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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아름다운 CEO의 조건
아름다운 CEO의 조건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6.12.06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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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성공과 멋진 퇴장…루카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전 페라리 회장

명품(名品)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다. 희소성을 가질 것, 미적 감각이 탁월할 것, 최고급 소재를 활용해 수공예 방식으로 정성스럽게 만들 것. 이런 조건은 자동차 시장에도 통용되는데, 이 조건을 만족하는 명품 자동차로는 이탈리아 고급 스포츠카 페라리(Ferrari)가 첫 손에 꼽힌다.
1년에 7000대만 생산하는 페라리는 소위 ‘없어서 못판다’고 말하는 차다. 하지만 페라리에게 항상 웃는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에는 포뮬러 원(Formula 1. F1) 레이싱카 개발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경영위기를 맞았고, 스포츠카 부문을 피아트에 매각해 위기를 겨우 넘겼다. 1988년 창업주 엔초 페라리의 사망을 전후해서는 양산차 시장에서도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 페라리를 지금의 명품 자동파로 다시 태어나게 한 인물은 바로 현재 알리탈리아(Alitalia)회장인 루카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Luca Cordero di Montezemolo. 69)다.

법학도,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다

몬테제몰로는 1947년 이탈리아 볼로냐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그의 집안은 피아트의 창업자인 조반니 아넬리와 유대관계가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몬테제몰로의 아버지는 아넬리의 손자인 잔니 아넬리와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잔니 아넬리는 1966년 피아트의 회장이 됐고, 3년 후 어려움을 겪던 페라리의 스포츠카 부문을 인수한 인물이다.
몬테제몰로의 이런 집안 배경은 페라리와 인연을 시작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1971년 로마대학에서 법학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통상을 전공하며 변호사를 꿈꿨던 몬테제몰로는 1973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페라리의 창립자인 엔초 페라리의 보좌역으로 일하게 된다.
1년 후인 1974년 엔초 페라리의 눈에 든 몬테제몰로는 스쿠테리아 페라리의 F1 레이싱팀 매니저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다. 당시 페라리 레이싱팀에는 F1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영화 ‘러쉬:더 라이벌’의 모델인 니키 라우다가 속해 있었다. 라우다는 1975년과 1977년 F1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이후 페라리를 나와 베르무트로 유명한 주류회사 친자노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위기의 페라리…구원투수 몬테제몰로

레이싱팀에서 성공적인 업적을 달성한 몬테제몰로는 페라리의 모기업인 피아트로 옮겨 그룹 대외 홍보부문 수석 부사장, 피아트 그룹 출판 사업부 CEO등 각종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페라리는 트랙 안과 ㅤㅂㅏㅆ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F1에서는 1979년 이후 우승을 하지 못했고, 양산차 부문에서도 ‘그저 비싸기만 한 차’로 분류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시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페라리가 파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혹평했다.
1988년 엔초 페라리가 사망하자 피아트 그룹 회장이었던 잔니 아넬리는 FIFA 월드컵 사무국장으로 있던 몬테제몰로를 페라리 회장으로 지명한다. 당시 몬테제몰로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아넬리는 그런 몬테제몰로 회장에게 F1 대회 우승, 양산차 명예회복이라는 특명을 내린다.
그의 취임 이후 페라리는 달라졌다. F1 대회에서는 1993년 장 토드(Jean Todt. 70) 현 FIA(국제자동차연맹)회장을 영입했다. 또 1996년 F1의 황제 미하엘 슈마허사 페라리 팀에 참여했다. 이후 페라리 F1 팀은 1997년과 1998년 각각 F1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2000~2004년 페라리는 5회 연속 챔피언 자리에 오르고 총 85번의 경기에서 57번이나 우승했다. 
몬테제몰로는 스포츠카 분야도 바꿔놓았다. 누구나 탈 수 있는 차가 아니라 돈이 있어도 못 타는 차로 페라리의 이미지를 바꿨다. 생산량은 7000대 전후로 제한했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은 과감하게 기술에 투자했다.
이런 노력은 1993년 2289대에 불과하던 페라리의 판매량을 2012년 7318대까지 끌어올렸다. 1995년 200만 달러(약 23억6000만 원)에 불과하던 페라리의 순이익은 2013년 3억6300만 달러(약 4290억6600만 원)까지 치솟았다.

명가 재건의 요소들

그렇다면 몬테제몰로는 어떤 방식으로 위기의 페라리를 일으켜 세웠을까? 
몬테제몰로는 팀워크를 중요하게 여겼다. 페라리 레이싱팀에서 일하며 레이싱에서의 우승은 단순히 드라이버뿐만 아니라 매니저, 기술진 등 모두가 최고의 성과를 냈을 때 가능했다는 경험이 그의 경영 철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늘 “각자 주어진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실행력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 중 하나다. 몬테제몰로는 “오전에 결정을 내렸으면 적어도 오후에는 실행하라”고 강조했다.
몬테제몰로는 “20년 넘게 페라리에서 근무했지만, 출근할 때마다 보이는 페라리의 붉은색과 땅을 박차고 오르는 말 표시를 보면 설렌다”고 밝힌 바 있다. 열정의 리더십, 그리고 직원들에게 직설적이고 소탈하게 이야기하는 점도 그의 장점이다.
또한 그는 페라리를 재건하기 위해 3가지 목표를 세웠다. 우선 기술과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해 과거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도 미래 비전을 반영하는 차, 누구에게나 드림카가 될 수 있는 차를 만들자고 결의했다. 매너리즘에 빠진 F1 머신이 아니라 과거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모델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모델이 1995년 5년의 개발과정을 거쳐나온 F50이다. 이후에도 599GTB피오라노, 612 스카글리에티, 430 스쿠데리아 등 혁신적 모델을 쏟아내고 있다. 
두번째는 젊은 페라리, 젊은 조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모든 공장과 시무실을 전부 리모델링하고 새로 지었다. 직원들은 분위기에 고무돼 더 열심히 일했고 팀워크가 좋아졌다. 덕분에 페라리 공장은 유럽에서 가장 작업환경이 좋은 곳(Prize of the best Workplace in Europe)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기자는 것이었다. F1은 치열한 전쟁터다.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에 초기에 모든 자동차 업체는 F1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결국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대부분 빠져나갔다. 페라리는 지난 10년간 F1 Top5 안에 들었다. F1이라는 전쟁터에서의 승리는 브랜드 가치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드높였다.
그중에서도 몬테제몰로는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에 전사적인 역량을 기울였다. 그는 자동차 업체는 차만 팔아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도 바꿨다. 기업을 알리는 게 중요했다. 특히 그는 연구개발(R&D)에 유난스러울정도로 투자 했다. 기술투자가 기업을 알리는 핵심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보다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 한 것이다. 몬테제몰로는 “미래를 위한 투자는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필요하다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당장의 세일즈에 집착한다”고 말했다. 페라리는 매년 15%정도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데 R&D에 투자하는 비율은 매출의 15%정도다. 번 만큼 다 R&D에 투자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투자는 다시 페라리에 득이 되고, 다시 돌아간다. 이런 기술 투자는 페라리를 기술경쟁에서 이길 수 있게 해줬고 브랜드 가치를 높여 수익성 개선에 도움을 줬다.

아름다운 퇴장

페라리의 재건을 이끈 몬테제몰로는 자신이 쌓아올린 금자탑 위에서 아름다운 작별을 했다. 그는 페라리를 떠나는 순간에도 브랜드이미지와 직원들의 열정을 언급했다.
그는 퇴임 연설을 통해 “페라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사이며 여러분은 페라리를 지탱하는 힘이자 승리를 이뤄낸 일등 공신이다. 여러분이 바로 페라리 그 자체인 것이다”라며 몇 차례나 임직원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페라리는 단지 차를 만드는 것이 아닌 꿈을 만드는 회사다. 여러분이 있기에 페라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전하며, 참석자 전원과 악수하며 아름답게 페라리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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