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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9 19:07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Choice & Decision'
'Choice & Decision'
  • 김혜영 자문위원
  • 승인 2016.02.01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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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는 종영했지만 여전히 ‘응팔앓이’ 중인 시청자가 적지 않다. 심지어 90년대 이후 출생한 20대들까지도 ‘응팔앓이’를 하고 있다. 1980년대를 부모로 성실히 살아왔던 세대들, 1980년대 자녀로서 철없이 살아왔던 세대들, 1980년대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대들 모두에게 ‘응팔’은 다양한 감동과 경험을 제공했다. 때문에 ‘응팔앓이’는 세간의 화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이라는 컨셉은 드라마에서 매우 중요한 스토리 중심이 된다.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가족은 삶의 시작이고, 삶의 과정이며, 삶의 종착지이다. 문득 눈길을 돌리기만 해도 가슴 한쪽이 아리고, 생각만 해도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드는 것은 오직 가족뿐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이런 가족이라는 컨셉으로 가족과의 소통, 이웃과의 소통, 친구와의 소통, 연인과의 소통을 이상적으로 연출했다. ‘응팔’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하던 ‘소통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시청자들이 더욱 좋아했다. 소통의 어려움에 허덕이던 현대인들에게 ‘응팔’의 이상적인 소통은 대리만족을 주기에 충분했다. ‘응팔’은 시청자들의 과거 소통 경험과 소통 추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때문에 ‘응팔’에서 보여주었던 이상적인 소통은 현대인들에게 전혀 불가능한 소통이 아니라,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응팔’이 묘사했던 ‘소통의 본질’은 전 세대를 아울러 ‘공감’을 자아냈고, ‘감동’을 끌어내주었다. 그리고 ‘응팔앓이’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가지고 ‘응팔’과 같은 소통을 따라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

‘응팔’에서 보여주었던 이상적인 소통에는 현대사회의 소통과는 차별된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그 특징들을 살펴보면, 첫째, ‘공유’이다. 남의 집 대문을 내 집 드나들 듯 하던 것은 80년대에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 어린 자녀들에게 친구 집 대문은 내 집같이 항상 열려 있었다. 지금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현대에는 친구 집 현관문 초인종도 친구엄마 휴대폰으로 나의 엄마가 연락해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공유’의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 음식을 공유하고 내 집을 모임의 장소로 공유하는 것은 현대의 삶에서는 불가능하다. 맞벌이하는 부모의 귀가시간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집 사정에 대해 남 의식을 많이 하게 된 풍토는 ‘공유’의 범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마음의 ‘공유’ 공간이 좁아졌기에 소통의 ‘공유’공간도 비례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둘째, ‘공감’이다. 80년대에는 이웃집의 아픔이 내 아픔인 것 마냥 ‘공감’해 주었다. 옛말에 “멀리 있는 일가친척보다 지척의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과거의 이웃은 형제 이상의 관계처럼 서로 공감해주는 폭이 넓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그 옛말이 “멀리 있는 일가친척도 모르고, 지척의 이웃은 더 모른다”로 바뀌었다. 설사 알고 지내는 이웃과의 ‘공감’구조도 ‘경쟁’구도로 바뀌었다. 내 자녀의 친구 집이 잘 살면, 내 자녀 기죽지 않기 위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 현실이다. 내 자녀의 친구가 다니는 학원이 좋으면, 내 자녀도 기죽지 않기 위해 그 학원에 등록을 시킨다. 알고 지내는 이웃집에 새로운 가구나 가전제품이 있으면 나도 기죽지 않기 위해 더 좋은 가구나 가전제품으로 바꾸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대의 ‘경쟁’상황에서는 ‘공감’의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이다. 80년대에 삶을 공유하고 마음으로 공감하는 관계에서는 ‘공동체’성이 탁월했다. 그 시절에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그것을 극복하거나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함께 행동으로 도와주었다. 공유와 공감을 넘어 행동으로 ‘공동체’를 보여준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처럼 작은 일도 함께 해결해 나가려고 해주었던 것이다. 요즘에는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발달하면서 ‘너의 문제는 네가 해결해야 할 일, 나의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건들지 마세요…’라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런 문화는 기업 등 다양한 조직에서도 조직문화로 형성되고 있다. 때문에 조직에서 지향하는 협업, 공동체성 조직문화는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 가지를 위해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것

앞서 살펴본 ‘응팔’의 이상적인 소통 특징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Decision’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choice’와 ‘decision’을 혼동해 사용한다. 그러나 ‘decision’은 ‘choice’와 다른 개념이다. 그렇다면 ‘decision’은 ‘choice’와 무엇이 다를까? 그 차이점을 살펴보면, ‘choice’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중에 원하는 한 가지를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decision’은 한 가지를 위해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것을 지칭한다. 현대 사람들은 대부분 ‘choice’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간편하고, 덜 힘들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choice’가 매우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decision’보다는 매우 수월하다는 것이다. 
‘응팔’의 소통 특징에는 이 ‘decision’이 녹여져 있다. 삶을 공유하고, 마음으로 공감하고, 함께 행동해 주는 것은 여러 가지를 포기할 때 가능하다. 자신만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거나, 자신만의 공간을 포기해야 하거나, 자신의 우월감을 포기해야 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응팔’ 속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포기했다. 그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포기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사람’으로서 존중받기 위해서는 타인을 ‘사람’으로서 존중해 주어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이루어질 때 ‘응팔’ 속 이상적인 소통은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은 진정 중요한 존재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현대인들은 경제논리 테옆이 감겨 있는 것처럼 반복적인 삶을 기계처럼 살아간다. 공유하고, 공감해 함께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청년실업률의 증가, 이혼율 증가, 경기 침체, 대출금 증가 등의 사회적 이슈는 점점 ‘사람’이라는 중요한 존재의 존재감을 잃게 만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가늠하는 것은 무의미해진지 오래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응답하라 1988’의 소통은 이상적인 소통을 대리만족 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바이블의 전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이다. 더 축약해 한단어로 요약하면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choice’가 아니라 ‘decision’을 행하는 것이다. ‘사랑’의 어원은 ‘사량’으로써 “마음을 헤아려 먼저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고 헤아려 좋은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다. ‘응팔’의 이상적인 소통 특징과도 부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특징은 현대사회에서 많이 잃고 살아온 특징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소통은 소중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무엇들은 조금 포기하고, 마음을 헤아려 먼저 행동하는 ‘decision’이 이루어질 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을 시작하면서 어떤 ‘choice’들을 버리고 어떤 ‘decision’을 할 수 있을까…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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