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과 독일기업의 경영비법
이병철과 독일기업의 경영비법
  • 민석기 기자
  • 승인 2016.05.02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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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 정세에서 기회를 포착하라

호암은 자택 거실에 똑같은 TV를 3대 놓고 동시에 시청했다. 단순히 당시 KBS, MBC, TBC(동양방송)가 같은 시간에 뉴스를 방송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호암은 그날 벌어진 일에 대해 어느 방송사가 공정하게 전달하는지를 비교하면서 봤다. 그만큼 세상 돌아가는 이슈를 늘 꼼꼼하게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어떤 사업을 해야 할까. 미래 사업을 바라보는 호암의 눈에는 사실 일관된 특징이 하나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대내외 정세에 매우 민감해서 유독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 하나에서도 사업의 기회를 찾았다는 것이다. 처음 사업에 뛰어들어 도정업을 했지만, 세상 물정을 몰라 1년 만에 자본금의 3분의 2를 까먹었던 개인적 경험과 수시로 요동쳤던 시대의 흐름이 호암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호암은 자택 거실에 똑같은 TV를 3대 놓고 동시에 시청했다. 단순히 당시 KBS, MBC, TBC(동양방송)가 같은 시간에 뉴스를 방송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호암은 그날 벌어진 일에 대해 어느 방송사가 공정하게 전달하는지를 비교하면서 봤다. 그만큼 세상 돌아가는 이슈를 늘 꼼꼼하게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정보는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수단이며 세계 정보까지 알아야 한다. 만일 세계경제가 불황일 경우에는 긴축 경영을 통해 손해를 적게 해야 할 것이며, 호황일 경우에는 호황에 대응하는 경영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경영부실이 온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1983년 9월 8일 사장단회의에서 호암이 강조한 얘기다. 호암이 세상을 뜨던 해인 1987년 2월 호암은 기흥에 반도체 3라인을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일본에 머물다 7월에 귀국해서 임원들에게 3라인 진척 상황을 물었지만 공장 착공은커녕 아직도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삼성 임원들이 사실상 이 회장의 지시를 어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일부 임원들은 “공장 건설 준비가 완료됐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당시 임원들이 3라인 건설을 반대한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1985년부터 진행된 일본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인해 반도체 가격은 급락했고, 1986년에는 불황까지 닥쳤다. 이 여파로 반도체 시장을 지배해온 미국 업체들이 D램 생산을 중단하는 일이 잇따라 일어났고, 미국 언론은 이를‘제2의 진주만 습격’이라고 표현했다. 
반도체 선두주자인 미국이 이 지경이니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이 더 심각했다. 1·2라인 투자 회수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에서 삼성의 누적 적자는 무려 2,000억 원에 달했다. 삼성그룹이 반도체로 인해 쓰러질 위기에 처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임원들이 호암의 지시를 어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런데 호암의 눈은 달랐다. 거듭 “최고의 기회가 오고 있는데 도대체 왜 늦느냐. 빨리 추진하라”고 재촉했다. 결국 지시를 내린 지 6개월이 지나 공장은 착공에 들어갔다. 호암은 결국 폐암으로 1987년 11월 19일 타계했지만, 한창 공사가 진행되던 그해 말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반도체 경기가 상승세로 급반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황으로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투자를 멈췄고, 미국 D램 업체들은 이미 사업에서 손을 떼 공백이 생겼다. 삼성전자는 1·2라인을 풀가동해도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호암이 타계한 지 1년도 채 안 된 1988년 10월, 마침내 3라인이 완공됐다. 당초 예정보다 6개월 늦어져 삼성전자는 그만큼을 손해 본 셈이었다. 호암은 반도체 호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그가 불황기에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비밀은 바로 대내외 정세에 예민했던 호암의 직감과 판단력에 있다. 
1986년 초 어느 날, 호암은 반도체 3라인 투자를 검토하던 팀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호암은 뜬금없이 “돈 걱정 말고 서둘러라 미국의 보복이 생각보다 빨라질 것 같다”고 했다. 당시 팀원들은 호암의 수수께끼 같은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몇 개월이 흘러 호암은 3라인 팀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들 오늘 신문 봤습니까?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아마도 대한 무역제재가 있을 것 같습니다.” 
팀원들은 그제야‘미국의 보복’이란 호암의 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호암은 미국과 일본의 무역마찰이 일어날 것을 내다보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호암은 이미 몇 년 전 일본 기업이 소련 잠수함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팔아먹은 사건이 터지자 이를 활용할 방안을 고민해오는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사업의 기회를 찾았다. 
호암이 타계한 후 세간의 예상과 달리 삼성의 반도체사업은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삼성을 맡은 이건희 회장은 “더 이상 방어에 급급하지 말고 남보다 앞서가야 한다”면서 반도체 시장 공략에 앞장서 오늘에 이르렀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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