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정의’에 목마른 까닭은?
국민이 ‘정의’에 목마른 까닭은?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17.02.0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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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흐지브지' 데자뷰…“역사는 반복 된다”

얼마 전 모 경제신문 중진 몇 명과 새해맞이 점심을 했다. 그 날은 마침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 재벌 총수 1호로 A그룹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날이었다. 대화가 자연 A그룹 얘기로 흘러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요행히 피해갔던 구속이 손자 대(代)에 와서 깨질 것이라는데 모두들 이견이 없었다. 아직 법원 실질심사라는 최종 단계가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였다. 모 인터넷 언론사 사장과 만나 외부에서 점심을 하고 사장실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사장에게 걸려온 전화 대화를 우연찮게 듣게 됐다. 오늘 밤이나 내일 새벽에 결정될 A그룹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대한 예상을 묻는 듯 했다. 사장의 답변은 대충 이러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구속을 피할 수 없으리라 봅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그렇게 예측하고 있고요. 다만 경제적 파장은 그리 크지 않을 터이니 너무 걱정마세요”. 전화를 끊더니 궁금해 하는 필자에게 모 중견그룹 CEO라고 한다. 평소에도 그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 등을 자주 자문을 해 준다고 하면서. 그런데 결과는 독자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역사와 정의

대부분의 언론과 많은 사람들의 예측이 여지없이 빗나갔다. 결과가 자못 궁금해 잠을 설치다 새벽 두 시경에 일어난 필자는 거의 네 시쯤 되어서야 신호음과 함께 휴대폰에 뜬 모 언론사의 속보 한 줄을 봤다. ‘A그룹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혹시 그 언론사 기자가 잠에 취해 실수 했나 해서 다른 언론사 사이트를 열어 봤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대학 시절 미팅에서 우스개로 많이 쓰는 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막강 A그룹의 힘을 다시 실감한 것이다. 그리고 ‘데자뷰’처럼 10년 전의 일들이 머리를 스쳤다.  

2007년 10월 중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다. A그룹의 전직 법무팀장이 양심선언을 한다고 한 날이다. 그는 검찰 특수부 검사 출신이고 최근까지 A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그룹 내 핵심 인사였기에 그가 발표할 내용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여러 날에 걸친 발표 내용의 핵심은 대충 불법 비자금 조성, 정관계 불법 로비, 그리고 편법 승계에 관한 것으로 요약된다. 이 사건은 이후 여론의 압박에 몰려 특검 수사까지 진행됐으나 결국 흐지부지 끝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똑 같은 역사의 반복을 경험한다”고 했는데 과연 이 시점에서 다시금 새겨볼 만한 구절이다.  

19대 대통령 선거는 원래대로라면 올해 12월20일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탄핵 소추 심판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해 보이기 때문에 조기대선이 확실시 되고 있다. 그럼 국민들은 어떤 대통령을 바라고 있을까.

1987년 10월 YS와 D,J 즉 양김(兩金)의 대결로 뜨거웠던 13대 대선을 2개월 앞둔 시점, 어느 신문에서 보도한 ‘대통령의 자질’ 기사를 보면, ‘정직’ ‘지도력(통치력)’ 그리고 ‘민주화 기여’ 순이었다. 30년 후인 2017년 1월 모 언론사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도덕성과 정직성’ ‘경제적 식견’ ‘소통능력’ ‘정책 추진력’ 등의 순서였다.

군사 독재시절에서 벗어나 민주화의 기대감이 높았던 30년 전이나,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과 이를 단죄하기 위해 시끄러운 지금이나 민심은 변함없이 국가지도자의 ‘도덕성과 정직성’을 최고의 자질로 꼽은 것이다. 그럼 이른바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정직성은 어느 수준일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국회의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A그룹 부회장을 포함해 고위공직자, 대학총장 등 총 10명의 증인이 위증을 해서 특검에 고발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청문회장에서 뻔뻔하게도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A그룹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 특검 대변인은 오후 정례 브리핑을 통해 “국가 경제 등에 미치는 상황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구속영장 청구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그러면 ‘정의’란 무엇일까.
국내에서 번역본이 2010년 봄에 발간돼 일약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이 있다. 바로 정치철학자인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 What's the right thing to do?)이다.  

영어권에서는 20만부 팔렸는데 한국에서는 140만부 이상 불티나게 팔렸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만큼 한국 국민들이 ‘정의’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은 ‘정의’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최순실 일당은 아직도 자백을 안 하고 버티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사유(思惟)를 할 줄 모르는 도구적 인간들이 저지르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문득 지난 일요일 미사 시간에 성당에 울려 퍼진 ‘주님의 기도’ 끝 부분이 생각난다. “…(전략)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