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공기청정기 시장 평정한 이길순 에어비타 대표
소형 공기청정기 시장 평정한 이길순 에어비타 대표
  • 조혜승 기자
  • 승인 2017.07.04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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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주부의 눈에 ‘미세먼지’가 보였다
▲ 이길순 에어비타 대표는 창업 4년만에 소형 공기청정기 시장을 평정했다.<에어비타>

연막을 뿌린 것처럼 흐릿해진 도심. 최근 들어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외출 시 일기예보와 함께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챙기는 것은 일상이 됐다.

실내에서도 미세먼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6월 21일 공기청정기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공기청정기 시장규모가 지난해 6300억 원에 이어  올해는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한 중소기업이 초미세먼지, 담배연기, 애완견냄새, 세균까지 걸러내는 소형 공기청정기 제품 관련 시장 매출 1위에 올라 관심을 끈다. 주인공은 소형 공기청정기의 최강자 에어비타.

<인사이트코리아>는 해당 시장을 평정한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6월 19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본사에서 이길순(63) 에어비타 대표를 만났다. 스스로를 ‘무수리’라고 말하는 이길순 대표는 직장 경험이 없는 가정주부였다. 2013년 창업해 2015년 매출 160억 원, 영업이익 30억 원을 거둔 CEO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는 당찬 여걸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와 수출국 현황은 어떤가.

“2015년 160억 원, 작년 매출은 다소 줄었지만 올해 매출은 100억 원 선을 훨씬 넘길 걸로 본다. 독일 Qvc 홈쇼핑 방송이 올해 9월 시작되면 매출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작년엔 약 41만대의 소형 공기청정기가 팔렸고 일본, 유럽 등 26개국에 제품이 들어가 있다. 중소기업이라 대기업처럼 광고비를 못 쓴다. 홈쇼핑에 판매하면 광고가 자동으로 뜨니 그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많이 한다. 독일 홈쇼핑에선 7년 전 대박을 쳤지만 그 나라 문화를 몰라 AS 부분에서 대응이 미흡했다. 그간 많은 경험을 했으니 이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에선 우리 회사 제품이랑 똑같은 짝퉁이 이미 나왔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공기청정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 물건이 적게 들어간다. 동남아 국가들엔 10년은 더 있어야 (수출)하지 않겠나.”
 

-요즘 주로 입소문을 통해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는데 애프터서비스(AS)를 우려할 것 같다.

“우린 AS 접수를 받으면 해결까지 하루 걸린다. 제품 불량률이 0.001%로 거의 없다. 처음부터 불량률이 0%대였던 것은 아니다. 10년 전 불량률이 20%였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같은 문제를 십 년 이상 해결하다보니 데이터가 쌓였고 불량이 확 줄었다. AS 접수된 내용 보면 부품 불량이 대부분이다. 부품 불량은 우리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요즘은 부품이 잘 나와서 AS 접수가 별로 없다. 우리가 삼성 냉장고 사면 불량률 거의 없지 않나.”


-공기청정기하면 크고 시끄럽고 비싸고 유지비 많이 들어간다는 편견이 있다.

“공기청정기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보통 대기업들은 필터방식과 음이온 방식을, 중소기업은 필터만 하거나 저희처럼 음이온 방식을 택한다. 필터방식은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고 지속적으로 필터를 교체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한 달에 5만원, 10만원 내야하는 렌탈 비용도 만만찮고. 우리 제품은 음이온 방식 공기청정기로 물로 씻어서 그릇을 씻듯이 사용하기 때문에 유지비가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유지비가 안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되나.

“어떤 공기청정기는 애들 방에 갖다놓기가 부담스럽게 큰 부피를 차지하고 유지비가 많이 든다. 애들 방은 침대, 책상 놓고 나면 공간이 매우 좁다. 그래서 일부러 공기청정기를 작게 만들어 공간 활용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에어비타 가정용 소비전력이 1.5w다. 텔레비전을 보고 코드를 꽂아 놓는 수준이 1.5w정도니 누진세 포함하면 전기세가 100~200원 미만이다.”


-공간 활용 때문에 작게 만들었나.

“그렇다. 크게 만드는 것은 쉽다. 작게 만드는 기술이 훨씬 힘들고 원가도 더 들어간다. 공기청정기를 크게 만드는 손으로 조이고 조립하면 된다. 하지만 작게 만들려면 핀센트로 집어서 볼트로 박는 등 공정이 복잡해진다.”


-음이온 공기 청정기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가 폭포수나 산 중턱에 가면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이 있는데 그것이 음이온 효과다. 우리 제품에 AICI(복합 플라즈마 이온방식)란 독자적인 음이온을 발생시키는 기술을 적용했다. 정부에서 기술 인증도 우리가 처음 받았다. 공기정화, 탈취, 애완동물 냄새, 인플루엔자 H5N1형 바이러스 등을 없애준다. 비염이 있는 분이 우리 공기청정기를 쓴 뒤 효과가 있었다며 감사의 손 편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제일 기억나는 사람은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한국 사람인데 비염이라 휴지 한 통 쓰고 잠 못 잤다가 우리 제품을 쓰고 편하게 잤다며 편지를 보내와 정말 감동받았다. ‘제가 진짜 어렵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럴 땐 잘 했구나’ 싶었다.”


-연구소, 공장이 이 건물 안에 모두 있나.

“공장이 여기도 있고 인천 남동공단에도 있다.”

-시기적으로 창업 아이템을 잘 잡은 것 같다.

“지금은 다 그렇게 말한다(웃음). 17년 전 창업한다고 하니 무슨 공기청정기냐며 다들 미쳤다고 했다. 앞으로 산업이 발전하면 공기는 나빠질 수밖에 없고 ‘그 때가 반드시 온다’는 확신이 있었다. 창업을 한 사람들은 소신이 있어야 한다. 만약 17년 전 공기청정기 사업을 안했고 지금 (공기청정기) 창업을 한다면 실패했을 것 같다. ‘정말 망할 곳은 망한다.’ 17년 세월 중 우여곡절이 많았다.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면서 지금의 에어비타를 만들었다. 창업을 하려는 사람은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 이길순 대표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에어비타>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간다는 자체가 리더의 자질 아닌가.

“내 자신이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리바리한 사람이 에어비타를 창업하면서 인생이 확 바뀌었다. 보는 관점과 사람 대하는 모습이 바뀌면서 목표와 꿈까지 바뀌었다. 그렇게 변하는 과정이 창업이다. 창업이 처음엔 정말 힘들다. 아침에 해가 안 떴으면 좋겠고 자전거 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설령 앞에 낭떠러지가 있어도 앞으로 가야한다는 것. 1~2년 안에 빨리 성공해 상장시키는 사람도 있지만 10년 만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빨리 성공하느냐 늦게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해서 그렇지 내 생각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나처럼 평범하고 어쩌면 모자랄 수 있는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한다면.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그것을 교훈삼아 앞을 내다봐야 한다. 등산을 해도 그렇다. ‘언제 저기 가나’ 그래도 한발 한발 가면 정상에 도달한다. ‘모든 것은 마음의 한발이다’는 생각으로 한발 한발, 뚜벅뚜벅 갔을 때 세상의 문이 열리고 내가 그 세상을 열어야 내 세상이 되는 것이다. 남이 열어주는 세상은 내 세상이 아니라 남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착각하고 있다.”

-대통령이 각 교육현장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앞으로 (학교에 제품이 들어가는) 혜택이 있으면 좋겠다(웃음). 올해 공기청정기 시장 상황을 긍정적으로 본다. 얼마 전 시골 갔다가 서울 들어왔는데 공기 중에 뽀얀 띠가 있었다. 청계산 가서 내려다보면 서울이 뿌옇게 보이니 너무 안 좋다. 올 들어 초미세먼지가 갑자기 심해졌다. 회사는 매출이 올라가니까 좋은데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다.”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뭐고,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는가.

“정말 힘들면 아침저녁으로 108배를 한다. 독일 Qvc홈쇼핑에 물건 들어가기 한 달 전 새벽 갑자기 공장에 불이 두 번 났다. 선적 30일을 앞두고 불이 나니 기가 막혔다. 지금 사진보면 뚱뚱하게 나오지 않나? 실제 그때는 살이 7kg이나 빠졌다. 맘고생을 많이 했고 막막하고 벙 찔 때 108배를 하면서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술을 못 마시고 덩치도 쪼그마니 사람들이 (나를) 괄시하고 무시하더라. 제조업은 주로 남자들이 많아 ‘형님 아우 동생’ 하는데 (내가) 오빠라고 할 수도 없고. 조립 공정에 대해 잘 몰라 사기도 당했고 공장에서 두세 번 쫒겨나기도 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영원한 숙제다. 여성 CEO로서 어떻게 해결하나.

“아이 키울 때 너무 버둥거렸고 둘째 아들 같은 경우 영양실조가 걸릴 정도로 못 챙겨줬다. 애가 삐쩍 마르고 마른버짐 아시나? 아이가 마른버짐 피고 그런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 울면서 회사 다녔다. 퇴근하면서 울면서 오고 출근하면서 울면서 갔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다 컸다. 버짐 폈던 아이는 지금 ‘돼지’가 돼 있다(웃음). 그땐 그게 마음이 아파서 (일을) 포기해야하나 생각을 솔직히 했다. 지금은 포기 안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기 몫을 다해주고 있다. 그 당시의 현실이 오늘이 다가 아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어제가 있었고 내일이 있다. 애들은 어린 시절 힘든 과정 기억도 못한다. 비결이라면 우리 애들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했다. 눈만 아이들과 마주치면 사랑한다고 하고 짬짬이 전화해서 입에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미안해와 사랑해를. 아이를 키워보니까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라면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지나칠 정도로 남발하라고 말해준다. 못 챙겨줬지만 해줄 것이 말 밖에 없었고 아이들 손 잡아주고 안아주고 그거밖에 한 것 없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자기 수준에서 이해를 한다. 직장 여성들이 아이가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일이 잘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얘기하면 아이 생각에 말이 귀에 안 들어오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아이 하나는 대학생, 하나는 사회인이 됐다. 그때 밥 못 챙겨준 것 기억도 못할뿐더러 우리 아들은 좋은 추억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 아들이 내가 못해줘서인지 음식도 잘한다(웃음).”

-창업해서 여성 CEO로 살아남기까지 힘들었을 것 같다.

“사업한 지 17년 됐다. 그간 나를 아프게 하고 떠난 직원이 많다. 그땐 그 애들이 너무 밉고 이상했다.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니 결국 내 잘못이었다. 그 직원의 부족함을 채워줬어야 했는데 나의 부족함을 채워 달라고만 했다. 그 친구가 내 등에 칼 꽂고 갔다. 그것을 깨닫는 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또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니 제조업 특유의 거친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형님 아우 동생 그거 안하고 나 홀로 뚜벅뚜벅 걸었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 안 좋은 것을 빨리 지우는 훈련이 필요했다. 나쁜 건 빨리 지우는 편이다. 지금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나를 잘 아는 선배들이 ‘이 대표는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울고 있다’고 말하더라. ‘눈이 마음의 창’이라는데 눈물이 가슴으로 흐른다고 한다. 나쁜 생각을 되도록 안 하려고 한다. 나쁜 생각하면 결국 그 생각이 나를 끄집어 데려가고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나쁜 생각이 들면 나는 손을 이렇게 친다(이 대표는 손뼉을 쳤다). 영화 찍으면서 ‘큐’ 하는데 손뼉 치면서 다른 생각으로 돌린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경우도 한 번 해보시기 바란다. 자꾸 생각이 미워하는 사람으로 가면 그 사람 행동이 더 나빠진다. 내 생각이 그 사람 생각으로 만들어지니 좋은 생각으로 바꾸면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그거 안하면 우울증 걸린다(웃음).”


-에어비타가 독일 홈쇼핑 진출 등 해외 공략부터 했는데 전략이 있었나.
 

“그땐 전략인 줄 몰랐다. 한국에서 제품 출시할 당시 ‘요만한 것이 공기청정기냐’며 다들 무시했다. 그래서 해외서 인정받고 들어온다면 인정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마음으로 해외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국내 고객이 많다.”

-2015년 세계여성발명대회 최우수상을 받는 등 수상 경력이 눈에 띈다. 발명의 원동력과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끊임없이 생각하고 훈련하면 저절로 되는 것 같다. 따로 교육 받지 않았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습관이 있다. 처음에 발명가란 생각 안했다. 발명은 생활 속에서 나온다. 내가 흰머리 염색을 하러 미용실 가면 친구한테 샴푸가 염색까지 되면 좋겠다고 얘기도 하고 예전 파마할 때 머리 펴는 게 목이 아플 정도로 무거워 그것도 ‘스프링 넣어서 가볍게 만들면 좋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디어로 나온 우리 제품이 ‘데이즈’다. 여성분들이 다 가지고 있는 솔인데 솔 잘못 쓰면 얼굴 가렵지 않나. 세균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이 생기는 것이 발명의 시작이다. 시장에 (솔을 소독하는) 그런 제품이 없어서 내가 만들었다. 생활하다 조금씩 바꿔가니 너무 재미있고 발명까지 됐다.”


-가정주부가 창업을 하니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좋은 점이 훨씬 많다. 힘들어 울면서 다녔지만 그게 지나고 보니 (가정주부 출신 창업자) 좋은 장점이고 힘이 됐다. 자식이 1순위다. 애들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못 버텼을 것 같다. 내가 포기하면 우리 애들이 나중에 보고 배울 것이 없을 것이고 (자식들이) 버티는 힘이다. 엄마도 포기한 세상을 자식들이 왜 가야하는지 내게 묻는다면 그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남편 분 얘기는 없으신데.
 

“남편한테 채였다(웃음). 십년 동안 내가 힘들 때 못 버티시더라. 내가 봤을 때 그 분이 복이 없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내가 딴엔 (결혼생활을) 잘하려고 해도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해외출장, 전시회가 많아 집을 많이 비웠다. 체력이 달려서 원하는 대로 잘 못해주니…. 그래서 남편보다 자식을 선택했다. 이혼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다.”


-여성 CEO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은?

“여성이기 때문에 장점이 많은 것 같다. 사물을 볼 때 꼼꼼하게 보고 생활의 아이디어가 많은 것이 장점이다. 디자인, 홈페이지에도 섬세하고 예쁘게 만들 수도 있고. 남성들이 선택한 제품 디자인을 보면 남성적인 느낌이 많이 난다. 우린 여성 고객이 훨씬 많다. 가정용과 차량용이 있으면 가정용이 훨씬 많이 팔렸다.”


-에어비타의 여성 직원 수는?

“딱 50대 50이다. 첨엔 다 여자들로 뽑았는데 일이 안됐다. 무역부 여직원 한 분이 생각나는데 정말 일 잘했다. 독일 수출할 당시 불났을 때 1년 호흡을 같이 맞춘 그 친구가 사고 수습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두 번째 오더가 들어오니 그 친구가 너무 힘들어서인지 말도 없이 안 나오더라. 불나고 정말 일이 힘들었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지만 처음 오더가 힘든 것이지 두 번째는 더 수월한데 그때 정말 충격을 받았다. 여직원들만 있으니 힘쓰는 일을 시키기 어려웠고, 그래서 남자 직원들을 뽑았고. 세상은 같이 가야 하는 것 같다. 누가 많아도 부족해도 안 되고 균형이 맞아야 할 것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들 한다. 준비나 계획은 있는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음이온 공기청정기에 데이터를 적용하려고 한다.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쉽지 않아서 고민이 많다. 한 단계씩 준비하고 있고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 제품 불량률이 처음부터 0%가 된 것이 아니라 계속 줄여 나간 것이다. 스마트폰처럼 항균과 미세먼지 제거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제품을 선보일 것이며 기존 공기청정기 필터보다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다. 소형공기청정기말고도 다른 사업군으로 넓힐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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