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과 공간 깊이 스민 블루선율

권동철 전문위원l승인2017.08.01l수정2017.08.0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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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오후 이후 이때까지 설악이 그처럼 낮아지고 아름다운 적을 본 적이 없었는데 해가 지고도 한참을 설광 때문에 새벽 같았다. 발간 등불과 후레쉬 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던 마을 사진리는 그제서야 사람 사는 마을이 되었다. 아흐레 동안 산이 눈 속에 파묻혔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날 내다본 동해는 무슨 일인지 물속에 다니는 고기 소리가 날  듯이 말게 개인 하늘 아래 호수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눈도 한 송이 쌓이지 않고, 그만으로 흐르고 있었다.”<고형렬 詩, 사진리 大雪, 창작과비평사 刊>  

▲ Landscape, 90 x 160 cm stone powder, korean paper, 2017

먼발치 적막이 흐르는가. 호수 물결 반짝이네. 은빛구슬이 물위에 구르는가 하여 서둘러 호숫가 이르니 후후 물오리 한 쌍이 찰싹 달라붙어 한 몸이듯 물길을 만들어 막 지나간 흔들림, 여운이었어라. 풀숲에 앉은 새 한 마리가 그 광경을 목도하며 무엇이 그리 비위가 상했던지 후드득 있는 힘껏 날개를 펴 허공으로 솟구쳤다. 

적막이 감도는 둑길에 서서 저기 미묘하게 움직임이 있는 살아 살아있음의 물결을 무심히 바라보다 얼마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 홀로 실성한 듯 웃어 재꼈다. 새는 어느새 흔적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공허한 오후의 하늘에 나란히 줄지어 나들이 가듯 새털구름만 푸른 산을 넘어 흘렀다.

그러다 아련히 시선을 당기는 정분의 신표(信標)처럼 낮달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은은히 드러나는 신비가 겹겹의 능선과 공간 깊이 스민 블루에 내려앉는다. 오오~ 인연이란 이런 것인가. 진정 바라오니 처음 느꼈던 본심의 가장자리로 와 비춰다오!

계절은 바람과 흙 내음, 풀잎의 노래를 보듬으며 한 걸음씩 그렇게 나아간다. 여름에서 겨울로 또 봄으로…. 눈 내린 산. 멀리서 보면 나뭇잎 갈색 느낌이 다가오고 뒤쪽으로 공기의 흐름이 산 모습을 더욱 짙푸름으로 보이게 했다.

▲ 60×100㎝, 2017

거기 잔설이 남아 드러나는 능선. 겹겹 날카로움으로 버티고 서 있는 그 산허리에 어느 유난히 바람 한 점 없는 저녁 솜사탕 같은 눈발이 천천히 낙하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여명이 저 먼먼 산을 비추며 조금씩 세상의 아침을 열 때 능선은 그 예리함을 누그린 채 평화롭고도 조금은 우울한 시편(詩篇)을 낭독하며 세월의 매듭을 드러냈다. “공기의 기운이 코끝이 찡하도록 차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창밖 풍경은 옅은 잿빛 구름이 내려앉아 차분하게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대관령 산자락의 파르스름한 색감은 왠지 아련한 느낌을 준다. 저 산 너머의 세상은…. 사람이 자연보다 작다. 그것에 순응하는 생의 겸허가 나의 그림에 스며있기를.”

꽃과 물빛의 마음

▲ 100×140㎝, 2016

연꽃이 공중에 떠 향기 사방에 흐른다. ‘꽃은 피고 꽃잎 춤추네’라고 어디선가 나직한 노래가 들려왔다. 낙화(洛花)의 슬픔이 물과 섞이면 저토록 자유로워지는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가, 꿈꾸듯 깊은 잠에 빠진 저 귀퉁이 오오~ ‘나’를 빼닮은 바윗돌이여.

“꽃이 가지고 있는 형태나 느낌에 치중했다기보다 꽃을 선(線)으로만 표현해 배경이 비쳐 나와 주변 풍경과 하나 되는 느낌을 주려 했다. 시간과 날씨에 따라 늘 다르게 변화하는 바다와 사람의 감성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던 날, 그렸다.”

 

▲ 권동철 전문위원/미술칼럼니스트, 데일리한국 미술전문기자
권동철 전문위원  webmaster@insight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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