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유목민 기마군단 스키타이
최초의 유목민 기마군단 스키타이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 승인 2017.12.2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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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유목민 기마군단 스키타이

유목민의 기마군단은 2500년에 걸쳐 세계사의 중심무대에서 주인공 역할을 해왔으나 기록된 역사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정주민에게는 토지 등 재산을 나누고 신분을 상속하는 것이 중요해 일찍부터 기록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으나, 광활한 대초원 지대에서 말을 기동력으로 하여 생활의 근거를 자유로이 이동했던 유목민들은 삶의 형태가 달라 기록문화가 취약했다. 

남아있는 문자도 6~8세기경 발견된 ‘돌궐문자’가 최초이며, 몽골고원 오르혼 강가의 돌궐비문에서 발견돼 19세기에 와서야 해독됐다. 유목민이나 기마군단에 대한 기록은 그나마 중국과 서양에 남아 있는데, 중국은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중국 중심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북방민족을 오랑캐라 치부해 그 역사를 폄하하였고, 서양 역시 기마유목민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기록이 부실하고 왜곡되는 등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스키타이 기마군단의 출현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BC 12세기 무렵부터 유목민이 활동했고, BC 9세기말 경에는 말의 기동력을 활용한 전투집단이 등장했다. 남아있는 역사에 따르면 최초로 등장한 기마군단은 BC 8~3세기에 활약한 ‘스키타이’다. 

아시아 유목민의 기마군단이 남러시아 초원지대에 진출해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통일된 중앙집권형 국가 형태는 아니지만 강대한 유목부족의 공동체를 건설한 것이다. 스키타이 기마군단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동력과 마상궁술을 무기로 드넓은 초원지역에 산개하여 바람같이 나타나 순식간에 상대를 초토화시키는 위협적인 전술을 구사하면서 공포의 대상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스키타이는 BC 7세기 전반에 흑해 동안에서 강력한 유목민 세력인 킴메르를 쫓아내고 이후 흑해 및 카스피 해 북안과 서아시아 일대로 세력을 넓혀 강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BC 514년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왕의 70만 대군(헤로도토스의 기록)을 제압했으며 BC 4세기경 전성기를 맞이했다. 

스키타이는 흑해 연안에서 카스피 해와 북부 돈 강 및 볼가 강을 건너고 우랄산맥을 넘어 몽골고원 동부의 알타이산맥 너머 알타이지역에 이르는 대교역로를 장악했다. 그들은 기마유목민족 문화와 서방문화를 융합해 스키타이 문화라 일컬어지는 고유의 문화를 창출하고 동서교역로를 통해 이를 전파했다. 

동방세계와 그리스 세력권을 연결한 이 동서교역로에서는 가축, 모피, 갑옷, 금속제품, 장신구, 꿀, 황금, 청동기, 견직물, 올리브유, 포도주, 직물 등 다양한 물품이 오고 갔던 흔적이 남아 있다. 수백 년간 활약하던 스키타이는 BC 3세기경 사르마트에 패해 쇠락하기 시작했고, 이후 크림반도 등지에서 농경생활로 전환해 부족을 유지했으나 로마에 흡수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스키타이에 대한 역사기록

 

스키타이에 대한 역사기록은 아시리아왕의 ‘연대기’에서 처음 나타나지만, 가장 중요한 기록은 BC 424년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es)’다. 

헤로도토스는 고대 그리스인으로 BC 485년 오늘날 터키 남동부 에게 해 연안의 보드룸(Bodrum)에서 탄생했다. 대 여행가로서 들은 대로, 전해지는 대로 기록해 ‘역사’라는 역작을 남겼다. 키케로는 그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사기’를 저술한 전한시대의 사마천(BC 145년경 출생)보다 300년 이상 앞섰다.

그는 스키타이에 대해 “스키타이족은 아시아에 살던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쟁기질도 하지 않는다” “스키타이족의 나라에는 어디에도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들을 능가한다”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도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들은 도시도 성벽도 없고, 집을 수레로 싣고 다니고, 말을 타고 활을 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사람들이 어찌 다루기 어려운 불패의 부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키타이족의 나라는 정사각형인데 동서와 남북이 각각 4000스타디온(약800km)이 된다”(역사,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라고 쓰고 있다. 이외에도 스키타이의 동방교역로에 대해 소개하는 등 스키타이에 관한 소중한 기록들을 담고 있다.

스키타이는 성경에도 언급된다. 선지자 예레미아가 BC 629~588년에 기록한 구약 예레미야 6장은 “보라 한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자비가 없으며…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같이 다 항오를 벌이고 딸 시온 너를 치려 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약의 경우 사도 바울은 AD 64년경 기록한 골로새서 3장에서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민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라고 적고 있다. ‘스구디아’가 바로 스키타이다. 사도바울이 이 서신서를 쓸 당시 스키타이의 존재는 이미 미미해 졌으나 그때까지도 서방세계에 강력한 인상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유적

스키타이의 황금유물.

 

스키타이는 고대 오리엔트문화에 그리스문화를 접목해 고유의 기마유목문화를 형성해 동서 교류의 장을 열었다.
스키타이문화는 초기 철기문화로, 그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쿠르간이라는 고대무덤이 흑해북부를 중심으로 다수 발굴 되었다. 1700년대 중반 이후 200여 년에 걸쳐 도나우 강, 우크라이나, 카프카스, 드네프르 강, 알타이로 이어지는 지역 등지에서 스키타이시대 고분이 다수 발견돼 스키타이의 문화와 동서 교류를 증거하고 있다. 

1939~1949년 구소련 조사단은 남러시아 알타이지역의 파지리크 강 계곡에서 BC 5~3세기경에 만들어진 거대한 무덤군을 발굴 했다. ‘파지리크 고분군’이라는 이 무덤들은 매장방법이나 무덤 조성 형태가 스키타이의 쿠르간과 같고, 무덤 속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이 스키타이와 흡사해 스키타이 문화의 동서교류를 웅변하고 있다. 이들 스키타이는 기념비적인 기마유목문화를 유산으로 남겼고 이후 기마유목국가로 이어졌다.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스키타이문화는 거대한 고분 쿠르간(kurgan)으로 대표된다. 땅속의 목곽분 위에 돌무지를 덮고 다시 흙으로 덮은 무덤으로, 이러한 형태의 무덤은 중앙아시아와 내몽골지역에서도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 무덤 속에서는 다양한 부장품이 발견돼 스키타이문화의 연원이나 전파경로를 말해준다. 

② 스키타이인들은 황금을 숭배대상으로 했고, 그러한 스키타이의 황금문화는 잘 알려져 있다. 제기, 장신구, 무기, 도구 등을 금으로 만들거나 금박을 두드려 장식한 유물들이 다수 출토 돼 남아 있다. 카자흐스탄과 신장위구르 북부지역에서도 스키타이식 금동기구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몽골·중앙아시아·북중국 등의 박물관에서는 흉노·돌궐·몽골로 이어지는 기마유목민들의 황금장식 유물이 다수 전시돼 있다. 

③ 장식에서 동물양식이 널리 사용되었다. 무기, 장식품, 장신구, 생활도구 등 다양한 용도로 동물모양의 장식을 활용했다. 기마유목민들은 말과 더불어 살아갔고 양, 염소, 낙타, 소 등은 그들의 생활과는 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이러한 동물 양식은 자연스레 그들의 ‘엠블럼’으로 자리 잡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등장하는 초원제국에서도 그 영향은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다.

④ 고분 등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물들은 스텝지역 일대에서 살아온 유목민들의 생활과 관습 등을 잘 보여준다. 양면의 날을 가진 아카나케스 단검, 삼각철 화살, 활, 갑옷 등 전형적인 기마군단의 무기와 군장, 안장, 등자, 재갈 등 유목민들이 널리 사용했던 마구 및 스텝지역 기마군단의 필수품인 청동으로 만든 솥(동복) 등은 기마군단과 유목민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 주는 유물들이다. 또 무덤 등에서 나타난 스키타이의 종교의식은 샤머니즘·토테미즘 형태로 추정되며, 북방민족의 유습이었던 순장풍습도 있었다. 

카자흐스탄 카타르토베 고분군 무덤.<문화재청>
신라금관.

 

⑤ 바위에 새겨진 그림 암각화가 스키타이 지역에서 대거 나타난다. 유목민이 본격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알타이는 중앙아시아 고원지대로 몽골·중국·카자흐스탄·러시아 4국의 국경이 접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고대 도로는 수많은 민족의 이동경로가 되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알타이지역은 쿠르간(고분), 석상, 고대비문 등이 오래전부터 발견되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다양한 양식과 기법의 암각화가 수백 군데서 발견되고 있다. 
알타이암각화는 거슬러 가면 기원전 4000년경부터 나타나지만 청동기시대 및 초기 철기시대에 집중돼 있고, 초기 스키타이시대(BC 8~6C)의 암각화도 발견되고 있다. 스텝지역에 널리 분포된 암각화는 고대 유목민들의 생활상과 이동경로를 보여준다.

스키타이와 초원의 기마국가와 관계

 

스키타이는 8~7세기경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남부지역으로 이주한 유목민족이다. 몽골고원 서북부 러시아영내 지역의 아르잔(Arzhan)에서 발견된 BC 9~8세기경의 쿠르간에서는 흑해 북안에서 발굴된 스키타이 전성기의 유물과 흡사한 유물들이 대거 발굴 되었다. 이는 스키타이가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흑해 연안으로 이주한 증거라 볼 수 있다. 스키타이인에 대해 이란계라는 학설 등 여러 견해가 있었으나, 헤로도토스는 '아시아유목민'이라 단정 했다. 알타이지방에서 거주할 당시에는 몽골형의 모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키타이는 최초로 대초원을 지배한 기마유목민집단으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는 이후 유라시아스텝지역 곳곳에서 나타난다. 스키타이는 이동성, 집단성, 전투력을 특징으로 하는 특유의 군사집단으로, 그들의 전술·전법은 후대에 등장하는 기마유목민들의 국가인 흉노·선비·돌궐·위구르·몽골 등의 기마군단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물, 유적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스키타이의 생활양식 등 문화 흔적은 이후 스텝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한반도에 까지도 그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는 ▲한반도지역에서도 스키타이와 유사한 무덤양식이 나타난다. 신라시대 전기 지배층의 무덤 양식인 ‘적석목곽분’(돌무지 덧널무덤)의 무덤구조는 알타이 지역의 파지리크 무덤, 남부시베리아의 쿠르간, 카자흐스탄 쿠르간 등과 비슷한 구조다. 고구려 무덤양식인 ‘돌무지무덤’도 윗부분에 봉토가 없다는 점이 다를 뿐 큰 차이가 없다. 경주 등지의 적석총(돌무덤)에서 발굴된 유물에서도 유목민속의 흔적을 뚜렷이 볼 수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5~2017년 사이에 카자흐스탄 동남부의 카타르토베 고분군을 조사하였는데, 스키타이 시대의 거대한 돌무지무덤에서 우리의 고대무덤과 축조방식이나 구조 등에서 유사한 연결고리가 존재함을 확인한 바 있다.

▲신라의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금관을 비롯한 화려한 황금문화는 스키타이 황금문화와의 친연성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한다. 수년전 서울에서 열렸던 ‘스키타이 황금문명전’에서는 신라를 비롯한 한반도의 황금유물과 맥이 이어지는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스키타이 이후의 아시아 기마유목국가들도 황금문명의 전통을 이어왔다.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전’에서는 구조나 모양새에서 신라금관과 흡사한 금관이 선보였다. 

▲울주군 천전리 암각화와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등 알타이암각화와 관계가 있다고 보여지는 다수의 암각화가 발굴되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생활양식이나 정신세계를 새긴 그림을 말하는데 이러한 암각화는 전 세계적으로 북방문화전과 관련된 유적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암각화는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일찍이 서진하여 활약한 스키타이와 이어지는 흉노 그리고 몽골고원 동부에서 활약한 정통 고대국가체제의 기마국가인 고구려와 몽골고원과 서부지역에서 활약한 돌궐 그리고 이들을 계승한 수많은 기마민족국가들은 과연 어떤 관계인 것으로 생각해야 할까. 또 이들 국가 이전에 존재했던 고조선, 부여 등 한민족 고대국가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보다 열린 시각으로 유라시아 역사와 세계사를 보면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야할 대목이다. 스키타이-흉노-신라로 이어지는 문화적 친연성, 가야지역인 김해 대성동 고분의 북방계 유물 등은 앞으로 깊은 관심과 많은 연구가 따라야 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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