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1%도 가지지 마라”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1%도 가지지 마라”
  • 김문현 전문위원
  • 승인 2016.08.31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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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한 달 이상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 열사의 땅 중동에 진출하여 오일머니를 벌어들임으로써 국가를 외환위기로부터 벗어나게 했던 정주영 회장의 혜안을 되돌아 본다. 

1975년 당시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고는 매우 취약하여 매일매일 외채 상환 결제에 시달리며 국가 부도 직전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었다.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한 오일쇼크의 여파를 대한민국도 비켜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세계 경제의 시름과는 아랑곳없이 막대한 오일달러를 끌어 모아 급속한 근대화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곳이 다름 아닌 중동 산유국들이었다. 돈이 넘쳐나는 중동. 돈을 잡으려면 돈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정주영 회장은 주저 없이 중동 진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아우 정인영을 비롯한 반대파의 저항이 생각 밖으로 거셌다. 어렵게 일군 현대호가 좌초될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충정 때문이었다. 

▲ 사우디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 단 한 건으로 당시 국가예산의 50%가 넘는 달러를 벌어들임으로써 대한민국호를 외환 위기에서 구해 낸 정주영의 중동진출 결단은 선구자적 혜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진은 1975년 사우디 아라비아 나와프 왕자와 공사 협정을 맺은 후.

“내가 믿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과 무한한 저력 뿐”

일부 언론에서도 못 배운 정주영이 무모한 짓을 하려 한다며, 현대가 망하게 되면 국가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될 것이라고 중동 진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중동 진출은 시대적 소명이었다. 여태껏 현대에 크나큰 기여를 해 온 정인영 아우와는 이때를 계기로 결별을 하고, 중동 진출에 반대해 온 경영진들을 정리한 후 “내가 믿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져오는 무한한 가능성과 우리 민족이 가진 무한한 저력 뿐이다. 나는 평생을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살아 왔다. 모든 것은 나에게 맡겨라. 겁이 나거든 집에 가서 누워 기다리라”며 정주영 회장이 직접 나서 새 진용으로 중동 진출을 진두지휘한다. 

중동에 처음 진출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대한 주된 이유는 건설공사에 필요한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섭씨 50도가 넘는 열사의 땅에서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면서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 였으리라. 
그러나 정주영 회장의 시각은 달랐다. 중동은 1년 열두 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가 있으며, 50도가 넘는 한낮에는 쉬고 서늘한 밤에 일하면 된다. 지천에 널려 있는 모래와 자갈은 손쉽게 원자재로 활용될 수 있으며, 물은 바닷물을 정제하여 사용하면 된다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오늘날의 중동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었다. 

▲ “기업은 이익이 우선이지만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항상 염두에 두라.” 정주영의 경영철학 밑바탕엔 항상 1970년대 중반, 중동 현지인들은 ‘현대와 일하면 먹을 게 하나도 없다’며 공공연하게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다. 사진은 사우디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에 사용될 기자재를 국내에서 선적하는 장면.

“된다는 확신 90%+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 

“안 되는 쪽으로 연구 많이 했구먼! 똑같은 시간과 열정을 들여 되는 쪽으로 다시 검토해 와!”
“된다는 확신 90%와 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 외에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1%도 가지지 마라.”
긍정의 화신, 정주영의 어록 중에서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문구이자 주문이다
정주영 회장의 중동 진출은 당시 우리나라 국가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9억3천만 달러짜리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함으로써 꽃을 피우고, 국가가 외환위기로부터 탈출하는 전환점을 만들어 준다. 당시 선수금 2억 달러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외환 보유고가 건국 후 최고를 기록했을 정도다. 
선수금이 입금된 후 외환은행장이 직접 정주영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했다 하니 당시의 위기 국면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최악의 외환 사정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대한민국 정부에게 낭보를 안겨줬다는 것만으로도 중동 진출은 큰 보람을 안겨준 일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정주영 회장은 남들이 미처 가보지 못했던 분야에 뛰어들어 기초를 놓고 다른 모든 기업들이 따라 오게 만드는 선구자였다. 남들보다 먼저 다리를 건너 그 다리가 돌다리인지, 나무다리인지를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이 안심하고 건널 수 있도록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주영을 ‘지사적 기업가’로 칭송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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