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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6 16:40 (화) 기사제보 구독신청
맞지도 않는 문에 왜 열쇠를 끼우려 하나
맞지도 않는 문에 왜 열쇠를 끼우려 하나
  • 김혜영 인사이트코리아 전문위원
  • 승인 2017.07.31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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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소통 게을리 말아야…타인과는 상생과 공유를

20년 만에 대학 동아리 동기들을 만났다. 보자마자 이구동성으로 외쳐대는 한마디.

“어쩜 그대로니~ 하나도 안 변했다.” 연신 밝은 미소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아득히 그리웠던 동기들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자니 스무 살 풋내기 대학생으로 돌아간 듯 착각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모두가 한결같이 추억에 젖어 과거의 대학생활 얘기로 꽃을 피웠고, 20년 전 대학생활에서부터 현재 사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각자의 삶은 참으로 다른 모습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20년 전의 자기 자신을 그리워하면서 살아왔다는 것과 성숙된 삶을 살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왔다는 것이었다. 동기들은 잘 살아낸 서로의 삶에 박수를 쳐주며 격려했다. 그리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그렇게 헤어졌다. 

20년 지기를 만난다는 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마냥 좋았다.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사회에서처럼 긴장된 만남이 아니어서 더 좋았다.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에는 나와 얽혀 있는 관계의 실타래를 다 끊어버린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과거-현재-미래’ 생각

대다수 현대인들이 이러한 느낌을 갖길 원한다. 그래서 단순하고 익숙하고 감동이 있었던 추억을 경험하거나 회상하는 그 무엇들을 추구한다. 이러한 대중의 지향을 충족시키듯 최근의 대중문화에는 추억팔이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한동안 인기몰이를 했던 ‘응답하라 시리즈’도 이러한 회상문화를 반영한 결과였다. 

서울시 종로구의 한 동네에 위치한 ‘옥인오락실’은 오락실이라는 공간 자체의 순기능으로써 ‘만남의 광장’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만남은 어쩌면 추억을 공유했던 친구들이나 지인들과의 만남이기보다 서툴지만 순수했던 어린 자신과의 만남, 혹은 오락실을 넘나들던 과거라는 시간과의 만남일 것이다. 

TV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전 청춘스타들의 삶은 시청자들에게 복합적인 감정과 공감을 자아낸다. 그들의 리즈시절을 향유했던 대다수팬들은 현재 청춘스타들의 변화된 삶을 숙지하면서 자신의 삶을 빗대어 공감을 형성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미묘한 위로를 얻기도 한다. 이처럼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꽤나 매력적이어서 현재의 자기를 돌아보고, 타인과의 관계(relations)를 검토하는 성찰 에너지원이 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성찰할 때,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계획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일생동안 끊임없이 반복한다. 안타까운 사실은-일련의 성찰과정 중-과거를 회상할 때면 잘못된 것만 기억해내고, 현재를 돌아볼 때는 못한 일만 들추어내며, 미래를 계획할 때는 막연한 것을 마음속에 자리 잡도록 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일련의 이러한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회상할 때면 타인의 잘못된 것만 기억해내고, 현재를 돌아볼 때는 타인이 못한 것만 들춰내며, 미래를 계획할 때는 막연한 것을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성찰 과정은 자신과 타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에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을 넘어 인생 전반의 가치를 상실하도록 하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고 있고,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간파할 수 있는 관점을 소실시키고 있다.

서로 맞지 않는 문과 열쇠

필자가 20년 지기 동기들과 만났을 때, 바라보았던 그들의 삶과 소통방식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과 타인과의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는 삐걱거리는 문제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벗들이 가진 각자의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디서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한결같이 본인 스스로가 매우 잘 참아왔고, 인내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직장이나 가정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자기의 본질에 대해 소중히 여기거나 사랑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것을 양보하고, 참아내면 만사형통이라는 문제 해결 열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과의 온전한 관계의 문을 여는 문고리와 친구들이 갖고 있는 열쇠는 들어맞지 않는다. 왜 그들은 무조건 참아내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타인의 잘못된 것만 기억해내고, 현재를 돌아볼 때는 타인이 못한 것만 들추어내며, 미래를 계획할 때는 막연한 것을 타인이 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까? 왜 맞지도 않는 문에 그 열쇠를 끼워 맞추려고 할까?

원인은 간단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제대로 해결해내는 선배나 스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위 사회생활을 잘하는 상사나 스승은 자기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다. 보편적인 그들의 해결방식은 보스 기질로 상황을 제압한다거나, 상대방으로 인해 발생하는 희한한 상황을 그저 잘 참아내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그러한 방식을 선택한 이유 또한 직장 내 상사나 부모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상사나 부모 또한 과거·현재·미래를 조망함으로써 탁월한 성찰과 소통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삶의 태도와 신념은 다양하게 관계된 타인들로부터 학습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인은 이러한 학습을 체험하지 못했다. 그것은 조직문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답습되고 훈련되어져 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답습되어왔던 일련의 성찰과정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너무나도 바쁜 일상생활을 다 그만두고 성찰하는 시간이나 명상을 하면 해결될 것인가, 멀리 떠나 살면 될 것인가, 아니면 성찰방법과 소통방법에 대해 공부하면서 피땀 흘려 훈련을 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이런 것들이 다 소용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만약 지금의 있는 자리에서 벗어난다면 해결될 것 같은 것들도 모양만 다를 뿐 다른 곳에서도 타인과 다른 모양의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명상을 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 또한 바쁜 일상에서 명상을 해야 하는 시간을 할애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희로애락’ 감정에서 벗어나야

해결 방법은 의외로 쉬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20년 지기 동기들을 만났을 때 그 해결 방법이 보였다. 특정한 몇몇 친구들은 수없는 위기의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견뎌내 오고 있었다. 그들이 터득한 매우 탁월한 방법의 하나는 솔직한 소통 방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통적인 소통 방법의 과정은 이러했다. 

어떠한 사실을 기술하고→본인의 감정을 어필하고→문제와 해결방안의 목적을 설명한 후→그에 따른 상대방의 행동이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 방법은 커뮤니케이션 코칭 스킬 중 유사한 방법이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코칭 스킬을 그들은 배우지 않았음에도 그 방법을 터득해 잘 사용하며, 위기 상황을 견뎌오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 한 가지! 그들이 본인들의 성찰과 소통을 진취적으로 추진해오며 삶을 가치 있게 만든 또 다른 원인은 그들의 방향성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성찰 과정에서도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에게 일어난 상황의 사실을 검토하고 그에 따른 본인들의 감정을 파악한 후, 문제와 해결 방안의 목적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본인의 행동과 태도의 방향성을 수정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자신을 객관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자신과의 소통을 게을리 하지 않는 방향성을 고수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타인과의 소통에서도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과의 소통을 통해 얻은 성찰 에너지를 가지고 타인과의 소통 방향성을 결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타인과의 소통 방향성이 자신의 이익이나 타인을 위한 무조건적 배려가 아닌 상생과 공유의 목적을 띠고 있었다.  

2017년의 절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동안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 그리고 내 몸에 맞지도 않는 어설픈 성찰 방법을 억지로 배우고 있던 것은 아닌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에 얽매여 타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

인생의 절반을 살아낸 친구들은 말했다. 옛날이 좋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만약 돌아가야 한다면, 좀 더 나 자신을 명확히 바라보고, 타인과의 관계도 무조건 인내와 배려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라고. 자기 자신도 타인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억지로 해내는 어떤 것들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또 그들은 ‘과거에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자기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타인과의 상생과 공유의 관계를 목표로 살았다면 덜 힘들게 살았을 것’이라고 후회 섞인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친구들의 생각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을 때쯤, 후배에게 닥친 힘든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후배에게 위로와 함께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어차피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세상일은 그리 많지 않으니, 너무 속앓이 하지 말고, 지나가는 길목에서 너무 밟히지 않기만을 기도하세.”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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