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무 교수가 말하는 천년 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지혜'

양병무 교수 하버드 메디치포럼 강연…로마에서 배우는 지혜 권호 기자l승인2017.08.01l수정2017.08.0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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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공화정 말기의 뛰어난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동상.<알트이미지>

하버드 메디치포럼(하·메포럼)은 지난 6월 27일 ‘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지혜와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강연자는 양병무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하·메포럼은 재계 원로들이 젊은 중소기업 경영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경영 이론과 실제를 토론하고 논의하는 모임으로 이계옥 한양대 겸임교수가 좌장을 맡고 있다.

포럼에서 양병무 교수는 “우리와 로마의 공통점은 반도국가라는 특징과 유일한 자원은 사람이라는 점”이라며 “당시 로마는 경제적으로 자급자족이 안 돼 세계화 전략을 추진했다. 로마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 체력에서는 켈트족과 게르만족,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못한 로마인이 이들 민족보다 뛰어난 점은 개방성과 제도다.

로마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대단히 개방적인 국가였다. 그 당시 정복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는 패전국 국민을 노예로 삼았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전쟁에 패한 나라의 백성을 노예로 생각하지 않고 파트너로 여겼고, 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실제 로마의 13대 황제 트라야누스도 식민지 출신이었다.

문화적 개방성도 로마의 강력한 성공요인이다. 로마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인정했다. 당시 이민족 종교였던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주민들을 포용력 있게 받아들였다. 또한 지식 언어로 그리스어를 사용해 높은 수준의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였다.

 

2000년 전부터 글로벌 시장경제 운용

경제적 개방성도 한몫했다. 로마는 2000년도 더 전에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로마는 ‘1차 포에니 전쟁’ 이후 자체적으로 밀을 생산하는 것보다는 시칠리아에서 수입하는 게 저렴하다는 것을 깨닫고 밀을 수입하고 로마 농가에는 포도와 올리브를 심도록 했다.

시칠리아의 싼 밀과 경쟁하기보다는 당시 경쟁력이 있던 포도와 올리브를 육성해 무역으로 이득을 보겠다는 전략이다. 로마시대에 이미 글로벌 시장경제가 운용된 것이다.

로마의 또 다른 힘은 ‘시스템 구축’이다. 개방성만으로 부흥을 할 수는 없다. 로마는 법제정, 달력개정, 통화개혁, 행정개혁, 사법개혁, 사회개혁, 수도재개발 사업 등을 단행해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움직이는 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모든 로마시민으로 구성된 민회에서는 귀족과 평민의 차별 없이 국가 모든 주요 정책에 대한 찬·반 연설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시민들은 이를 듣고 자신들의 의견을 토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국내의 여론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로마 군대의 경우 전투대형, 행군속도, 설거지 등 모든 세세한 행동 지침을 교본으로 만들었다. 시민군인 로마는 지휘관부터 병사까지 해마다 바뀌기 때문에 누가 해도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자세한 부분까지 미리 결정해 놓아야 했다. 이외에도 수도·다리·가도 등 인프라를 건설할 때도 매뉴얼을 만들어 표준화했다.

오늘날 미국의 항공모함을 운용하는 일반 병사들의 평균 나이는 20대 초반이라고 한다. 그들이 거대한 함대를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모든 과정이 매뉴얼로 시스템화 돼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군대 조직 역시 로마의 매뉴얼 시스템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세 번째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이는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로마의 지배층은 특권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수행했다. 어느 사회나 지도층은 가진 특권만큼 많은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2차 포에니 전쟁 중 한니발과 싸운 17년 동안 로마의 집정관 25명 중 8명이 전사했을 정도로 그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최전선에 나가 싸웠다.

2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군과 카르타고군의 승패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있다. 용병인 카르타고군은 돈과 보상이 중요했지만, 지도층이 앞장서서 싸웠던 로마군은 자긍심과 주인 의식이 충만한 군대였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로마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 양병무 인천재능대학교 교수가 경기도 성남시 약손명가 연수원에서 열린 하버드·메디치 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인사이트코리아>

로마를 지킨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

‘누구에게나 모든 게 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 보지 않는다.’

로마의 저력 중 하나는 위기관리 능력이다. 로마는 위기 시 국론이 하나가 되어 위기를 뛰어넘는 면모가 있었다. 로마는 초기에 켈트족에 의한 패배와 세 차례에 걸친 해양대국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에서 원정 선단이 모두 침몰하지만, 이후 숙적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명실상부한 해양강국으로 입지를 굳힌다.

로마는 전시에 군사령관을 겸임하는 집정관에게 일단 임무를 주어 내보낸 뒤에는 원로원조차 작전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이는 위기 상황에 에너지를 집중해 더욱 상황에 맞는 의사 결정력으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카이사르처럼 창업하고 아우구스투스처럼 승계하라.’ 

마지막 성공요인은 창업과 승계다. 로마제국의 창업자 카이사르와 승계자 아우구스투스가 그 주인공이다. 창업자에게 중요한 자질은 도전정신과 창의력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보이는 세계에 집착해 현실 안주에 머무른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 브리타니아 원정,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가는 정치개혁 등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걸었다.“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적 천재”라고 평가받는 그는 로마의 새 길 개척자였다.

그는 정통성과 혈연에 연연하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을 후계자로 삼았다. 먼 친척이자 머리가 비상한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선정했으며 이후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옥타비아누스가 왕위에 올랐으며 그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다.

아우구스투스는 목표 관리에 따라 공화정 원로원 구조개혁을 단행하는 등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을 펼쳤다. 아우구스투스는 승계형 리더십을 발휘해 로마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이들의 절묘한 하모니를 통해 성공적인 창업과 승계를 이뤄냈다고 한다.

▲ 양병무 교수의 저서.<행복한 로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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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메디치 경영포럼은…

하버드·메디치 경영포럼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경영 구루(GURU)와 중견 및 중소기업의 현직 CEO(또는 임원), 전문가 등과 만남을 통해 상호 경영에 대한 통찰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공부하는 모임이다.

하·메라는 이름은 하버드 프로그램으로 모인 재계 원로들이 15~16세기 메디치 가문과 같이 젊은 경영자들을 후원하고 이끌어 국가 경제에 부흥을 이끈다는 의미에 더해 메디치 효과와 같은 창조적 경영을 목표로 한다는 뜻을 담았다.

동질적인 것보다 이질적인 것에 희망을 두고 기존의 생각에 다른 생각을 융합시키고자 노력했던 메디치 가문의 노력처럼 신구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포럼은 한 달에 한 번 진행된다. 경영 구루들이 돌아가면서 주제를 정하고 발제자가 포럼 진행을 맡는다.

권대우 시사저널 대표이사, 김종은 LG전자 상임고문,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 장태평 농림수산식품 전 장관, 최종태 포스코경영연구원 고문, 지성하 성균관대 경영학 박사 등이 구루로 참여하고 있다.

권호 기자  kwonho37@insight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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