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
두 개의 물이 만나 새롭게 하나로 흐르는 곳
커다란 느티나무 물안개 황포돛배 족자섬
어쩌면 당신의 추억이 흐르는 그 강가에서
새로 쓰는 시
# 너는 연인이다
떠나버린 정인(情人)처럼 차갑다
시린 손가락 바람이 아쌀타
눈감고 걷는다 멈추다 울다 웃다
시퍼런 낙엽 냉소로 쏟아지다
열흘 아름다운 꽃 내가 젊어서
그렇게 선명하다 너는 오늘도
두 물의 첫 머리를 걸어
앓던 날 가을볕에 마음을 태워
시린 걸음 질질 끌던 하루 한나절
저 나무처럼은 결코 되지못해
잔가지 잎 몸뚱이 다 끌어안고
어찌 눈물의 계절을 버텨 갈 것인가
오로지 나만 염려 하다
기어이 울면서 돌아오고 말았다
짧던 꿈 하나는 얼어 죽지도 않는다.
# 어떤 날 두물머리의 기억
하늘이나 바람이거나 별 같던
문득 꽃처럼 바람 잠깐
너를 기다리던 두 물 이야기
나긋한 너의 팔을 끼고 조심조심
밀 막걸리 움파 산적으로 한 시간
먹태 한 가닥 김에 싸서 두 시간
국수집 찐빵집 에스프레소 즐거운 간판
다리 아래 총총 오리 떠밀려오면
울었던 그 날처럼 다시 웃겠지
양수는 왜 양수인지, 팔당 농부 이야기
남한강 폐사지 북한강 철길로 때우다
큰 나무 강에 서면 비로소 잡은 손이 어색하겠지
그 손을 풀어 귀 뒤 머리칼을 쓰다듬다
혹시 숨겨온 말, 할 수 없던 말
식지 않은 이 마음이 읽히는지 기다리겠지
말없이 차에서 빗소리 세다가
잠시 눈 붙인 네 곁에서
나는 숨도 못 쉬고 죽은 듯 기다리겠지
다시 온다면, 그런 날이 내게 온다면
짧은 밤 네 곁에서 그 얼굴 가느다란 턱이 닳도록
머리칼이며 눈썹이며 입술이며 잠든 손바닥
잘 때 나는 숨소리 몸 돌릴 때 내는 한숨소리 꿈꾸듯 한마디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싶어서 밤새 머리카락 수를 세겠지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마디마디 잊혀지지 않도록
긴 편지를 쓸 텐데. 마음으로. 이렇게.
보고 싶다 많이 보고 싶다 보고 싶다.
# 아침
너는 아름다운 날 더욱 그립다
길었던 강 끝에서 만난 새 길처럼
그대를 몽땅 잊고 나타날 낯선 맨 처음
나는 그것을 ‘아침’이라고 불렀다.
# 흘러가던 서성이던
주인처럼 나를 맞던 강물도
결국은 흘러가던 그 순간만 있었다
다른 몸 낯선 이름으로 만나 흘러가던 우리
머물고 싶었을 뿐이다.
그림처럼 구름이 예쁘고 꽃은 시들지 않고
아이는 항상 웃고 사랑도 시들지 않는
여행자의 운명을 나눠가진 그대가
똑같은 나와 함께 서성였던 것 뿐이다.
우리는 닮은 얼굴로 서로 위안 했을 뿐이다.
엄문희 여행작가 겸 미술치료사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