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환 Media Watch]추석 명태 값 폭등이 대기업 때문?

기업을 ‘희생양’으로 만든 정부에 놀아난 언론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l승인2017.10.10l수정2017.10.1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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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은 연휴기간이 무척 길다. 개천절과 한글날이 앞뒤로 연결돼 있고 중간에 임시 공휴일도 있어서 주 5일 근무하는 사람들은 무려 열흘을 쉴 수 있게 됐다.

여름휴가도 3박4일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간 기억이 없었던 20여 년 전 대기업 과장 시절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추석 연휴기간에 약 130만 명이 해외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숫자다. 국내에 남아 있는 10가구 중 7가구가 차례를 지낸다고 한다.

차례상을 차리는데 드는 비용은 지난해 보다 소폭 하락한 평균 30만원이라고 추정한다. 지방에 따라 상에 올리는 음식 종류가 차이가 나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조기(굴비)와 명태(북어)다. 다음은 20여 년 전 추석 무렵, 차례상에 올려질 명태에 얽힌 에피소드 한편이다.

추석과 명태

199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물가만 오르면 그 원인 제공자의 하나로 대기업을 몰아세우곤 했다. 언론과 국민의 화살이 정부로 쏟아지기 전, 희생양을 찾았던 것이다. 만만한 것이 대기업이라, 뻔히 아는 일도 연중행사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3월로 기억된다. 어느 날 언론들이 대형 기사를 일제히 보도했다. 경제기획원(지금의 기획재정부)에서 뿌린 보도자료 결과였다. 내용은 “최근 수산물 값이 폭등했는데 그 원인은 재벌그룹 종합상사들이 매점매석한 결과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보도였다. 더구나 통계수치를 뽑아보니 ㈜대우가 비축 물량이 제일 많아 종합상사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고 했다.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니 “최근 명태 값이 두 달 사이에 45.8%나 올랐다. 그런데 ㈜대우 등 종합상사들이 엄청난 물량을 수입해 냉동창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값이 더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다. 정부에서는 가격안정을 위해 수산물 조기 출하를 독려하고 있으나 폭리 취득을 노려 말을 듣고 있지 않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그대로라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말 ‘나쁜 놈들’을 넘어 ‘죽일 놈들’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신문·방송의 경제면, 사회면은 물론 사설, 해설 보도를 통해 언론에서는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해당 대기업들을 집중포격했다.

그러나 회사 내 관련 부서를 통해 파악해 본 결과, 진실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대우가 수입한 냉동명태는 대부분 러시아 산으로 수출용 원자재였다. 즉, 재가공을 해서 수출을 하도록 수입관세가 면제된 상품이었다.

주로 미국, 유럽에 피쉬버거 용으로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고 있어 절대로 국내에 판매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일부 내수용 물량도 이미 계약을 체결하고 선수금까지 받은 상태여서 폭리를 거두려고 출하를 늦추고 있다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정확한 팩트를 파악한 ㈜대우 홍보팀에서는 즉각 정통 언론홍보의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즉, 정확한 데이터와 수출계약서 등을 근거로 반론을 제기하는 보도자료를 만들어 모든 언론사에 릴리스 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광야에서의 외로운 외침’이라고 할까, ‘큰 태풍에 마주한 작은 선풍기’에 불과했다. 대부분 무시당했거나, 반영이 되었어도 마치 궁색한 변명인양 제일 끄트머리에 한 두 줄 소개된 정도였다. 정말 한번 대세의 바람이 불면 여론을 돌리기 힘들고, 여론을 만든 장본인인 언론도 이제는 거꾸로 팩트나 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여론을 따라 가고 있는 것이다. 

“냉동명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기업이 매점매석해 물가폭등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기사가 되어도 ‘사실은 그게 아니고 수출용 원자재였다, 정부가 잘못 발표했다’는 소위 기사 거리가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 예전 대우건설 사옥. <뉴시스>

아무리 반박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출입기자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도 역부족이었다. “이게 현실이구나.” 새롭게 홍보 공부를 한 느낌이었다. 하여튼 워낙 큰 사건, 이슈가 많은 나라인지라 시간이 약이라고 좀 지나자 그 일은 유야무야 잊혀지고 있었다.

그렇게 봄, 여름이 지나고 바야흐로 추석을 며칠 앞둔 때였다. 이번에는 “추석 차례에 쓰일 제수용 조기와 명태 값이 폭등하고 있고 이 또한 수산물을 수입해 냉동창고에 보관 중인 대기업이 주범이다”라는 식의 정부 발표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봄에 겪은 유사한 일이 가을에 또 발생한 것이다. 

그 당시 잘못된 보도로 인해 종합상사는 물론 그룹의 이미지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즉각 그룹 최고경영자에게 보고를 했다. 이후 하달된 지시 사항은 “홍보와 광고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초기에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모든 언론사에 보도자료가 즉각 배포되었으며, 동시에 다음 날 조간신문 1면에 실릴 광고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광고 본문 내용은 보도자료와 거의 유사했고 이제 가장 중요한 헤드라인을 결정할 순간이 왔다. 

그렇다고 “냉동명태는 머리와 꼬리가 없는 피쉬버거용으로 재가공 처리된 수출용 원자재이지 추석 제수용이 절대 아닙니다”라고 길게 쓸 수가 없어서 홍보팀 전원의 머리를 짜내 나온 아이디어가 “냉동명태는 아닙니다”였다. 

보기엔 비논리적인 광고 헤드라인 같지만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유발시켜 열독률을 높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대부분의 언론에서 경제기획원 발표를 비중 있게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홍보와 광고가 모처럼 합동으로 커뮤니케이션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례였다. 덕분에 그 해 가을 홍보팀 비용(광고비)이 꽤나 증가했지만 말이다.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webmaster@insight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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