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리더십 특강
정주영 리더십 특강
  • 김문현 전문위원
  • 승인 2016.10.04 1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
▲ 올림픽 유치 역사상 민간기업인에게 유치위원장직을 맡긴 전례는 없었다. 정주영은 자신이 망신대용품으로 뽑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업인들이 힘을 합쳐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유치위원장직을 기꺼이 맡아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사진은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위원들과 함께.

한국 양궁의 올림픽 사상 최초 전 종목 석권, 펜싱 스타 박상영의 대역전 드라마, 골프 여제 박인비의 투혼이 이뤄낸 골든 그랜드 슬램 등 2016년 한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리우 올림픽의 감동과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이어 아시아권에서의 두 번째 올림픽인 1988년 서울 올림픽마저 일본의 나고야에 내줬다면, 그 이후의 2008년 북경 올림픽과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2020년 도쿄 올림픽 등 일련의 흐름으로 보아 한국은 하계 올림픽의 역사를 쓰기 어려웠을 것이고, 대한민국호는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표류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두가 자포자기했던 88서울올림픽 유치

20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 중 가장 획기적이고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 올림픽 유치였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세계 만방에 알리고 미수교국과 국교를 맺어 대한민국호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데 올림픽 유치가 미친 영향과 공로는 실로 지대한 것이었다. 
1988년에 치러지는 올림픽은 아시아권에 쿼터가 배정되어 있었다. 선두주자는 단연 일본. 1964년 도쿄올림픽을 치른 일본은 올림픽이 가져다줄 열매가 얼마나 달콤한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고야를 올림픽 개최 후보지로 선정하고 유치전에 나섰다. 
하지만 1980년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에 정식으로 올림픽 유치 의사를 밝힌 우리 정부는 올림픽 유치에 미온적이었을 뿐 아니라 회의적이기까지 했다. 총리가 앞장서서 올림픽 망국론을 펴는가 하면 문교부 체육국에서 신청한 예산이 전액 삭감 당하는 등 전반적인 여건이 올림픽 유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한국의 IOC 위원마저 한국이 얻을 수 있는 표는 총 82표 중 한국, 대만, 미국 3표 밖에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던 터였기에 올림픽 유치전이 제대로 될 리 만무였다.
한편, 대한체육회에서는 올림픽 유치 보다 아시안게임의 유치에 더 정성을 쏟고 있던 터라 비밀리에 일본에 밀사를 파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이 한국의 86아시안게임 유치를 지원해주면 한국이 일본의 88올림픽 유치를 지원하겠다는 빅딜을 제안한다. 이미 88올림픽을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일본에게 이러한 제의가 통할 리 만무였다. 결국 일본으로부터 망신만 당한 채 올림픽 유치위원회는 옆으로 게걸음을 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고 만다. 

유치위원장 맡아 100% 자신감으로 총력전 펼쳐

이런 와중에 올림픽 유치위원장직이 정주영 당시 전경련회장에게 맡겨진 것이다. 올림픽 유치위원장은 올림픽이 개최되는 도시의 시장이 맡는다는 관례를 깨고 올림픽 유치 역사상 최초로 민간기업인에게 그 책무가 지워진 것이다. 
이는 올림픽 유치 자체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유치위원장직을 누가 맡든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기에 누구도 위원장직을 맡으로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때마침 신군부정권에 밉보인 정주영 회장에게 망신을 주자는 의도도 적지 않이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정주영 회장은 그 잔이 독배인줄 알면서도 마시기로 결심한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정주영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올림픽 유치를 반드시 이뤄내고 말겠다는 신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정주영은 매사에 “된다는 확신 90%와 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 외에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1%도 가지지 않는 자세”로 살아 왔다. 오히려 기업인들이 힘을 합쳐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유치위원장직을 기꺼이 맡기로 한 것이다.
올림픽 유치전이 본궤도에 올랐을 때 일본의 나고야 시장은 개막 이틀 전부터 현지에 도착해서 홍보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한국의 IOC위원과 서울시장은 개막일이 지나도 현지에 나타나지 않아 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다. 유치전을 펴려면 각국의 IOC 위원들을 만나 설득을 해야 하는데 이들이 머물고 있는 브레노스 파크 호텔 출입은 IOC 위원에게만 허용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IOC위원이 빨리 현지에 도착해 호텔에 머물러야 그를 만난다는 핑계로 호텔을 넘나들며 다른 나라 IOC 위원들을 접촉할 수 있는데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었다. 

▲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던 정주영은 1979년 제 1회 한일 최고경영자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經團連)과의 경제협력회의를 정례화하며 일본과의 경협 강화를 활발하게 추진했다. 사진은 1981년 9월 30일,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는 순간 자리를 지키며 차분하게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정주영 회장.

“동서남북을 ‘하나’로”…대역전극 연출

우여곡절 끝에 파리에서 수배되어 현지로 오게 된 한국의 IOC위원은 처음부터 올림픽 유치에 회의적이었던지라 본인의 이름으로 각국의 IOC위원에게 꽃바구니를 선물하자는 제의조차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만다. 
이 때 정주영 회장은 “지극하게 정성을 다하면 못 이룰 일이 별로 없다”고 마음먹고 조심스럽게 본인 명의로 된 꽃바구니를 IOC 위원이 묵고 있는 호텔 방으로 보낸다. 일본에서는 최고급 부부 손목시계를 선물한 터였지만, 뜻밖에도 정성스런 마음이 담긴 꽃바구니가 IOC 위원들의 마음을 여는데 크게 일조를 하게 된다. 
IOC 위원들의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 실시된 총회 청문회에 소개된 한국의 15분짜리 홍보영화는 아프리카의 오지 정도로만 알고 있던 각국의 IOC 위원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준다. 한국의 서울이 일본의 도쿄나 미국의 LA와 다를 바 없이 빌딩숲으로 이뤄져 있고 빼곡이 들어찬 자동차의 행렬을 영상으로 보면서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의 모습에 감동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특히나 중동 및 아프리카의 IOC 위원들에게는 그곳에 진출해 건설을 많이 했던 ‘현대’의 이미지가 유치전에 십분 활용되었으며, 개발도상국인 한국도 올림픽을 훌륭히 치러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더군다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서방국가들이 불참해 반쪽 올림픽으로 개최된데 반해 88올림픽은 동과 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화합과 통일의 제전으로 승화시키자는 비전에 많은 IOC 위원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단 3표 밖에 얻을 수 없다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정주영의 꽃바구니 전략에 힘입어 52표를 획득한 ‘쎄울’이 88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룸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꿔놓게 된 것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