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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9 19:07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의 ‘깡다구 경영론’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의 ‘깡다구 경영론’
  • 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 승인 2017.05.04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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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안아야 돈 벌어…성공하려면 정직·성실에 행운 따라야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2007년 봄 휠라글로벌을 인수했다. 글로벌 브랜드 휠라의 오너가 된 것이다. 그 후 글로벌 넘버원 골프공 브랜드 타이틀리스트와 넘버원 골프화 브랜드 풋조이를 만드는 글로벌 기업 아쿠쉬네트를 12억 달러에 인수했다.

휠라글로벌을 인수할 당시 그는 각국 지사장에게서 종신(life time) 로열티 총액의 50%를 현재가치로 환산, 미리 받아내 인수자금을 마련했다. 휠라 브랜드의 미래가치를 현가로 전환한 발상의 전환이 그에게 글로벌 브랜드의 오너가 되는 행운을 안긴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는 휠라코리아의 지사장을 지냈다. 그 시절 이미 고액 연봉자였다. <내가 연봉 18억원을 받는 이유>라는 책도 냈다. 그러다 한국지사의 오너가 됐다. 2005년의 일이다. 당시 그는 경영자 기업인수(Management Buy-out) 방식으로 휠라코리아 지분을 100% 확보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왜 한국에서만큼 휠라 제품을 못 팔까.” 아쉬워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휠라 지주회사의 최대주주인 미국 사모펀드 서버러스가 휠라 글로벌을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수익 악화로 경영이 어려워진 탓이었다.

“라이선스 사업자는 숙명적으로 늘 불안합니다. 계약이 끝나면 본사 측이 라이선스를 회수해 갈까 봐 투자도 과감하게 못해요. 저 역시 오랜 세월 휠라 브랜드 사용권자였지만 상대적 약자로서 불이익을 경험했기에 선 로열티를 받아낸다는 발상을 할 수 있었죠. 상대방으로서는 경영의 안정성에 대한 보장과 선 로열티라는 비용을 맞교환한 셈입니다.”

휠라 글로벌, 은행 대출받아 인수

4분의 3에 달하는 나머지 인수자금은 옛 외환은행에서 조달했다. 그가 휠라 각국 판매법인으로부터 받은 의향서를 들고 갔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해서 인수자금의 대부분을 은행 빚으로 마련하고 선 로열티를 받아 그 빚을 갚아나가는 거래계약이 성사됐다.

이런 방식의 M&A는 당시 한국 금융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은행 돈을 그는 1년이 채 안 돼 갚았다. 리처드 워커 당시 외환은행장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기회를 우리에게 줘서 고맙습니다.”

자본력도 없이 4억 달러에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휠라 글로벌을 인수한 건 결국 그의 창조적인 전략 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윤윤수 표 아이디어와 전략의 원천은 무엇인가.

“경영대학원에 가면 남이 거둔 성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창의적·혁신적인 전략도 한번 햇빛을 보면 생명력을 잃어 버려요. 결국 성공 전략은 자기 경험에서 나옵니다.

상사가 어떤 지시를 할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깡다구를 부리고 본때를 보여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는 거죠. 당연히 실패도 합니다. 그 덕에 겸손해지는 겁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 깡다구가 바로 기업가정신의 바탕이에요. 돈 많은 사람이 돈 버는 게 자본주의의 약점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도 그렇고. 하지만 기업가정신이 있으면 돈 없이도 큰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를 교정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예요.”

한국이 잃어가는 기업가정신의 요체가 도전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글로벌 무대를 누비느라 그가 비행기로 이동한 거리는 무려 700만 마일에 이른다. 그는 “중가 브랜드였던 휠라가 오래된 헤리티지 덕에 새로이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이다(Old is new)’ 전략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휠라는 한때 고가 브랜드였지만 그 후 가격을 내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스포츠웨어를 찾는 젊은이들은 휠라가 그렇게 하락했을 때의 모습을 잘 몰라요. 그래서 오래된 이탈리아 브랜드 휠라의 유산을 보여줬더니 새롭다고 환호를 합니다. 여전히 퍼포먼스를 부각하려는 브랜드들은 추락하고 있죠.”
 


“사업으로 번 돈 25%만 내 것”

윤 회장은 세금 꼬박꼬박 내고 사업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자신은 “세금을 제대로 안 내려 편법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사업으로 번 돈의 25%만 내 것입니다. 나는 수입의 40~50%는 세금으로 내고 25%는 남을 위해서 써요. 세금으로 내는 절반의 돈이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에요. 그 돈은 아예 잊어야 합니다.

자기 사업을 혼자서 일궜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오산입니다. 사업이 현상 유지를 한다면 이미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은 겁니다. 내 수입 중 남의 몫을 인정해야 사업을 문제없이 해나갈 수 있어요.”

그는 남을 위해 쓰는 25%의 돈에 대해 기껏 벌어 남들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근시안적이고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일어날 수 있는 트러블이 바로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무마되는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평화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10년 전 중국·남미·유럽·일본 등의 휠라 판매법인은 무엇을 믿고 그에게 선 로열티를 지급하는 의향서에 서명한 걸까. 휠라코리아 실적으로 보여준 그의 경영 능력과 진실성을 신뢰했기 때문일 것이다. 휠라의 신발 브랜드에 대한 그의 기여도는 90% 정도로 평가된다.

윤 회장은 2012년 2월 서울대 졸업식에 초대 받았다. 오연천 당시 총장에게서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서울대는 ‘농부의 아들’인 그가 젊은 날 세 번 도전했지만 실패한 ‘로망’이었다.

두 번째 도전했을 땐 2지망으로 치의예과에 합격했지만 한 학기 다니고 그만뒀다. 고2 때 폐암으로 세상을 등진 아버지는 투병 중 그의 손을 붙잡고서 살려달라고 매달리셨다고 한다.

치과의사는 생전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길이 아니었다. 이날 단상에 오른 그는 축사를 이렇게 맺었다. “진실성, 성실성 그리고 페어플레이 정신이야말로 여러분이 어느 분야로 나가든 무엇보다 우선하는 삶의 기본 원칙입니다.”

“살아온 이야기의 절반은 실패담”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의 절반은 실패담이라고 말한다. 삼수까지 했지만 서울의대 문턱을 넘지 못한 그는 후기였던 한국외국어대 정외과에 진학한다. 늦깎이 신입생 시절 무기정학을 맞아 두 번째 실패를 겪는다.

서울고 동기가 시험시간에 그의 뒤에 앉아 컨닝을 하다 시험지를 맞바꾼 것이 적발됐다. 그 일로 서울 의대 세 번째 떨어졌을 때보다 더 낙담했다고 그는 말했다.

카추샤로 군 복무를 마친 후 복학을 하려 했지만 돈이 없어 등록기간을 넘겼다. 훗날 통일원 부총리를 지낸 김덕 교수의 도움으로 그는 가까스로 등록을 했다.
나이 서른에 대학 졸업장을 탔다.

외무고시 1차에 합격했지만 비전이 없다는 생각에 2차 시험을 포기하고 해운공사를 거쳐 JC 페니에 취직했다.

여기서 삼성전자 전자레인지 수출 실적으로 이름을 날렸고 이때 신발 수출도 맡았는데, 이 경험이 바탕이 돼 나중에 신발 전문가가 된다. 휠라는 그가 라이선스 사업자로 참여하면서 스포츠화 시장에 진입한다. 제품 포트폴리오에 없던 신발은 그 후 의류보다 더 큰 휠라의 비즈니스가 된다.

서른여섯. 그는 신발 제조업체 (주)화승에 최연소 수출담당 이사로 스카우트된다. 잘나갔지만 3년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로서는 가장 뼈저린 실패였을 것이다.

영화 <ET>가 성공하는 것을 보고 ET 인형을 10만 개 만들어 미국행 배에 선적했지만 한 개도 팔지 못한 탓이었다. 이 일로 그는 회사에 60만 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저작권 법에 무지했던 탓이었다.

2007년 휠라 글로벌을 인수한 후 그는 새 오너 자격으로 휠라 USA의 유통센터를 찾았다. 짧은 연설을 마치고 강당을 빠져나오는데 한 흑인 젊은이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어떻게 하면 당신 같은 사업가가 될 수 있느냐”고 그가 물었다. “우선 정직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그런다고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행운이 같이해야죠. 그런데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행운은 절대 찾아오지 않습니다.”

“일흔셋이지만 20~30대처럼 일해”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성공하는 사람이나 조직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자신의 선택과 결과에 책임을 진다고 썼다. 윤윤수를 성공으로 이끈 습관은 무엇일까.

“근성이 있어야 합니다. 호랑이·사자 같은 포식자는 먹잇감을 물면 살점이 떨어지기 전까지 입을 벌리지 않습니다. 나도 그런 근성이 상당히 있는 편이에요. 근성을 잃지 않고, 우리 나이로 일흔셋이지만 지금도 20~30대처럼 열심히 일합니다.”

그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의 삶의 궤적을 쫓으면서 그는 “나도 가진 것 없이 할 수 있다”고 수없이 되뇌었다고 한다.

그에게 만일 묘비명을 미리 새긴다면 어떻게 쓰겠느냐고 물었다. “‘열심히 일하다 간 사람’이라고 쓰면 족합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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