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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9 19:07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나 그렇게 못난 놈 아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나 그렇게 못난 놈 아니다”
  • 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 승인 2017.04.04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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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역 벤처 1세대…성공 DNA는 몰입과 집중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벤처 1세대다. 나이 스물여섯 대학 3학년 때 비트컴퓨터를 창업했다. 이립(而立)을 갓 넘긴 나이에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한국에서 기술 기업 붐을 일으킨 청년 사장(boy president)으로 대서특필됐다. 일찍이 세계적인 언론으로부터 난사람이라는 공인을 받은 셈이다. 

2005년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았고, 2013년부터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1988년 설립된 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창립 멤버인데 원년 멤버 중 현역은 그가 유일하다. 지난 2월 두 번째 연임됐다. 
 

호텔 스위트룸에서 하루 17시간씩 일해

비트컴퓨터는 국내 벤처 1호다. 자본금 450만원. 직원 두 명과 하루 17시간씩 일하려고 창업 후 2년 반 동안 서울 맘모스호텔 스위트룸을 사무실로 썼다. 호텔방을 오피스텔처럼 쓴 것이다. 그 시절부터 의료용 소프트웨어를 선택해 개발에 집중했다. 업종 분류표에 소프트웨어 개발업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라 서비스업으로 등록했다. 서비스업은 대출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대학 때 이미 일류 기술자 소리를 들었지만 원 오브 뎀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전인미답이었던 소프트웨어 분야를 택했죠.”

그 후 건물 몇 동 없던 서울 테헤란로로 옮겨 테헤란밸리의 원조 벤처가 됐다. 병역특례 SW 업체 1호 기록도 보유했다. 조 회장은 일찍이 의료정보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했다. 당시만 해도 환자의 80% 이상이 일반 환자였다. 병원은 진료비를 현금으로 받았다. 의사들의 소득이 노출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일부 의사는 비트의 프로그램을 내장한 컴퓨터를 구입하면서 세금계산서 받기를 꺼렸다. 그는 “그 시절 세금계산서를 안 끊었다면 컴퓨터 몇 대는 더 팔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제가 일상이었던 시절 비트컴퓨터가 대기업들과 경쟁해 살아남은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조 회장은 고급 인력을 양성하려 1990년 비트교육센터를 만들었다. 그 덕에 엔지니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만 명 가까운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배출했다.

이른바 조현정 사단이다. 이들은 평생 취업률 100%다. 그는 “수료자의 90%는 입도선매(立稻先賣)된다”고 말했다. 논바닥에 서 있는 벼를 미리 돈 받고 팔듯이 수료도 하기 전 직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비트스쿨로 개명한 이곳 출신 개발자들의 국부 창출에 대한 기여도를 그는 3년 전 2조2600억원으로 추산했다. 비트스쿨은 적자 사업이다. 적자는 의료정보 전문기업인 비트컴퓨터가 메워왔다.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양성은 어차피 사회공헌 활동으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벤처 생태계 개선이다. 

“기업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창의적인 양질의 인력 확보입니다. 소프트웨어 업계가 잘되려면 뛰어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많아야 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소프트웨어 업계 전체의 상황이 좋아야 개별 기업의 실적도 좋아져요. 그러면 다시 업계가 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나죠.”


“모든 기업이 벤처정신 재무장해야”
 

교육할 공간이 필요해 찾다 보니 부동산에 눈뜨게 됐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교육 사업은 오히려 잘됐다. 그래서 비트컴퓨터는 IMF 체제 때도 흑자를 냈다. 경제가 호전되면서 부동산 값이 뛰었다. 부동산 가치 상승 덕에 그는 교육사업의 적자를 만회할 수 있었다. 

그는 벤처 정신이 곧 기업가 정신(entrepr eneurship)이라고 주장한다. 이때의 기업가(起業家)가 창업가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창업가는 물론 창업공신이랄까 창업의 공조자를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봅니다. 나아가 기업가 정신 내지 벤처 정신은 기업의 일반 구성원도 필요합니다. 우리나라가 도약하려면 모든 기업이 벤처 정신으로 재무장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달랑 백사장 항공사진과 조선소 설계도를 들고 유조선을 수주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야말로 최고의 벤처기업가라고 치켜세웠다.

“벤처란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기술과 아이디어를 도구로 도전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자수성가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전자제품 기술자로 일하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자신의 성공 DNA로 그는 몰입과 집중을 꼽았다. 

“몰입과 집중을 남보다 잘하는 편입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일 때 더 신이 나죠. 돈에 대한 집착은 없습니다. 바닥을 경험했기에 감사할 줄 알고요.”

몰입에 방해 되는 건 아예 차단해 버린다. 일주일의 하루 반을 할애해야 했던 교회 생활을 젊은 날 그래서 끊었다. 대학 시절 호텔 방에서 창업을 한 것도 24시간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였다. 

“1만 시간의 법칙에 저는 동의해요. 비트스쿨은 6개월 간 1800시간 집중적으로 교육합니다. 수강자들이 앞서 대학 4년 동안 이수한 전공필수 시간의 두 배에 해당하죠.”

그는 나이 서른 이후 10년 주기로 삶의 목표를 정했다. 30대엔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40대엔 상생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주력했다. 50대 이후 그는 멘토링에 몰두하고 있다.  SW업계 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이 분야 구루(guru·권위자) 역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 서른엔 자신 얼굴에 책임져야”

 ‘링컨은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서른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리라.’

고교 시절 링컨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고서 그가 한 결심이다.  경제적으로 쪼들렸지만 ‘나 그렇게 못난 놈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 절박했던 시절 읽은 링컨 자서전에서 ‘40세가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40대 얼굴 책임론을 접했다. 

“빨리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 이야기를 30세 책임론으로 수정했죠.”
 
그는 젊은 날 한쪽 귀가 안 들리는 데도 우겨서 군복무를 했다. 미국 영주권자인 그의 두 아들도 현역으로 복무했다. 눈이 나쁜 둘째는 현역으로 입대하려 인공렌즈 삽입술까지 받았다. 그는 두 아들을 군에 보내고서 1000만원을 국방성금으로 냈다고 했다. 두 아들이 군에서 받은 급여 총액과 맞먹는 액수다. 

“여전한 군기 사고는 불행한 일이고, 잘못된 병영 문화는 바로잡아야죠. 하지만 자식을 강하게 키우려면 군에 보내야 합니다.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떠나 올바른 국가관을 익히고 강인한 정신을 기를 기회지요. 군에 있는 동안 불합리한 일들을 겪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비합리적이기는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의무 복무는 불합리한 사회에 미리 적응하도록 예방주사를 맞는 격이죠.” 

그는 군이 미래 인재를 키우는 인재양성소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재원은 사병들이 받는 급여로 충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를 이뤄 사병 급여를 교육훈련비로 전용하는 겁니다. 평균 월 10만원으로 잡을 때 이 돈이면 인성 교육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소프트웨어(SW) 교육 등 기술교육도 시킬 수 있어요. 징병제에 따른 의무복무를 국가와 개인의 성장 기회로 활용하는 거죠.” 

이런 그의 발상은 이스라엘의 탈피오트(talpiot·히브리어로 최고 중 최고란 뜻) 제도를 연상시킨다. 탈피오트는 우수 인재가 군복무 기간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한 이스라엘의 독특한 군복무제도다.

이런 제도와는 무관하지만 그의 장남 조재석씨의 복무 사례는 그 가능성을 시사한다. 조씨는 컴퓨터과학의 명문인 미 카네기멜론대 재학 중 입대해 육군본부 정보체계관리단에서 프로그램 운용병으로 근무했다. 전역할 때 육군 해킹 대응 체계의 성능을 개선해 예산을 절감한 공로로 참모총장 표창장을 받았다. 

그는 검정고시 출신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어 중학교를 중퇴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전자제품 기술자로 일하다 검정고시를 쳐 일반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시험 83일 남기고 검정고시 독학
 

검정고시는 시험 83일을 앞두고 독학을 했다. 한여름 단열도 안 되는 블록 벽돌집 골방에서 헌책방서 구한 교재에 매달렸다. 엉덩이가 짓물러 방바닥에 앉을 수가 없었다. 베개 위에 앉아 엉덩이를 바닥에서 떨어뜨렸다. 그렇게 공부해 서울 용문고에 들어갔고 졸업 후 인하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한때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비대위원을 지냈다. 그에게 정치권에 들어가 정책을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이 있는지 물은 일이 있다. 그는 과거처럼 정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 하는 사람은 철저히 플러스섬 게임을 합니다. 윈윈을 추구하는 거죠. 반면 정치는 루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에요. 경쟁자를 죽여야 내가 살죠.”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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