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8-19 21:47 (월)
“제 목을 칠 수 있는 그 용기로 적을 치셔야 합니다”
“제 목을 칠 수 있는 그 용기로 적을 치셔야 합니다”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6.02.01 13: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했던 명재상 안영

제(齊)나라 안영(~BC 500)은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명재상 중 한 명이다. 생전 세 명의 군주(영공, 장공, 경공)를 섬기며 ‘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백성의 생활에 관심이 깊었다. 꼿꼿한 성품을 지녔던 안영은 군주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한 충간(忠諫)을 자주 올렸다. 특히 한 벌의 여우가죽 옷을 30년이나 입었다는 설화는 그의 검소한 사생활을 잘 이야기 해준다.
제갈량은 이런 안영을 본받고 싶어 했으며, 사기의 저자 사마천도 “안영이 타고 다니는 수레의 마부가 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흠모하고 존경했다.
그가 현세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안영은 인의(仁義)로 나라를 다스리고 평화로 외교한다는 ‘인의치국(仁義治國), 화평외교(和平外交)’를 주장했다. 그는 백성들을 자기 몸처럼 아꼈고, 근검절약 하는 생활에 힘썼다. 박학다식했으며 논쟁에도 능숙했다. 아부를 모르는 강직한 성품으로 늘 임금의 면전에서 어진 정치를 펴고 형벌을 줄이며 세금을 가볍게 하라고 바른 소리를 했다.

 橘化爲枳(귤화위지)

안영은 국내 정치에서 깊이 있는 지략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제후국들 사이의 외교 면에서도 수준 높은 책략을 구사했다. 그는 거만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게 평등하게 상대를 대했으며 평화로운 분위기로 관계를 이끌었다. 그의 발자취는 여러 제후국에 미쳤는데, 그 나라가 크든 작든 그는 수준 높은 외교수단과 빛나는 외교적 언어에 소박하고 절도 있는 자세로 외교에 임했다.
초나라 영왕은 초나라가 대국이라는 하나만을 믿고 작은 나라를 깔보는 등 매우 오만했다. 그는 안영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자 그를 불러 면박을 주고 싶었다. 이에 제나라 재상을 초청한다는 사신을 제나라에 보냈다. 초대를 받고 초나라에 도착한 안영은 평상시처럼 베옷에 마른 말이 이끄는 가벼운 마차를 탔다. 수행원들도 모두 소박한 차림이었다. 안영 일행은 초나라 수도 영도 동문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일행은 하는 수 없이 마차에서 내려 문지기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문지기는 한쪽 벽에 있는 작은 쪽문을 가리키며 “상국께서는 충분히 저 문으로 출입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굳이 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치욕을 주기 위한 초영왕의 술수라는 것을 간파한 안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큰소리로 고함쳤다.
“이건 개구멍이 아닌가? 개구멍으로 사람이 드나들 수 없지. 개의 나라에 사신으로 왔다면 개구멍으로 출입하겠지만 인간의 나라에 사신으로 왔다면 응당 사람의 문으로 출입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이 말을 들은 문지기는 이 사실을 곧장 초영왕에게 알렸고, 영왕은 대문을 열어 안영을 맞았다.
이윽고 안영을 접한 영왕이 5자가 채 되지 않는 그를 보고 “제나라에는 이리 사람이 없는가?”하며 비아냥거렸다. 초영왕의 방자한 태도에 안영은 분노가 치밀었지만 자신이 나라를 대표하는 사신의 자격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침착하게 대응했다.
“왜 그러십니까? 제나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 수도 임치의 사람들이 입김을 한 번에 내뿜으면 구름이 되고, 길 가는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비비고 발뒤꿈치를 밟을 정도입니다”라고 답했다.
영왕은 “그런데 당신 같은 사람이 사신으로 오게 됐소?”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안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답했다. “우리 제나라는 상대국가에 맞는 인물을 골라 사신으로 보내는 관습이 있습니다. 상대국이 예의 있는 나라의 군주라면 그에 맞는 덕망 있는 인물을 선발해 사신으로 보내고, 무례하고 거친 나라의 어리석은 군주라면 사신도 그에 걸맞는 비루하고 볼품없는 인물을 선발해 보냅니다.”
얼굴이 달아오른 영왕은 다른 상황을 만들어 안영의 기를 죽이려 했다. 때마침 병사들이 한 사람을 포승줄로 묶어 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그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이고 무슨 죄를 지었느냐?”라고 물었다. 병사들은 “제나라의 죄인인데 도둑질을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영왕은 안영을 보며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잘하나 보오.”
그러자 안영은 “강남에 있던 귤을 강북으로 가져가 심으면 탱자가 되는데 이는 토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제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을 모르고 살았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한 것을 보니 초나라의 토질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영왕은 할 말을 잃고 성대하게 환영식을 열어 안영을 맞았다.

“백성을 사랑하는 덕보다 더 높은 덕은 없다”

안영은 어진 정치를 주장했다. 여기에는 백성을 아끼는 애민(愛民) 사상이 강하게 깔려 있다. 그는 국군과 귀족들의 호화사치를 반대했다. 또 백성에 대한 관리들의 잔혹한 착취도 반대했다. 그는 백성을 자기 몸처럼 아끼고 그들의 고통을 따뜻한 마음으로 어루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겨울날 경공과 안영이 순유(巡遊)를 하던 중 길에서 썩어가는 시신을 보게 됐다. 경공은 이를 보고 위문의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안영은 “옛날 우리 환공께서는 출유하다가 주린 자를 보면 음식을 나눠줬고, 병든 자를 보면 그에게 재물을 줬습니다. 또, 사령을 내릴 때도 백성의 힘을 노고하지 않게 했고, 세금을 빗대 백성의 재물을 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선군이 장차 순유하려 들면 백성들은 앞을 다퉈 ‘마땅히 우리 마을로 행하셔야 합니다’라고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 말을 들은 경공은 “그대의 말이 옳군요. 윗사람이 되어 아랫사람을 잊은 채 세금이나 무겁게 물리고 그들의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니 실로 나의 죄가 큽니다”라며 썩어가는 시체를 수습했다. 이어 주변 사십 리 안의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고, 일 년 동안 복역(服役)을 면제하고 자신은 석 달 동안 출유하지 않았다.
‘안자춘추’에는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일화가 기록돼 있다. 경공은 추운 겨울날 백성들을 징발해 큰 누대를 짓는 공사를 진행했다. 노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안영은 이를 보고 “허락하신다면 노래 한 곡 부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경공이 흔쾌히 허락하자 안영은 “언 물이 나를 씻어 내리네. 어쩌면 좋을꼬? 임금께선 우리를 풀어 주지도 않네. 어쩌면 좋을꼬?(凍水洗我 若之何 太上靡散我 若之何)”라고 눈물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이 모습을 본 경공은 “선생께서 어찌 이런 모습을 보이십니까? 아마 누대 짓는 노역자들을 위해서겠지요? 과인이 속히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안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큰 누대 짓는 곳으로 가서 “우리는 보잘 것 없는 미천한 백성인데도 그나마 오막살이라도 하면서 조습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임금께서 겨우 누대 하나 짓겠다는데 이를 마련해 드리지 못하다니 이게 무슨 노역거리라도 되느냐?”라고 소리치며 일하지 않는 자들을 몽둥이로 내리쳤다.
백성들은 안영을 원망했다. 하지만 이를 들은 중니(仲尼: 공자)는 위연히 탄식하며 말했다.
“옛날에 남의 신하로서 훌륭했던 자는 그 명성은 임금께 돌리고, 재화는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안에서는 그 임금의 잘못을 잘 닦아 고쳐 나가도록 했고, 밖에서는 그 임금의 덕위를 널리 자랑하는데 힘썼다. 이 덕분에 게으른 임금이라 할지라도 능히 그 의상을 잘 늘어뜨려 입었고, 제후를 조알할 때에는 감히 자신들의 공을 자랑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도에 해당하는 자는 바로 안영 같은 이로다!”

“태산의 높이는 돌 하나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안영은 소통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은 오로지 성인뿐이라며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소통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자신도 결코 훌륭한 인간이 아니라며 자신을 낮추기도 했다.
제경공이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막자 안영은 나서서 이런 행동이 옳지 않다고 간언했다. 하루는 안영이 조회에 나가 경공을 보며 물었다. “어찌 조정의 분위기를 엄하게 하십니까?”
경공은 “조정의 분위기가 엄하면 국가를 다스리는데 무슨 해로움이 있습니까?”라며 물었다. 이에 안영은 “조정이 엄하면 아랫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윗사람이 들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요. 저는 이런 것을 벙어리라 하고 윗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은 귀머거리라 합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들뿐이라면 나라를 다스리는데 해가 되지 않고 어쩌겠습니까? 한 되, 한 말의 적은 곡식도 합치면 창고를 가득 채울 수 있고, 성기고 가는 실일지라도 합치면 옷감이 되어 장막을 만들 수 있습니다. 태산의 높이는 돌 하나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낮은 곳으로부터 쌓인 연후에야 높아진 것입니다.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한 선비의 말만 듣고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받아들여 설령 쓰지 않을지라도 어찌 아예 거절하여 받지 않으려 하십니까?”라며 아랫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영은 자신도 타인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스스로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안영은 고규(高糾)라는 이에게 자신의 집안일을 맡겼는데 3년 만에 그를 사직시켰다. 이를 알게 된 한 사람이 안영에게 “고규가 선생을 모신지 3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일찍이 아무런 작록(爵祿)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쫓아내시니 그의 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라며 고규를 내친 까닭을 물었다.
안영은 “만약 바르고 훌륭하여 완전한 인간이 있을 수 있다면 그는 성인일 것입니다. 나는 기울고 누추하고 모자란 사람입니다. 그런 나를 사람들이 왼쪽에서 받쳐주고, 오른쪽에서 받쳐줘야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규는 지난 3년간 나를 보필하면서 한 번도 나의 과실을 간(諫)해 준적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그를 사직시켰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간언하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간언을 멈추지 않았다.
제 영공 때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크게 혼란스러워진 적이 있었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외적 앞에 영공은 겁을 집어 먹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안영은 이런 임금을 만류하면서 “지금 군세를 정비해 다시 싸우면 반드시 이깁니다”라고 간했다. 그러나 넋이 나간 영공은 이 말을 듣지 않고 피난 준비를 더욱 서둘렀다. 결국 안영은 영공의 옷자락을 부여잡게 됐는데, 이에 화가 난 영공은 칼을 빼들어 안영의 목에 겨눴다. 자칫하면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안영은 간언을 멈추지 않았다. “제 목을 칠 수 있는 그 용기로 적을 치셔야 합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의 목숨보다 임금과 나라의 안위를 먼저 걱정한 안영에게 영공은 큰 감명을 받았고 이후 그를 더욱 중용했다.
경공에 이르러서도 안영은 목숨을 건 간언을 계속했다. 경공이 치수(淄水)가에 이르러 안영과 한가로이 서 있을 때였다. 경공은 “아! 나라를 길이 보존하고 이를 자손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게 된다면 그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경공이 나라를 다스리는 즐거움을 오래 누리고 싶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을 깨달은 안영은 이 말을 받았다.
“명왕은 이유 없이 세워 놓은 것이 아니며, 백성은 이유 없이 모여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임금께서는 정치를 혼란스럽게 해놓고 그 행동은 백성을 버리듯이 한 지가 오랩니다. 그러면서 이를 보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경공의 기분은 당연히 좋을 리 없었다. 그의 얼굴에 노여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지만 안영은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처음을 잘못한 것은 아니 건만은, 끝까지 잘 하는 자는 정말 드무네(靡不有初 鮮克有終). 지금 임금께서는 백성에게 임할 때는 마치 원수 보듯 하고, 어진 행동과 마주칠 때는 뜨거운 것을 피하듯 하면서 정치를 혼란스럽게 하고, 어진 이를 위험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민중의 뜻에 역행하고 백성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아랫사람을 죽이고 학대하고 있습니다. 그 화가 끝내 위에도 미칠까 두렵습니다”라며 경공에게 자신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만인이 즐거울 수 있는 군주가 되라고 충언했다.

二桃殺三士

제나라 경공은 요란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그의 주변에는 이른바 ‘제나라 3걸’로 불리는 세 명의 용사가 늘 따랐다. 이들은 경공의 총애를 믿고 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등 그 피해가 여간 큰 게 아니었다. 이에 안영은 이들을 징벌하기로 결심했다.
이때 노나라에서 국군이 방문했다. 안영은 상국의 신분으로 연회에 참석했는데, 세 용사는 칼을 찬 채 회랑 아래서 키득거리며 안영을 본체만체 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안영은 뒤뜰에 복숭아가 익었으니 몇 개 따서 안주로 삼자고 제의했다. 경공은 흔쾌히 허락했고, 안영은 시종을 시켜 한 접시 따오게 했다. 이 복숭아는 희귀종이라 열매는 많이 열리지 않았지만 크기가 쟁반만 하고 색과 향이 여간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맛을 본 두 나라 정상은 침이 마르도록 맛을 칭찬했다.
이래저래 중요 인사들이 하나씩 맛을 보고 나니 쟁반에는 두 개가 남게 되었다. 안영은 경공에게 세 용사에게 내려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그러면서 노나라 국군도 계시고 하니 제나라 용사의 위풍과 솜씨를 한번 자랑하게 하자고 했다. 경공은 신이 나서 세 용사들을 불러서는 각자가 세운 공을 자랑해서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자에게 이 귀한 복숭아를 상으로 내리겠다고 했다.
세 용사는 우쭐거리며 각자의 공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판정을 맡은 안영은 앞 두 용사에게 상으로 복숭아를 내렸다. 그러자 복숭아를 받지 못한 나머지 한 용사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검으로 자살했다. 그러자 두 용사도 자신들은 죽어도 함께 죽자고 맹세한 형제 사이라면서 역시 자결했다.
이렇게 해서 안영은 복숭아 두 개로 골치 아픈 세 용사를 제거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라는 성어의 고사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