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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8 14:35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
  • 인사이트코리아
  • 승인 2015.03.27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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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안의 ‘CEO 후마니타스]

지난 4월 25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자그마한 선물을 가져왔다. 60년 전 미군에 의해 밀반출된 대한민국 국새와 어보(御寶) 9점을 반환했다. 그 중에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만든 자주 국새인 ‘대한어보’를 비롯해 중요한 왕실 보물들이 포함되었다.
국보. 보물은 100년 이상 된 유물을 대상으로 하므로 20세기 근대문화재는 국가지정 문화재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이를 보완한 제도가 등록문화재이다. 이처럼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은 곧 우리 정체성의 보존을 위해서이다.
수많은 외세 침략에 의해 우리 문화재들이 해외로 밀반출 되었다. 그래서 밀반출된 문화재 반환운동이 활발하게 벌여 그 동안 많은 문화재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선왕실의궤’이다.
2006년 9월 14일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가 발족되면서 해외 약탈도서 반환운동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후, 2011년 10월 19일 일본에 약탈됐던 <조선왕실의궤>의 일부가 국내로 반환됐다. 이는 2011년 6월 10일 발효된 ‘한ㆍ일 도서협정’에 따라 국내로 반환되기로 한 1205권 중 5권이 돌아온 것이다. 5권 중에는 고종이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황제로 즉위하는 과정을 담은 <대례의궤>, 왕세자 시절 순종이 순명황후 민씨와 올린 혼례를 기록한 <왕세자가례도감의궤> 등이 포함되었다.
이후 나머지 도서도 2011년 12월 6일 국내로 들어왔다. 반환협정에 포함된 도서는 모두 일본 궁내청 소장품으로, 조선왕실 의궤류 81종 167책, 기타 규장각 도서가 66종 938책에 이르며, <증보문헌비고> 2종 99책, <대전회통> 1책 등이 포함되어 있다.또한 프랑스는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의 외규장각 도서에 있는 의궤 등 다수의 고문서들을 약탈하고 계속 돌려주지 않고 있다가 해외 약탈도서 반환운동의 결실로 최근 반환하기 시작했다. 2011년 4~5월에 걸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던 <조선왕실의궤>를 포함한 외규장각 약탈도서 297권 모두가 5년 단위 임대 형식으로 국내로 돌아왔다.

문화유산 지킨 숨은 애국자 ‘간송(澗松) 전영필’

단체가 아닌 민간인의 노력으로 돌아온 문화재도 있다. 손재형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찾아오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몇 달 동안 무릎 꿇고 사정해 되찾아 왔다. 소장했던 일본인도 그의 끈질긴 성의에 감복해 되돌려주었고 그로부터 2달 만에 미군의 폭격으로 그의 집은 완전 전소되었다. 만약 그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세한도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보물을 보존해 대중에게 보여 주는 것이 컬렉터(collector)의 의무이다’라고 페기 구겐하임은 말했다.
예술품이나 문화재의 수장(collection)이란 시대정신의 보존이다. 문화의 정수인 문화재는 단순한 탐미의 대상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문화재와 대화를 통해 선조의 삶과 정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창(窓)인 것이다.
같은 도자기라도 중국 도자기는 왠지 권위적이고, 일본 도자기는 깔끔한데 가볍다는 느낌인 반면에 우리 청자는 예쁘고, 백자는 부드럽고, 분청사기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작품에 따라 그 나라만의 느끼는 맛이 전혀 다르다.
6월은 새로운 서울 시장을 뽑는 선거가 있는 달이다. 세월호 참사로 선거 분위기가 예전과 같지 않지만 나름대로 정책 대결로 승기를 잡으려 모두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임 오세훈 시장의 정책 중 ‘디자인 서울’이란 이름아래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DDP(dream, design, play)가 새로운 랜드 마크(land mark)로 3월 21일에 개관했다. 이 건물은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건물로 세계적인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다.
전임 시장의 치적인지, 몰락의 상징인지는 후세가 판단할 문제이지만, 건물 그 자체로만 보았을 때 괜찮은 구조물이다. 하지만 하드웨어 보다는 그 안 에 넣을 소프트웨어가 앞으로 평가의 관건이 될 것이다.
때마침 이곳에서 개관 특별전으로  ‘간송문화(澗松文華)’의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1부 간송문화(3.21- 6.15), 2부 보화각(7.2-9.28)이란 이름으로 약 6개월간 전시가 될 예정이다.
간송문화란 간송 미술관이 1971년부터 지금까지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일반인에게 봄, 가을 두 차례의 정기 전시를 통해 수장품을 공개한 전시 도록(圖錄)을 일컫는다.
우리 문화유산 지킨 숨은 애국자 간송(澗松) 전영필. 그는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928년 일시 귀국하여 스승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을 만났으며 그의 조언으로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오세창으로부터 간송(澗松)이라는 아호를 받았다.
그는 스승 오세창의 지도와 조언을 받아 문화재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사동에 소재하는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인수해 경영하면서 고서적과 서화, 화첩 등을 수집했고 한국의 중요한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38년 개인 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세웠다. 1940년 경영난에 빠진 보성(普成)고보를 인수하여 교주(校主)가 되었다. 1956년 교육공로자로 표창을 받았다. 1942년 일본인 몰래 안동에서 기와집 10채를 살 수 있는 거금 1만원을 주고 구입한 《훈민정음(訓民正音)》 원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서적·고서화·석조물·자기 등이 있으며, 10여 점 이상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가 소장한 문화재 중 신윤복의 화첩도 유명하다. 1964년 문화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이충열의 ‘간송 전형필(김영사 : 2012)’는 간송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을 빌어 쓴 책이다. 그의 전기는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위대한 성공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밀려오는 잔잔한 감격, 그 자체다.
‘민족 문화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전형필(1906~1962)은 휘문 고교 은사인 서양화가 고희동 선생에게서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조언을 듣고 문화재 수집을 시작했다. 그에게 우리 문화재의 안목을 뚫어준 당시 최고의 수장가이며 서예가인 오세창으로부터 간송(澗松: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과 푸르른 소나무)라는 아호를 받았다.

아직도 일본의 절에 보관돼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민족 문화재의 보존은 또 다른 독립운동이다’라고 말하며 우리 문화재를 지키느라 모든 재산,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450억의 유산과 한 평생을 문화재 수집으로 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현재의 간송 박물관이다.
국보 12점, 보물 10점, 서울시 문화재 4점을 보유한 문자 그대로 ‘보화각(寶華閣)- ‘빛나는 보배를 모아 둔 집’이다. 성북동 산허리에 자리 잡은 간송박물관은 지금은 초라해 보이지만,
사저 앞 2층짜리 전시관은 당시 최고의 서양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건물은 초라하고 왜소해 보인다. 하지만 건물이 뭐 중요하랴, 콘텐츠(contents) 즉 소장 문화재가 중요한 것이다
1부 간송문화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소장품인 세계기록문화유산이자 국보 70호인 세로 23.3 센티미터, 가로 16.8 센티미터의 원본<훈민정음>의 내용은 3부 33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제 1부는 훈민정음 본문을 4장 7면에 면마다 7행 11자씩, 2부는 훈민정음 해례를 26장 51면에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한자 내려 싣고, 그 끝에 정통11년(1446)- 세종 28년 9월 상한을 명시하고 있다. 이 실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이다.
국보 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에서 우리 고려인의 창조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국보 135호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원본과 디지털화된 화면으로 새롭게 감상할 수도 있다.
2부 보화각에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신윤복의 <미인도>를 볼 수 있고, 국보 불상인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동국정운>을 볼 수 있다. 주말에 시내 나들이 겸 한 번쯤 우리 문화재 감상에 시간을 할애하는 여유를 가져볼 만하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은 고 김대중 대통령이 하신 말이다. 말 자체는 아주 쉬운 말이지만 말대로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말보다는 실천으로, 그리고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일을 솔선수범하신 분들을 진정 ‘행동하는 애국자’라고 부르고 싶다.
간송의 문화재 사랑을 보면서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일부 환수가 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일본의 절에 보관되어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 산재된 우리 문화유산을 하루 빨리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홍준의 ‘국보순례(눌와 : 2011)’의 부록에 열거된 해외에 남아 있는 우리 문화유산들이 빠른 시일에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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