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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푼으로 그릭 요거트 재벌 축성 ‘함디 울루카야’ 초바니 CEO
무일푼으로 그릭 요거트 재벌 축성 ‘함디 울루카야’ 초바니 CEO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6.07.04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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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함께 일해 왔습니다. 이제 우린 동업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갚을 차례죠.”

지난 4월 미국 뉴욕 뉴베를린에 위치한 요거트 회사 ‘초바니’ 강당에서 한 사내가 자신의 오랜 소망을 이뤘다. 직원들에게 받은 호의를 꼭 돌려주고 싶었던 그의 이름은 함디 울루카야(Hamdi Ulukaya, 43). 무일푼으로 미국행을 택했던 그가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그릭 요거트(Greek Yogurt) 기업 ‘초바니’를 일군 원천은 무엇일까?

22년만에 14억 달러 번 쿠르드족 출신

14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조 5900억원은 달지 않은 그릭 요거트로 미국 요거트 업계의 판도를 바꾼 함디 울루카야가 22년 만에 벌어들인 자산이다.
울루카야는 1972년 터키의 유프라테스강 인근 일리츠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염소와 양떼를 이끌고 유목생활을 했다. 생계는 가축들이 제공하는 유제품으로 해결했다. 울루카야의 유년기는 열악함 그 자체였다. 그에게 먼 옛날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몰락한 뒤 국가를 세우지 못해 터키, 시리아, 이라크 등 중동비장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울루카야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터키에서는 쿠르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멸시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터키 앙카라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그는 1994년 22살의 나이에 미국 길에 올랐다. 쿠르드족에 대한 차별과 영어를 배우기 위해 새로운 땅으로 거취를 옮긴 그였지만 생계는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 울루카야에게 사업의 영감을 준 것은 아버지였다. 
미국을 방문한 그의 아버지는 미국의 ‘페타치즈’를 맛 보고는 “어떻게 이런 것을 먹을 수 있냐”며 고향의 페타치즈를 미국에 팔아보자고 제안했다. 생계를 이끌어갈 별 다른 방법이 없었던 울루카야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먼 이국 땅에서 뜻하지 않게 가업을 잇게 된 셈이다. 
울루카야는 치즈의 품질에 대해서는 자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 대부터 가업으로 이어져 온 노하우는 미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2002년에는 유프라테스라는 회사를 세워 직접 미국인의 입맛에 맞는 치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작은 치즈사업을 하면서 생계 걱정을 덜고 안정을 찾게 된 울루카야의 삶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전단지 한 장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2005년 문을 닫은 요거트-치즈공장의 전단지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공장은 1920년에 지어져 세계적 식품업체인 ‘크래프트 푸즈’가 사용하던 것으로 오래됐지만 기계는 쓸 만 했다. 미국의 요거트가 인공향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울루카야는 중소기업청과 지역 경제개발 조직들의 지원을 받아 이 공장을 인수했다. 요거트 사업에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서 였다. 

고향의 천연 요거트 맛을 미국에 재현 ‘빅히트’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그는 터키에서 요거트 명인을 영입하고 기계를 다루는데 익숙한 크래프트 출신 4명을 모았다. 이들은 18개월 동안 완벽한 요거트를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매달렸다. 목표는 무방부제, 무인공향료이면서 일반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요거트 였다. 
터키어로 양치기를 뜻하는 ‘초바니(Chobani)’를 회사 이름으로 정하고, 사업 초기 뉴욕 롱아일랜드 지역의 슈퍼마켓을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2007년 300개를 출시하면서 시작된 초바니 요거트는 첫 해 2500만 달러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별다른 마케팅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울루카야는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이 제품을 개발했다. 요거트는 특별한 아이템이어서는 안된다. 보통의 식품이어야 한다”며 자사제품을 특별한 푸드 섹션이 아닌 평범한 슈퍼마켓의 유제품 코너로 밀어 넣었다. 그릭 요거트 시장 자체를 성장시키기로 한 것이다. 울루카야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그릭 요거트는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먹어온 건강한 음식이고, 이것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초바니 요거트는 기존의 요거트와 다른 쫀득쫀득한 식감과 시큼고소한 맛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고,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울루카야의 바람대로 그릭 요거트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초바니가 첫 제품을 출시했을 당시 전체 요거트 시장에서 1% 내외를 점하던 그릭 요거트는 현재 35~40% 수준으로 성장했다. 
초바니가 설립된 지 5년 만인 지난 2012년에는 그릭 요거트 시장의 58%를 차지하면서 연간 수입은 10억 달러를 넘었다.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요거트 브랜드가 된 것이다. 이후 울루카야는 4억 5000만 달러를 들여 아이다호주 트윈폴스에 세계 최대의 요거트 공장을 지었다. 그 사이 5명이던 직원은 약 2000여 명으로 늘었다. 낙농업 선진국인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초바니의 요거트를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이즈음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그릭 요거트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미국 공립 초등학교 급식에 육류 대신 흡수하기 쉽고 건강에도 좋은 그릭 요거트를 포함시키는 방안이 통과되면서 초바니는 순풍에 돛을 달기 시작했다. 국제 회계?컨설팅회사 언스트앤영(Ernst&Young)의 ‘2013년 세계 최우수 기업가’로 선정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초바니가 그릭 요거트를 앞세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자 다농(Dannon)과 요플레(Yoplait) 등 기존 요거트 강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그릭 요거트 시장에 뛰어들었다. 거대 자본이 시장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자칫하면 시장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초바니는 무너지지 않는 성벽과 같았다. 일각에서는 그 원동력으로 끊임없는 제품 개발과 함께 울루카야의 남다른 행보를 꼽는다.

수익 10% 사회환원…“나는 어머니가 베푸는 것을 보며 자랐다”

“나는 항상 가진 것 대부분을 나눠 줄 계획이었다. 성장하면서, 나는 어머니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봐 왔다.”
울루카야는 초바니 설립 당시부터 수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쿠르드족으로 차별을 받는 와중에도 이웃에게 베푸는 어머니 곁에서 성장한 경험이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를 만든 것이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진 분야는 ‘난민 문제’다. 울루카야는 한 방송에서 “터키를 떠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쿠르드족이며 쿠르드의 인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결과다. 터키 내 많은 쿠르드족은 인권을 유린당하고 폭력에 시달린다”며 자신이 난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운 빌 게이츠와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재산의 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자”며 만든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에 동참했다. 구체적으로 기빙플레지를 실행하기 위해 자신의 기부 재단 텐트(TENT)를 세워 세계 난민 구호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뿐만 아니라 울루카야는 세계의 분쟁지역을 직접 방문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유럽 난민 위기의 최전선인 그리스 레스보스 섬을 방문하고,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 구호 기금으로 200만 달러를 내놓는 등의 활동은 그에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또, ‘돈을 기부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며 난민출신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고용했는데, 그 비중은 현재 전체 초바니 직원의 30%에 이른다. 
이런 활동은 사회에 공존하는 기업의 모범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 덕분에 2013년 가을 초바니의 새로운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에서 곰팡이가 나와 대규모 리콜이 진행될 때도 여론은 발효식품의 특성상 그럴 수 있다며 초바니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했다. 

“직원은 동업자”…리더의 진심은 기적을 낳는다

울루카야는 기업과 사회의 공존 모델을 제시한 기업가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직원들을 스스럼없이 ‘동업자’라 부르기도 한다. 지난 4월 26일에는 “이 회사를 열었던 날부터 직원들과 성장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직원들은 회사가 성장할 수 있게 정말 열심히 일했다. 우리 회사가 현재 자리까지 온 것은 모두 직원들의 헌신 덕분이었다”고 말하며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면서 회사의 지분 10%를 2000여 명의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초바니 요거트는 최대 5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평가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해 약 6000억 원, 1인당 평균 1억7000여만원어치의 주식을 나눠준 셈이다. 현재 비상장기업인 초바니는 상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직원들은 이 주식을 회사가 상장되거나 매각될 때 처분할 수 있게 된다. 또, 울루카야는 직원들에게  “(지분은) 선물이 아니다. 목표와 책임을 함께 하자는 상호 약속의 의미다”라는 편지를 전하며 현재의 마음가짐을 잃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리더 울루카야의 파격적인 행동에 초바니 초창기부터 직원이었던 테리 에드먼드는 주식봉투를 받은 후 “회사가 소규모로 시작해 모두가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내 자신이 회사 소유자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 좋다. 대체 요즘 누가 이렇게 행동하나?”라고 말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리더의 진심은 기적을 낳는다. 울루카야의 진심 어린 행동은 다른 경쟁기업에서 찾기 어려운 초바니의 장점이 되고 있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초바니가 경쟁우위를 점하는데 확실한 무기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리더들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지고 있는 지금, 사회와 조직 구성원들에게 존경 받는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울루카야의 생각과 행동을 곱씹어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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