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에 나부끼는 스카프, 눈꽃송이!
강바람에 나부끼는 스카프, 눈꽃송이!
  • 권동철 전문위원
  • 승인 2016.11.01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Insight Fine Art|서양화가 윤종
▲ Inducement for Imagination, 112.1×162.2㎝ Oil on Canvas, 2016

작은 오솔길엔 몇 낙엽이 부드러운 바람에 가늘게 뒹굴었다. 그늘진 숲을 막 빠져나오자 만추(晩秋)의 눈부신 햇살에 나부끼는 노란은행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덩굴나무가 몸통을 휘감아 올라가 붉게 물들어가는 잎들을 펄럭였다. 보기엔 염치없다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연노랑과 갈색 잎들이 묘하게 서로의 자리를 존중한 듯 보였다. 단지 공생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한 뭔가 자연의 깊은 뜻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자 목에 긴 스카프를 두른 키 큰 멋쟁이가 가을을 음미하며 산책하듯 나무에선 우아한 율동의 아우라가 하늘거렸다. 

▲ Natural Rotation, 72.7×72.7㎝

새들의 노래 억새둥지

잠시 후, 금발의 아가씨가 정적을 깼다. 까만 바지와 핑크색 운동화로 무엇을 체크하는지 손에 든 스마트폰을 연신 들여다보며 매우 씩씩하게 달리며 지나갔다. 아마도 그녀의 이어폰에서는 파워풀한 리듬의 음악이 흐를 것이라고 잠시 생각했다. 숲길엔 약간 경사진 언덕길이 나 있었다. 어떻게 그곳에 자라났는지는 모르지만 하늘하늘한 억새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 있었다. 누군가 튼튼한 끈으로 묶어 쓰러지지 않게 동여매여 놓았는데 사실 불안하게 버티고 있는 그들이 문득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잠시 뿐, 억새 둥지에서 앙증맞은 새들이 포르르 날아올랐다. 아, 가벼운 탄성이 절로 났다. 새들의 둥지, 놀이터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고 다시 보니 비록 경사진 언덕이긴 하지만 햇살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이었다. 나는 그곳의 자그마한 벤치에서 한 참을 머물며 깊이 심호흡도 하고 눈을 감고 있기도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새들의 지저귀는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매우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처음엔 하나 둘 정도가 부르더니 조금 후 합창으로 이어졌다. 새들의 노래를 웅장하다고 하면 어색할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그랬다. 나는 노래에 심취하여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한참 후,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은사시나무 두 그루가 보였다. 참 이상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었는데 저렇게 큰 나무가 있었다니! 

▲ (좌)162.2×130.0㎝ (우)55×46㎝

흐르는 강물, 사랑의 다리

나는 숲길을 다시 천천히 걸었다. 숲에서 보낸 시간이 당연히 길어져 갔는데 점점 나무들이 나에게 무언가 손짓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얘기를 걸어오는 것이었는데 대체로 도시의 이야기가 궁금한 듯 느껴졌다. 내가 산책하던 숲길은 산의 중턱 쯤 이었다. 저 아래 도시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 올 만큼 적당한 높이와 위치였던 셈이다. 한 상수리나무는 도심광장풍경을 몹시 보고 싶어 했다. 단 한 번도 시내로 나가보지 못했다며 투덜댔다. 도시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다른 나무들이 언제나 생기 넘치는 그곳 이야기를 꺼낼 때면 호기심 가득 찬 눈빛을 반짝인다고 주변 나무들이 일러주었다. 또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강가에 살았었다는 가문비나무는 그곳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의 안부를 부탁했다. 명랑하고 위트가 넘치는 그 나무는 다채로운 색깔의 돌조각들을 붙인 ‘사랑의 다리’에 대한 소식도 잊지말아달라고 했다. 그 다리위에서 사랑을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증명해야한다며 장황하게 이야기를 다시 늘어놓았다. 그리고 수령이 오랜 고목나무도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건네 왔다. 이맘쯤엔 크리스마스트리장식으로 이웃들이 분주한데 요즈음은 통 소식을 듣지 못해 궁금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첫눈은 예고 없이 내려와 늘 설레죠. 올해엔 첫 눈이 내리면 겨울에도 늘 푸른 나의 잎을 크리스마스트리장식으로 나누어주고 싶군요!’   

▲ 41×33㎝

----------------------------------------------------------------------------------------

서양화가 윤종

누구나 일상에서 달콤한 꿈을 꾸기도 하고 혹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해보기도 하고 때론 유년의 아련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 가슴 훈훈한 오래된 책장을 펴기도 한다. 윤종 작가의 작품세계 역시 내재된 심상에서 강렬하게 밀려드는 영감을 화폭에 펼쳐낸 적극적인 상상놀이라 할 만하다. 그는 “유심히 흐르는 세월과 무심한 산책길 또 소란스러운 카페의 수다 중에도 잠에 취해 하늘을 비행하다가 바다에 종이배를 띄우기도 한다. 이렇듯 현실과 환상의 모험을 작업으로 연결지어왔다. 이러한 오래된 습관은 감각과 직관을 더해 사유하고 체험하면서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가 다시 모아짐을 반복한다. 그러한 연속성을 하나의 이미지로 재구성하여 시공간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이웃마을에 핑크빛 꽃들이 피어나고 우리 동네엔 아기손등처럼 보드라운 눈꽃송이가 내리듯 그렇게 둥글둥글 우리는 이웃”이라고 전했다. 윤종(YUN JONG)작가는 지난 2011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경인미술관에서 가진 첫 개인전 이후 2013년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가스 순회전(미국)을 가졌다. 올해 9월 뉴욕소재, ‘에이블 파인아트 뉴욕(Able Fine Art NY)’갤러리 초대전에서 호평을 받고 귀국해 현재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희수갤러리(HEESU GALLERY)에서 11월2~15일까지 초대개인전을 열고 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