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중국인 “DNA가 다르다”
한국인과 중국인 “DNA가 다르다”
  •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5.11.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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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의 톡톡 사이언스] 한민족(동이)과 화하족(화이)의 DNA 분석

중국은 근래 ‘중화 5천년’이라는 주제로 과거 오랑캐라고 비하하던 동이족(東夷族 : 중국인들이 동북지역에 살고 있던 우리 조상들에게 붙인 명칭)이야말로 중국의 선조라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현 요령성을 포함해 몽골 등 광대한 지역에서 일어난 ‘홍산문화’가 중국의 시원이며 그동안 중국인의 시조인 황제 역시 동이족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홍산문화에서 태어난 기원전 3,000년 경 ‘신비의 왕국(여왕국)’이야말로 중국의 역사라고 설명하는데 중국의 화하족(華夏族 :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漢族의 원류가 되는 민족)이 이들 지역에서 근거를 갖지 않았다는 것은 그동안의 역사가 증명한다. 이들 왕국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큰 틀에서 동이족 그리고 한민족은 과거부터 중국의 화하족과 결정적으로 다른 풍습과 문화를 견지해 왔고 현재도 이를 고수하고 있다. 이것은 홍산문화를 비롯해 이를 이어서 태어나는 고조선 지역에서 발견되는 풍습과 유물은 중원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 문화와 전통을 한민족의 주력이 이어 받았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중국이 개발해 강조하고 있는 중국 측 주장의 모순점을 간단하게 지적할 수 있다. 중국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리만 개발해 주변국들을 혼동의 장으로 몰아가더라도 그들 주장의 모순점 등을 조목조목 지적할 수 있다면 중국 측 동북공정 등의 공격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데 이의 기본은 과학적 성과다. 동이족으로 알려진 한민족과 화하족으로 알려진 중화인과의 차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큰 틀에서 민족의 차이성이다. 이는 현대 과학적 성과에 기초를 두는데 큰 틀에서 한민족과 화하족은 DNA가 다르다는 점이다.

머리의 길이는 짧고 높이가 매우 높다

한국인이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과 외형부터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곳에서 외형만 보고 한국인과 서양인을 구별하는 것은 물론 중국인을 구별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만큼 다른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체형적으로도 다른 민족과 상당히 다르다. 현대 한국인의 체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머리뼈가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데 가장 뚜렷한 특징은 ‘머리의 길이가 짧고 높이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여기서 머리의 길이는 이마에서 뒤통수까지의 거리를 말하며, 높이는 아래턱뼈 윗부분의 ‘으뜸 점’에서 정수리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특히 머리뼈의 높이가 높은 것은 구석기 시대 사람부터 지금의 한국인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여기에서 한국인이라는 설명은 기본적으로 동이족을 의미한다.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과거 동이족의 터전으로 알려진 산동 일대의 주민과 동북지역의 주민들이 모두 형질 인류학 상 넓은 의미에서 몽골 인종에 속하기는 하지만 인골을 비교할 때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황하 중류의 지류인 위하 유역의 앙소 주민들은 조선 옛유형 사람들과는 달리 중두형에 속하며 이마도 곧지 않고 젖혀졌고 머리뼈가 높을 뿐만 아니라 얼굴뼈도 높다. 결론적으로 한민족은 중국의 앙소문화(仰韶文化)시대나 현대의 중국인들과도 다르다.

단군고조선의 근거지로 인식되는 기원전 2000년 경 적봉지역의 하가점 하층문화 인골 134기를 분석한 중국 길림대 주홍(朱泓)은 다음과 같이 결과를 발표했다.
‘하가점 하층문화 인골은 정수리가 높고, 평평한 얼굴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고동북유형’에 속한다. 이 같은 유형은 요하 지역과 전체 동북지역에서 보인다.’
주홍은 고동북유형이 요하 지역과 전체 동북지역에서 가장 빠른 문화주민이라고 설명했다. 하북성(河北省), 산서성(山西省), 섬서성(陝西省), 내몽골(內蒙古) 중남부 지구에서 보이는 ‘고화북유형’과는 다른 인종이라는 뜻이다. 하가점 하층문화인들이 중화인들과는 다른 민족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들 문화의 연대가 고조선의 연대와 부합된다.

홍산 문명의 주인공은 ‘동이족’

중국 요령성 심양시 우홍구 정가와자 유적은 비파형동검을 사용한 고조선의 강역으로 그곳 M6512호와 M659호에서 두 개의 불완전한 머리뼈와 몇 개의 몸 뼈가 발견되었는데 중국과학원고고연구소의 감정결과 이 머리뼈의 형태는 단두형에 속하면서 그 높이가 상당하여 전형적인 한민족의 특징을 보여준다(중국학자들은 이들을 동호(東胡)족으로 추정한다).
요서지방의 남산근 유적도 홍산 문화 지역으로 이들은 비파형 동검을 사용했는데 그들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한민족과 유사했다. 길림성 서단산 유적에서도 2구의 인골이 보고되었는데 그 형질적인 특징이 몽골계 특징을 보이는 비파형동검문화의 인골과 다소 달라 우리 민족과는 비교적 거리가 먼 것으로 추정했지만 북한에서는 서단산의 인골이 한국인과 많이 상이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바이칼호 퉁구스족보다는 우리와 가깝다고 보고 있다.
연해주 북쪽 아무르 강 연안에서도 신석기시대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역시 인류학적으로 한민족의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한민족이 이미 신석기시대에 홍산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면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이 강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현 중국인들의 조상이 아니라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반도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인골을 분석한 결과도 전형적인 한국인의 골격을 보여준다. 함북 웅기군 서포항(西浦港) 유적에서 성인남자 3개체분이 발굴되었는데, 신장은 보통 크기인 151.3~163.4센티미터였다. 두개골의 형태는 머리 길이가 상당히 짧은 초단두형이며, 높은 머리에 속했다. 함경북도 웅기 송평동 패총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말과 청동기 시대인도 초단두형이었고 함북지방의 나진 초도유적에서 유아 뼈 1개체를 포함하여 14개체분이 발견되었는데 골격으로 볼 때 오늘날의 한국인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가점 상층문화에서 내려간 상(은)의 은허에서 출토된 인골이 동이족임을 중국의 반기풍(潘基風)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은허 유적에서 상나라 귀족들의 묘가 발견되었는데 발굴된 대다수의 유골들이 동북방 인종의 특징을 갖고 있다. 인골들의 정수리는 북아시아와 동아시아인이 서로 혼합된 형태가 나타났다. 황하 중하류의 토착세력, 즉 한족(漢族)의 특징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민족 70~80%는 북방계

근래 발전된 유전자 분석을 보더라도 한국인이 외국인들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외형만은 아니다. 한국인은 외국인과 매우 다르다. 한국인의 염색체 분석에 의하면 우선 한민족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70~80%는 북방계이고 20~30%는 남방계이며 나머지는 유럽인과 다른 그룹이 섞여 있다고 설명된다. 한민족의 주류는 인구 숫자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북방 아시아인인데, 이러한 사실은 많은 고고학적 연구나 문화인류학적 연구 결과 한민족이 두 갈래로 나뉘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것과도 합치한다. 여하튼 한민족은 크게 두 갈래, 북방계와 남방계로 나뉜다는 뜻인데 이곳에서는 한민족의 주력인 북방계를 기본으로 설명한다.
현대 한민족의 주류인 북방계를 기준으로 할 때 한민족의 이동경로에 대해 대체로 시베리아의 예니세이강 상류-몽골(알타이)-내몽골-요령(만주)-경기도 연천 전곡리로 이어지는 문화루트를 가정한다. 이상의 경로를 감안하면 유목과 농경의 교착지대인 요하 지역에 이르러 신비의 왕국 그리고 이어서 고조선을 건국한 뒤 차츰 그 세력을 확장하여 한반도까지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사람들의 혈액형과 유전자형들은 인종을 식별하고 각 민족들의 친연관계나 차이들을 확증해주는 중요한 지표로 인정된다. 일본 오오사카(大阪) 의과대학의 마쓰모도는 사람의 혈청(血淸) 중 항체유전자를 연구하여 몽골인종의 기원과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마쓰모토는 몽골인종을 특징짓는 유전자 결합이 네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몽골인종 혈청 중에는 Gmab3st 유전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쓰모도의 혈청에 의한 연구 결과는 시베리아로부터 남쪽으로 멀어질수록 혈청 중에 Gmab3st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수도 적어지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몽골인종이 시베리아로부터 기원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전적으로 한국인과 가까운 ‘만주족’

북한의 장우진은 한민족의 경우 적혈구혈액형들인 레주스식 혈액형에서 나타나는 항원들의 양성인자 중 D항원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D항원의 양성인자는 아시아 인종에서는 99~99.5%, 유럽인종에서는 85%,아프리카 인종에서는 91% 정도인데, 한민족은 D항원의 양성자가 99.71%에 달한다. 특히 유전자 조성에 있어서도 한민족과 중국인들은 흑룡강성의 중국인을 포함하여 완전히 다르다. 한민족의 레주스식 혈액형 유전자는 CDe>cDe>cDE>CDE>cdE의 순위로 작아지는데 반해, 흑룡강성 지역의 중국인에서는 CDe>cDE>cDe>CDE의 관계로 나타나며, 귀주성 지역의 중국 사람에서는 CDe>cDE>cde>cDe>CDE의 순위로 나타난다. 이것은 한민족이 중국 사람과 혈연적 갈래가 서로 다른 집단임을 알려준다.
또한 켈식 혈액형의 K+ 인자는 유럽인들에게 특징적인 항원의 하나인데 한민족의 켈식 혈액형에서 K항원의 양성인자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데 반해 유럽인들은 7~9%나 나타난다. 특히 다피식 혈액형의 지리적 분포는 인종적 차이를 잘 반영하는데 한민족은 다피식 혈액형의 양성인자가 92%이고 음성인자는 7.83%이다. 반면에 중국 사람의 다피식 혈액형의 음성인자는 화북지역의 중국 사람에서는 4.35%, 상해지역의 중국 사람에서는 1.82%, 베이징 지역의 중국 사람에서는 0.44%이다. 따라서 한민족은 다피식 혈액형의 음성비율이 화북지역의 중국 사람보다는 1.8배, 상해지역의 중국 사람보다는 4.3배, 베이징 지역의 중국 사람보다는 18.1배나 더 많다.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만주족과 중국 동북 3성인 요령(遼寧) 길림(吉林) 흑룡강(黑龍江)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중국 한족보다는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 장우진도 한민족과 다른 민족간의 유사성을 펜로즈-크누스만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한민족은 만주족과 가장 가까운 분류학적 거리에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한국인과 전 세계 86개 타민족 DNA를 비교한 결과 한국인과 몽골인 간 유전적 유사성이 나타났다. 이들을 정리한다면 한국인은 중국 조선족과 만주족 그리고 일본인 순으로 가까웠다. 반면에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우하량 선사인들 체형도 한국인과 같아

요령성문물고고연구소(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는 1983년부터 2003년까지 우하량 지역에서 발견된 인골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발표했다. 한국인들이 이들 자료에 크게 주목한 것은 우하량 신비의 왕국(여왕국)을 건설한 거주민들이 하가점 하층문화(단군고조선)-하가점 상층문화-상(은)으로 이어지는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야말로 한민족을 구성한 원류로 알려지므로 이들이 현재의 한민족과 어떤 유연관계를 갖고 있는가는 한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라 볼 수 있다.
우하량에서는 6500~5000년 전의 인골이 상당수 발견되는데 제2지점, 3지점, 5지점, 16지점의 56개 무덤에서 발견된 63인의 인골을 정밀 분석했다. 제일 먼저 이들의 사망연대를 조사했다. 사망연대 추정이 가능한 총 52인을 분석했는데 6세 이하의 어린아이는 없고 소년기(7세부터 14세) 2명(3.85%), 청년기(15~23세) 4명(7.69%), 장년기(24~35세) 16명(30.77%), 중년기(36~55세) 29명(55.77%), 노년기(56세 이상) 1명(1.92%)이다. 이들 남녀의 평균 사망연대 즉 평균생존 기간은 생각보다 높은 37.70세이다. 반면에 우하량 홍산문화보다 후대인 하가점 하층문화의 대전자(大甸子)인들의 평균 연령은 28.28세로 홍산인들이 이들보다 거의 10여 년을 더 살았다. 우하량 즉 신비의 왕국에 살았던 사람들은 상당히 풍요한 거주 여건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56세 이상 산 사람은 단 한 명으로 당시에 55세 이상 생존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다.
남녀의 신장도 다소 놀라운 수치다. 남자의 최소치는 157.70센티미터이며 최고치 즉 제일 키가 큰 사람은 171.31센티미터이며 평균 165.67센티미터이다. 여자의 경우 최소치는 152.35센티미터, 가장 키가 큰 여자는 168.57센티미터, 평균키는 161.75센티미터로 이들 숫자는 일부 현대국가의 체구를 감안하더라도 결코 작지 않은 숫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우하량인들의 뇌 용량이다. 남자의 경우 평균 뇌 용량은 1,631cc, 여자의 경우 1,479cc로 현대인들의 평균 뇌 용량 1,400~1,500cc를 감안할 때 상당히 큰 수치이다.
또한 우하량에서 발견된 인골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체골(骸骨)이 길고, 이마는 각(角)이 졌으며 상면(上面)이 높았다. 또한 코 광대뼈가 각(角)지고, 코와 코 뿌리 지수 등 8개 항목으로 나누어 검토한 결과 몽골 인종 범주에 속했다. 즉 두골(頭骸)넓이와 높이, 최소 이마 넓이, 광대 뼈 넓이, 두골지수와 두골 길이 등이 몽골인종의 주요 특징과 같았다. 이를 풀어서 이야기한다면 이마는 옆으로 넓고, 편평하며 광대뼈도 비교적 옆으로 크며 높은 상면(上面) 형태다. 눈언저리는 중형(中形)이고 코는 좁은데 이들 징표는 한마디로 우하량에서 살았던 선사인들이 유전적으로 현재 한국인의 체형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DNA 분석 결과도 ‘고동북유형’

요령성문물고고연구소는 우하량 홍산인들의 DNA도 중점적으로 분석하여 이들이 현대인들과 어떤 유연관계가 있는가를 정리했다. 기본적으로 고고유적에서 인골이 나온다고 해도 분석에 사용할 수 있는 DNA를 채취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우하량인 중에서 5인의 DNA가 정밀 분석되었다. 중국 과학자들은 199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멀리스(Kary B. Mullis)가 발명한 PCR(중합효소 연쇄반응: Polymer chain reaction) 기법을 사용했다. PCR 기법이란 특정 부위의 DNA를 복제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제공된 시료를 20회 반복하여 복제하면 약 100만 배까지 늘릴 수 있는데 이렇게 늘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세 시간에 불과하다.
DNA 분석 결과 최종적으로 우하량인들이 ‘고동북유형’에 속한다고 발표했다. 우하량 홍산 문화를 이은 하가점 하층문화인들이 ‘고동북유형’에 속한다는 것이야말로 이들이 동이족으로 그동안 부단히 중화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주홍(朱泓)교수는 ‘요서지구 선진시기 거주민의 체질인류학과 분자고고학연구’로 홍산문화인과 현대인들과의 유전자를 비교했다. 제일 먼저 홍산문화 선대로 갈수록 형질인류학적 관점에서 고동북유형으로 분류된다. 이는 고대 중국 중원지역의 한족으로 볼 수 있는 고화북유형이나 고중원유형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한 고조선시대의 선대로 인식하는 소하연문화에서 출토된 인골들도 고동북유형이다.
그런데 학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그동안 고조선과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하가점하층문화에서는 고동북유형과 고화북유형이 섞여서 나온다는 점이다. 남산근, 흑석구, 용두산 등 하가점상층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의 경우에도 고화북유형으로 발견되어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 단계와는 뚜렷한 차별성을 보인다.
중국에서는 그동안 동이족으로 거론되는 동호-선비-거란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으로 고몽골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골인종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농경 생활을 유지하던 하가점 하층문화를 대체해 새롭게 출현한 유목생활인인 이들이 하가점 상층문화를 대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가점 상층에서 고몽골고원유형이나 현대 북아몽골인종과 유사한 모종의 집단(선(先)동호-선비-거란)과 함께 엉뚱하게 고화북유형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이 간단한 것은 아니지만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하층문화의 경우 농경문화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하가점 상층문화의 경우 유목 생활에 들어선다. 하가점 하층문화는 대체로 기원전 15세기에 갑자기 사라지는데 이 문제는 기후 변화에 따라 농경이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인식한다. 생존 환경이 급격히 변하자 하가점하층에서 상층으로 교체되면서 그 이전에는 홍산지역에서 고화북유형에 속하는 집단이 광범위하게 출현하는 것은 이 당시 거주민의 이동이 크게 일어났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과 일본, 부계는 뚜렷한 차이 나지만 모계는 거의 유사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홍산문화지역에서 탄생한 구홍산부터 후홍산문화를 이어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은 고동북유형을 갖고 있으며, mtDNA(모계) 분석에 의거해도 현대의 한국인과 체질인류학적으로 유사하지만 나머지 두 유형은 차이가 많다는 점이다.
이를 하가점 상층문화와 중원의 상(은)과 연계시키면 다소 설명이 가능해진다. 하가점에서 기후 등이 바뀌어 농경이 어려워지자 이들이 남하하여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은)을 건설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고동북유형인들이 대거 남하하자 하가점상충에 고몽골고원유형인과 고화북유형인들이 진출했다는 것이다. 동이족인 고동북유형인들의 압박에 고화북유형인들이 북상했다는 것도 설명된다. 또한 하가점에서 남하한 하가점상층인들이 상(은)으로 진출하는 것과 병행하여 요동지역 즉 한민족의 터전으로 이동했다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런 내용은 고대홍산인과 한민족과의 연계는 우하량 홍산문화 유적 출토 고인골에서 추출한 mtDNA로 비교한 결과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 자료에 의하면 현대 일본인, 현대 조선족이 비교적 가깝고 그 다음으로 현대 중국 남방한족이 가까운 집단으로 나온다. 반면에 하가점하층문화의 전신으로도 설명되는 소하연문화인과의 비교는 이들과 현대 조선족이 가장 가깝고 그 다음이 현대 일본인으로 나온다. 또한 하가점하층문화의 대전자묘에서 출토된 고인골에서 추출한 mtDNA로 상호거리를 비교한 결과를 보면 현대 조선족이 가장 가깝고, 그 다음이 현대 일본인, 그 다음이 현대 한국인이다.
그런데 전국시대 요서 지역 출토 인골(대산전묘지)을 보면 조선족 내지 한국인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남방 한족에 다소 가까운 것으로 나온다. 흉노와 중국이 역사에 등장한 이래 수많은 전투로 이들 지역은 한마디로 누가 주인인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각축장이 된다. 그러므로 현대 중국 북부에 거주하는 사람은 역사시대 이후 거대한 혼혈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구홍산시대와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시 말해 구홍산시대부터 하가점하층에 이르는 시기에 요서지역에서 홍산-소하연-하가점 하층문화를 건설했던 종족은 현대 한국인과 친연성이 있지만 역사시대 이후 요하지역에 주로 거주했거나 통치했던 집단은 홍산시대인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즉 역사시대 이후 문헌으로 추적할 수 있는 시대에 요하지역에 거주했던 종족과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고학이 다루는 시기에 요서 지역에 거주했던 종족이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부계(Y-염색체)로는 뚜렷한 차이가 나지만 모계는 거의 유사하다는 것은 그동안의 역사를 생각하면 조선족과 일본인, 한국인이 비슷한 거리로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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