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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8 19:19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꽃은 어디에나 핀다
꽃은 어디에나 핀다
  • 엄문희 자문위원
  • 승인 2016.02.01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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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사슴 어린 눈물의 섬, 소록도 이야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길 전라도 길. 
                              <한하운 詩 ‘소록도 가는 길’>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 해서 소록도.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이다. 2012년 12월 집계로 600명 정도의 환우가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이 살아가는 곳. 녹동 항에서 손닿을 것 같은 작은 섬엔 울창한 송림과 깨끗하고 하얀 모래 해안이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수용되었던 한센병 환자들이 손수 가꾼 중앙공원은 말끔히 다듬어진 나무들이 아름답다. 섬 곳곳을 볼 수 있지만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 안으로는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다.  

소록도에는 11개의 등록문화재가 있다. 검사실과 감금실 사무실과 식량창고와 교도소 신사 등 강점기에 지어진 구 소록도갱생원의 부속건물들이다. 그 중에서 66호 검사실과  67호 감금실은 한센병 환우들의 한 서린 장면이 상기된다. 사망한 환자를 해부하고 단종수술(斷種手術)을 집행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검사실은  1935년에 건축된 박공지붕을 얹은 붉은 벽돌조 단층 건축물이다. 강제로 단종을 당한 이의 슬픔이 시 한편으로 덜컹 걸려있다.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아무 법문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한하운 詩 ‘벌’>

감금실은 1935년에 지어진 H자형 평면에 박공형 지붕을 얹은 붉은 벽돌의 단층 건축물로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를 가졌다. 한센병환자 중 원내 내규를 위반한 자를 격리ㆍ감금하던 곳으로 부당하게 구금ㆍ감시, 체형 받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센병 환우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이 자행되었고 1만에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 실험에 적극 가담하고 원생들을 착취하고 자신의 동상까지 세웠던 일본인 소호 원장은 한센병 치료와 원생 보호 등으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었다. 갇혀버린 섬의 역사는 감금된 사람처럼 아프다.

쓰레기통과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서
밤을 새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죽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이 꿈틀 만져진다. 

배꼽 아래 손을 넣으면
37도의 체온이
한 마리의 썩어가는 생선처럼 뭉클 쥐어진다. 

아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나의 목숨은
아직도 하늘에 별처럼 또렷한 것이냐.
                      <한하운 詩 ‘목숨’>

아기사슴 성당 앞에서 돌아 나오다 공적비 하나를 보았다. 멈춰 섰다. 마가레트. 마리아. 마리안느. 내가 아는 이름들이다. 그때 25년 전 뵈었던 할머니 수녀님들.

반평생 넘게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은 지난달 21일.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10여 년 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을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 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돌아가 고향 오스트리아는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지만,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습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 마리안 마가레트 수녀에 관한 어느 기사에서 발췌 - 

어디엔들 꽃이 피지 않을까. 눈이 없는 소록도엔 겨울마다 애기동백 하얀 꽃이 눈처럼 쏟아진단다. 본문 사이사이 삽입된 모든 시는 한센병 환우였던 한하운님의 것이다. 

한센병은 낫는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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