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속 썩이는 내 자식 언제나 철 들려나
맨날 속 썩이는 내 자식 언제나 철 들려나
  • 박상기 전문위원 겸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 승인 2017.03.07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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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남매 다둥이 아빠의 ‘자녀와의 협상 경험’

자녀와의 협상은 어렵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상대가 내 자녀’라는 점 때문이다.

▲ <일러스트: 알트이미지>

고3 딸, 고1 딸, 중1 딸, 초3 딸, 초1 아들, 다섯 살 막내아들. 난 6남매의 아빠다. 그러면서 직업은 네고티스트, 즉, 협상전문가다.

수많은 협상 강의를 했고, 꽤 많은 기업들의 골치 아픈 협상들을 컨설팅 했다. 나름대로 골치 아픈 협상, 특히 실타래처럼 얽힌 비즈니스 협상을 푸는 비법은 몇 가지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과의 국제협상 보다 더 골치 아픈 것이 바로 ‘자녀들과의 협상’이다. 자녀와의 협상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상대가 내 자녀이기 때문이다. 즉, 남이 아니라는 점이다. 협상 상대가 남일 때 우린 좀 더 냉정해지고, 좀 더 객관적이 되며, 좀 더 처한 현실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황을 꿰뚫어 볼 수도 없으며, 쌍방 모두 수용할 만한 합의안을 이끌어 낼 수 없다. 그러니, 이해 당사자가 아닌 협상전문가가 간혹 중재자 역할로 협상에 참여하고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예쁠 땐 우리 자식, 미울 땐 남의 자식

바로 이 문제, 즉, ‘내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녀와의 협상은 의외로 더 힘들고 난감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중2는 건드리지도 않는다”라고들 한다. 우리 내외는 2번의 중2 사태를 겪었으며, 조만간 세 번째의 중2 사태를 겪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이미 조짐이 확 보이고 있다. 셋째의 중2 사태의 조짐을 보는 우리 내외는 사실 어느 정도 담담하다. 이것도 관록이라면 관록인가?

관록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첫째와 둘째를 겪으면서, 그리고 주변 선배들의 조언과 연구를 통해 한 두 가지 대응 원칙을 세운 것이 도움 아닌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첫 대응 원칙은 ‘예쁠 땐 우리 자식, 미울 땐 남의 자식’이다.

감이 오는 분도 있을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착하고 예쁘게 굴 땐 ‘폭풍 칭찬과 강렬한 스킨십’을 퍼 붓고, 미운 짓하고 얄미울 땐, 남의 자식 보듯 ‘뭐 그럴 수도 있지’라며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Dissimilation’이란 말이 있다. 간단히 ‘분리’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자식이 미운 짓 하고 열 받게 할 땐 ‘내 자식이 아니다’라는 즉,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부인하는 심리전략이다. 지금만은 내 자식이 아니라 남의 자식이다. 남의 자식이 저 모양이든 망가지든 솔직히 내 자식 일처럼 그렇게 크게 걱정되고, 또한 열 받지는 않지 않는가? 바로 그 점을 노리는 것이다.

이 전략의 장점은 일단 ‘속 편하다’, 또한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정말 중요하다’고 말씀 드릴 수 있다. 첫째, 가장 중요한 이점은 자녀가 부모의 ‘그릇된 말과 행동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부모가 훌륭한 부모답게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자녀를 응대할 수 있는 심리적 여건을 조성해 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녀나 부모 모두 심리적으로 격앙된 상황에서 자칫 제어하지 못하고 분출하는 폭력적 언사, 지나친 악감정의 표출을 상당부분 방지할 수 있다. 아직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녀에게, 또한 겉으로는 부모 속을 확 뒤집어 버려 막 패주고 싶을 정도로 밉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이 부모에게 사랑 받고 있음을 믿고 싶어 하는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한 대응전략이다.

채찍과 당근? No!

나도 ‘자녀가 달라졌어요’란 프로를 자주 보고 좋아한다. 주로 취학 전이나 직후의 어린 말썽꾸러기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양식이나 습관을 바로 잡는 내용인데 전문가들이 나와서 정말 마술처럼 변화를 유도하는 걸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곤 한다.
왜냐하면 필자 역시 여전히 다섯 살 그리고 여덟 살 아들이 둘 있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황에 다양한 문제점을 갖고 있는 다양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이 가장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의 요점은 ‘일관성’이 아닌가 짐작된다.

비즈니스 협상에서도 ‘일관성’은 대단히 효과적인 대응으로 통한다. 메시지가 분명하고 아이들에게도 결과가 분명하게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들에겐 “안 되는 건 아무리 떼를 써도 안 되는구나. 떼 써 봤자 나만 힘들고”라는 분명한 ‘불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말을 들으면 곧장 ‘달콤한 보상’이 따르는 걸 보고, “말을 잘 들으면 내가 원하는 보상이 있구나. 말을 잘 듣는 게 낫구나”라는 ‘보상학습효과’가 탁월하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즉, “그래 바로 이거야. 일관되게 대응하는 거야. 별 거 아니네.^^” 그런데 이게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들어가면 더 이상 그다지 안 먹히는 때에 이른다(물론 중학교 아니라 고등학교, 대학교 가서까지 먹히는 자녀들도 있다. 아마 그 부모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면 “야, 이젠 일관성이란 게 안 먹히는구나. 그럼 이젠 어떡하지?”하며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후의 자녀 대응전략은 주로 부모의 성향에 많이 좌우된다(타협형, 공갈형, 드물게 폭력형 등). 주로 ‘채찍과 당근’ 전략, 즉 Give & Take 전략이다.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면 새 핸드폰과 두둑한 용돈, 그리고 여자애들 경우엔 방학 때 ‘쌍수’(쌍꺼풀수술, 집기와 째기가 있다) 등 갖가지 가장 매력적인 보상을 해 준다. 반대로 말 안 듣고, 공부 안하고, 속 썩이면(대체로 세 가지가 한꺼번에 패키지로 발생한다) 그에 상응하는 보복이 따른다. 용돈 축소 및 지불 연기, 핸드폰 서비스 중지 혹은 압수, 그리고 학원 시간 늘리기 등.

여기서 묻고 싶은 게 있다. 이런 처방이 먹혀서 자녀가 말을 잘 듣고, 공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으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실제 사례를 보신 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드물다는 것 우리는 안 물어봐도 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은 다른 별 뾰족한 수가 없기에, 없다고 믿기에 똑 같은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관성’이 안 먹히는 이유

필자도 똑 같은 상황을 겪었다. 특별히 다소 격하게 겪은 경우 중 한 사람이었다(집사람과 같이 겪었으니 한 ‘부부’다). 그리고 여전히 겪고 있다. 둘째가 고1, 셋째가 중1 이니. 그렇다면 애들이 크면 ‘일관성’이 왜 안 먹히는 걸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단서를 깔아야 안전하다), 일관성이 안 먹히는 게 아니라, 애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먹혔던 일관성 대응전략과 단순한 당근과 채찍 전략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도래한 것일까? 그렇다면 채찍과 당근, 특히 보상은 어떤 새로운 아이템으로 변경해야 아이가 말을 들을까? 고민하게 된다. 틀린 생각도 아니다. 신기하게 잘 하는 부모들도 주변에 없지 않다.

특히, “우린 그냥 애들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줘요. 쌍수 해 달라면 해 주고, 해외여행 보내 달라면 보내 주고, 또…. 그렇게 몇 년 보냈더니 애가 많이 좋아졌어요!”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 해 주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대부분의 우리 보통 부모들로선 실행 불가능한 일이다. 가뜩이나 애들이 집에 와서 “친구 누구는 아버지가 의사인데 뭘 해 줬네, 뭘 사 줬네…”하는 얘기가 딱 듣기 싫은, 사는 형편이 엇비슷한 우리들로선 기분 나쁘고, 속상한 남의 집 얘기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애들은 점점 더 커 가고, 돈 들 일은 더 많아지고, 살림은 쉽게 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애들 키우는 게 돈만 가지고 되는 게 절대 아니란 것이다. (재벌들을 보라) 내 친구나 지인들 가운데 사는 형편은 나보다 못한데 애들이 너무 착하고 훌륭하게 잘 자란 경우도 꽤 많다(공부까지 잘 하는 경우엔 너무 부러워 말이 안 나온다). 

그러면 언뜻 드는 생각이 차라리 형편이 어려워지면 애들이 철 들어서 변하려나 라는 마음도 가져본다(지금보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애들이 힘든 것 보다 우리 부모들이 더 힘들어 진다). 결국, 이래 봐도 저래 봐도 또 다시 원점이다. 도대체 어떡해야 하나? 일단 한 가지만 얘기해 본다. 먹힐 수도 있고 안 먹힐 수도 있다. 하지만, 해 봐서 손해 갈 일은 없다. 그리고 돈 드는 일도 아니다. 또한, 안 하던 공부를 갑자기 미친 듯이 하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부모 속을 시커멓게 태우던 자식이 개과천선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결코 후회 않는 선택이자 방법이다.

다섯 가지 생각

다만, 믿음과 끈기가 필요하다. 간혹 실수 혹은 실패하더라도 무조건 그 즉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아이가 변할 때까지, 그때까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필자 내외도 요즘 하고 있고, 간혹, 안 될 때도 있지만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시작하면서 계속 노력하고 있는 방법이다. 바로 아래 다섯 가지 생각을 잊지 않는 것이다.

첫째, 내 자식이지만 하느님 혹은 신이 우리에게, 자녀란 이름으로, 사랑하고 잘 키우라고 맡긴 그 분의 자녀임을 기억한다(누가 신의 자녀를 막 대할 수 있는가? 부모에게 존중 받고, 적절하게 훈육된 자녀는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는다).

둘째,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우리의 각 자녀는 부모인 우리보다 훨씬 더 위대한 목적과 사명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다(자녀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만치 어리석고 잔인한 부모는 없다).

셋째, 우리가 부모로서 사랑을 주고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행복을 찾아낼 것임을 믿는다(안 믿으면 어떡하리. 오 남매 중 제일 공부 못하고 말썽꾸러기였으나 이젠 애 여섯 데리고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필자^^).

넷째, 자녀나 부모나 똑 같은 사람이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기쁨과 행복을 가볍게 여겨서 안 된다(오늘 하루하루의 조그만 가족의 행복이야말로 내일의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다. 바로 오늘 우리는 자녀들에게 내일의 고난을 이겨낼 힘을, 잘 되리라는 긍정의 확신을 차곡차곡 채워주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다섯째, 아무리 속 썩여도 산 자식이 죽은 자식보다 낫다(두 말이 필요 없다. 백 년을 건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훈육하지만, 내일 죽어도 후회 없도록 오늘 사랑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아무도 내일을 장담하지 못한다. 기회는 오늘 뿐이다).

그러다 보면, 때가 되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녀는 부모인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그 때가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런 때가, 너무 많이 상한 데 없이, 온전히 오게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위 다섯 가지 생각을 꽉 붙들고 있으면 아무래도 낫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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