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빌게이츠' 아짐 프렘지 위프로 회장의 갑부 비결
'인도의 빌게이츠' 아짐 프렘지 위프로 회장의 갑부 비결
  • 오화석 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원장
  • 승인 2017.08.01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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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17억원 식용유 회사, 10조원짜리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 아짐 프렘지 위프로 회장.<오화석>

인도의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인 위프로(Wipro)의 아짐 프렘지 회장은 ‘인도의 빌 게이츠’로 불린다. 사실 게이츠 회장과 프렘지 회장은 비슷한 점이 많다.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기업을 일으켰다는 점, 다니던 대학을 도중에 그만두었다는 점이 그렇다. 

두 사람 모두 세계적 거부라는 점도 서로를 비교선상에 놓는 이유 중 하나다. 게이츠 회장의 재산에는 못 미치지만, 프렘지 회장의 재산도 만만찮다. 자그마치 161억 달러(약 19조원)이 넘는다. 인도 제2위의 갑부로 인도는 물론 세계 최대 갑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지 십 수 년이 됐다. 

그는 게이츠 회장처럼 자수성가한 기업인은 아니다. 아버지가 하던 조그만 식용유 사업을 물려받아 소프트웨어를 주요 산업으로 하는 글로벌 IT 기업으로 키웠다. 자수성가한 기업인 못지않게 스스로 큰 기업을 일으켰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는 ‘미스터 클린맨’으로 불릴 만큼 깨끗하고 청렴한 기업인으로 꼽힌다. 구자라티 무슬림 상인 출신인 그는 종교적 약점을 딛고 큰 성공을 거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66년 8월 11일. 당시 21살의 나이로 미국 스탠퍼드대학에 유학 중이던 그는 인도에 사는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불과 51세. 충격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젊은 프렘지는 당장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출발했다. 그는 이후 30년간 스탠퍼드대학을 다시 찾지 못했다. 인도에 그대로 남아 부친이 운영하던 사업을 떠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회사 이름은 ‘위프로(West India Vegetable Products)’. 조그만 식용유 생산 업체였다. 350명 정도의 직원에 연간 매출은 약 150만 달러였다. 당시 회사는 경영상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4형제 중 막내인 그를 후계자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기쁨보다는 강한 중압감을 느꼈다.

당시 그는 경영에 대해 무지했다. 그러나 회사경영을 맡은 후부터 그는 필사적으로 기업 경영 방법을 배워 실천에 옮겼다. 

무엇보다 그는 사업 확장을 위해 다변화를 꾀했다. 식용유 생산만으로는 기업이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비누와 미용품, 전구, 건축용 수압장비, 건설장비 등으로 업종을 다변화했다. 이들 분야는 소프트웨어 분야가 위프로의 핵심 사업이 된 오늘날에도 활기차게 영위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위프로는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중반에는 매출 3000만 달러로 그가 처음 경영을 맡았을 때에 비해 20배나 규모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프렘지 회장은 1977년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전혀 경험이 없는 컴퓨터 사업에 진출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유행하던 IBM 대형 컴퓨터보다 작은 기업용 미니컴퓨터를 생산하기로 했다. IBM 컴퓨터 보다 크기는 작지만 기능은 비슷하면서 가격은 낮춘다는 전략이었다.

마침내 1981년 위프로의 기업용 미니컴퓨터가 세상에 출시됐을 때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인도에서 만든 최초의 컴퓨터였기 때문이다. 위프로는 이어 PC 생산에도 박차를 가하고, 컴퓨터 제조부문에서 인도 내 선두기업이 된다. 이후 10여 년 간 위프로는 인도 컴퓨터 생산 시장을 장악했다.

미니컴퓨터를 개발해 10여 년 간 경쟁자 없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위프로는 1990년대 초반 위기에 직면한다. 1991년 인도정부가 경제와 시장을 전격적으로 개방했기 때문이다. 컴팩, 휴렛팩커드, IBM 등 세계적인 PC 메이커들이 물밀듯이 인도에 들어왔다. 품질과 가격, 물량 면에서 위프로는 이들 글로벌 기업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위기였다. 

그러나 위기는 늘 기회인 법. 그는 시장 개방으로 다국적 기업들이 인도에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이젠 자신의 회사가 해외로 나갈 때라고 판단했다. 경쟁력이 낮은 PC 등 하드웨어로는 승부할 수 없었다. 길은 무궁한 발전 잠재력을 가진 소프트웨어였다. 

이를 위해 그는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터를 설치해 필사적으로 ‘품질경영’에 나선다. 그 결과 1995년 국제표준화조직(ISO) 9000 품질 인증을 받고, 1999년에는 국제공인 소프트웨어 기술표준인 CMM 최고등급(5등급)을 세계 최초로 받는다. 또 세계 최초로 인재 표준인 CMMI 최고 등급(5등급)을 받았으며, IT서비스 회사로는 세계 최초로 무결점 운동인 식스 시그마를 도입한다. 오늘날 위프로에는 식스 시그마 최고 수준인 블랙 벨트 소유자들이 넘쳐 날 정도로 많다.

위프로는 2000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성장의 날개를 단다. 미국 기업들에 지명도가 알려지면서 탄탄대로를 달리며 연평균 40% 이상의 고속 성장을 했다. 2016년 매출 85억 달러(약 9조8000억원)에 순익 14억 달러, 직원 수 18만 여명의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했다.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이어받을 때 연매출 150만 달러였던 작은 식용유 회사를 매출 85억 달러의 세계적 IT기업으로 키운 것. 매출 규모로 볼 때 약 5700배 증가했다. 위프로의 자산은 2016년 말 현재 110억 달러(약 13조원)에 달한다. 프렘지 회장의 재산은 161억 달러로 인도 내에서 2위 갑부다. 

어마어마한 갑부지만 그는 지나치리만큼 근검절약을 한다. 그의 자동차는 소형이고, 해외여행 할 때도 보통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귀국할 때도 자가용을 부르지 않고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창문도 없이 털털거리는 3륜 자동차인 오토릭셔를 타고 다닐 때도 많다. 

특히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철저해 2001년 개인 재산 5000만 달러(약 600억원)를 출연해 아짐프렘지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매년 500만 달러씩 추가 출연하던 그는 2013년에는 아예 전 재산의 25%를 자선기관에 기부했다. 나머지 25%도 향후 5년 내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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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짐 프렘지의 성공방식

아짐 프렘지 회장은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사업다변화로 성공의 발판을 닦았다. 1960년대 말에는 식용유 회사에서 비누와 미용품, 전구, 건설장비 등으로 다변화했고, 1981년에는 컴퓨터 하드웨어 분야로 눈을 돌렸다. 1991년 인도 경제가 개방돼 하드웨어 산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는 소프트웨어 분야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소프트웨어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궤도에 오르자 그는 사업 분야를 다양하게 확대했다. 콜센터 관리에서부터 휴대전화 디자인까지, 컴퓨터 시스템 운영에서 비즈니스 컨설팅까지 적극적인 사업 다변화를 꾀했다. 위기마다 비전을 갖고 적절한 사업다변화로 큰 성공을 일궈낸 것이다. 

▲ 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원장
/경제학박사/배제대학교 글로벌교육부(인도&브릭스경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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