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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7:47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 용기 내 용서해야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 용기 내 용서해야
  • 김혜영 전문위원
  • 승인 2017.03.07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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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다고 피하지 말고 서로의 ‘마음 벽’ 넘자

1892년에 태어난 미국의 여류시인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리에(Edna St. Vincent Millay)는 자유롭고 선도적인 여성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녀는 1923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해 자신의 문학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차후에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리에가 쓴 시극 여러 작품이 극찬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끝없는 아리아(Aria Da Capo)>는 희극과 비극이 모두 표현된, 사회적 관심을 내포한 작품으로 주목 받았다.

<끝없는 아리아>의 내용 중 비극에는 두 목동이 출현한다. 양을 치는 두 목동은 놀이를 하기 위해 임시로 양을 치는 땅의 중간에 작은 끈을 바닥에 길게 놓음으로써 담벽을 쌓고 서로의 땅을 차지한다. 그리고 서로 건너다 볼 수는 있지만 넘어갈 수 없는 벽을 만들고 각각 떨어져 앉아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작전을 세운다.

하지만 한 목동은 이 놀이가 싫고 재미없으니 그만 하자고 한다. 그러자 다른 목동은 자기를 믿고 이 놀이가 조금은 재미없지만 넘어와도 좋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놀이가 싫다던 목동은 자기 땅을 넘어오려는 얕은 속임수였다며 오히려 놀이를 더 극적으로 만든다. 점차 보이지 않는 담벽을 두고 두 목동은 계속 서로를 경계하고 넘어오지 않도록 감시를 한다.

‘끝없는 아리아’와 ‘끝없는 벽’

시간이 점차 지나고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한 목동 쪽에만 연못이 있어 다른 목동과 양들은 마른 목을 축일 물을 먹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목동이 다른 목동의 담벽을 넘어가 양들에게 물을 먹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한 목동은 자기 양이 아니라면서 거부한다. 이미 놀이는 놀이를 벗어나 서로를 불신하게 되었고, 놀이로 시작했던 담벽은 두 목동 간의 심각한 갈등의 벽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두 목동은 서로를 낯설어하고 무서워하게 되고, 더욱 벽을 견고하게 만들어 가며 서로를 비난한다.

그러던 중 한 목동은 자신의 땅에 연못이 없어 양들이 목말라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물이 나오는지를 찾고자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땅 속에서 금덩어리와 보석을 발견하게 된다. 보석을 발견한 목동은 다른 목동에게 “보석을 하나 줄테니 자신과 양이 먹을 물을 좀 달라”고 제안한다. 그 때 다른 목동은 자신의 땅에서 양이 먹고 죽었던 독초를 발견하게 되고, 독초를 발견한 목동은 보석을 발견한 목동이 먹을 물에 독초를 타서 먹여 죽일 계획을 짠다.

그리고 보석을 가진 목동은 보석 목걸이를 만들어 물을 주는 목동의 목에 걸어주는 척하면서 목 졸라 죽일 계획을 짠다. 결국 물을 가진 목동은 물을 건네줌과 동시에 목이 졸려 죽고, 보석을 가진 목동은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이고자 그 목동이 건넨 물을 들이키고 죽는다. 독초물을 마신 목동은 서서히 죽어가면서 외친다. “왜 우리가 이런 놀이를 하게 됐지? 난 벽을 넘어 갈테야! 벽이 어딨어? 벽은 없었어!!” 이렇게 <끝없는 아리아> 시극은 막을 내린다.

이 시극을 읽노라면 1900년 초 연극에 드러난 인간의 세상살이나 2017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인간 세상살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벽을 만들어 가고 그것이 진실인 것으로 착각해 타인을 그 벽 밖에 세워두게 된다. 아마도 자신의 벽 안으로 깊이 들어올 수 있는 타인은 극히 드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끝없는 아리아>에서 표현한 목동 사이의 벽은 하나였지만 실제 사람들이 만든 벽과 벽 사이는 2개의 벽이 견고하게 세워져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비극만 초래하는 마음의 벽

사람은 왜 자기 안에 ‘벽’을 만드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방이 만든 벽에 부딪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벽이 있는지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벽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벽을 넘어 타인을 건너다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이 행여나 다칠까 싶어 만든 마음의 벽은 그 깊이와 넓이, 재질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사람마다 마음의 벽 깊이와 넓이, 재질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으로 마음의 벽을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벽과 벽이 세워진 인간관계는 참으로 답답하다. 자신의 마음 벽 밖에 있는 타인의 마음 벽 안에 있는 타인과의 소통은 불통이다. 이런 마음의 담벽은 시극 <끝없는 아리아>의 결말처럼 서로에게 비극만을 초래한다.

이 담벽을 없앨 방법이 있을까. 상대방이 벽을 없애면 나도 없애겠다는 다짐을 하는 순간, 자신의 마음 벽은 더 깊고, 넓고 견고해진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단단하고 부실공사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벽이 없거나 견고한 2개의 벽을 자유롭게 넘어 다니는 사람들이 주위에 분명히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단히 높은 학력을 갖고 있거나 높은 지위에 있거나 남들에게는 없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마음의 벽이 없거나 타인의 벽까지도 자유롭게 넘어 다닐 수 있는 이유는 ‘용서’를 ‘용기’있게 실천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환경에서 용서해야 할 것이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용서할 시간도 더욱이 화해할 시간과 여력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직장 내에서 혹은 자신과 연계된 타인들과의 갈등과 상처에 대해 대부분은 의식적으로 묻어두고 지내게 된다. 반드시 화해를 하거나 용서를 해야만 하는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그냥 벽하나 세워두면 두루두루 편하기 때문에 벽을 더 잘 세워둘 뿐이다.

늘 순간마다 용기를 내 자신의 벽 밖에 세워져 있는 타인들을 용서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용기 있게 용서해 주는 일이다. 자기의 품격과 삶의 질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원인은 자신을 용기 있게 용서해 주는 일이 우선이다. 자기를 용서하기가 익숙할수록 타인을 용서하는 용기가 넘쳐나고 수월하게 타인을 용서함과 동시에 자신의 마음 벽을 없앨 수 있다. 자신을 용서하는 용기와 타인을 용기 있게 용서하는 것은 그 누구의 견고한 벽도 자유롭게 넘어 다닐 수 있는 능력을 선사한다.

사소하고 별 것 아니더라도…

굳이 사소하고 나에게 별 것 아닌 사람들 혹은 가족과의 하찮은 갈등까지 용기 있게 용서해야 할까. 사소하고 하찮게 보이는 작은 것들을 굳이 용기 내어 용서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사소하고 별 것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자신의 삶의 주요한 환경이다. 자신 삶의 사방이 벽으로 쳐져 있다는 것은 익숙해서 느껴지지 못할지 모르나, 상당히 답답하고 목마른 생활을 제공하는 환경이다. 사소하고 별 것 아닐수록 더욱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를 낸 용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며칠 동안 엄마에게 토라져 저녁마다 말도 하지 않고 방 안에서만 지내는 것, 동료 직원의 밉상스러운 행동에 기가 막혀 같이 일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는 것, 상사의 우스꽝스럽고 허접한 아는 척에 질려 더 이상 진취적인 업무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

이러한 예들은 사소하고 별 것 아니면서 늘 마주하는 일상이다. 이런 것까지 용기 내어 용서해야 하는가 싶겠지만 그래야 한다. 이런 별 것 아닌 것부터 용기를 내야 한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서 “다녀 왔습니다~”라는 밝은 인사소리, 동료 직원의 행동보다 그의 능력을 칭찬하는 한마디, 상사의 아는 척에 ‘아실 줄 알았다’며 아이디어를 묻는 한마디. 이것을 할 용기를 내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다. 용기 있는 용서는 서로를 점점 목말라 죽게 하거나, 극단의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비극을 멈추게 해줄 것이다.

“왜, 우리가 이런 놀이를 하게 됐지? 난 벽을 넘어 갈테야! 벽이 어딨어? 벽은 없었어!!”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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