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따라준 '호프', 누군 쓰고 누군 달콤했나

기업 총수들과 청와대 간담회…그룹마다 체감온도 달라 조득진 중앙일보 포브스코리아 기자l승인2017.08.01l수정2017.08.0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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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 기업인들이 7월 27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열린 기업 간담회 호프 미팅에서 건배하고 있다.<뉴시스>

“뜻밖의 멤버에 재계가 당황했다.” 

지난 7월 27~28일 이틀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과의 첫 공식 만남에 오뚜기 함영준 회장이 초청되자 재계 안팎은 술렁였다.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GS·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KT·두산·한진·CJ 등 국내 15대 그룹 중 농협을 제외한 민간 14개 그룹이 초청된 자리에 재계 50위권 밖의 오뚜기가 참석했기 때문이다. 오뚜기가 초청기업에 선정된 까닭은 일자리 창출 상생협력 우수 중견기업이기 때문이다.

앞서 청와대는 오뚜기 초청 배경을 설명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상생협력 부문에서 우수한 중견기업이라고 소개했다. 

오뚜기는 전체 직원 3099명 가운데 36명만이 기간제 근로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정규직 비율이 1.16%에 불과하다. 또 경영권 승계도 편법을 쓰지 않고 상속세 1500억원을 제대로 내기로 한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오뚜기의 특별 초청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에 보내는 무언의 압력”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명박·박근혜 과거 9년의 정부와 전혀 다른 색깔의 문재인 정부 등장에 기업들이 당황하고 있다. ‘재벌 개혁’을 외쳤지만 정부 출범 초기 일찌감치 ‘대기업 낙수효과’ 논리에 두 손 들었던 노무현 정부와 달리 철저히 준비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만남 형식을 ‘호프타임’으로 제안하고 구체적 의제도 정하지 않았지만 경제현안과 정부 정책을 듣는 총수들의 표정엔 비장감이 흘렀다. 

정규직 전환, 일자리 창출로 ‘눈높이 맞추기’

▲ 일자리 창출에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는 최태원 SK회장(왼쪽 사진)과 정부-재계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뉴시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대를 모은 경제정책의 큰 그림인 ‘J노믹스’가 윤곽을 드러내며 기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꾀하는 착한 성장 기조의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 대해 일단 기대를 걸고 있지만, 대기업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주요 사안별로 받을 영향도 차이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재벌 총수 일가 전횡 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 △공정거래 감시 역량 및 소비자 피해 구제 강화 △사회적경제 활성화 △더불어 발전하는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등 ‘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과제들이 포함됐다.

특히 문 대통령은 대선기간 재벌의 불법적 경영승계, 황제경영, 부당특혜 근절 등 재벌개혁을 추진하고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을 통한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런 공약을 실천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최관순·홍승일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문 정부는 대표 재벌들을 개혁하면 나머지도 따라올 것으로 보고 정권 초반에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할 것”이라며 대기업의 개혁에 새 정부 재벌개혁 노력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선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기업에 일자리 창출을 강하게 독려하고 있다. 사실 대기업들이 해마다 ‘일자리 창출 효과’를 홍보해 왔지만 정작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톱10 기업의 일자리는 4년 새 1만개가 증발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최근 데이터뉴스가 지난 5년 동안 직원 수 추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10대 기업의 직원 수는 38만9520명으로 집계됐다. 최대치 2013년 대비 1만명 이상 줄었다. 일자리가 많은 대기업조차 최근 3~4년 사이 신규채용에 소극적이었음을 방증한다. 

이에 따라 두산·SK·CJ그룹 등 일부 대기업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신규 채용 등 새 정부의 정책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CJ그룹은 7월 26일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적극 호응하기 위해 파견직 3008명을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고, 비정규직 인력의 직접 고용과 처우개선을 통해 차별 없고 동등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프레시웨이 조리원 직군 2145명과 E&M·오쇼핑·헬로비전의 방송제작 직군 291명, 사무보조직 572명 등 사업장에서 동종·유사 직무를 수행하거나 상시·지속 업무를 담당하는 파견직 3008명이 직접고용 전환 대상이 된다.

이와 함께 사내 하도급 직원에 대해서는 올해 하반기 중에 각 계열사별로 고용 형태 전환 방식 및 시기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CJ그룹 관계자는 “CJ는 무리한 계획보다는 정규직과의 격차 해소, 가능한 직종의 정규직 전환 등 실현 가능한 대책 중심으로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그룹은 2014년 발표한 10년간 17만명 고용 목표의 ‘비전 2023’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이다. 2015년과 2016년 각각 1만4000명, 1만5000여명을 고용했고 올해는 더 많은 인원을 고용한다는 방침이다. 

신세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도 집중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이마트의 기간제 근로자들은 내년 모두 무기계약으로 전환 예정이다. 실질적으로는 무기계약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도 지난해 10월 경영혁신안에서 밝힌 고용 창출 로드맵을 올해 본격화할 방침이다. 향후 5년간 7만개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3년 내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J노믹스에 적극 부응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5월 SK그룹은 SK브로드밴드가 자회사를 설립해 하청 대리점 직원 5200여 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한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철폐’를 앞세워 하청·협력업체 근로자까지 원청업체의 정규직 전환을 독려하고 있는 ‘문재인표 고용정책’이 민간기업에 구현되는 첫 사례였다. 

SK브로드밴드는 현재 가정 담당 81개, 기업 담당 22개 등 103개 대리점과 업무 위탁 도급계약을 맺고 있다. 각 대리점은 고용 인원 20~100명 선의 독립 법인이다. 

두산그룹도 7월 24일 두산과 두산인프라코어의 비정규직 4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협력업체와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해 임금 격차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부영·하림·롯데 등 조사 대상 기업 ‘바늘방석’

반면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기업은 좌불안석, 가시방석이다. 부영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의 첫 번째 대기업 간담회를 앞두고 부영은 일정 조율 회의에는 참석했지만 본 행사 참석 명단에는 빠져 체면을 구겼다. 부영의 자리는 오뚜기가 대신했다.

임대업에서 나오는 현금을 바탕으로 최근 빌딩 매입과 리조트 조성 등에 열을 올려 왔던 부영의 행보가 문재인 정부 들어 암초를 만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와 건설업계에서는 최근 불투명한 경영구조, ‘임대료 갑(甲)질’ 논란 등으로 중앙 및 지방정부와 잇달아 불협화음을 낸 부영에 청와대가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부영은 지난 6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한 뒤 대기업 가운데 첫 제재를 받았다. 김 위원장은 계열사를 누락신고하고 지분을 차명으로 신고하는 등 대기업집단 공시의무 위반을 이유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대주택 월세 인상 등을 놓고 지방자치단체들과 부영의 대립각도 커지고 있다. 전국 22개 지방자치단체가 부영의 임대주택 보증금 인상에 반발하며 공동대응에 나서고 있다.  

다른 분석도 있다. 최근 100대 국정과제에 주거안정 관련 내용을 두개나 포함시키며 공공주거 확대정책을 펼치고 있는 정부의 ‘부영 길들이기’라는 것이다. 부영은 임대주택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만큼 공공주거 확대정책에서 역할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부영을 간담회에 참석시키지 않음으로써 해당 메시지를 재계 전반에 전달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공공주거 확대정책에 대해 부영이 응답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하림도 울상이다. 공정위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아들 준영씨가 100% 소유한 올품에 일감을 몰아준 정황을 포착하고 직권조사를 벌이고 있다. 올품은 내부거래로 영업이익이 4년 사이 약 3배 증가했다. 올품의 지난해 매출액 4160억원 중 내부거래 비중은 20.56%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가 총수 일가 지분이 일정비율(상장사 30%·비상장사 20%)을 넘는 계열사와 거래하면 이를 일감 몰아주기로 규제하고 있다. 하림그룹의 자산총액은 10조원이 넘는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취임 이전부터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온 만큼 이번 조사로 하림그룹이 어떤 제재를 받을 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5대 그룹 중에선 롯데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전투구’를 벌이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형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2년 만에 독대할 정도로 경영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완벽한 승리여서 가능한 만남”이라고 분석하지만 경영권 분쟁이 계속될 시 재벌 개혁을 강조해 온 문재인 정부의 ‘사정 칼끝’이 롯데로 향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롯데그룹을 포함한 6대 재벌을 개혁대상으로 지목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롯데를 비롯한 유통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근절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반면 한진그룹은 선제적 대응으로 사정 기관의 화살을 비껴간다는 전략이다. 지난 6월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한진칼·진에어·한국공항·유니컨버스·한진정보통신 등 대한항공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것.

또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오너 일가의 이익을 챙겨준다는 지적을 받아온 유니컨버스에 대한 지분도 정리하기로 했다. 다만 조 사장은 지주사인 한진칼 등기이사는 유지하기로 했다.

재계에서는 “향후 지속적으로 경영 체계를 단순화하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바꾸겠다는 경영진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선언’에 가깝다”는 평가다. 

오너 리스크도 경영에 큰 변수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업 오너(총수)들이 어떻게 정부 정책과 눈높이를 맞출 것인지가 기업 경영 환경에 크게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선 우선 최태원 SK 회장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가)이 주목받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새 정부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화두에 가장 빠르게 화답하고 있다.

지난 4월 “SK그룹의 160조원 규모 자산 중 대부분을 오픈해 공유 인프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 최 회장은 이어 6월 SK그룹 확대경영회의에서 “사회와 함께 하는 공유인프라를 통해 누구나 창업하고 사업을 키울 수 있고,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다”며 “이같은 구조가 만들어지면 대한민국 경제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해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의를 이끌고 있는 박용만 회장도 문 대통령과 주요 대기업 총수 간 만남을 청와대에 요청하는 등 가교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7월 17일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최고경영자 조찬간담회를, 19일 열린 제주포럼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초청해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들었다. 

▲ 문재인 정부 들어 사정당국 조사 등으로 곤혹스러운 신동빈 롯데 회장(왼쪽 사진)과 이중근 부영 그룹 회장.<뉴시스>

반면 롯데 신동빈 회장은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의 뇌물공여 혐의로 수시로 재판에 출석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보복‘으로 상반기에만 1조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등 그룹의 자금 사정도 녹록지 않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의 규제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자 신 회장은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서두르면서 몸을 낮춰 소낙비를 피해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조득진 중앙일보 포브스코리아 기자  webmaster@insight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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