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과 독일기업의 경영비법
이병철과 독일기업의 경영비법
  • 민석기 기자
  • 승인 2016.07.05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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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 기업 성장의 강력한 무기
▲ 호암은 인재제일주의를 실현해 삼성을 인재의 보고로 만들었다. 호암은 1981년 임원교육장에서 직접 모든 계열사 임원들을 불러놓고 도덕성을 강조했다.

2011년 6월 8일과 9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출근하는 길에 이틀 연속 ‘삼성의 부정’을 강도 높게 질타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삼성그룹 전 계열사에 걸쳐 부정을 경계하는 움직임이 적지 않게 일고 있다. 이러한 이건희 회장의 ‘청렴 경영’도 알고 보면 생전에 도덕성을 무척 강조했던 호암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결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자라는 법이다. 

2011년말 삼성그룹은 사상 최대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상 최대 폭의 ‘퇴진’ 인사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때 물러난 계열사 임원들 중에는 내부 감사에서 비리가 적발된 경우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과거 제3공화국 시절 단자회사 설립을 신청하라는 정부의 요청에 대해 호암은 “난 고리대금업을 해서 돈 벌고 싶지 않다”고 일축한 것은 호암의 도덕적 사업기준이 얼마나 날카롭게 서 있는지를 말해주는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호암은 한국비료를 세우는 과정에서 주변 인사들의 비도적적 처사를 경험한 이후에 사업은 물론 회사와 직원에 대해서까지도 더욱 도덕성을 따지게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호암은 1967년 한국비료를 헌납하고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때 호암이 전적으로 신임했던 한 간부사원이 그를 배반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 그 간부사원은 호암이 자신을 깊이 신뢰하고 의심없이 인장을 맡기자 삼성 재산의 3분의 1을 빼돌렸다. 다행히 재산은 나중에 거의 반환됐지만, 늘 사람을 믿고 써온 호암에게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호암은 부정의 본질과 속성을 제대로 체험하게 됐고, 1975년 7월 모든 계열사 사장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했다. 
“인원 정리를 하면 불쌍해서 또는 원성이 두려워서 또는 성격상 과감하게 못 하는 사람이 있다. 만약 이러한 생각에서 정리를 못 한다면 경영자로서 큰 죄악을 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부정은 그 파급 속도가 빠른 법입니다. 조직의 일각이 부정으로 병들면 순식간에 그 조직은 무너지고 맙니다. 사람을 정리하지 않는 경영자는 당시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후일 경영자로서 큰 죄악을 범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경영 능력은 누구라고 다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1980년 2월 2일 간담회에서는 ‘사업은 윤리성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강조하면서 “아무리 돈이 들어도 해야 할 것과 아무리 적게 들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의사결정을 할 때는 그것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암은 1983년 9월 삼성그룹 고문단회의에서 1967년 전의 일을 재차 강조했다. 
“지금부터 15년전 어느 관계 회사의 제품이 시장 수요를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할 때의 이야깁니다. 거래선이 제품을 가져가려면 물건 값 외에 담당자에게 사례금을 줘야만 물건을 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조사를 시켰더니 공장장 이하 종업원이 부정에 관련됐음이 드러났습니다. 나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나머지 종업원에게 경종을 울리고 회사의 기강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사장에게 ‘부정 관계자들에 대한 조치 방안이 무엇인가?’ 라고 물었더니 그 사장은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면 그들은 더욱 분발할 것이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장이 전책임을 지겠습니다. 저를 보아서라도 용서해주십시오’ 하며 한 사람도 처벌하지 않을 생각으로 용서를 강조했습니다. 
나는 회사를 맡아서 하는 사람에 대해 강청(强請)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경영에 대해 재량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므로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다시 점검해보았더니 부정이 없어지기는커녕 더 많은 1백여 명의 사람들이 부정을 저질렀던 겁니다. 과감한 결단력이 없었던 그 사장은 2년전에 관계자 약간 명을 가슴 아파서 못 보내고 몇 사람을 살리려다가 1백여 명의 사람과 회사까지 망쳐버렸으니 경영자로서 죄악을 저지른 것이라는 회사 내의 여론이 일어나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덕성 중시하는 독일 사회

독일 사회는 도덕성을 매우 중시한다. 18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바람은 프랑스를 거쳐 독일에도 상륙했다. 특히 독일에선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한 중공업이 크게 발전했다. 그 핵심이 되었던 것이 증기 보일러다. 하지만 증기 보일러가 상당히 많이 보급되다보니 그만큼 폭발 사고도 많았다. 증기 보일러에 대한 안전성과 신뢰성에 대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증기 보일러를 정기적으로 조사해 사고를 방지할 필요성이 생겼다. 보일러 제조업체들은 민간기관을 구성했는데, 그렇게 해서 TUV(Technisher Uberwachungsverein, 기술검사협회)가 탄생했다. 이것이 오늘날 독일의 대표적인 공익기업인 ‘TUV-SUD’의 모태이다. 
1866년 1월 설립된 TUV-SUD는 각종 기술 및 산업의 발전에 따라 증기 보일러 외에 사업 범위를 점차 확대했다. 새로운 신기술에서 발생되는 위험으로부터 인간, 환경, 재산 등을 보호하기 위해 안정성을 다양하게 검사하게 된 것이다. 1900년대 들어서는 승강기, 디젤 엔진, 스프링클러 시스템, 수력발전소 뿐만 아니라 각종 전기전자 장치의 안전검사 및 시험인증 서비스를 제공했고, 운송 및 자동차와 원자력산업에 이르기까지 서비스를 넓혔다. 
1980년대 후반까지 TUV는 독일연방정부 산하에 있었다.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활동을 지속한 노력으로 독일 국민들은 TUV를 ‘공공의 안전, 품질, 신뢰 그리고 환경보호’와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였고 본격적으로 도약한 TUV는 헤센 등 세 곳의 TUV를 합병해 민간 검사기관으로 거듭나게 됐다. 뮌헨에 본사를 두고 있고 1992년부터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TUV-SUD는 전세계 6백여 곳의 사업장에 1만6천명의 전문인력을 보유할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그 비결은 뭘까? 바로 ‘도덕성’이다. 이 회사는 안정성을 검사하는 업무적 특성상 제품 설계 도면과 같은 기업 비밀을 수시로 접하지만, 1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객 정보가 외부로 노출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TUV-SUD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제품이나 시스템을 평가하는 직원들이 고객과 상담을 하거나 기술적인 조언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한다. TUV-SUD의 독특한 소유권 및 지분구조는 직원의 윤리의식을 높이는 원동력이다. 이사회가 의결권을 행사하지만 배당을 받지 않고 모든 수익은 회사에 재투자 하는 것이 이 회사만의 엄격한 ‘룰’이다. 
오늘날 TUV-SUD는 영국 BABT, 싱가포르 PSB 등 세계 각국의 시험인증기관을 지속적으로 인수·합병해 국제시장에서 위상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도덕성은 사업을 운영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좋은 사업이 된다는 사실을 호암과 독일의 TUV가 말해준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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