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유목민의 후예, 경제 기적을 일구다
유라시아 유목민의 후예, 경제 기적을 일구다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 승인 2017.03.0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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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열쇠는 용감하고 영리한 새로운 인간유형 DNA

대한민국의 현대 경제사는 세계 경제사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드라마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1960년 이후 세계 GDP는 약 7.5배 증가한데 비해 한국 GDP는 약 38.6배 커졌다.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고 미래가 보이지 않던 나라에서 반세기 만에 200여개 국가 중 11번째로 큰 나라로 변모했다. 세계사에서 그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대한민국 경제를 기적의 산물이라 일컫는다.

▲ 한민족은 2500년간 유라시아 대초원을 지배했다. 사진은 천산산맥 일대의 대초원 <김석동>

세계 지배하는 경제대국 등장

15세기 무역을 토대로 국가의 성장을 추구했던 중상주의 시대가 열린 이후 거대한 경제 국가들이 탄생했다. 스페인은 15세기 이사벨 여왕의 후원 아래 이루어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해 수많은 크고 작은 섬들을 장악해 1940만㎢에 달하는 거대한 해양제국을 건설했다. 1500~1600년 약 100년 사이에 세계 GDP가 1.3배 증가하는 동안 스페인 GDP는 1.6배 늘었고, 당대 세계 최강의 국가로 자리 잡았다.

16세기 세계무대에 등장한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 서인도회사 등을 설립하고 해양 상업 강국으로 성장하면서 세계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17세기 암스테르담은 세계 최대 항구였으며, 1500~1700년 약 200년 사이에 세계 GDP가 1.5배 증가하는 동안 네덜란드 GDP는 5.6배 커지는 기염을 토했다.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산업자본주의를 출범시키며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다. 55개의 식민국가를 거느리고 3670만㎢의 영토를 지배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영광을 구가했다. 1700년부터 1870년까지 약 170년간 세계 GDP가 3.0배 증가하는 동안 영국의 GDP는 9.4배 늘어나면서 세계 최강 국가를 건설했다.
미국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하게 세계 최강국으로 위치를 굳힌 나라다. 1870~1940년 70년간 세계 GDP가 4.1배 증가하는 동안 미국 GDP는 9.5배 증가했다. 미국은 GDP가 20조 달러에 달하는 거대국가로 성장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실현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났다. 전후 유럽에서 냉전이 심화됨에 따라 일본의 공산화를 막고 아시아에서의 서방세력 강화를 위해 미국은 일본의 경제 재건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한국전쟁 전쟁특수를 누리면서 짧은 기간에 거대한 산업국가를 건설하는데 성공해 1913~1970년 세계 GDP가 5.0배 증가하는 동안 일본 GDP는 14.1배나 늘어났다.

비상하는 대한민국 경제

지난 500년간 세계교역을 중심으로 고도성장을 이룬 다섯 나라와 비교해 보면, 대한민국이 단 반세기 만에 이룩한 역사는 특별한 성취라 아니할 수 없다. 기적이라고 불릴만하다. 대한민국은 빈곤과 약소국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세계 11번째의 대형 경제국가로 발돋움했고, 세계사의 중심 무대에 섰다. 2014년 스페인을 넘어섰고, 2015년 호주와 러시아를 추월했다. 우리 앞에 있는 10개 국가는 미 • 중 • 일 등 G7 국가, 땅 넓이 100배인 캐나다, 85배인 브라질, 33배인 인도뿐이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도 숨 가쁜 행진을 지속해 왔다. 우리 국민은 빈곤의 대물림에서 탈피했고, 반세기만에 삶의 수준도 놀랍게 변화했다. 우리는 한 세대 만에 경이로운 변화를 경험했다. 1960년 79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소득이 1970년 243달러로 증가하는 소득 혁명의 시동을 건 이후 1977년 1000달러, 1996년 1만 달러, 2007년 2만 달러를 각각 돌파했다. 그리고 이제 3만 달러를 내다보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도 세계 200여개 국가 중 20번째 안팎이다.

대한민국 경제를 변모시킨 견인차는 수출이었다. 수출은 대한민국을 세계시장에 등장시키고, 고도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70년 8억4000만 달러에 불과하던 총 수출액이 1977년 100억 달러, 1995년 1000억 달러를 돌파한데 이어 2012년 5478억 달러를 기록해 중국·미국·독일·일본·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여섯 번째 수출국가가 됐다. 무역규모로는 세계 9위에 올랐다(세계경제 위기 등으로 2016년에는 수출이 홍콩, 프랑스에 뒤져 8번째 국가가 됐다). 
 
세계 10대 수출 국가는 수십 년간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그만큼 세계시장 전면에 새로 진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다. 1950년대 이후 세계 10대 수출국가로 진입한 국가는 일본(1960년), 중국(2000년), 한국(2009년) 등 3개 국 뿐이다. 우리 주력 수출상품은 세계 시장에서 선진 제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하고 있다.

2015년 DRAM생산은 세계 1위로 세계시장 점유율이 71.7%에 달했다. 스마트폰은 세계 2위(28.4%), 자동차는 세계 5위(9.3%), 조선은 세계 2위(30.0%), 디스플레이는 세계 1위(50.5%), 철강은 세계 6위(4.8%)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2015년 기준).

해외 건설 시장에서 우리 건설회사들 활약은 눈부시다. 1965년 해외 진출 이후 50년간 해외건설 5대 강국, 수주 7000억 달러를 달성했다. 한국은 초대형 프로젝트와 플랜트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했고, 세계 최고층 빌딩 중 다수를 한국 건설사가 건설했다. 그 결과 스페인·미국·중국·독일·프랑스에 이어 세계 6번째 건설강국으로 등극했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도 강국으로 부상했다. 하계·동계를 막론하고 올림픽 메달 순위는 5~10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체력이 국력’이 아니라‘국력이 체력’이 된 것이다. 문화·예술을 망라한 한류 물결 또한 예삿일이 아니다. 유럽·아시아·중남미는 물론, 이슬람권까지 한류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1990년대 말 중국에서 드라마로 시작한 한류가 드라마, K-pop, 영화, 게임, 한식 등으로 확산되면서‘한류 열풍’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한류의 지구촌 확산 또한 국력과 무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국력 신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세계무대의 전면에 등장했다. IMF(국제통화기금) 개도국 졸업, 올림픽 개최(1988), GATT 개도국 졸업(1990), OECD 가입(1996), 월드컵 개최(2002), OECD 원조공여국(2009), G20 정상회의(2010),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2011), 동계올림픽 개최(2018) 등 국력 신장의 현장들이 숨 가쁘게 전개됐거나 기다리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이루어 온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수많은 주름과 그늘이 자리 잡고 있고, 그래서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도 많다. 경제 각 부분의 과도한 부채, 기업간·업종간 불균형, 성장동력 약화, 계층간·지역간 갈등, 청년실업 고착화 등 수많은 과제가 우리 앞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한국 국민이 이룩한 위업을 덮어버릴 순 없다. 1997년 동아시아 일대를 엄습했던 IMF 위기에서도 대한민국은 굳건하게 버텨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창출했다.

기적의 원동력, 그 비밀의 열쇠

대한민국이 이룬 놀라운 기적의 원동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물론 경제성장은 인력(L), 기술(T), 자본(K)의 결합이므로 이 요소들이 당연히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먼저 인력을 보자. 한국인이 우수하고 근면한 것은 세계가 알아준다. 세계 정상의 교육투자, OECD 국가 최고의 근로시간 등 수많은 통계가 뒷받침한다. 한국인의 우수성은 교육열에서 출발한다. GDP대비 공교육비,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해외유학생도 13만2000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인구대비 유학생 비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인은 유달리 부지런하다.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OECD 평균은 1770시간이나 한국은 2200시간 수준이며, 1990년대에는 3000시간에 달했다. 중동건설 붐이 한창일 때 현지에 진출한 한국인에게 붙은 별명은‘사이보그’였다. 통상 사람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는 존재지만, 한국인은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불 켜놓고 일하는 존재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둘째 요소인 기술을 보자. 경제개발 초기에 우리 기술은 보잘 것 없었고, 그래서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는 기술을 대부분 외국으로부터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GDP 대비 R&D 투자는 세계 정상급이며, R&D 투자 절대 규모는 세계 6위다. 뿐만 아니라 국제기능올림픽에서는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고, 국가의 총체적 기술 수준 척도인 기술성취도(TAI)는 세계 3위, 정보통신기술지수(ICT)는 세계 1위로 우리 기술이 세계의 벽을 이미 넘어섰다.

셋째 요소인 자본은 우리 경제개발 초기부터 가장 넘어서기 어려운 장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대한민국의 전진을 멈출 수는 없었다.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내·외자 총동원체제가 가동됐다. 나라의 문을 열어 외국으로부터 자본을 도입해 도로 등 인프라에 투자하고 공장과 산업시설을 건설했다. 정부 주도의 자본조달과 재원 배분이라는 틀을 활용하면서 열악한 자본 환경을 극복했다.

GDP를 구성하는 인력·기술·자본의 요소가 총동원 되었으나 이것만으로는 기적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요소 이외에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 사례에서 보기 어려웠던 2가지, 즉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2개의 열쇠가 더 있다.

그 하나가 대외지향형 확장경제와 신산업에 대한 도전으로 요약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맨주먹으로 등장한 대한민국은 세계를 무대로 승부를 하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꿈만 같았던 산업인 조선·철강·석유화학·자동차 등 중화학 공업을 일으키는 선택을 했다. 이것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 장기 확장시대와 궤를 같이하면서 기적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기적을 위한 마지막 요소는 시장·경쟁 친화적인 문화와 강한 성취동기 및 불굴의 의지로 요약되는‘한국인의 DNA’다. 이 DNA가 바로 다른 어느 요소보다 중요한 최종 열쇠이자 비밀의 열쇠다.

한국인의 이러한 DNA는 지난 2500년간 유라시아 대초원을 무대로 활약해온 기마유목민의 DNA에서 찾을 수 있다. 유라시아 대초원은 동서 8000km에 걸쳐 끝없이 펼쳐진 평평하지만 삶의 조건이 열악한 극한의 땅이다. 이러한 엄격한 자연조건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용감하고 영리한 독특한 인간유형을 형성했다. 개개인이 강한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급속히 통합되었고, 사회 전체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탁월한 지도자를 적지 않게 등장 시키는 한편 집단 위기 등 어려운 시기에는 강력한 결속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했다. 기마유목민이 주축이 된 기마군단은 가공할 전투력을 발휘하면서 약 2500년 간 유라시아 스텝지역을 중심으로 동·서양에 걸쳐 거대국가를 끊임없이 건설해왔다.

BC 8세기부터 등장한 아시아 유목민의 나라‘스키타이’와 그 이후 차례로 등장하는 흉노, 선비, 유연, 돌궐, 위구르, 거란, 몽골제국, 티무르-무굴제국, 셀주크-오스만투르크제국, 금·청나라 등을 건설한 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유물·유적·풍속·기록 등을 통해 볼 때 고대로부터 우리와 역사·문화적으로 깊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여진·선비·몽골·흉노 등은 본래 아(我)의 동족이었다. 흉노는 조선의 속민이었다”라 하여 기마민족국가인 고조선에서 흉노·돌궐이 분파된 것을 갈파한 바 있고 이후 심층적인 연구결과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광활한 대초원에서 세계사를 써내려간 기마군단의 역사를 재조명 하면서 한민족의 성장 DNA를 탐구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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