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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선 한국리서치 사장, 유리천장을 깨다
정재선 한국리서치 사장, 유리천장을 깨다
  • 조혜승 기자
  • 승인 2017.04.04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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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 1기 입사 30년 만에 CEO 올라…리서치 업계의 ‘롤모델’
▲ 정재선 대표는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유리천장을 깬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한국리서치>

여성이 주도하는 경제를 말하는 ‘여성’(Women)과 ‘경제학’(economics)을 합친 ‘우머노믹스’(Womenomics). 미국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여성 최초로 유력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고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여성 리더의 등장은 낯설지 않다.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의 시장 또한 여성이다. 

하지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에서 한국이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OECD 평균인 56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5점으로 꼴찌였다. 유리천장지수는 고등 교육, 노동력 참여, 급여·보육비용, 남·여 출산휴가권리, 여성 일자리 기회 등의 항목에서 점수를 산출·결합해 결과를 도출한다. 

유리천장이란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보이지 않는 벽이 여성 진급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차단하는 것이다. 여성의 권익이 과거보다 신장됐다지만 고위직 승진이 너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여성들이 능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개인·기업·국가 모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30대 그룹 여성임원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대기업 임원 승진자 1517명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37명으로 남직원은 100명 중 1명꼴로 임원 승진이 되지만 여직원은 1000명 중 1명꼴로 임원이 되는 셈이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정재선 한국리서치 사장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특별한 행운을 누렸다거나 갑자기 CEO가 된 것은 아니다. 직장여성이라면 부닥쳤을 법한 장애물도 만났다. 그가 어떻게 위험한 정글을 헤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었는지 길을 안내하고자 한다. 특히 비즈니스 커리어 확립의 초기 단계 직장여성이 참고할만한 값진 조언을 담았다. <인사이트코리아>는 지난 3월 16일 오후 서울 논현동 한국리서치 본사를 찾아 ‘리서치계의 여성 롤모델’로 불리는 정재선 사장을 만나 여성 CEO로서 느낀 일터의 현실과 고충, 성취 등 진솔한 얘기를 들었다. 

리서치는 흔히 여론조사로 알려진 ‘기계가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리서치의 수요처와 활용 범위는 어떻게 되나.

“사람들이 리서치하면 탄핵 등 정치여론, 선거이슈로만 인식하는데 그것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리서치 수요가 많이 활용되는 곳은 삼성·현대차·LG전자 등 대기업과 노동·복지·여성·교육 등 공공기관이다. 쉽게 말해, 기업·정부·단체·학계 등 소비자 데이터가 필요한 곳엔 리서치가 모두 활용된다고 보면 된다. 주로 신생 업체들이 ARS조사를 하지 우리 같은 전통적인 리서치회사는 ARS 여론조사를 아예 안한다. 쉽게 말해 우리는 전화조사·대면조사를 하지, 조사 대상이 누군지 모르면서 응답률이 낮고 표본이 부정확한 ARS는 전혀 안한다. 리서치조사협회에 가입된 큰 리서치 회사들은 ARS 조사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협약을 맺기도 했고. 전체 매출에서 30%가 기업·공공기관이라면 그 중 10%가량만 선거여론조사와 정책조사다. 선거 여론조사는 1000명을 조사했을 때 1000만원이라면 정책조사는 5억, 10억 수준으로 단가 자체가 달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언론에서 보도를 안 하니 사람들이 우리가 정책조사를 하는지 잘 모르고 여론조사만 하겠거니 하는 거다.”

공채 1기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CEO가 되기까지 비결이 궁금하다. 인생관과 좌우명, 신조는?

“업무에선 항상 목표를 세우고 숫자와 기간을 설정한다. 성공비결은 회사마다 분야가 달라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되는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미래보다는 끊임없는 현재를 중시한다. 너무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지속시킨다. 업무에선 꿈과 목표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꿈은 장기적이고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희망일 뿐 중·단기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목표를 세울 때 시간과 수치를 명확히 설정한다. 예를 들어 ‘살 빼겠다’ 그러면 일주일 후 무엇을 먹고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숫자’로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건강해지고 살 빼고 담배 끊어야지 같은 막연한 생각으론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업무든, 공부든, 일상생활이든 마찬가지다. 

100억원을 벌고 싶다면 10억, 20억이 모여 100억이 되는 거지 100억을 한 방에 벌 순 없지 않나. 단계적으로 목표를 이뤄가야 한다. 꿈이 있다면 꿈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에 기간과 숫자를 설정해 사고하고 단계적으로 이뤄가야 한다. 먼 훗날 이상과 꿈을 생각하기보다는 작은 목표라도 세우고 단계적으로 이룬다면 오히려 꾸준히 성장하고 목표에 근접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리서치 업무를 선택한 계기와 리서치 업무의 매력을 무엇이라고 보나.

“(회사 입사는) 우연이었고 리서치일 한다하면 있어 보여서다(웃음). 대학 졸업 후 여성정책연구소 등 가려고 했고 공적 연구소 형식의 리서치 업계인 줄 알고 입사했는데 그게 아니었고…(웃음). 그런데 해보니까 리서치 일이 매력이 있더라. 남의 눈치 안보는 것도, 똑같은 데이터를 놓고도 설정 기준과 사람에 따라서 보고서의 결론이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창의적인 측면도 있고. 어느 기업에서 문제라고 본 것을 (우리가) 소비자 조사 후에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나오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고 그것이 리서치 업무의 매력이었고. 무엇보다 남녀차별이 없으니까.”

일하는 여성과 남성 모두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지금도 난제다. 직장여성으로서 일과 가정을 어떻게 양립할 수 있었나? 
  

“예나 지금이나 일하는 여성은 애 키울 때 너무 힘든 건 (나 때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너무 여성이 힘들다. 자식 있는 직장 여성은 ‘언제까지 다녀야 하나’를 항상 고민할 것이다. 일과 가정 모두 100% 잘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운 좋게 (나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집안일하고 애를 봐주셔서 회사에선 집안일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양육과 집안일이 직장여성에겐 짐이고 부담이다. 어머니가 애를 봐줘도 애가 아프면 신경 쓰이는 직원도 있지만 애 아프다고 엄마가 직장에서 신경 쓰고 아이 옆에 있다고 (아이가) 안 아픈 건 아니거든. 아이 아플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하고 애들 유치원 발표회 때 할머니가 가는 등 그런 일들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애들에게) 미안하기도 한데. 미안한 만큼 (애들이) 얻은 것도 있지 않을까(웃음).

여성들도 성향과 가치관이 다르니 내 말을 강요할 순 없겠지만 일을 한다면 일과 가정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느냐가 관건일 듯싶다. 정부가 제도 만든다고 애 신경 쓰는 사람이 갑자기 성향이 바뀌고 일, 가정 중립을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애들 맡길 수 있는 정부 인증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시설이 잘 돼 있다면 (직장여성이) 미안한 마음이 덜하겠지. 나도 돌 지난 아기 1년 이상 어린이집에 들어가려고 기다렸어. 그리고 한 가지 더. 부모님이 애 봐주는 것도 한계지. 남편의 적극적인 양육이 필요해. 남편이 양육을 많이 도와줘서 나는 도움이 됐지만 그게 아니면 여성이 감당할 짐이 너무 많다.

결혼할 때 여성이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나는 끝까지 일을 해야겠다’면 보수적이고 일하는데 도움 안줄 것 같은 남자와는 결혼하면 안 돼. 감정도 감정이지만 일하는 여성으로 고충을 덜 겪으려면 애초부터 배우자 선택을 집안일과 양육을 전담하고 자신을 존중하며 동반자로서 대우해주는 남자를 처음부터 선택해야지.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육아 고충을 덜기 위해 오전반차, 오후 반차, 야근 회행 제도(밤 11시까지 일하면 그 다음날 늦게 출근)를 마련해 자유롭게 여직원들이 활용하고 있고. 대부분 직원이 출산휴가와 육아 휴직을 사용해 1년 5개월 만에 복귀하고 있고. 직원 구성이 남녀 3대 7의 비율로 여직원이 월등히 많은데 대부분 애 때문에 (반차 사용으로) 하루 휴가를 안 낼 수 있어 반응이 좋아.”

회사 얘기로 넘어가겠다. 한국리서치의 현안과 최근 이슈는 무엇인가.

“대통령이 탄핵된 후 차기 대선을 앞둔 지금 JTBC, 한국일보, 서울경제와 함께 작업 중이고 우리가 최근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리서처의 전문성이다. 전화조사는 기계가 전화는 걸겠지만 설문문항과 내용 등은 사람이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조사업계도 외국계가 많이 들어왔지만 우린 토종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글로벌한 것’이라는 철칙을 고수해왔다. 각 분야별 전문 리서처 양성을 통해 산업의 전문성, 산업에 대한 이해, 우리 기업이 해외 진출해서 주인이 되는 글로벌을 추구하고 있다. 또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 혁신, (리서치)기술개발과 조사와의 연계성 등을 올해 화두로 삼고 준비 중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혁신을 위해 고려대와 TFT도 구축했다. 

4차 산업혁명이 이미 도래했고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까지 알 순 없지 않나. ‘기계가 책을 보거나, 안 보거나’는 체크할 수 있겠지만 태도, 행동, 느낌, 왜 봤고 앞으로 이미지가 좋아졌는지 등 정성적인 측면은 인공지능이 파악할 수 없다. 그걸 제공하는 일이 리서처의 일이고. 인공지능이 테크닉을 흉내 낼 수 있어도 리서처의 본질인 조사대상에게 물어보고 심층 분석, 제공하는 건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동향, 인심, 마음이 왜 바뀌었는지, 어디로 갈 건지, 그들이 (조사로) 기대한 것은 무엇인지 등은 기계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생각하는 여성 CEO만이 갖는 장점이 있다면.

“이성과 감성이 있는 사원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어떤 직원이 일을 못하면 회사 입장에선 마이너스지만 인성 좋은 직원은 인간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엄마처럼 직원에게 잔소리한다. 여성 CEO의 장점은 투명성이다. 인맥·학연·지연에서 남성보다 깔끔하지 않나? 능력, 성향, 적성을 고려해 직원을 업무배치 한다거나 어떤 가치가 충돌할 때 중립을 지킬 수 있는 것. 술자리에서 남자들은 이상한 얘기도 하지 않나. 우리 회장님은 술을 잘 마시고 (술을)권하기도 하지만 나는 술을 잘 안 마신다(웃음).”

▲ 정재선 대표가 2017년 1월 신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한국리서치>

마지막으로 <인사이트코리아> 독자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국민들이) 여론조사를 많이 아시니 말씀드리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과가 나왔다. 그 결과에 찬성하는 집단과 반대하는 집단 의견이 다르다. 중요한 건 몇 %가 찬성이고 반대인지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국민이 차기 대선 투표 등 (후보)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우리 리서치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정보를 잘 제공해서 정부나 국민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가야하는지, 국민이 무엇을 정말 원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데이터를 제시해 발전하는 기업과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람이다. 

이번 헌재 판결을 통해 느끼는 바가 많다. 헌법 질서가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되도록 만들어 주고 싶다. 자녀들이 대학생이라 대통령 탄핵을 유심히 봤다. 대통령이 탄핵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애들에게 기성세대로서 미안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기존 세대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1남 6녀의 막내로 태어나 외며느리로 시댁 제사를 직접 모신다는 정재선 사장은 보고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주말에도 어린 남매를 데리고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회식 자리에서 “오늘 제사라 일찍 가야 해”라며 개인 일정 때문에 회사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는 직원의 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재선 한국리서치 사장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한국리서치에 공채 1기로 입사해 유통조사부, 기획조사부를 거쳐 기획조사 사업본부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디어 인덱스(Media Index), TGI(Target Group Index) 조사 등 소비자 분야의 신디케이트 조사를 총괄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입사 후 30년 만에 한국리서치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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