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떤 ‘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나
나는 지금 어떤 ‘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나
  • 김혜영 인사이트코리아 전문위원
  • 승인 2017.04.04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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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싸우는 온순한 놈과 사나운 놈 중 선택해야

#. 개 이야기1

한 제자가 붓다에게 물었다.
“제 안에는 마치 두 마리 개가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마리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우며 온순한 놈이고, 다른 한 마리는 아주 사납고 성질이 나쁘며 매사에 부정적인 놈입니다. 이 두 마리가 항상 제 안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녀석이 이기게 될까요?”
붓다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는 아주 짧은 한 마디를 건넸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다.”
긍정적인 개와 부정적인 개, 둘 중에 누구에게 먹이를 줘야 할지 결심해야 한다.
오늘! 나는 어떤 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가? 어떤 개에게 먹이를 주고 싶은가?
내적 갈등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부정적인 개에게 쉽게 먹이를 준다. 긍정적인 개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왠지 자신이 바보 같고, 나약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 마음에서다. 그래서 긍정적인 개에게 줄 먹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지 않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긍정적인 개가 자신 안에서 굶어 죽는다면, 그 개를 키우던 자신도 머지않아 죽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개가 자신 안에서 굶어 죽는다면, 그 개를 키우던 자신은 더 아름다운 삶의 가치들을 얻게 된다. 부인할 수 없는 이 사실 앞에서 오늘 나는 어떤 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가? 

#. 개 이야기2

아버지가 키우는 개는 원래 서울 압구정동의 한 부유한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아파트 안에서 키워졌던 그 강아지는 주인에게 버림받고, 지인을 통해 시골집 아버지 집으로 오게 되었다. 개 전용 우유를 먹고, 전용 치약과 칫솔,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귀하게 자라던 강아지는 한순간에 시골집 마당에서 집을 지키는 똥개 신세가 되었다. 칠순이 넘은 아버지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시는 쪽에 더 가깝다. 생명 있는 것을 갖다놨으니 어쩔 수 없이 키우는 것이다. 당연히 시골집에 온 후로 개는 관리를 받지 못했다. 귀한 품종의 개는 그렇게 시골 똥개가 되었다. 

어느 날, 일 나가셨던 아버지가 이웃 어른과 함께 집에 들르셨다. 아버지와 함께 온 외부 사람을 향해 개는 앙칼지게 짖어댔다. 개 짓는 소리가 싫으신 아버지는 집 안에 들어가다 말고 대문 앞에 있던 빗자루로 땅과 개집을 번갈아 내리치며 호통을 치셨다. 
“이 망할 놈의 개새끼~ 주인도 몰라보고 어디서 시끄럽게 짖어대. 조용히 못해?”
개는 꼬리를 감추며 자기 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빗자루를 내려놓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개는 다시 집 밖으로 나와 거세게 짖어댔다. 함께 온 낯선 외부 사람을 향해서다. 그 때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 어르신이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마당에 있던 빗자루를 집어 들고는 개를 위협하며 때리시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망할 놈의 개새끼~ 사람도 못 알아보고 그리 짖어 대냐? 어?” 

참 이상했다. 왜 낯선 외부 사람이 우리 개를 그렇게 막 대하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주인이 막 대하니 누구라도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그 개가 처음에 살던 아파트에서 주인 품에 안겨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낯선 손님이 그렇게 막 대할 수 있었을까? 그 개가 품종을 알 수 없는 똥개였다 할지라도 주인에게 사랑받고, 주인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목격했다면 누구라도 막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마음엔 없어도 예쁘다고 말하며 한 번쯤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주인이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객이 소중히 여기는 법은 거의 없다. 주인이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객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함부로 대한다.   

이 관점을 자기 자신에게 견주어 볼 필요가 있다.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하면 다른 이들도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게 된다. 습관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함부로 대하는 말을 내뱉는다. “제가 하는 게 그렇죠 뭐….” “제가 뭐 딱히 잘 하는 게 없어서요.” “저는 왜 이것밖에 되지 않을까요?” “왜 저는 항상 되는 일이 없는 건가요?” “왜 다들 잘되는데 저만 이 지경인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들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내용을 내뱉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하지만 이런 말은 자신의 겸손함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부족함에 솔직한 것도 아니다. 자기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은 앞서 일화에서 개를 때렸던 마당에 세워진 빗자루들이다. 이 빗자루를 들어서 자신을 내리침으로 겸손한 척을 한다거나 암묵적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단지 자신에 대해 표현할 때, 자기 스스로의 소중함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감사한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를 권하고 싶다. 자신의 가치를 세워주는 것은 대단한 직위도 학위도 주위사람들의 박수도 아니다. 스스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 개 이야기3

필자는 결혼과 동시에 대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3월 1일에 결혼식을 하고, 3월 2일부터 대학원 개강과 함께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시댁은 파주의 조용한 동네에 위치하고 있기에 밤 9시 이후부터는 동네를 지나다니는 사람 한명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 우리 부부는 서울로 대학원을 다녔다. 그래서 학업과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늦은 시간에 함께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밤 10시쯤 서울에서 버스를 타면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시댁에 도착한다.

마지막 좌석버스가 종점에 도착하고 우리 부부가 버스에서 내려 동네에 접어들면 동네 여기저기에서 개들이 일제히 짖어댔다. 자정 무렵에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는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렸다. 너무나 소란스러운 개 짖는 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잠에서 깰까봐 우리 부부는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다. 내 집 마당에 들어가도 동네 개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짖어댔다. 대학원 생활 2년간 반복되는 이런 상황이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도둑으로부터 자신의 주인집을 지키고자 하는 게 개들의 사명인 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단 한가지였다.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7분 정도. 뛰면 4~5분 정도 소요됐다. 거의 매일 밤 12시가 되면 동네 수많은 개들은 그렇게 계속 짖어댔다.

우리 집에 들어가는데 왜 저렇게나 짖어대는지, 쟤네들은 지치지도 않고 익숙해지지도 않는지 화가 날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짖어대는 개들 한 마리 한 마리 찾아가서 해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우리 부부가 그 개들을 잠잠하게 하기 위해 개가 있는 집집마다 찾아가 “우리는 너희 집에 들어가지 않아. 우리는 그냥 우리 집으로 가는 거야~ 그러니 제발 짖지 말고 조용히 해!”라고 일일이 해명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참으로 웃기는 일이고,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이런 상황은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사회 속 대인관계에서 혹은 업무적인 상황에서 때로는 많은 잡음들이 들리게 된다. 타인의 기대와 요구 그리고 부담스러운 말들이 주위에 즐비하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괴로워하고 좌절한다. 억울한 생각에 사로잡혀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서 해명하거나, 한 가지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서 바꾸거나 바로잡고자 애쓰게 된다. 하나하나 짚고 곱씹고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최상의 방법일까? 

그러나 그렇게 했던 것이 무의미하게 치부되거나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차피 타인의 기대와 요구, 부담스러운 말에 대한 상황은 바뀌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오히려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들이 있다. 자신의 주위에 둘러싸인 잡음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하거나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하나하나 다 해명해 짚고 넘어가려하지 않기를 권하고 싶다. 

주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는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말을 마음에 담아 둘 필요는 없다. 밤 12시에 수많은 개들이 짖어댈 때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가야할 자기 집으로 묵묵히 가길 바란다. 올곧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더 수월하고도 탁월한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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