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반도체 왕국’ 건설 야심
최태원 SK그룹 회장 ‘반도체 왕국’ 건설 야심
  • 윤지훈 기자
  • 승인 2017.05.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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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도시바 인수 추진…충분한 ‘실탄’ 마련 자신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일본 도시바 인수가 그것이다. 인수가 성사되면 SK하이닉스는 단번에 삼성전자와 겨룰만한 힘을 갖게 된다. 최 회장의 승부수가 통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월 20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2회 사회성과인센티브 어워드’에 참석해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뉴시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반도체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 C&C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지만 최태원 회장의 SK하이닉스에 대한 애착은 유별나다. 최 회장은 틈만 나면 경기도 이천에 있는 SK하이닉스 공장을 찾고, R&D(연구개발)에 돈을 물 쓰듯 쏟아 붓는다.

지금이야 SK하이닉스가 SK그룹의 복덩이가 됐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SK그룹은 2011년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SK그룹 내부는 물론, 주변에서도 반대가 극심했다. 주인이 없는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고철덩어리나 다름없다는 게 당시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실제로 반도체의 속성상 진화 주기가 빨라 6개월만 개발이 늦어져도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하이닉스의 경우 공장만 가동하고 있던 터라 연구개발 투자는 꿈도 못 꾸던 시기였다.  

주변 반대 무릅쓰고 하이닉스 인수
 

더구나 반도체에 관한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삼성전자가 떡 버티고 있는 마당에 하이닉스는 설 자리가 없을 거란 지적이 많았다. 반도체 시장은 변화가 심해 후발주자인 하이닉스가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무성했다. 현실도, 미래도 모두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던 것이다.

이런 마당에 최태원 회장이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시가보다 10% 이상 비싼 3조4267억원을 써냈다. 정신 나간 게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삼성이 하니까 괜히 따라 하려는 게 아니냐는 빈정거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최 회장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은 즉흥적인 게 아니었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확신에 따른 것이었다. 그가 하이닉스를 인수하기 훨씬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애초 반도체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하지만 하이닉스 인수 1년여 전부터 반도체를 파고들었다. 전문가들을 불러 얘기를 듣고, 반도체 학습 모임도 만들어 공부에 열중했다. 그러면서 그는 반도체의 가능성을 봤고, 반드시 하이닉스를 인수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고 한다.

도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최 회장의 결단이 옳았다는 것은 실적이 증명한다. 2011년 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3690억원이었다. SK가 인수한 첫해에는 227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당시 업계에서는 “SK가 늪에 빠졌다.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해도 그런 구닥다리 공장으로는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최태원 회장의 무모함이 SK그룹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냉소적인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2013년에는 3조338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1년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나 그것을 SK하이닉스의 ‘실력’으로 보는 이는 드물었다. 전체 시장 상황이 좋아서 반짝 실적을 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실제로 당시 반도체 시장은 호황기를 맞고 있었다.   

무모할 정도로 하이닉스에 돈 쏟아 부어
 

최 회장은 단기 실적에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무모할 정도로 반도체에 돈을 쏟아 부었다. 2015년 8월 최 회장은 2025년까지 SK하이닉스에 46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그룹 규모로 봤을 때 큰 금액이었기 때문에 실제 투자가 이뤄질지 관심이 쏠렸다.

최 회장의 약속은 흔들림 없이 이행되고 있다. 지난해 최 회장은 반도체 불황에도 6조원 넘는 돈을 SK하이닉스에 투자했다. 2011년부터 이렇게 투자 된 돈은 20조원을 넘는다. 최 회장의 통 큰 투자 덕분에 SK하이닉스는 기술력, 경영 측면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

4월 초 반도체 업계를 술렁이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SK하이닉스가 업계 초초로 ‘72단 3차원 낸드플래시’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회사는 D램 분야는 강점이 있으나 낸드플래시 쪽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장 먼저 ‘72단 신화’를 썼으니 업계가 놀랄 만도 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2분기에 36단 128Gb 3D 낸드 공급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48단 256Gb 3D 낸드를 양산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72단’을 개발하기 전까지 최고 적층 기술력을 갖고 있던 곳은 삼성전자와 도시바·웨스턴디지털(64단)이었다. SK하이닉스는 이를 건너뛰고 바로 ‘72단’으로 도약한 것이다. 72단 3차원 낸드는 원가 측면에서 48단에 비해 30% 가량 저렴하고 성능도 20% 넘게 나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도시바 등에 비해 낸드 쪽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 ‘72단’ 개발로 이를 불식시켰다”며 “최태원 회장의 투자가 효과를 내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올해 업황으로 볼 때 SK하이닉스의 매출액은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은 11조원 대에 달할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인 2조50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회사가 잘 나가다보니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올해 1분기 코스피에서 SK하이닉스의 거래량이 가장 많았다. 거래대금은 삼성전자에 이어 2위에 올랐다.?시가총액 2위로 현대자동차보다 앞에 있다. 한때 시장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SK하이닉스가 지금은 ‘백조’가 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최태원 회장이 SK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바꿔나가는데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 인수 5년 만에 에너지·화학그룹에서 종합 정보통신기술(ICT) 수출 기업으로 변모했다.
 

▲ 최태원 회장(맨 오른쪽)이 2015년 8월 하이닉스 이천M14 반도체 공장 준공을 앞두고 생산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SK하이닉스>



SK그룹 내 ICT 계열인 SK텔레콤·SK하이닉스·SK C&C·SK플래닛의 지난해 매출은 37조4000억원, 수출은 17조원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1%를 차지한다. SK하이닉스를 인수한 첫해인 2012년 9조5000억원이던 ICT 계열사 수출이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하이닉스 편입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도시바 인수해 삼성과 일전 벼른다

이는 최태원 회장이 바라는 그림이다. 2004년 그룹 총수에 오른 최 회장은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에너지·화학만으로는 성장이 한계에 부딪치고 결국 서서히 말라죽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SK그룹이 수출은 적은 반면 내수 시장에서 기름 팔고 통신비 받아 돈 버는 ‘우물안 개구리’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럴 때 최 회장은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히 반도체 사업에 진출해 그룹의 비즈니스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최 회장의 승부수가 없었다면 SK그룹이 ICT 수출 기업으로 도약하지 못했을 것이다.

SK그룹 관계자는 “하이닉스 인수 이후 SK그룹은 전혀 새로운 기업이 됐다”며 “최태원 회장의 결단이 옳았다는 게 수출, 실적 등에서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 왕국’ 건설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세계 2위인 도시바 인수를 선언한 것이다.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분야 세계 1위인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하게 된다. 두 회사 점유율을 합칠 경우 시장 점유율은 2016년 말 기준 27.7%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36.1% 점유율을 기록했다.

도시바는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크다. 히다치·도요타 등과 함께 일본의 자존심이다. 한때는 일본의 ‘뇌’로 불리기도 했다.

최 회장이 도시바 인수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사업적으로는 반도체 분야를 확장하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간판 기업을 손에 넣어 SK그룹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계산이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특강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진행 중인 도시바 입찰은 바인딩(binding·법적 구속력이 있는) 입찰이 아니라서 금액에 큰 의미가 없다”며 “바인딩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최근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 후보로 SK하이닉스, 대만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 미국 웨스턴디지털(WD), 실버레이크파트너스 등 4곳으로 압축됐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SK하이닉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폭스콘이다. 폭스콘은 도시바 인수를 위해 3조엔(약 30조원)을 입찰금액으로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일본의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손잡고 3월에 마감된 예비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금액은 폭스콘 보다는 적게 써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은 혼전 양상이다. 도시바의 일본 욧카이공장을 공동 경영하는 WD가 경쟁업체의 주주 참여를 반대하며 ‘독점 교섭권’을 요구하고 있다. 거기다 애플이 폭스콘과 공동으로 지분 투자를 한다는 소문도 업계에 돌고 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대만 폭스콘

폭스콘은 일본 소프트뱅크에도 투자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애플·폭스콘·소프트뱅크 연합군이 현실화 되면 SK하이닉스로선 버거운 상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은 자신감에 차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기술 유출 등을 이유로 딴지만 걸지 않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본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은 미국·중국·일본 등의 정·재계 네트워크가 크고 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원유 사업을 하면서 세계적인 부호들과 친분관계를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활용하면 폭스콘에 뒤지지 않는 연합군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올해 초 ‘딥 체인지’를 강조했다. 비즈니스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그룹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겠다는 얘기다. 그 시발점이 바로 도시바 인수다. 최 회장은 단순한 낸드 기술력 확보에 머물지 않고 4차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최 회장의 도시바 인수 여부는 오는 6월쯤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이 도시바 인수로 ‘반도체 왕국’ 건설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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