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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의 가능성을 골인시키다
0.02%의 가능성을 골인시키다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6.05.31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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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외인구단’ 레스터시티 구단주, 비차이 스리바다나프라바 킹파워그룹 회장

‘만년 꼴찌 후보’ 레스터시티가 창단 132년 만에 세계 최고 프로축구리그 중 하나인 EPL(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영국 중부 인구 30만의 중소도시 레스터를 연고로 한 동화같은 성공스토리에 전 세계 축구팬들이 흥분하고 있다. 시즌 초만 해도 축구 도박사들은 여우구단 레스터시티의 우승 가능성은 0퍼센트에 가깝다는 의견을 내놨다. 굳이 따지자면 5000분의 1(0.02%)의 확률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 돌아올 확률보다 낮았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여겨졌던 그들의 우승으로 인해 레스터시티의 구단주이자 태국 킹파워 그룹의 비차이 스리바다나프라바(Vichai Srivaddhanaprabha/58) 회장의 구단경영 방법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미소의 나라’ 태국은 관광대국답게 경제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태국 부자 대다수도 ‘먹고 자는’ 것과 관련된 업종에서 큰 재산을 모았다. 태국의 국민맥주인 ‘창’을 만드는 타이 베버리지의 차로엔 시리바다나박디 회장, 백화점・호텔 업계의 거물 치라티왓 가문이 대표적이다. 
스리바다나프라바도 마찬가지. 그는 태국의 관문인 방콕 수완나폼 국제공항과 방콕 중심가의 킹파워 면세점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쌈짓돈을 싹쓸이 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해마다 발표하는 태국 부자 순위에서 스리바다나프라바는 2012년 37위였으나, 이듬해인 2013년 11위로 뛰어올랐다. 여기에 지난해에는 9위를 기록하며 부자순위 10위권에 진입했다. 

태국관광의 필수코스 ‘킹파워 면세점’

태국의 관광산업 발달은 스리바다나프라바에게 큰 힘을 실어 주고 있다. 2011년 대홍수 이후 태국을 찾는 관광객은 해마다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 2013년 마스터카드가 세계 도시별 외국인 관광객 수에 대해 예측한 ‘글로벌 관광도시 인덱스’에서 방콕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제치고 1위로 등극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킹파워 면세점이 급성장한 비결로 스리바다나프라바의 공격적인 경영방식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지난 2011년  대홍수로 방콕 시내가 물에 잠겼을 당시 태국 휴양도시 파타야에 면세점을 여는 등 꾸준한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스리바다나프라바가 방콕 외의 지역에도 분점을 내기 시작하면서 태국을 찾는 관광객들 사이에 킹파워 면세점은 필수코스가 되고 있다.
태국 경제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억만장자 스리바다나프라바도 상당수 태국인과 마찬가지로 잉글랜드 축구의 열성 팬이다. 스리바다나프라바의 개인비서로 일했던 알렉스 힐튼은 “그는 진정한 축구팬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가 열리면 일찍부터 TV를 지켜보며 모든 선수에 관한 정보를 꿰고 있었다. 그 뒤 레스터 경기를 관전하고 그 다음 경기까지 지켜본다. 정말 경기에 열광한다. 그는 축구 팬으로서 구단을 인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리바다나프라바는 2010년 레스터시티를 우승팀으로 만들겠다는 야심만만한 포부를 가지고 구단을 인수했다. 그런 약속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는 환영과 조롱이 교차했다. 일부는 “1부리그와 2부리그를 전전하는 팀이 우승하려면 수백 년이 걸릴 것”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리바다나프라바는 레스터시티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무명’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스리바다나프라바는 면세점 경영에는 밝았지만 축구전략에 관해서는 전문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큰 그림은 자신이 그리고 축구의 전략과 같은 세세한 부분은 감독과 코칭스텝에게 일임했다. 그는 감독을 비롯한 여러 사람과 자주 회의를 열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다. 
레스터시티의 선수 면면을 살펴보면 외인구단을 방불케 한다. 주전 공격수 제이미 바디는 2003년 잉글랜드 8부리그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벽돌공장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 축구선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던 바디는 11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레스터시티의 우승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바디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리야드 마레즈는 헐값에 가까운 이적료로 레스터시티에 입단했다. 레스터시티의 팬들도 이적 당시 그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마레즈는 2015~16 프리미어리그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이적 일년 만에 자신을 향한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여기에 169cm의 작은 신장으로 거의 모든 축구클럽에서 입단을 거절당한 중원의 핵 은골로 캉테, 한물 간 선수로 평가 받던 노장 수비수 로베르트 후트, 세계적인 골키퍼였던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있던 골키퍼 카스퍼 슈마이켈,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방출된 대니 드링크워터, 우승 경험이 없는 이탈리아 출신의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까지. 
선수단이 무명(?)인데다 제각각 개성이 너무 강해 이들을 휘어 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난 인물을 감독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리바다나프라바는 인자하기로 이름난 라니에리를 선임, 깊은 신뢰를 보냈다. 이에 부응하듯 라니에리 감독은 선수단을 하나로 모으는데 성공했고, 뛰어난 전략과 효율적인 경기방식으로 팀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놨다.

조직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2010년 2부리그를 전전하던 레스터시티를 인수한 스리바다나프라바는 2014년 팀이 1부리그로 승격하자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이어 그는 이적시장에서 7700만 파운드(약 1280억 원)를 들여 전력을 보강했다. 선수들을 영입하고 이적시키는 동시에 팀에 분란을 일으킨 감독 나이젤 피어슨과 계약을 해지하고 라니에리 감독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스리바다나프라바는 과거 퀸스파크레인져스(이하 QPR)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QPR은 2011~12 시즌 승격 직후 무분별한 선수 영입과 스탭교체 등으로 한 시즌만에 강등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팀을 이끌어갈 노련한 선수의 영입을 추진하면서, 팀에서 오래 헌신한 스텝과 계약을 연장했다. 
특히 팀 사정에 밝고, 선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수석코치 크레이그 셰익스피어를 잔류시키면서 팀의 안정성을 유지했다. 이와 더불어 팀에서 스카우트를 담당하고 있는 스티브 월시와 계약을 유지했는데, 그는 팀 우승의 주역인 리야드 마레즈와 은골로 캉테를 영입하는 성과를 보였다.

동기부여의 귀재

스리바다나프라바는 선수와 감독에게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했다. 성과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보상을 했고, 팀 구성원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다. 
스리바다나프라바는 올 시즌 12위 이상의 성적을 거둘 시 지급하기로 한 650만 파운드(약 108억 원)의 성과급을 이미 선수단에 지급했다. 또한, 우승을 확정 지으면서 공약한대로 100만 파운드(약 17억 원) 상당의 우승 기념 초호화 파티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연다.
라니에리 감독의 성과에 대한 보상 역시 확실하다. 당초 올 시즌 계약에서 스리바다나프라바 17위 기록시 170만 파운드(약 28억 원)부터 순위 한 단계씩 10만 파운드(1억6000만 원)를 라니에리 감독에게 추가 지급할 예정이었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500만 파운드(약 83억 원)의 보너스를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미 바디와의 독대는 스리바다나프라바가 동기를 부여하는데 뛰어난 역량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5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직행’한 바디는 생전 처음 만져보는 큰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매일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 소식이 구단주 스리바다나프라바의 귀에도 들어갔다. 
스리바다나프라바는 바디에게 “이렇게 선수생활을 끝내고 싶나. 계약을 파기하고 방출하겠다”며 “꿈이 무엇인가, 어떤 인생을 꿈꾸는가. 팀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신중히 생각하라”고 경고했다. 이후 바디는 훈련에 열심히 임했고, 그 어떤 수비수도 거뜬히 제칠 수 있는 빠른 스피드를 지니게 됐다. 
스리바다나프라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팬들이 레스터시티를 응원할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하면서, 향후 레스터시티가 잉글랜드 중부지방을 대표하는 구단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기틀도 다졌다.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다문화 도시인 레스터를 연고로하는 레스터시티는 매 시즌 성적이 저조 했기 때문에 팬이 다른클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스리바다나프라바는 레스터시티가 ’빅클럽’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열성적인 팬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에게 무료로 맥주와 도넛을 나눠줬다. 여기에 팀도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하면서 팬덤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최근 우승 세레머니에 30만 명의 레스터 시민 중 대부분인 24만명이 운집하기도 했다.

“꿈이 무엇인가, 어떤 인생을 꿈꾸는가”

이번 우승으로 스리바다나프라바와 레스터시티는 ‘돈방석’에 앉았다. TV 중계권료 수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진출에 따른 수익, 새 스폰서십계약, 입장권 수익 등을 합치면 이번 우승으로 레스터시티가 벌어들일 수익은 1억5000만 파운드(약 2500억 원)에 달하며, 메인 스폰서인 킹파워 면세점의 홍보효과도 엄청날 것이다. 
스리바다나프라바 개인에게도 레스터시티의 성공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우승을 통해 태국의 국제 브랜드 대사로 입지를 다졌고, 불안정한 태국 정재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안전한 정치적 방어막을 구축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다음시즌 준비에 돌입한 레스터시티와 스리바다나프라바의 행보는 과거와 다르게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아이야와트 스리바다나프라바 킹파워 그룹 부회장은 “우리는 셀링 클럽이 아니다”라며 기존 선수들을 지키고 새로운 선수를 영입할 뜻을 내비쳤다. 이제 새로운 선수들로 구성될 레스터시티를 스리바다나프라바가 어떤 식으로 이끌어 나갈지, 다시 한 번 성공신화를 쓸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더욱 재미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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