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노믹스 설계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J노믹스 설계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 권호 기자
  • 승인 2017.05.2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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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5월 25일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나서고 있다.<뉴시스>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문재인 정부 대통령정책실장에 임명되면서 재벌개혁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강한 드라이브가 예상된다. 장 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재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가 그동안 줄기차게 재벌개혁을 외쳐왔기 때문이다.

장 실장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재벌 개혁에 앞장서온 인물이다. 시민사회단체를 이끌며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를 비판하고 소액주주를 모아 재벌 대기업 주주총회에 참석해 경영진과 맞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장 실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재벌의 힘은 더 강해졌고, 아직도 정경유착이라는 세상이 변하기 참 어려운 것 같다”며 “세월이 흐른다고 세상이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정의로운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적기도 했다. 그의 강한 개혁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전자 주총서 13시간 넘게 발언

장하성 실장은 재벌 총수의 전횡이 극심했던 1990년대 재벌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왔다. 1997년에는 참여연대에서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으면서 삼성그룹의 부당 내부거래와 지배구조 문제를 정면에서 비판했다.

1998년에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를 대신해 무려 13시간 30분 동안 경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삼성 저격수’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소액주주 대표소송을 통해 2001년 12월 이건희 회장과 임원들이 총 977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승소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후 ‘장하성펀드’를 만들어 지배구조가 모범적인 우량기업에 투자하는 경제민주화 운동을 벌이며 시민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그는 1953년 광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주립대 경제학 석사를 거쳐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했으며, 2012년 18대 대선 땐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 국민정책 본부장을 맡아 정책 분야 공약 전반을 총괄했다.

▲장하성 실장이 한국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쓴 책.


저서로 본 그의 경제시각

재벌개혁론자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되면서 그의 저서인 <왜 분노해야 하는가>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장 실장은 이 책에서 한국은 ‘원천적 분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재분배’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의 불평등 구조는 재분배만으로 교정할 수 있는 범주를 이미 넘어선 정도로 심각하고 구조화되었다”며 “따라서 ‘재분배’ 이전에 원천적 ‘분배’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이 더욱 시급하고 근본적인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3.4%에서 2014년에는 10.4%로 증가했다. 이렇게 사회복지 지출을 빠르게 늘려왔음에도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이유는 원천적인 분배의 불평등이 악화되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그는 “재분배 정책만으로 지금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며, 사회복지지출을 계속해서 더 빠르게 늘려간다고 해도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린다”며 “그러므로 원천적 분배, 즉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을 직접적으로 해소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 원인으로 장 실장은 대기업 독식 구조에 주목했다. 장 실장은 “경제가 성장했는데도 보통 국민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았고 소득 불평등은 더욱 악화되었다면 성장의 성과가 임금으로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국민총소득 중에서 가계로 분배된 몫이 지난 20년 동안 크게 줄었다.

경제성장의 성과가 국민에게 분배되지 않고 대기업이 소유하는 기현상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해법으로 그는 중소기업 임금인상을 유도, 대기업과 임금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실장은 “초과 내부유보세 면제 기준을 투자보다는 하청기업 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한정해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과 내부유보세는 과도한 사내 유보금을 쌓아 놓는 기업에 세금을 물리는 것을 말한다.

장 실장의 재벌개혁에 대한 견해는 공정거래위원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그것과 거의 같다. 김 위원장이 만든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도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불공정거래를 감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장 실장은 앞으로 경제팀을 막후에서 이끌면서 한국 사회의 분배 개선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전망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재벌 논리를 두둔하는 정부 내 관료들을 견제하는 역할도 예상된다.

다만, 재벌 개혁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재벌 때리기’식 개혁에는 반대하는 만큼 재벌 해체라는 거대 담론에 치중하기보다는 불공정한 재벌 행태를 바로 잡는데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 앞장선 호남 명문가 출신

장하성 실장의 집안은 독립운동가부터 장관, 교수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루 활약하는 유명 인사들을 배출한 호남 명문가다. 장 실장 집안은 전남 지역의 유지로 구한말 전남 신안 장산도 일대 염전을 일구며 논밭을 가진 만석꾼 부호였다.

그의 집안은 1915년쯤 광주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 증조할아버지 장진섭은 일찍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식들을 외지로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장 실장의 할아버지뻘이자 장진섭의 셋째 아들 장홍재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당해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장홍재가 광주학생운동에 앞장섰던 것처럼 다른 형제들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아들형제들 모두 독립운동과 연관됐다. 장홍재의 첫째 형인 장병준은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 측근으로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이었고, 넷째 동생 장홍염은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나와 독립군에 몸담았다.

장홍염은 광복 후 반민특위 검사와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다. 둘째 형인 장병삼은 국내에서 철도공무원을 했지만, 형과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다 수차례 일본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다.

독립 이후 장 실장 집안에서는 숱한 문인과 관료들이 배출됐다. 장병상의 네 아들 중 맏이인 장정식은 전남대 의대 교수였고, 장하진 전 장관·장하성 실장의 아버지 장축식(83)은 한국은행을 다니다 도의원을 지냈다.

셋째인 장영식(80)은 장면 정부에서 경제비서관을 하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때 두 번이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장 실장의 누나는 2005년부터 3년간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장하진 전 장관이다. 장하진 전 장관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여성개발원장 등을 지낸 여성학자다.

동생인 장하원은 하나금융연구소장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등을 지낸 뒤 사모펀드를 운용했다. 또 다른 동생인 장하경은 현재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촌 형제들도 이력이 화려하다.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벌이며 한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된 장하준 교수가 사촌 동생이다. 장하준 교수의 친동생인 장하석도 케임브리지대학 과학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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