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룡이 만든 ‘쥬라기 공원’
한국 공룡이 만든 ‘쥬라기 공원’
  •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 승인 2016.03.3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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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은 그리스어로 ‘무서운 도룡뇽’이라는 뜻이지만 사람들은 공룡을 좋아한다. 한국의 토종 인기 만화 ‘둘리’도 아기 공룡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 다른 나라처럼 공룡의 골격 화석이 대량으로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은 물론 티셔츠, 장난감 등 어디에나 공룡이 그려져 있고 공룡을 주제로 한 책이나 잡지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공룡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동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룡이 이와 같이 인간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지구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와는 너무나 다른 속성을 갖고 있는데다 그 형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공룡들이 발견되므로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공룡이 발견될 것인지를 알고 있는 학자들은 없다. 그럴만한 것이 공룡은 무려 1억6천5백만 년 동안이나 지구를 지배했고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살았기 때문이다.
공룡은 대략 2억3천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난 아르코사우리아(Archosauria)라는 파충류에서 진화했다. 아르코사우리아로부터 공룡이 분화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룡을 비롯한 익룡, 악어류 등이 눈구멍 뒤쪽에 측두와라 불리는 한 쌍의 열린 구멍과 그 구멍 위쪽으로 또 한 쌍의 열린 구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쌍의 구멍은 뱀과 도마뱀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산 오리주둥이공룡 발자국 화석

여하튼 아르코사우리아로부터 시작된 공룡은 6천5백만 년 전까지 장장 1억6천5백만 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왔던 신화적인 동물이다. 그런데 공룡이라는 용어에 많은 사람들이 다소 혼동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룡은 하늘을 나는 공룡이고 어룡과 수장룡은 물 속에서 살았던 공룡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공룡은 중생대의 대형 동물 가운데 육상 동물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생대 땅에서는 공룡, 하늘에서는 익룡, 바다에서는 어룡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인 마이클 클라이트 원작,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은 멸종된 공룡을 컴퓨터를 이용한 DNA 합성을 통해 다시 만들어 냈다가, 자신들이 첨단 과학을 동원하여 창조한 피조물인 바로 그 공룡들에 의해 파멸된다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흥행에 대성공한 데는 6천 5백만 년 전에 멸종된 공룡을 DNA 합성으로 복제해내 그 가능성을 제시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큰 원인이 되지만 좀 더 세밀한 장면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에 쫓기는 소형 하드로사우루스(오리주둥이공룡) 집단이 초원을 무리지어 달리는 장면과 공룡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는 장면이 압권이다. 하드로사우루스는 이빨없이 길게 늘어난 오리주둥이 같은 부리가 특징이어서 오리주둥이공룡이라 불린다. 이들 공룡의 입에는 거친 초목을 갈아먹을 수 있도록 뭉툭하게 닮은 이빨이 수백 개나 나 있다. 또한 머리에는 다양한 벼슬이 있는데 이는 동종을 식별하는 수단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두개골의 특징으로 미루어 커다란 눈과 정확한 청각, 훌륭한 후각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쥬라기공원’에서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 중의 하나로 불리는 오리주둥이공룡이 두 발로 뛰는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국에서 발견된 공룡의 화석 발자국 때문이다. 

마라톤 선수보다 4~5배 빨리 달렸다!

원래 쥬라기공원 제작팀이 공룡 제작의 교범으로 삼은 곳은 캐나다의 캘거리에서 약 25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다이너소어 주립공원이다. 다이너소어 공원은 총넓이 73제곱킬로미터로 래드디어리버밸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일대는 만화에 나올 만큼 약간 괴기스러운 형상을 하고 있지만 7500만 년 전에는 아열대지대로 숲과 습지 등으로 이루어진 최적의 공룡서식지였다.
수백만 년에 걸쳐 공룡의 시체가 쌓이고 그 위로 퇴적물이 덮이면서 공룡뼈는 화석으로 변했는데 약 1만5000년 전 빙하가 녹으면서 침식작용이 계속되자 땅속 깊이 파묻혀 있던 화석층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원 일대는 약 37종의 공룡이 확인됐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발견된 공룡 종류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가능한 한 사실에 충실한 장면을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스필버그는 이곳에서 발견되는 공룡 정보를 토대로 대본을 작성했다. 당초에 스티븐 스필버그는 쥬라기공원의 주인공으로 T-REX(티라노사우루스) 2마리를 한 마리 당 5백만 달러라는 거금을 투입하여 정교한 모형을 만든 후 촬영에 들어갔다.
과거에 묘사된 공룡의 모습은 공룡이 아주 천천히 네 발로 걸었고, 대형 공룡일 경우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없어 물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살았다는 것이 주제를 이룬다. 그러나 공룡에 대한 연구가 급진전되자 일부 공룡들은 두 발로 서서 걸었다는 사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증거는 우리나라에서 제공되었다. 한국에서 발견된 수많은 공룡발자국을 보면 당연히 있어야 할 꼬리의 고랑이 발견되지 않았다. 공룡이 꼬리를 질질 끌면서 걸었다면 깊은 고랑 같은 자국이 공룡 발자국과 함께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꼬리 자국이 없다는 것은 공룡의 꼬리가 땅 위로 올라서 있다는 것을 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부 공룡들이 매우 빠르게 뛰었다는 사실이다. 공룡의 속도는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공룡의 화석 발자국의 보폭을 감안하여 계산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발견된 오리주둥이공룡 발자국 화석은 공룡이 매우 빨리 뛰었다는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했다. 동물들의 종아리뼈가 넓적다리뼈에 견주어 길면 빨리 뛸 수 있다. 코끼리는 그 비율이 0.65이며 인간은 1.1 정도다. 반면 초원을 빨리 달리는 가젤영양은 그 비율이 1.25이다. 새를 닮았던 공룡의 경우 1.24로 가젤영양만큼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젤은 시속 80킬로미터 정도로 달린다. 체격이 작은 공룡들은 이보다 빨리 달렸을지도 모르는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전희영 박사는 시속 80~100킬로미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이 속도는 마라톤 주자들이 42.195킬로미터를 2시간 10분대로 뛰는 것을 감안한다면 4~5배나 빠른 속도이다. 

고성 덕명리, 해남 우항리…세계적 공룡화석지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빨리 달리는 공룡들이 이들 하드로사우루스들이다. 영화 쥬라기공원의 촬영이 상당 부분 진행되었을 때, 한국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에 의할 경우 어떤 공룡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뛰었다는 보도를 접한 몇몇 디자이너들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오리주둥이공룡들이 뛰는 장면을 만들어 스필버그에게 보여주었다. 
스필버그는 공룡들이 뛰는 장면에 충격을 받고는 곧바로 T-REX 위주의 시나리오를 바꾸어 공룡이 뛰는 새로운 장면이 삽입하도록 고쳤다. 당시 스필버그는 500만 달러에 달하는 T-REX 모형 2개를 제작하여 촬영에 임했는데 스필버그가 공룡이 뛰는 장면을 본 것은 쥬라기공원의 촬영이 3분의 2가 촬영된 상태였다. 스필버그가 시나리오를 전면 개편하고 다시 촬영하겠다고 하자 제작자들이 스필버그의 시나리오 변경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물론 스필버그는 제작진들의 항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나갔다.
스필버그의 이와 같은 단안이 쥬라기공원을 공전의 흥행으로 이끌었음은 물론이다. 한국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쥬라기공원이 정말로 성공했을지 의문시된다는 추측도 이래서 나왔다. 오리주둥이 공룡화석이 발견된 주 현장이 우리나라 간판 공룡화석 산지인 고성 덕명리와 해남 우항리이다. 이곳에서 공룡발자국이 대량으로 발견되는 것은 공룡이 살던 중생대만 해도 이곳이 바다가 아니라 거대한 호수를 낀 육지였기 때문이다.
덕명리와 우항리가 세계적인 공룡화석지로 명성을 높이고 있지만 우항리는 쥬라기공원(3)의 모델지로도 유명하다. 우항리의 경우 공룡, 익룡, 새발자국 그리고 절지동물 화석이 동일지역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지역이다. 우항리에서 823개의 공룡발자국과 날아다니는 파충류로 알려진 익룡의 발자국 443개는 물론 물갈퀴를 가진 새의 발자국이 새겨진 화석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화석군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물갈퀴 새발자국은 약 8,500만 년 전으로 추정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익룡은 지구상에 출현한 동물 중 최초로 하늘을 날았던 척추동물이지만 앞발이 날개로 변했기 때문에 공룡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새의 조상도 아니다. 익룡의 날개는 엄청나게 긴 네 번째 손가락 끝에서부터 몸통과 뒷다리로 뻗쳐 있는 커다란 피부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날개막은 섬유조직과 근육으로 이루어져 뻣뻣하고 강력하다. 

우항리 익룡 발자국 ‘세계 최대’

여하튼 우항리의 익룡 발자국은 발견 당시 세계에서는 7번째이나 아시아에서는 최초의 발견이다. 그런데 한국명으로 명명된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 발자국은 앞발자국 길이 330밀리미터 폭 110밀리미터, 뒷발자국은 길이 350밀리미터에 폭 105밀리미터이다(통상 익룡의 발자국은 10cm 안팎임). 이로 미뤄 활짝 편 날개 길이는 13m가 되는데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졌던 스페인의 익룡 발자국보다 약 5~8센티미터가 더 큰 세계의 최대의 발자국이다.  
해남우항리의 익룡은 4족 보행과 2족보행으로 걸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알려준다. 익룡이 4족보행 했다는 것은 7.3미터의 세계 최장의 보행렬을 통해 알 수 있다. 앞발의 모양은 매우 불규칙하며 뒷발의 모양은 삼각형이나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익룡이 두 발만을 사용해 걸었다는 2족보행 흔적들도 거의 모든 지층에서 발견되며 특히 날개가 달린 앞발만 사용해서 걸은 익룡발자국 보행렬도 다수 발견된다. 물론 익룡 발자국 크기 자체만 말하면 보다 큰 발자국이 발견되었는데 그것도 한국에서 발견되었다. 
2009년 임종덕 박사는 경북 군위군 군위읍 야산계곡에서 길이 354밀리미터 폭 173밀리미터인 익룡발자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발견된 익룡 발자국은 익룡의 보행 자체 연구에 많은 정보를 제공했는데 이 자료가 영화 쥬라기공원(3)의 주인공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익룡 묘사의 교과서가 되었다. 익룡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어기적거리며 걷는데 이것은 우항리 익룡의 거동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삽입한 것이다. 한마디로 쥬라기공원과 쥬라기공원(3)은 한국에서 공룡과 익룡 발자국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평범한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참고적으로 익룡과 새, 박쥐는 모두 독자적으로 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들이 지구상에 등장한 시점은 수 천만 년의 차이가 있지만 앞다리가 변한 길고 가는 팔뼈를 지닌 날개를 공통적으로 갖는다. 그러나 세부적인 구조는 다르다. 새는 손과 손가락뼈가 융합돼 있고 여기서 깃털이 난 반면 박쥐는 길고 가는 4개의 손가락과 짧은 엄지손가락이 피막을 지탱한다. 익룡은 한 개의 손가락만 유독 길어져 피막을 지탱하고 나머지 3개의 손가락은 짧다. 긴 손가락과 몸통, 뒷발은 피부가 변한 막으로 덮여 있다. 그러므로 날개를 접고 걸을 때 땅에는 주로 날개 끝에 달린 3개의 짧은 손가락 자국이 남는다. 우항리공룡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바로 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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