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7-12-14 11:36 (목)
[단독] 김상조 경고에 대기업 임원들 '사이버 망명'
[단독] 김상조 경고에 대기업 임원들 '사이버 망명'
  • 윤지훈 기자
  • 승인 2017.07.28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안성 뛰어난 텔레그램 속속 가입...공정위 조사 대비하는 듯
▲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대기업 부당거래 직권조사를 경고한 가운데 기업 임원들이 보안성이 뛰어난 텔레그램으로 속속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장마가 한창이던 7월 중순, 굴지의 대기업 초급 임원인 곽 아무개(46) 씨는 무심코 핸드폰을 들었다가 뜻밖의 경험을 했다. 회사 최고위 임원인 A 부사장, B 부사장, C 전무가 곽씨가 평소 친구들과 쓰는 ‘텔레그램’에 거의 동시에 가입자로 등록 된 것이다. 텔레그램은 러시아의 엔지니어가 개발한 암호화된 메시지 전송서비스로 유명하다.

회사 업무용 메신저 앱이 따로 있고, 카카오톡도 있는 상황에서 비교적 고령의 고위 임원이 텔레그램에 가입한 것이 이상했다. 더구나 같은 날, 거의 같은 시간에 최고위 임원 3명이 동시에 가입자로 뜬 게 의아했다.

텔레그램은 대화내용이 서버에 저장되지도 않고, 비밀대화 기능을 사용하면 메시저 전송 전 과정이 암호화 된다. 서버도 독일에 위치해 한국 수사기관이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할 수도 없다.

2014년 국내 최대 모바일 메신저 앱인 카카오톡이 검찰의 감청영장에 자료를 제출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사적인 대화 내용이 서버에 보관되고 수사기관에 제출되는 것을 본 많은 이용자들이 안전한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한 것이다. 이후 2016년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서 또다시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대기업 고위 임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 메신저를 사용하게 됐을까.

지난 6월 13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와 재계의 우려 속에 공정거래위원장이 된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는 게 재계 주변의 이야기다. 김 위원장은 취임식, 언론사 인터뷰, 재계 CEO 간담회 등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는 물론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실제 재계 순위 13위인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을 위장계열사 문제로 검찰에 고발 했고, 올해 대기업 집단에 지정될 정도로 급성장한 하림은 일감 몰아주기로 직권조사를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공정위가 조만간 본격적으로 부당내부거래, 일감몰아주기, 불공정 거래, 위장계열사 및 배임 문제 등에 대해 조사에 나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곽씨가 소속된 회사 역시 수년전부터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공정위, 금감원 등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날 텔레그램에 가입한 고위 임원 역시 대외업무나 회사 전략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곽씨 또한 회사에서 최근 공정위 조사에 대비해 자료를 재분류하고, 방어 논리를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갑자기 고위 임원이 비교적 생소한 텔레그램이라는 서비스에 가입하게 된 배경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대기업에서 대관업무를 오래 해 온 한 임원은 “정권이 바뀌면서 각 그룹 고위층에서 조사에 대비하라는 지침이 내려 갔을 것”이라며 “대관업무를 오래한 임원들은 최소 1년에 한 번씩 휴대전화와 PC 등을 바꾼다. 텔레그램 사용도 그런 보안 조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제 검찰’이라는 공정위 조사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대화 내용이 복원되지 않는 해외 메신저 앱으로 ‘사이버 망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