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없다, 오직 진군이다
위기는 없다, 오직 진군이다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7.01.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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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ear, New Leader 2017년 뉴리더의 ‘야망’

최순실 게이트는 재계에도 쓰나미를 몰고 왔다. 총수들이 특검에 불려가고 경영활동은 위축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 환경도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하지만 위기를 넘어 영토를 확장하는 기회를 잡으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그 중심에 40대 젊은 리더들이 있다. <인사이트코리아>는 2017년에 활약이 두드러질 재계 인물들을 꼽아봤다.  

▲ 지난해 1월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이 제네시스 브랜드 전략과 방향성을 발표하고 있다.(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현장경영으로 위기 파고 넘는다

-He is…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1970년생으로 올해 47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외동아들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MBA를 마쳤다. 1994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한 그는 31살이던 1999년부터 현대자동차자재본부 구매실장으로 근무하며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일찌감치 현대차그룹 후계자로 지목된 그는 2009년 현재의 부회장 자리에 올랐고, 같은 해 제6회 자동차의 날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재계에서 예의 바르고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엄격한 현대가(家)의 ‘밥상머리 교육’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가의 밥상머리 교육은 현대라는 기업을 맨손으로 일군 창업자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자식들과 동생들까지 아침밥을 함께 먹는 것을 일컫는다. 실제로 정 명예회장은 그 시간을 단순히 아침밥만으로 허기를 때우는 자리가 아니라 어른에 대한 예의와 형제 간 우애, 근면과 성실함을 배울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정 명예회장의 손자들 가운데 정 부회장은 밥상머리 교육을 가장 먼저 받은 인물이다. 정 회장의 외아들인데다 앞으로 그룹을 이끌 재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정 명예회장은 정 부회장에게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면서 남을 높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본예절을 배워야한다”고 가르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은 자신의 말을 길게 하지 않고 상대방의 얘기를 주로 듣는 편이며 내성적이지만 우직하고 한 번 맺은 인연은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일례로 경복초등학교 4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조현식 한국타이어 사장과는 지금도 남다른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정 부회장의 인본주의 리더십은 현대차그룹의 빠른 성장을 견인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재임할 당시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를 유럽까지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 기아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 영입은 내수부진에 시달리던 기아차를 살려냈다. 정 부회장이 기아차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기아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07년 21.4%에서 2009년 29.4%로 상승했다.
정 부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4년 BMW의 M시리즈를 총괄해왔던 알버티 비어만을 영입해 성능 향상을 꾀했다. 2015년 연말에는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루크 통커볼케 전무와 람보르기니 브랜드 총괄 임원 출신의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전무를 영입하는 등 해외 우수 인재 영입을 통해 제품과 브랜드의 비약적인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직원들과 허물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의견을 경청하고, 일명 ‘안티 현대’라고 불리는 고객들의 불만 사항을 접수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의 경영을 펼친다.

그렇다면 정 부회장은 안팎으로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2017년 한해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을까. 
우선 정 부회장은 올 한 해도 세계 각지의 생산 공장은 물론 신흥시장 개척에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버지 정몽구 회장의 영향으로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지닌 그는 그간 지속적으로 현장 방문 횟수를 늘려왔다. 일각에서 점차 승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올해처럼 어려운 시기에 실력 발휘를 해서 확실히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그 첫걸음이 바로 현장경영인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들은 승계에 관한 이야기에 말을 아꼈지만 재계에서는 그룹의 경영 승계 과정과 현장경영이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정 부회장이 현장 경영으로 보폭을 넓히면서 그룹 전반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이 현장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그룹의 정 부회장 체제 연착륙을 위한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한화큐셀 김동관 전무(우)와 한화생명 김동원 부실장(좌)이 지난해 텐진시 짜오하이샨 부시장을 만나 중국 시장의 글로벌 전략을 공유하고 2016년 발전 계획 등에 대해 논의했다.(한화그룹)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태양광의 지배자 꿈꾼다

-He is…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는 1983년 10월31일생으로 올해 34세다.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공군 통역장교(117기)로 입대, 3년 4개월의 군복무를 마쳤다. 2010년 1월 한화그룹 차장으로 입사해 2010년 아버지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곁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2011년 12월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을 맡으면서 미래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었고, 2015년 12월 한화큐셀 전무로 승진했다. 2016년 5월에는 국제 태양광 전시회에서 1500여개 기업 중 상위 10개 기업에만 주어지는 ‘테라와트 상’을 수상했다.

김동관 전무는 떠오르는 재계 리더들 가운데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그렇지만 김 전무는 태양광 사업에 있어서는 연륜 있는 경영인들 보다 실적과 역량 면에서 앞서있다는 평가다. 
지난 몇 년 간 저유가 기조로 인해 태양광사업에 힘썼던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김 전무가 몸담았던 한화솔라원도 마찬가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업체들의 난립은 태양광 시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끝없이 추락하던 태양광시장에서 가장 먼저 기지개를 켠 곳은 한화그룹이다. 한화그룹은 2014년 말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을 합병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한화솔라원에서 영업담당실장을 맡고 있던 김 전무는 합병과 동시에 한화큐셀 상무로 승진,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2015년 2월 4년 만에 흑자전환 한 한화큐셀은 미국 대형 발전업체 넥스트에라 에너지와 1조원대의 계약을 성사시키며 대박을 터뜨렸다. 이를 통해 한화큐셀은 지난해 3분기까지 6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등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 같은 결실 밑바탕에 김동관 전무의 ‘뚝심’이 있었다. 아버지 김승연 회장은 우직한 듯 하면서도 섬세한 리더십으로 지금의 한화를 만들었다. 김 전무도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뚝심이 있으면서도 디테일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솔라원이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던 2014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김 전무는 “한화그룹은 태양광의 성장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태양광 등 에너지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고 단순한 태양광 관련 셀이나 모듈 제조뿐 아니라 태양광 발전소까지 운영하고 투자하면 시장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했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태양광 사업에 명운을 걸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자신의 공언을 입증해 나갔다. 2015년 충북 진천에 3500억원을 들여 1.5GW 규모의 태양광셀 공장과 250MW의 모듈공장을 건립했다. 지난해에는 여기에 2차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세계 최대의 태양광셀 생산능력을 갖추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새해에는 김동관 전무의 뚝심경영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태양광 업황이 악화되고 있어 상승세를 타던 실적이 내리막을 걸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로 받았던 수혜를 털어낸 직후라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김 전무가 태양광 시장의 불확실성속에서도 잘 헤쳐나간다면 경영권 승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무의 2017년 ‘태양광 구상’에 재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 정유경 신세계백화점그룹 총괄사장(뉴시스)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 사장
은둔 벗고 면세점을 디자인 한다

-She is…
정유경 사장은 1972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사이에 둘째로 태어났다.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비주얼디자인과를 졸업한 정 사장은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 그래픽디자인과를 졸업했다.
1996년 신세계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로 입사한 그는 2000년 상무로 승진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신세계조선호텔에서 프로젝트 실장을 맡았고, 2009년 말 신세계 부사장에 오른 후 2015년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동안 정유경 총괄사장은 ‘은둔의 경영자’라는 말을 들었다.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신세계그룹을 이끌어 왔던 정 사장을 두고 업계에선 오빠인 정용진 부회장을 배려해 전면에 부각되는 것을 꺼린다는 말도 나왔다.  
이런 정 사장이 지난해 말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오픈행사에 참석해 20년 만에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올해부터 정 사장이 외부활동 보폭을 넓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 명동점은 최근 특허를 획득한 신규 면세점 가운데 유일하게 안정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한다. 신세계 명동점은 오픈 100일 만에 최대 일 매출 26억원을 달성하며 빠르게 안착했다. 지난해 9월 신규 면세점 중 최고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11월에는 일평균 21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신규 면세점 중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 정 사장은 면세점 3차 대전에서 특허권을 따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신세계 본점 면세점에 이어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에 면세점을 유치하며 2연승을 기록했다. 재계 관계자는 “오빠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함께 남매 독립경영을 시작한 정 총괄 사장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내세운 면세점 사업에서 빠른 속도로 영역을 확장해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고 평했다.

그간 정 사장은 신세계그룹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부문에서 역량을 발휘해왔다. 이마트 내 생활용품 브랜드 자주(JAJU, 구 자연주의)를 리뉴얼한 것도 정유경 사장의 ‘디자인 경영’ 결과물이다. 현대적·실용적인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해 호평을 받고 있다. 
그의 남다른 안목이 빛을 본 것은 백화점 식품관이다. 2014년 8월 신세계백화점 본점 식품관을 대대적으로 변화시킨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유명 커피체인점인 스타벅스 대신 파격적으로 떡 방을 입점시켜 업계를 놀라게 했다. 함께 선보인 ‘추억의 먹거리 장터’ 역시 내외국인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를 통해 본점 식품관은 백화점 효자 사업으로 자리잡게 됐고, 젊은이들의 ‘외식 메카’로 호평 받고 있다.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 역시 정 사장의 작품이다. 그는 개점을 준비하며 수시로 세계 곳곳의 유명 쇼핑몰을 찾아 벤치마킹 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
업계에서는 유통 분야에서 막강한 영업력과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신세계가 이번 강남점 진출을 계기로 롯데, 호텔신라와 함께 국내 면세점 시장에서 3강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신세계의 미래를 손에 쥔 정 사장이 소비심리 위축으로 정체기에 직면한 백화점 사업에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 지난해 11월 조현준 사장이 베트남 하노이 총리 공관을 방문해 베트남 응우웬 쑤언 푹(Nguyen Xuan Phuc)총리와 회담을 가졌다.(뉴시스)

조현준 효성 사장
글로벌 기업 터를 닦는다

-He is…
조홍제 효성 창업자의 손자이자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은 1968년생으로 올해 49세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유학을 떠나 예일대학교 정치학과와 일본 게이오대학교 법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미쓰비시(三菱), 모건스탠리 등 외국기업에서 근무하다 1997년 효성의 전신인 효성 티앤씨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줄곧 전략본부에서 근무하다 입사 10년 만인 2007년 효성 사장으로 승진, 섬유PG장을 맡았다. 현재 전략본부장과 정보통신PG장을 겸하고 있다.

조현준 사장이 본격적인 경영에 나선 것은 2012년부터다. 조 사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 효성의 실적은 급증했다. 창업 50주년이던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조 사장이 책임경영에 나선 이후 재무구조도 대폭 개선됐다. 지난해 3분기 (주)효성의 개별부채비율은 129.3%로 2014년 185% 대비 55.7%나 낮아졌다. 연결 부채비율도 2014년 371.9%에서 107% 개선된 264.9%를 기록했다.
실적 호전과 재무건전성 덕분에 신용평가사들도 신용등급을 올리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1월 효성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올렸다. 한국신용평가도 기존 A에서 A+로 상향하면서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으로 부여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효성 관계자는 “오너 3세들의 ‘책임경영’ 이후로 효성의 실적과 재무구조가 개선됐다”며 “타이어코드 등 글로벌 브랜드 제품들이 인정받으면서 시장 지배력을 갖게 됐고, 독자 기술을 보유한 만큼 해외 공장도 현지화 전략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조현준 사장은 조석래 회장이 강조해온 ‘기술 중심 경영’ 뜻을 이어받아 신성장 사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 사장은 신소재 부문 성장 견인을 위해 폴리케톤과 탄소섬유에 대해 기술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2013년 상용화에 성공한 폴리케톤은 국가 차원의 미래 신소재로 주목 받고 있다. 탄소섬유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조 회장이 성장 가능성에 주목, 2006년부터 개발에 착수한 분야다. 2011년 국내 기업 최초로 고성능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한 이후 2013년 전주 친환경복합산업단지에 연간 2000톤 규모의 탄소섬유 공장을 건립했다.
이와 함께 그는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 컴퓨팅, 핀테크 분야 등 정보통신 쪽의 신성장 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무엇보다 조 사장의 행보가 돋보이는 부문은 중공업이다. 그가 2014년부터 지휘를 맡은 중공업 사업은 지난해 3분기 842억원의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 섬유 부문을 제외하고 가장 좋은 실적을 거뒀다.
비결은 선별적 수주와 신 시장 개척에 있다. 조 사장은 저가수주와 납기 지연으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연속적자를 기록했던 중공업 부문을 초고압 변압&#12539;차단기, 전동&#12539;감속기 등 고수익 제품 위주로 전략을 전환했다. 효성 관계자는 “과거 중공업 부문은 저가 수주 등 효성의 골칫거리였으나 조현준 사장이 취임한 이후 초고압 변압기·차단기, 전동&#12539;감속기 등 고수익 제품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조 사장은 오랜 유학생활로 얻은 인적 네트워크를 사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직접 중국 고위층을 만나 효성그룹의 입지를 넓히는데 힘을 쏟고 있으며, 지난해 9월 딘라탕 베트남 호치민 당서기를 만난데 이어 11월에는 응우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와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조현준 사장에게는 정유(丁酉)년이 남다른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불황에도 안정적으로 기업을 이끌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만큼 현재 그에는 이목이 집중돼 있다. 올해도 지난 몇 년처럼 성공적인 경영을 펼칠 경우, 그룹 승계문제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할 수 있고, 효성그룹도 진정한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금호아시아나)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
4차 산업혁명서 ‘한방’을 찾는다

-He is…
1975년생인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컨설팅 회사인 AT커니와 아시아나항공에서 잠시 근무했다. 미국 MIT에서 MBA를 마치고 2005년 금호타이어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에 돌입했다. 그룹의 핵심인 전략경영 담당이사가 된 뒤 전략관리부문 상무, 금호타이어 전무, 금호타이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아시아나세이버 대표를 거쳐 2016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그룹 전략경영실 사장으로 승진해 서재환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전략실 사장과 투톱 체제를 이뤘다.

박세창 사장이 지난해 초 사장으로 승진하며 전략경영실을 이끌게 되자 재계 안팎에서는 “나이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 금호타이어 인수 등 산적한 과제를 제대로 해낼지 걱정”이라며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박 사장의 금호 근무는 파란만장했다. 2005년 금호타이어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던 그는 이듬해인 2006년 갑자기 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6년 말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전략경영담당 이사를 맡았고, 4년여 간 근무한 후 다시 금호타이어로 컴백했다. 계열사에서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는 취지였지만 정작 금호타이어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회사는 이미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였다. 당시 박세창 상무는 채권단에게 “목숨을 걸고 금호타이어를 살려내겠다”고 약속했다.
금호타이어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한 2012년부터는 좀 더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금호타이어 글로벌 마케팅 전략 수립을 진두지휘하는가 하면 선진 경영관리시스템 ERP(전사적 자원관리)를 도입한 것도 박 사장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금호타이어가 2007년부터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공식 후원계약을 맺고 유럽 스포츠마케팅을 펼친 건 다름 아닌 박세창 부사장 아이디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드는 유럽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아 후원 계약이 금호타이어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에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박세창 사장이 금호타이어에 몸담은 동안 재무구조도 좋아졌다. 2009년 말 3636%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2014년 말 141%로 급감했고 자기자본비율도 같은 기간 2.7%에서 41.4%로 늘었다. 2014년 말엔 보란 듯이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이를 두고 박 사장이 금호타이어에서 어느 정도 경영능력을 검증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워크아웃을 졸업하며 축배를 들었던 것도 잠시, 2015년 금호타이어는 또 다른 난관에 직면했다. 노조가 임금인상, 특별상여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고,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판매부진까지 겹쳐 금호타이어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당연히 금호타이어 경영 일선에 있던 박 사장 책임론이 불거졌다.

이런 이유로 박세창 사장에게는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버지 박삼구 회장의 뒤를 이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이끌어 갈 수 있겠다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최근 구성된 ‘4차 산업혁명 태스크포스(TF)’ 팀을 이끌게 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의 지시로 ‘4차 산업혁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10명으로 구성된 TF는 항공&#12539;건설&#12539;타이어 등 계열사 사업에 빅데이터나 사물인터넷(IoT), 3D프린팅, 인공지능(AI) 등을 접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다. 박삼구 회장이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회사 명운이 달렸다”고 말한 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박세창 사장은 ‘막힘없는 창의성’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그룹 전략경영본부,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등 핵심 계열사를 거치며 10년 이상 다양한 경험을 쌓은 박 사장이 자신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질 수 있는 해가 될 수 있을지 재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지난 2015년 양재동 SPC그룹 사옥에서 열린 ‘르노뜨르 소믈리에 마스터 클래스’ 그랜드 오픈식에서 허진수 SPC그룹 부사장(오른쪽 두번째)이 리본 커팅식을 진행하고 있다.(뉴시스)

허진수·허희수 SPC그룹 부사장
'빵의 미래' 형제가 설계한다

-He is… 
형제 가운데 형인 허진수 SPC그룹 부사장은 1978년생으로 올해 40세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 부사장은 2005년 그룹에 입사했다. 차남 허진수 부사장도 2007년 입사해 10년 넘는 기간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허진수 부사장은 아버지 허영인 회장과 같은 미국 제빵학교(AIB)를 수료했다. 그룹 전략기획실, 이노베이션랩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2015년 말 파리크라상 전무에서 SPC그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동생 허희수 부사장은 미래사업부문장(상무), SPC 마케팅전략실 전무를 거쳐 지난해 10월 SPC그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SPC그룹 허진수 부사장과 허희수 부사장 형제도 올 한 해 주목할 재계 인사로 꼽힌다. 지난해 하반기 두 형제가 나란히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오너가의 자녀가 등기이사에 오르면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승계와 관련해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허영인 회장이 본격적으로 두 아들을 일선에 내세우며 3세 경영의 출발을 알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형인 허진수 부사장은 SPC그룹이 해외에 240여개 파리바게트 점포를 내는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회사의 글로벌 영토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PC그룹이 오는 2030년까지 매출 20조원, 세계 1만2000개 매장을 두고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허진수 부사장의 역할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허희수 부사장은 형보다 승계에 있어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있지만 확정적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시각이 많다. 그룹의 마케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마케팅전략실장으로 역량을 쌓아오던 허진수 부사장은 지난해 7월 미국 유명 햄버거체인 ‘쉐이크쉑’을 국내에 들여오며 이른바 ‘대박’을 냈다. 이를 계기로 허희수 부사장이 역량을 인정받으며 후계구도의 판을 흔들었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서도 아버지 허영인 회장의 전례로 미뤄봤을 때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허 회장은 아버지 고 허창성 삼립식품 창업자로부터 형 허영선씨의 삼립식품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샤니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삼립식품은 1998년 부도가 났고, 허영선씨는 경영에서 물러났다. 그 후 샤니로 승승장구한 허 회장은 2002년 삼립식품을 되찾는 반전을 이뤄냈다.

▲ 지난해 SPC그룹의‘쉐이크쉑(shake shack)’ 국내 1호점 개점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낸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뉴시스)

당분간은 허 회장의 뜻에 따라 허진수 부사장은 제과제빵 R&D분야에서, 허희수 부사장은 마케팅과 외식분야에서 경영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파리바게트 관계자는 “3세 경영이 시작됐다는 말은 아직 이르다. 허희수 부사장의 승진이 그룹 내에선 형제 간 경쟁 심화를 가져왔다고 보지 않는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표면적으로 평온함을 보이고 있지만 올 한 해 재계 호사가들은 SPC그룹의 3세대 허진수·허희수 부사장의 활약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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