 하는 고영을 내로라하는 로봇 업체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회사는 세계 최초 아니면 월드 베스트 제품을 지향합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사실 자신 있어요. 단 사람의 문제, 문화적으로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죠.”

승승장구하던 고영은 2012년 대형 품질사고를 겪는다. 눈빛만으로 서로 통하는 개국공신 그룹과 새로 충원한 인력 간 팀워크에 문제가 생긴 탓이었다. 엔지니어 출신 관리자들에게 사람 관리하는 법을 가르치고, 팀플레이를 통해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했다.

고 대표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의 결단으로 창업을 꼽았다. 천생 엔지니어인 그는 창업 전 기업가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의 은퇴 후 함께 미래산업을 떠난 후배들에게 등 떠밀려 총대를 멨다. 그는 미래산업의 주력 제품이었던 마운터 개발의 주역이었다. 미래산업은 대대적인 혁신으로 이 시장의 강자였던 일본을 제치고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방을 가득 채울 만한 크기의 마운터를 성능을 그대로 유지한 채 테이블 크기로 줄였다. 이 분야에서는 괄목상대할 만한 혁신이었다. 

그런데 마운터 양산 과정에서 복병을 만났다. 국내 하드웨어 가공 기술수준이 떨어져 100대 중 30대 가량에서 불량이 났다. 그런 상태에서도 물건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그 와중에 정문술 회장이 은퇴를 선언했다. 
“저더러 ‘고 박사, 힘껏 밀어줄 테니 꿈을 펼쳐봐’라고 했던 분입니다. 실패해도 괜찮다며, 그래도 사람을 키우지 않았느냐고 하셨죠. 저를 믿고 2년만 더 버티셨다면 미래산업이 세계 마운터 시장을 석권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검사장비와는 비교가 안 되는 5조원짜리 막대한 규모의 시장이에요.”

그는 “고영이야말로 정문술 회장이 창업한 미래산업의 후신”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에게서는 “서로 아끼고 믿어주는 경영을 배웠고 그렇게 경영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에게 나름의 경영론에 대해 물었다.  
“결국은 사랑입니다. 구성원으로서 애사심이 필요할뿐더러 회사도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페어 하죠. 개국공신 한두 명이 에너지가 고갈돼 회사를 떠났습니다. 고영에 자기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죠. 회사가 먹여 살리겠다는 데도 기를 쓰고 사표를 썼어요. 이 사람들 인생을 어떻게 책임져 줄 건지 목하 고민 중입니다.”  

이 필 재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전문기자
한국잡지교육원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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