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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25 14:47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위대한 기업가 호암 이병철, 그가 그립다
위대한 기업가 호암 이병철, 그가 그립다
  • 조혜승 기자
  • 승인 2017.11.17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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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기 맞아 불굴의 도전과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 철학 재조명

 

[인사이트코리아=조혜승 기자] 반도체 사업에 대한 혜안으로 한국 경제의 초석을 닦은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기일이 다가왔다. 11월 19일이지만 일요일인 관계로 이틀 앞당겨 17일 추도식이 진행됐다.

그가 타계한지 30년이 흐른 지금, 많은 이들이 호암을 대한민국 ‘산업계의 아버지’로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병철 창업주가 낳은 3남 5녀가 국내와 세계 시장에서 각 사업 분야 최정상을 휩쓸고 있다. 삼성·CJ·신세계 등 범(汎)삼성가 자산 총액은 407조가 넘는다. 우리나라 2017년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기업은 결코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변화에 도전을 게을리 하면 기업은 쇠퇴하며 쇠퇴하기 시작하면 재건하기 지극히 어렵다.” 이병철 창업주의 이 말은 이 시대 모든 기업인이 되새겨야 할 명언이다. 이병철 창업의 남다른 혜안과 불굴의 도전이 있었기에 삼성그룹, 더 크게는 지금의 우리 경제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30주기 추도식이 17일 오전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호암재단 주관으로 열렸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10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와병중인데다 3년 연속 추도식을 주관해 온 이재용 부회장마저 영어의 몸이 돼 이번 추도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추도식은 조촐한 내부 행사로 치러졌다.

재계에 따르면 17일 열린 추도식에는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여사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 직계가족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임원진 50명도 추도식장을 찾았다고 한다. 오후엔 CJ, 신세계, 한솔 등 범삼성가 그룹 관계자들이 선영을 방문했다.

삼성가는 1987년 이병철 회장 타계 이후 기일마다 가족모임을 가져왔으나 2012년  고(故) 이맹희 CJ 명예회장과 동생인 이건희 삼성 회장 간 상속분쟁이 벌어지면서 선대 회장 추도식은 삼성그룹에서, 제사는 CJ그룹에서 각각 맡아왔다.

이병철의 '인재제일, 사업보국'

"나는 항상 청년의 실패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청년의 실패야말로 성공의 척도다. 그는 실패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대처했는가, 낙담했는가, 물러섰는가, 아니면 더욱 용기를 북돋아 전진했는가. 이것으로 그의 생애는 결정되는 것이다.”(故 이병철 삼성회장)

호암은 1938년 삼성상회 설립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한국 최고의 기업 삼성을 창업해 글로벌 삼성그룹으로 성장시킨 대한민국 재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불모의 한국 경제에서 그의 나이 73세,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는 결단을 내린 것은 유명하다. 오늘날 삼성전자 반도체를 있게 한 장본인이다. 호암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 등으로 대변되는 철학으로 기업을 일구고 키웠다.

호암은 1920년 2월 12일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1938년 3월 1일 대구시 서문시장 근처 수동에서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 간판을 걸었다. 그의 나이 28세. 오늘의 삼성의 모체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삼성의 ‘삼’은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이며, ‘성’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을 뜻한다“고 자서전을 통해 밝혔다.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는 그의 신념이 담겨 있다.

사업보국. 그는 “사람에게는 저마다 능력과 장점이 있다. 그것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봉사이자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국가적 봉사와 책임은 사업의 길에 투신하는 것이다”고 말하곤 했다.

“의심이 가거든 고용 말라. 의심하면서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그리고 고용된 사람도 결코 제 역량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을 채용할 때 신중을 기하라.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고 한 말에서 호암이 얼마나 인재에 대한 관심이 큰지 엿볼 수 있다.

호암은 제일제당을 설립하면서 “무슨 일에나 제일의 기개로 임하자. 제일제당은 해방 후 우리나라에 건설된 최초의 현대적 대규모 생산시설이다. 앞으로 항상 한국경제의 제일주자로서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크게 기여해 나가자”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일상적인 필수품을 언제까지 수입에 의존한다면 국민생활이나 경제 체질을 바꿀 수 없고 국가 경제의 자립적인 형성이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고 봤다.

호암은 1953년 8월 1일 자본금 2000만 환으로 대구에서 제일제당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사명을 제일제당 공업주식회사로 한 이유는 알기 쉽고 부르기 쉬웠지만 결의와 큰 기개를 담았다고 했다.

당시 전쟁 직후 설탕의 국내 생산능력은 전무한 상태였다. 국민생활이나 산업활동에 긴요한 중요 물자인데도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설탕 국내 가격은 세계시장 보다 3배나 비쌌다. 당시 외제 설탕 가격이 근당 300환인 반면 제일제당의 설탕은 100환으로 저렴했기 때문에 생산 6개월 만에 설탕 공급 시설을 대폭 확대해야 했다.

73세 호암, 반도체 진출 결단을 내리다

호암은 반도체 개발을 결의하면서 “반도체 사업의 진출은 막대한 설비투자가 들뿐더러, 기술혁신의 주기가 매우 짧은 반도체 생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그 위험을 뛰어넘어 성공을 쟁취해야만 삼성의 내일은 열린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73세 인생의 만기였지만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어렵더라도 전력투구를 해야 할 때가 왔다면서 스스로 반도체 개발 결의를 되새겨왔다고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호암은 그 당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원이 없고 무역입국의 길밖에 없는 한국이 살 길은 산업의 재편성을 서둘러 추진하고 첨단 기술 산업을 시급히 개발·육성해야 한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정부에도 도입을 건의했다.

그는 당시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만이 한국경제가 자립경제로 전환하는 기틀을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결단은 내렸지만 난제가 수두룩했다. 막대한 투자재원 마련, 한국이 미국·일본의 기술을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 주기가 짧은데 따른 리스크 감당 여부, 고도의 기술두뇌 확보 및 훈련 등 모든 게 불투명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인구는 많고 자원 없는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길은 기술과 무역밖에 없다는 신념이 그를 반도체의 길로 이끌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첨단기술 개발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요즘 반도체가 '수퍼 호황기'를 맞아 삼성전자는 엄창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만약 호암의 선견지명이 없었다면 지금의 호황을 누리지 못했을 것임은 명약관화 하다.   

호암이 가장 감명받은 책, <논어>

호암이 가장 감명을 받은 책으로 <논어>를 서슴없이 꼽았다.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는 <논어>에 내적 규범이 담겨 있어 인간이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마음가짐을 알려준다고 했다. 인간사회의 불가결한 규범인 법과 달리, 인간사회의 규율에 적대하는 행위의 발생을 막는 것이야말로 개개인이 갖는 내적 규범으로 봤다. 내적 규범을 상실한 인간, 즉 무규범한 인간이 늘어나는 사회는 함부로 법률만 발동되고 죄인만 늘어 사람들 사이에 불신감이 쌓이고 연대감이 희박한 사회로 전락한다고 본 것이다.

반면 호암은 경영에 관한 책에는 흥미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체로 지엽적인 경영의 기술면을 다루는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호암이 관심을 갖는 것은 경영의 기술보다 저류에 흐르는 기본적인 생각, 인간의 마음가짐이었다.

삼성 자산총액 348조...범삼성기업 없이 일상생활 불가능

 

 

삼성그룹 자산총액은 지난해 기준 348조2260억 원으로 재계 1위다. 신세계 29조1650억 원, CJ 24조7630억 원, 한솔 5조3530억 원이다. 이들 기업의 자산총액을 합치면 30위권 국가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랍에미리트(UAE)나 이스라엘 GDP가 법삼성가 자산 총액과 엇비슷하다. 지난해 기준 삼성 매출액은 271조8800억 원, 신세계 19조10억 원, CJ 19조9850억 원, 한솔 3조 9930억 원 등이다. 합하면 매출액이 300조원을 넘는다. 웬만한 국가의 1년 예산보다 큰 액수다. '삼성제국'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범삼성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없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반도체, 스마트폰, 식음료, 유통, 엔터테인먼트 등 거의 현대인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호암의 기업보국 철학이 2세, 3세 시대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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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창업연보

1910. 2. 12. 경남 의령군 정곡면에서 출생

1936. 3. 마산 합동정미소 창업

1938. 3. 1. 삼성상회 설립

1948. 11. 삼성물산공사 설립

1951. 1. 삼성물산 설립

1953. 8. 1. 제일제당 설립

1954. 9. 15. 제일모직 설립

1957. 1. 12. 국내 최초 사원공개채용시험 실시

1957. 2. 6. 한일은행·동양제당 인수

1958. 2. 12. 안국화재 인수

1958. 10. 10. 상업은행 인수

1959. 4. 9. 조흥은행 인수

1961. 8. 16.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 초대 회장 취임

1963. 2. 26. 동양TV방송설립

1964. 8. 27. 한국비료 설립

1965. 2. 4. 삼성문화재단 설립 발표

1965. 9. 9. 삼성문화재단, 성균관대학교 인수

1965. 9. 22. 중앙일보 창간

1966. 5. 4. 중앙개발 설립

1966. 5. 19. 고려병원 설립, 대구대학 양도

1967. 2.12. 새한제지 인수

1968. 6. 16. 안양컨트리클럽 개장

1969. 1. 13.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 설립

1969. 12. 4. 삼성산요전기 설립

1970. 1. 20. 삼성NEC 설립

1971. 9. 15. 삼성일렉트릭 설립

1973. 1. 17. 제일기획 설립

1974. 7. 10. 삼성석유화학 설립

1974. 8. 5. 삼성중공업 설립

1976. 4. 17.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 개장

1977. 4. 22. 삼성조선 설립

1977. 8. 1. 삼성정밀공업 설립

1977. 12. 30. 한국반도체 인수

1978. 3. 2. 한국반도체, 삼성반도체로 상호 변경

1979. 3. 8. 호텔신라 개관

1980. 4. 14. 한국전자통신 인수

1982. 2. 3. 삼성라이온즈 프로야구단 창단

1982. 4. 22. 호암미술관 개관

1982. 6. 24. 삼성종합연수원 개원

1983. 6. 27. 삼성시계 설립

1984. 4. 20. 삼성의료기기 설립

1985. 1. 22. 삼성유나이티드항공 설립

1985. 5. 1. 삼성데이터시스템 설립

1986. 7. 1. 삼성경제연구소 발족

1987. 3. 24. 삼성항공산업·삼성항공우주연구소 설립

1987. 10. 22. 삼성종합 기술원 개원

1987. 11. 19. 별세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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