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R
    15℃
    미세먼지
  • 경기
    R
    15℃
    미세먼지
  • 인천
    R
    16℃
    미세먼지
  • 광주
    H
    17℃
    미세먼지
  • 대전
    B
    미세먼지
  • 대구
    B
    미세먼지
  • 울산
    R
    15℃
    미세먼지
  • 부산
    R
    14℃
    미세먼지
  • 강원
    R
    15℃
    미세먼지
  • 충북
    R
    15℃
    미세먼지
  • 충남
    R
    13℃
    미세먼지
  • 전북
    B
    미세먼지
  • 전남
    H
    17℃
    미세먼지
  • 경북
    R
    16℃
    미세먼지
  • 경남
    B
    미세먼지
  • 제주
    B
    미세먼지
  • 세종
    R
    15℃
    미세먼지
최종편집2024-04-19 19:07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가난했던 예술가들을 만나는 몽마르뜨 산책
가난했던 예술가들을 만나는 몽마르뜨 산책
  • 강정모
  • 승인 2017.03.07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몽마르뜨는 파리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들르고 싶어 하는 장소이다. 특히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기대와 만족도가 훨씬 높다. 그 이유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파리는 전 세계 예술의 중심이었고 가난했던 예술가들이 꿈을 품고 몽마르뜨로 들어와 서로 뒤엉켜 살며 저마다의 보이지 않는 흔적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반고흐가 동생과 함께 머물렀던 집을 비롯 다다이즘의 대표 시인인 차라가 살았던 트리스탄과 차라의 집과 틀루즈 로트렉, 피카소, 모딜리아니가 머물렀던 곳 등 산동네 몽마르뜨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예술적 향취가 여전히 듬뿍 남겨져 있는 곳이다. 몽마르뜨 산책은 보통 전철역에서 가까운 아베쓰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파리의 파란 하늘과 함께 뒷골목을 누비며 예술가들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몽마르뜨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베쓰가에서 천천히 뒷골목을 걷다 보면 몽마르뜨의 숨은 명소인 ‘사랑의 벽’을 만날 수 있고 본격적인 산책이 시작된다. 사랑의 벽(Le mur des je t’aime)은 타일 511개를 붙여 만들어진 300여 개의 언어와 100회에 걸친 사랑의 표현이 적혀있는 벽이다. 이 벽은 프레데릭 바론이 고안한 것으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를 각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찾아내 모았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의 로맨틱한 면을 볼 수 있는 발상이다. 사랑의 벽에서 계속 걷다 보면 작은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올라가면 ‘에밀 구도 광장’이 나온다. 그 옆으로는 서양 미술사 책에도 간간이 등장하는 그 유명한 ‘세탁선(바토 라부아르)’ 건물이 위치해 있다.

세탁선은 몽마르뜨에 있는 피카소의 아뜰리에였다. 원래 피아노 공장이었던 2층 건물은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여러 명이 아틀리에로 쓰기 좋은 구조였고 19세기 말부터 가난한 화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아틀리에로 변하게 된다. 1904년 가난한 화가들의 리더였던 피카소가 이 아틀리에를 빌리고 이후에 막스자코브, 반동겐, 드레 살몽, 기욤 아폴리네르, 모딜리아니 등이 이곳으로 따라온다. 1907년 피카소는 그 유명한 ‘아비뇽의 여인들’을 이곳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세탁선이라는 이름은 파리 센 강에 떠 있는 세탁 전문 배와 비슷하다고 막스 자코브가 붙인 별명이다.

목조 건물이었던 세탁선은 1970년 화재로 소실돼 현재와 같은 시멘트 건물로 복원 되고 현재도 몽마르뜨의 전통을 이어받아 가난한 외국 화가들의 아틀리에 겸 숙소로 쓰이고 있다. 세탁선을 뒤로 하고 잠시 걷다 보면 벽을 통과하고 있는 남자의 동상이 보인다. 바로 프랑스에서 국민 작가 반열에 올라 있는 마르셀 에메의 소설 <벽을 뚫는 남자>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각상이다. 소설은 우표를 수집하거나 장미에 물을 주고 살아가는 조금은 외롭지만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공무원 듀티율씨가 벽을 뚫는 능력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다.
듀티율씨는 벽을 통과하는 능력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밝히고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면 그 능력이 사라진다는 의사의 말을 흘려듣고 벽을 통과하려다가 결국 벽에 갇힌다는 내용이다.

계속해 산책을 이어가다 보면 마치 네덜란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차를 달고 있는 건물이 나온다. 7세기까지만 해도 몽마르뜨 언덕 위에는 제분용 풍차가 많았다고 한다. 풍차 하면 네덜란드를 떠올리지만 몽마르뜨의 상징이기도 했다. 풍차의 인기가 점점 시들해져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1870년에 제분업자였던 피에르 오귀스트 드브레가 풍차를 상징으로 하는 댄스홀을 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풍차를 배경으로 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남긴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라 갈레트’가 대표적 작품으로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중심광장인 테르트르 광장으로 가는 길에 놓칠 수 없는 명소는 ‘라팽아질’이다. 라팽아질은 모딜리아니, 시인 막스 자코브 등 가난한 예술가들이 술이 고프거나 외로울 때 고향집처럼 편안하게 드나들던 술집이다. 작은 술집이지만 사실 굉장히 유서 깊은 장소로, 16세기 때부터 몽마르뜨 언덕의 포도밭에 터를 잡은 오두막으로 로트렉, 르누아르, 브렐렌, 페르낭레제 등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도 이곳에 모여 고단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20세기 샹송의 황금기를 이끈 ‘에디뜨 피아프’도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

마지막 목적지인 테르트 광장 쪽으로 눈에 띄는 핑크빛의 예쁜 집은 화가들의 뮤즈로 유명했던 여류 화가 수잔 발라동의 장미의 집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와 파리로 이주한 후 가난했던 수잔 발라동은 돈을 벌기 위해 웨이트리스부터 곡예사, 가정부까지 15세가 되기도 전에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모델 일을 시작하고 많은 화가들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어리고 예뻤으며 포즈나 표정 연기에 재능이 많았다. 로트렉, 르누아가 그녀에게 반했고 그녀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린다. 수잔 발라동은 로트렉의 영향으로 화가를 꿈꾸며 몰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녀의 재능을 발견한 로트렉은 그녀를 드가에게 소개해주고 그녀가 화가로 데뷔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마리였는데, 로트렉은 그녀에게 수잔이라는 예명을 지어주고 그녀가 여성으로서는 거의 최초로 데뷔 할 수 있도록 앞길을 열어준다. 독신자였던 로트렉은 수잔의 끊임없는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녀는 결국 로트렉을 떠나 수잔 발라동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거주하며 유명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화가로 성장한다.

마지막 목적지인 언덕의 꼭대기라 불리는 테르트르 광장에 오르게 되면 사크레쾨르 성당과 함께 백만 달러짜리 파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끔 몽마르뜨 언덕은 가난했던 현대예술의 선구자들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는 관광객들에 의해 야바위꾼들이나 많은 지저분한 동네로 묘사되곤 한다. 몽마르뜨는 그야말로 예술가들의 때가 탄 삶의 현장이었다. 사실 골목골목에서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잠시 숨을 돌리며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맛본다면 이곳이 맘에 들지 않을 이유는 없다. 심지어 야바위꾼들조차 정겨워 보일 수 있는 곳이 바로 몽마르뜨 언덕이다.

※이 글은 <Arts & Culture> 3월호와 인터넷(www.artsnculture.com)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